프랑스 오디오 제작사 메트로놈(Metronome Technology)은 필자에게 늘 놀라움과 만족감을 안겼다. SACD 플레이어 겸 DAC AQWO, 네트워크 플레이어 DSS, CDCD8S CD플레이어 겸 DAC 등 필자가 리뷰한 모든 제품이 대단했다. 값비싼 별도 브랜드 칼리스타(Kalista)의 기기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중 톱 로딩 방식의 디스크 플레이어 AQWO는 전용 DAC 뺨치는 성능과 인터페이스를 갖춰 내심 구매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 기기에 DSS 같은 똘똘한 스트리머를 붙여주면 피지컬 디스크를 포함한 거의 모든 디지털 음원을 고품질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시청기는 단품 DAC인 Le DAC 2. 스트리밍, 디스크 플레이, 볼륨 조절, 아날로그 입력, 이런 기능은 전혀 없고 오로지 DAC만 된다. 1000만 원이 넘는 가격표를 달고서도 이처럼 DAC으로만 쓸 수 있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라인업 구색 맞추기이거나, 제작사가 DAC에 진심이거나.
메트로놈과 DAC
메트로놈은 1987년에 설립돼 주로 디스크 플레이어와 DAC, 스트리머를 만들고 있는 프랑스 제작사다. 지난 2017년 창립 30주년을 맞아 30조 한정으로 내놓은 1억 원짜리 CDT DreamPlay CD와 Kalista DAC 세트가 순식간에 동이 나기도 했다. 메트로놈은 좀 더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메트로놈 오디오와 하이엔드 제품 위주의 칼리스타 오디오로 나눠져 있다.
메트로놈 오디오의 제품 라인업을 보면, 크게 클래시카(Classica) 라인, DS(Digital Sharing) 라인, 그리고 AQWO 라인으로 구분된다.

클래시카(Classica) 라인은 말 그대로 메트로놈의 터줏대감 같은 제품들이 포진했다. CD 트랜스포트 Le Player 4, DAC을 내장한 CD 플레이어 Le Player 4+, 네트워크 스트리머 Le Streamer, 그리고 단품 DAC이자 이번 시청기인 Le DAC 2 등이 마련됐다. 지난 2012년에 출시된 메트로놈 최고의 베스트셀러 CD8S는 단종됐다.

DS(Digital Sharing) 라인은 룬 레디(Roon Ready) 인증을 받은 DLNA 기반 유무선 네트워크 트랜스포트 DSS와, 여기에 DAC 파트를 포함시킨 일체형 네트워크 플레이어 DSC로 구성됐다.

AQWO는 메트로놈의 플래그십 라인으로 SACD 플레이어 겸 DAC AQWO1, 여기에 스트리밍 기능을 포함시킨 AQWO2, 디스크 트랜스포트 t|AQWO, DAC c|AQWO로 짜였다. 트랜스포트와 DAC 모델은 별도 리니어 전원부 일렉트라(Elektra PSU)와 쌍을 이룬다. 일체형 AQWO1, 2는 내부에 리니어 전원부가 들어가 있다.

