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 안수즈
최근 몇 년 동안 덴마크의 아빅(Aavik Acoustics) 앰프와 뵈레센(Borresen Acoustics) 스피커를 리뷰하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다. 도대체 안수즈(Ansuz Acoustics)가 어떤 제작사이길래 이렇게 영향력이 센가, 라는 것이었다. 아빅 앰프에서는 테슬라 코일, 뵈레센 스피커에서는 아날로그 디더링 회로가 눈에 띄는데, 둘 모두 전자파 노이즈를 줄이는 기술이고, 둘 모두 안수즈에서 처음 개발됐기 때문이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이들 3개 회사는 마이클 뵈레센과 라스 크리스텐센이 설립한 오디오 그룹 덴마크(Audio Group Denmark. AGD)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안수즈가 2012년, 아빅이 2014년, 뵈레센이 2018년에 설립됐고, 이들의 지주회사로 2020년에 AGD가 출범했다. 2021년에는 덴마크의 오디오 명가 그리폰의 설립자 플레밍 라스무센이 AGD에 합류해 화제를 모았다. 2023년 4월에는 보다 싼 가격대를 겨냥한 오디오 브랜드 악세스(Axxess)가 탄생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라스 크리스텐센(Lars Kristensen)에서 시작한다. 아버지가 덴마크 최초의 하이엔드 오디오 딜러였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이파이 오디오를 접했고, 케이블 제작사 노도스트에서 1992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동안 해외 영업을 담당했다. 이런 그가 1980년대 후반에 덴마크 알보그(Aalborg)에서 오디오 숍을 운영했었는데 이때 이 가게 단골이 마이클 뵈레센(Michael Borresen)이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은 2003년. 마이클 뵈레센이 핫도그 가게에서 우연히 만난 라스 크리스텐센에게 자신의 리본 트위터 아이디어를 들려준 것이 계기가 돼 스피커 제작사 라이도(Raidho)가 탄생했다. 현행 뵈레센 스피커에서 라이도 스피커의 실루엣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은 금융위기가 몰아친 2008년에 라이도를 매각했다.
2011년, 이번에는 테슬라 코일이라는 혁신적인 케이블 아이디어가 마이클 뵈레센의 머리에 떠올랐다. 파트너는 당시 막 노도스트를 그만둔 라스 크리스텐센이었고 그렇게 해서 케이블 제작사 안수즈가 탄생했다. 안수즈는 북유럽 신화에서 지혜(wisdom)를 뜻하는 말. 현행 아빅 스트리머나 DAC, 앰프에 투입된 각종 노이즈 캔슬링 테슬라 코일과 진동 전이를 막기 위한 아이솔레이터는 모두 안수즈 케이블과 액세서리에서 갖고 온 것이다.
스피커, 케이블, 액세서리에 이어 마이클 뵈레센과 라스 크리스텐센이 도전한 것은 앰프. 그 첫 번째 결과물이 2014년에 나온 DAC 내장 인티앰프 Aavik U-300이었고, 이는 이 해 앰프 제작사 아빅 설립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이후 2017년에 라이도를 떠나 2018년 새 스피커 제작사 뵈레센을 설립했다. 마이클 뵈레센은 현재 AGD에서 CTO, 라스 크리스텐센은 CSO를 맡고 있다. CEO는 켄트 쇠렌센.
안수즈 라인업 및 출시연보

이번 시청기는 안수즈의 중견 스피커케이블 Speakz C2. 안수즈가 워낙 다양한 케이블과 액세서리를 만드는 데다, 각 케이블이나 액세서리마다 등급이 여러 개여서 이들의 라인업은 한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방대하다. 등급은 플래그십이 D-TC Gold Signature이고, 그 밑으로 D-TC Signature, D-TC2, D2, C2, A2, P2, X2 순으로 이어진다.