이들이 만든 DAC에만 초점을 맞춰보면, 초창기부터 일본 아사히 카세이 마이크로시스템(Asahi Kasei Microsystem)의 AK DAC 칩을 고수해온 점이 가장 눈에 띈다. 몇 년 전 방한했던 메트로놈 CEO 장 마리 클로젤(Jean Marie Clauzel) 씨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20년 전 처음 DAC를 개발했을 때부터 AKM 제품(AK4490 칩)을 썼습니다. 이 칩이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기 때문이죠. 이후 동일한 사운드를 유지하고 아날로그 사운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AKM 제품만을 씁니다.”
하지만 이러한 메트로놈의 ‘AK DAC 칩 외사랑'도 바뀌고 말았다. 지난 2020년 10월 20일에 일어난 AKM 공장 화재 때문이다. 이 화재로 AK DAC 칩은 1년 넘게 생산이 중단됐고 이에 따라 메트로놈도 DAC 칩을 미국 ESS의 ES Sabre 칩으로 갈아탔다. 사실 2022년에 나온 Le DAC 2과 Le Player 4+의 키포인트는 ES9026PRO 칩의 채택이다. 그전에는 AK4493 칩을 썼었다.
- 2012 CD8S : AK4490EQ
- 2019 AQWO : AK4497
- 2019 Le DAC : AK4493
- 2020 Le Player 3+ : AK4493
- 2020.10.20 AKM 공장 화재
- 2021 DSC : ES9038PRO
- 2022 Le Player 4+ : ES9026PRO
- 2022 Le DAC 2 : ES9026PRO
- 2023 AQWO 2 : ES9038PRO
다음은 메트로놈 주요 제품들의 출시 연보다.
- 1987 설립
- 1998 CD1 MKII : CDP
- 1998 C1A : DAC
- 1998 C20 : DAC
- 1998 CD1V MKII : CDP
- 2000 CD1V Signature : CDP
- 2000 C1A MKIII : DAC
- 2001 CD2V Signature : CDP
- 2001 C20 Signature : DAC
- 2001 Kalista 서브 브랜드 론칭
- 2001 Kalista CD : CDP
- 2006 Kalista : CDT
- 2006 C2A : DAC
- 2006 CD3 Signature : CDP
- 2006 CD3-T Signature : CDT
- 2006 GAIA : 턴테이블
- 2006 C5 : DAC
- 2007 CD4 Signature : CDP
- 2007 CD5 Signature : CDP
- 2009 Kalista SE : CDT
- 2013 Kalista Ultimate SE : CDT
- 2013 CD8 Signature : CDP
- 2014 장 마리 클로젤, 메트로놈 테크놀로지 인수
- 2015 Kalista 브랜드 분리
- 2015 Le Player : CDP
- 2016 C5+ : DAC
- 2016 C6 : DAC
- 2016 C6+ : DAC
- 2016 C8 : DAC
- 2016 C8+ : DAC
- 2017 Le Player 2 : CDT
- 2017 Le Player 2S : CDP 겸 DAC
- 2017 Kalista DreamPlay CD : CDT. 30주년 기념작
- 2017 Kalista DAC : DAC. 30주년 기념작
- 2018 DSC1 : DAC 내장 네트워크 플레이어
- 2018 Kalista DreamPlay Stream : DAC 내장 네트워크 플레이어
- 2018 Kalista DreamPlay One : CDP
- 2018 Kalista DreamPlay DAC : DAC
- 2019 Le DAC : DAC
- 2019 AQWO : SACDP 겸 DAC
- 2019 t|AQWO : SACD 트랜스포트
- 2019 c|AQWO : DAC
- 2019 Kalista DreamPlay Twenty-Twenty : 턴테이블
- 2020 Le Player 3 : CDT
- 2020 Le Player 3+ : CDP 겸 DAC
- 2020 DSS : 네트워크 플레이어
- 2021 DSC : DAC 내장 네트워크 플레이어
- 2021 Kalista DreamPlay X : DAC 내장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SACDP
- 2022 Le Player 4 : CDT
- 2022 Le Player 4+ : CDP 겸 DAC
- 2022 Le DAC 2 : DAC
- 2023 AQWO 2 : SACDP 겸 스트리밍 DAC
- 2023 Le Streamer : 네트워크 플레이어
Le DAC 2 본격 탐구
Le DAC 2는 PCM은 최대 32비트/384kHz, DSD는 DSD512까지 재생할 수 있는 델타 시그마 방식의 DAC이다. DAC 칩은 ES9026PRO 칩을 한 개 썼다. 디지털 입력은 USB, I2S, 광, 동축, AES/EBU 등 5개 단자를 갖췄고, 아날로그 출력은 밸런스(XLR)와 언밸런스(RCA) 단자를 모두 갖췄다. 리니어 전원부는 본체 안에 내장됐다.

외관부터 본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접한 Le DAC 2는 예의 메트로놈 클래시카 라인의 섀시 디자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본체는 두께 2mm의 스틸, 양 끝이 튀어나온 전면 패널은 두께 10mm의 알루미늄 합금을 썼다.
전면 패널에는 검은 바탕에 푸른색 글자가 인상적인 디스플레이가 마련됐다. 전작 Le DAC에서는 입력 선택을 디스플레이 오른쪽에 있는 2개 스위치로 했으나, Le DAC 2가 되면서 터치식으로 바뀌었다.

후면 역시 Le DAC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Le DAC에서는 디지털 입력단자가 USB 1개, 광 2개, 동축 2개, AES/EBU 2개 등 7개였으나 Le DAC 2에서는 Le Player 4와 HDMI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는 I2S 단자를 추가하고, 광과 동축, AES/EBU 단자를 각 1개로 줄였다.
내부는 바뀐 것도 있고, 안 바뀐 것도 있다. 우선 DAC 칩이 AK4493에서 ES9026PRO로 교체됐고, 리니어 전원부 구성은 ‘4개 탈렘 토로이달 트랜스+10개 정전압 회로’에서 ‘3개 탈렘 토로이달 트랜스+6개 정전압 회로'로 변했다.

이에 비해 아날로그 버퍼단의 듀얼 모노 설계, 아마네로 USB 수신 칩, 32비트 ARM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은 유지됐다. 특히 160개가 넘는 소형 커패시터를 다수 투입한 설계는 여전하다. 이는 대형 커패시터를 소수 쓰는 것에 비해 충전 시간이 짧고 이에 따라 매우 빠른 응답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스펙을 살펴보면, 주파수응답특성은 +/-0.1dB 기준 10Hz~20kHz, 다이내믹 레인지는 123dB를 보이며, 디지털 입력단 스펙은 USB가 DSD512 및 PCM 32비트/384kHz, 광과 동축, AES/EBU가 PCM 24비트/192kHz다. 아날로그 출력전압은 XLR과 RCA 모두 3 Vrms.
시청