- 디지털케이블 : Digitalz
- 점퍼케이블 : Jumperz
- 파워케이블 : Mainz
- 인터케이블 : Signalz
- 스피커케이블 : Speakz
- 파워 디스트리뷰터 : Mainz8
- 이더넷 스위치 : PowerSwitch
- 푸터 : Darkz
- 터미네이션 플러그 : Sortz
- 파워 컨디셔너 : Sparkz
2012년 안수즈 설립 후 주요 제품 출시 연보는 다음과 같다. 2013년에 나왔던 오리지널 POM, Aluminum, Ceramic, Diamond 시리즈는 각각 현행 P2, A2, C2, D2 시리즈가 되었다. X2는 2015년에 등장한 엔트리 X 시리즈의 후속. 이 밖에 D-TC는 Diamond Tesla Coil의 약자다.
- 2012 설립
- 2012 Darkz footer
- 2013 POM series
- 2013 Aluminum series
- 2013 Ceramic series
- 2013 Diamond series
- 2014 Sparkz power conditioner
- 2015 X series : 엔트리 라인
- 2016 D-TC series : Diamond Tesla Coils
- 2016 Darkz Adjustable ceramic footer
- 2018 X2 Series
- 2018 P2 series
- 2018 A2 series
- 2018 C2 series
- 2018 D2 series
- 2021 Sortz termination plug
- 2021 Darkz Z2S (Gold) : Zirconium cap
- 2021 Darkz T2S (Red) : Titanium cap
- 2021 Darkz S2T (Blue) : Stainless steel cap
- 2021 Darkz C2T (Black) : Aluminum cap
- 2022 Darkz D2W (Green) : 10주년 기념
- 2022 Sparkz TC3 power conditioner
- 2023 D-TC Gold Signature series
- 2023 Mainz8 Generation 3 series
- 2023 PowerSwitch Generation 3 series
Speakz C2 본격 탐구

Speakz C2는 길이 2m의 스피커케이블로 안수즈 라인업으로는 5번째 위치다. 그런데도 이렇게 높은 가격대인 것을 보면 역시 넘사벽의 ‘메이드 인 덴마크'다. 이들의 최상위 Speakz D-TC Gold Signature는 1억 원이 넘는다. Speakz C2는 기본적으로 도체는 솔리드 은 도금 동선, 절연체는 테플론, 스페이드/바나나 단자는 금도금 동을 썼다. C2라는 글자가 레이저 음각된 스플리터는 아노다이징 처리를 한 알루미늄 재질. 쉴드 및 절연까지 마친 각 선재는 나선 형태로 서로 꼬아지는데, Speakz C2는 선재를 2개씩 묶어(2x2) 꼬았다. 때문에 투입된 도체 수는 총 4개(2+2)가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Speakz C2 스피커케이블을 자세히 보면 바깥쪽에 피복 밑으로 제법 굵은 코일 2개가 서로 나선형을 이루며 꼬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안수즈에서 ‘이중 나선 코일'(Double Inverted Helix Coil. DIHC)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우리가 자주 보아온 DNA 분자 구조와 닮았다.
안수즈의 전매특허라 할 DIHC는 케이블 신호 전송 시 끼어드는 유도성 노이즈(inductive noise), 즉 전자파 노이즈(EMI, RFI)를 없애기 위한 것. 예를 들어 N이라는 펄스 형태의 노이즈가 DIHC에 끼어들면(유도되면) 한 쪽 코일(coil)에는 N, 반대 방향으로 꼬아진 다른 코일(counter noise)에는 -N이 걸린 것이 되어 서로 상쇄(노이즈 캔슬링)되는 원리다. 안수즈에서는 이 같은 유도성 노이즈의 저감이야말로 DIHC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강조하고 있다(Double inverted helix coils radically reduce the sonic noise effects of induction).

DIHC는 케이블 등급에 따라 더 많이 투입되는데, Speakz P2는 16개, Speakz A2, C2, D2는 24개, Speakz D-TC Supreme은 72개 코일이 투입됐다. 엔트리 Speakz X2에는 DIHC가 없다. 한편 DIHC와 관련, 안수즈에서는 케이블 길이가 길어질수록 음질에 유리하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한다. 이는 DIHC가 적용된 케이블은 코일 길이가 길어질수록 유도성 노이즈 상쇄효과가 커지기 때문. 코일 직경과 감은 횟수는 동일해도 DIHC의 코일 길이가 늘어나면 인덕턴스 값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상위 3개 모델(Speakz D-TC2, D-TC Supreme, D-TC Gold Signature)의 기본 길이가 다른 케이블보다 1m가 긴 3m로 나오는 이유다.
Speakz C2에는 또한 공기 중으로 전파되는 고주파 RFI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안티 에어리얼 레조넌스 코일'(Anti Aerial Resonance Coil. AARC)이라는 것도 있다. 이는 케이블이 무선 노이즈를 빨아들이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을 막는 기술로, 역시 피복 안쪽에 얇은 코일을 전기신호 흐름과는 반대 방향으로 감아 노이즈를 상쇄시킨다.

AARC의 경우 Speakz X2, P2, A2에는 없고 C2에는 37cm 길이의 코일이 각 케이블(R+, R-, L+, L-)마다 1개씩 총 4개가 투입됐다. 위치는 스페이드나 바나나 단자가 있는 쪽. D2에는 37cm 길이의 코일이 8개(케이블마다 2개씩), D-TC2에는 70cm 길이의 코일이 8개, D-TC Supreme에는 70cm 코일 8개, 37cm 코일 24개가 투입됐다. AARC 역시 상급 모델일수록 그 길이가 길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Speakz C2에는 없지만 DIHC에 강제로 전기가 흐르게 해서(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효과를 패시브에 비해 3~4배 높인 액티브 테슬라 코일(Active Tesla Coil), 초소형 PCB 앞뒤에 미로 형태를 취한 코일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실장된 액티브 스퀘어 테슬라 코일(Active Square Tesla Coil)도 있다. 이들은 D2 이상 상급 케이블에 투입된다.

참고로 안수즈의 액티브 테슬라 코일과 액티브 스퀘어 테슬라 코일, 그리고 AARC는 아빅의 여러 스트리머와 앰프에 다양한 형태로 투입됐다. 아빅 제품 내부를 보면 서로 꽈배기처럼 꼬인 코일이 타래 모양으로 여러 개 장착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액티브 테슬라 코일이다. 클래스D 모듈과 후면 커넥터를 연결하는 제법 굵은 케이블 4개(R+, R-, L+, L-)에는 AARC가 투입됐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안수즈 Speakz C2 스피커케이블 시청에는 오르페우스의 SACD 플레이어 겸 DAC Absolute SACD Player, 오르페우스의 인티앰프 Absolute Integrated Amplifier, 윌슨 오디오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Yvette를 동원했다. 인터케이블과 파워케이블 역시 안수즈의 Signalz XLR C2, Mainz C2를 투입했다. 음원은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비교 청음을 위해 Speakz C2보다 2배 정도 비싼 스피커케이블을 투입, AB 테스트도 함께 진행했다.
아티스트 Anne Akiko Meyers, Los Angeles Master Chorale
곡 Jesus bleibet meine Freude (from Cantata BWV 147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앨범 Mysterium
바이올린의 맑고 깨끗한 고음이 마치 비 온 다음날의 아침이슬 같다. 남녀 혼성 합창은 성스럽게 들리고 발음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풍성하게 들어온다. 무대는 인티앰프가 구동하는 것치고는 제법 넓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개운하며 대역 밸런스가 잘 잡혔다는 인상. 저음은 모자라지 않고 중음은 얇지 않다. 무대의 뎁스도 좋아서 뒤에 있는 합창단 이미지는 살짝 날리고, 앞에 있는 바이올린은 극도로 선명하게 포커싱을 맞췄다.
다른 스피커케이블로 바꿔 들어보면 바이올린의 고음이 두터워진 모습이 역력하다. 특히 그 풍성했던 잔향이 갑자기 사라진 점이 눈에 띄는데, 그야말로 앰비언스 실종 사태다. 음들은 무턱대고 앞으로 들이대고 무대는 평면이 되어버렸다. 안수즈 케이블 본격 리뷰는 이번이 처음인데 이 정도로 급이 다를 줄은 짐작도 못했다.