Le DAC 2 시청에는 하이파이로즈의 네트워크 트랜스포트 RS130, 오디아 플라이트의 인티앰프 FLS10, 피에가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Coax 611을 동원했다. 디지털 음원 입력은 USB-B 입력, 아날로그 출력은 XLR 케이블을 통해 이뤄졌다. 음원은 로즈 앱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아티스트 김윤아
곡 Going Home
앨범 315360
첫인상은 음이 억세지 않고 부드럽다는 것. 예전에 들었던 CD8S나 AQWO, 현재 필자의 개인 시청실에서 쓰고 있는 마이텍 Manhattan II DAC에 비해 음이 순하고 곱다. 확실히 예전 AK 칩을 썼던 CD8S와 AQWO가 보다 콘트라스트가 분명하고 음색이 진한 음을 들려줬다.
곡이 진행될수록 고운 입자감과 남김없이 끌어모으는 잔향 풍부한 음이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음들이 거칠지 않고, 뭉개지거나 흐릿하지 않은 점이 특징. 배경이 칠흑처럼 조용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악기가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듯 연주하는 모습이 잘 포착됐다.
아티스트 Dominique Fils-Aimé
곡 Birds
앨범 Nameless
기타는 묵직하고 남성 코러스는 저음이 돋보이며 박수 소리는 아주 찰지게 들린다. SN비와 다이내믹 레인지가 청감상으로도 아주 넓은 DAC이다. 악기와 가수 이미지가 색 번짐 없이 또렷하게 맺히고, 무대 사방 곳곳에서 음들이 용암 끓듯이 터져 나오는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어 레이첼 야마가타의 ‘Duet’도 들어봤는데, 그녀가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 실체감과 목소리에 담긴 온기가 생생하다. 디지털 스트리밍 음원에서 이 정도로 온기감이 느껴지는 것은 간만의 일. 남성 보컬이 가세할 때는 그 뜨거운 숨결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바이올린 Hilary Hahn
지휘자 Jeffrey Kahane
오케스트라 Los Angeles Chamber Orchestra
곡 Concerto for violin, strings & continuo No.2
앨범 Bach: Concertos
바이올린에서 정말 깨끗하고 맑은 고음이 나와 시청실 공기까지 청정하게 만든다. 특히 여린 고음에서도 그 심지에 배긴 에너지가 소멸되지 않는 모습이 대단하다. 역시 소형 커패시터를 160개 이상이나 투입한 덕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기분까지 개운해지는 DAC이다. 이 밖에 음들이 가볍거나 헐벗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이어 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윌리엄 텔 서곡도 들어봤는데, 신나서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엇보다 매끈하게 연마된 음이 매력적이며, 낙폭이 큰 이 곡 특유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대신 예전 AK 칩의 장기였던 날 것 그대로 들려주는 타입은 아니다.
아티스트 Jesse Cook
곡 I Put A Spell On You
앨범 The Blue Guitar Sessions
피처링 여가수의 허스키 보이스 질감이 생생하고 기타 반주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맞다. Le DAC 2 정도 되는 고가의 DAC이라면 이 정도의 생기와 활기는 있어야 한다.
여기에 악기들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맺히고 정신이 번쩍 날 만큼 파워가 작렬하는 맛도 인상적. 파워풀한 연주를 하는 악기가 제법 많이 등장하는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것을 보면 소화불량은 태생적으로 모르는 DAC 같다.
지휘자 John Williams
오케스트라 Berliner Philharmoniker
곡 Olympic Fanfare And Theme
앨범 The Berlin Concert
무대 뒤로 쑥 들어간 오케스트라를 지켜보는 맛이 여간이 아니다. 마치 대형 멀티플렉스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 느낌. 스피커는 진작에 사라지고, 현악과 관악은 듣기에 개운하다. 팡파레 음악의 좋은 점이 청자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것인데 Le DAC 2이 그 중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티스트 The Weeknd
곡 Blinding Lights
앨범 After Hours
이어 들은 위켄드의 ‘Blinding Lights’ 역시 박력과 선명, 스피드와 흥겨움이 꽉 찬 곡. 계속해서 청감상 SN비가 아주 높은데 이는 Le DAC 2가 전자파 노이즈 관리라든가 클럭 및 파워 서플라이 설계에 정성을 다했다는 증거다. 질질 끄는 법 없이 모든 음들이 막힘없이 쭉쭉 뻗는 모습이 멋지다.
총평
최근 10여 년 디지털 음원 재생 트렌드를 보면, 1) 단품 DAC의 음원 스펙 경쟁, 2) 델타 시그마 DAC과 R2R 래더 DAC의 경쟁, 3) 스트리밍 DAC 혹은 DAC 프리앰프의 유행 순으로 요약된다. 그러는 와중에 델타 시그마 DAC 칩의 주류는 과거 버브라운(현 TI)에서 ESS로 바뀌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메트로놈의 Le DAC 2는 거의 독보적이다. 스트리밍이나 볼륨 조절 기능도 없고, 그 흔한 아날로그 입력단자나 디지털 출력 단자도 없다. 오로지 디지털 입력을 해서 전용 DAC으로만 쓰라는 뜻인데, 시청 결과 그만한 값어치가 충분하다.
물론 칩이 바뀌고 음의 인상도 바뀌었다. 하지만 음악을 들을수록 뒷맛이 개운해지고 디지털 음원에서 최대한 아날로그 느낌을 뽑아내는 메트로놈 사운드의 골격은 그대로다. Le DAC 2는 현시점에도 단품 DAC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자, 제작사가 DAC에 진심일 때 만날 수 있는 횡재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하이파이클럽(http://www.hificlu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