아티스트 Alice Coltrane
곡 Gospel Trane
앨범 A Monastic Trio
다시 Speakz C2로 바꿔 들어보면 처음부터 악기들을 곳곳에 흩뿌려준다. 무대 가운데는 들어가고 양 사이드는 앞으로 튀어나온 입체감이 장난이 아니다. 곡이 진행될수록 앞단의 DAC 성능이 돋보이는데 이는 스피커케이블이 인티앰프가 보내온 신호를 일절 갉아먹거나 보태지 않고 그대로 전송하고 있다는 증거다. 투명하고 조용하며 깨끗하다. 이것이 이번 Speakz C2의 체감상 특징이다.
신기한 것은 Speakz C2에서 중저음을 강조하고 고음이 다소 둔한 동선 특유의 특성이나 습관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이는 도체 표면의 은 도금 효과도 있겠지만, 유도성 노이즈가 그만큼 케이블 음질에 자신의 색깔을 입힌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사실, 안수즈가 기본적으로 선재를 꼬는 것도 안 꼬았을 때에 비해 두 선재가 방사하는 전자기량 자체를 줄이고 외부 전자파 노이즈 간섭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른 스피커케이블로 바꿔 들으면 무대가 어수선해지고 악기 정렬이 금세 흐트러진다. 뭔가 정리정돈이 안됐다는 인상이며, 그 활기차게 들렸던 무대가 졸지에 시끄럽게 들린다. 놀라운 역체감이다.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No Moon at All
앨범 Turn Up The Quiet
Speakz C2로 들어보면 피아노와 현악 모두 핏이 좋다. 음이 뚱뚱하거나 마르지 않았다. 피아노의 고음, 베이스의 저음 모두 잘 들린다. 특정 대역을 강조하는 일도 없어서 이 곡에서 유난히 강조되곤 하던 다이애나 크롤의 치찰음이 이 케이블에서는 싹 가셨다. 무대의 높낮이도 잘 파악되고, 그 앞은 언제나 투명했다.
다른 스피커케이블로 바꿔 들어보면 피아노 고음과 베이스의 저음 모두 탁해지고 무대는 역시나 평면적으로 바뀐다. 피아노 이미지가 뭉뚝해진 것도 안타까운 변화. 다이애나 크롤의 치찰음은 마이크 이펙트를 많이 건 것처럼 크게 들렸다.
아티스트 Sting
곡 Englishman in New York
앨범 Live In Berlin
곡이 시작되자마자 드넓은 베를린 야외광장이다. 관객 환호와 박수 소리가 가득한데도 스팅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잘 들린다. 이 곡 특유의 흥겨운 리듬앤페이스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스피드와 리듬감, 정확한 타이밍 감각도 이번에 들은 Speakz C2의 또 다른 장점이다. 곡 중간중간 치고 빠지는 저역의 타격감도 잘 전해졌다.
다른 스피커케이블로 바꿔 들어보면 우선 음들이 탁하고 거칠어진다. 체감상 노이즈 플로어가 많이 올라왔다는 인상. 심지어 라이브가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스팅이 서서 얌전히 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관객이 많다는 느낌도 덜하다. 역시 케이블 비청에서는 이러한 라이브 곡 테스트가 유용하다.
총평

개인적으로 케이블 리뷰가 가장 어렵지만 가장 신나기도 하다. 집중해서 비청을 하다 보면 생각 이상으로 이곳저곳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음질 차이가 케이블의 특정 선재나 지오메트리, 아니면 해당 제작사의 고유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해지면 오디오 애호가로서도 그 쾌감이 상당하다.
이번 Speakz C2는 스팅 라이브 무대의 탁 트인 공간감, 다이애나 크롤의 매끄러운 목소리, 재즈 캄보의 잘 정돈된 무대 등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케이블이 이러한 퍼포먼스를 보인 데에는 이중 나선 형태의 DIHC와 C2 등급 이상에만 적용된 AARC가 키맨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액티브 테슬라 코일과 액티브 스퀘어 테슬라 코일까지 투입한 D2 이상 상급 케이블 소리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이유다. 어쩌면 지금, 덴마크 케이블의 도장 깨기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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