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오디오 리뷰가 신날 때는 해당 제품이 소리가 좋고 탐구할 게 많은 경우다. 특히 설계나 디자인이 기존 제작 문법에서 많이 벗어난 경우에는 그 이유를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반대로 ‘감성' 혹은 ‘레트로' 등의 키워드로 도배를 했지만 설계 이런 쪽에는 뭐 하나 창의적인 것이 없는 제품을 볼 때면 한숨부터 나온다.
에스텔론(Estelon) 스피커는 철저히 전자 쪽이다. 파격적인 인클로저 디자인은 물론, 대리석 파우더를 기반으로 한 인클로저 재질, 아큐톤 유닛들의 독특한 배치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여기에 에스토니아라는 흔치 않은 제작사 국적과, 4억 원에 육박하는 이들 플래그십의 도발적인 실루엣까지 보태지면 에스텔론 스피커는 갑자기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이번 리뷰의 주인공 XB Diamond Mk II는 이러한 에스텔론의 중추다. 중견 클래식(Classics) 라인의 서열 2위라는 포지션도 그렇고, 유닛 배치라든가 인클로저 디자인,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화려한 색감 등 곳곳에 에스텔론 DNA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스피커가 들려준 소리가 섬세하고 순도가 높으면서도 위엄 가득한 에스텔론 사운드, 바로 그것이었다.
에스텔론

에스텔론은 구 소련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전자공학과 음향학을 전공한 알프레드 바실코브(Alfred Vassilkov) 씨가 2010년에 설립했다. 알프레드 바실코브 씨는 에스토니아의 스피커 제작사 오데스(Audes)에서 20년 가까이 스피커를 개발한 전문 엔지니어. 오데스가 에스토니아 국영 가전기업이었던 RET 시절에도 그곳에서 근무했다.
에스텔론은 처음부터 파격적인 인클로저 디자인과 창의적인 유닛 배치로 주목을 받았다. 물론 철저히 음질을 위한 것이었지만 비대칭 곡선 인클로저에 바닥 쪽에 위치한 우퍼는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특히 이들이 2015년에 선보인 플래그십 Extreme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몸을 한 번 더 꼰 듯한 디자인으로 당시 뮌헨 오디오쇼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2023년 10월 현재 라인업은 플래그십(Flagship) 라인, 에스텔론 클래식(Estelon Classics) 라인, 아우라(Aura) 라인으로 짜였다.
- Flagship - Extreme, Forza
- Estelon Classics - X Diamond Mk II, XB Diamond Mk II, XB Mk II, XC Diamond Mk II, XC Mk II, X Centro Diamond Mk II, X Centro Mk II, YB Mk II
- Aura - Aura
이 중 이번 시청기 XB Diamond Mk II가 포진한 에스텔론 클래식 라인은 현재 모두 네트워크 회로와 부품, 쿠발라-소스나 내부배선재를 업그레이드한 Mk II 버전. X Centro Diamond와 X Centro 2개 모델은 2022년에, 다른 6개 모델은 2020년에 Mk II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 2010 XA
- 2011 XC
- 2011 X Centro
- 2011 X Diamond
- 2012 XB
- 2015 Extreme
- 2016 YB
- 2017 XB Diamond
- 2019 Forza
- 2020 X Diamond Mk II
- 2020 XB Diamond Mk II
- 2020 XB Mk II
- 2020 XC Diamond Mk II
- 2020 XC Mk II
- 2020 YB Mk II
- 2022 X-Centro Diamond Mk II
- 2022 X-Centro Mk II
- 2023 Aura

한편 알프레드 바실코브 씨는 현재 에스텔론의 치프 디자이너로 활약 중이며 CEO는 그의 딸 알리사 바실코브(Alissa Vassilkov) 씨가 맡고 있다.
XB Diamond Mk II 본격 탐구


수입사인 씨웍스의 아날로그라운지 시청실에서 접한 XB Diamond Mk II는 아름다웠다. 잘록한 허리에 밑으로 내려갈수록 풍만해지는 인클로저의 유려한 곡선미는 익숙한 것이지만, 바이올렛 나이트 리퀴드 글로스 마감이 선사하는 색감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밖에 화이트 글로스/매트, 실버 퓨어 알루미늄 매트/리퀴드 글로스, 레드 로켓 리퀴드 글로스, 블루 코발트 리퀴드 글로스, 블랙 라바 리퀴드 글로스 등 다양한 마감이 마련됐다.
XB Diamond Mk II는 기본적으로 3웨이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로, 1인치(25mm) 아큐톤 CELL 다이아몬드 트위터, 6.25인치(158mm) 아큐톤 세라믹 미드우퍼, 8.7인치(220mm) 아큐톤 세라믹 샌드위치 우퍼를 장착했다. 공칭 임피던스는 6옴(최저 3.1옴), 감도는 87dB, 주파수응답특성은 22Hz~60kHz를 보인다. 크기(HWD)는 1260 x 420 x 590mm, 무게는 개당 69kg.
우선 따져볼 것은 역시 인클로저다. 에스텔론 로고처럼 가운데 부분이 오목한 형상으로 뒤통수가 살짝 올라간 것이 포인트. 아래 정면 우퍼가 박힌 쪽이 상당히 두껍고 넓어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비대칭 곡선 디자인은 역시 외부 회절(diffraction)과 내부 정재파(standing wave)를 줄이기 위한 설계. 회절과 정재파 모두 표면이 직선이거나 마주 보는 면이 평행을 이룰 경우 발생하기 때문이다.

에스텔론이 공개한 그림 1은 미드우퍼쪽 인클로저 디자인과 이에 따른 회절을 단순하게 시각화시킨 것. 왼쪽 일반 스피커는 각진 인클로저 네 귀퉁이에서 회절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전면 배플에서는 이 회절로 인해 유닛 전면파가 상당히 교란되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오른쪽 XB Diamond Mk II는 미드우퍼 쪽 인클로저를 곡선으로 디자인, 전체적으로 회절을 줄였고 이에 따라 음의 직진성(directivity)도 좋아졌다.

에스텔론이 공개한 그림 2는 트위터 쪽 오목한 인클로저 디자인과 이에 따른 음의 확산성(direction dispersion)을 단순하게 시각화시킨 것. 그림 1과 마찬가지로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인데, 왼쪽 일반 스피커는 음의 확산성이 불규칙하고 리스닝 포인트에 따라 음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오른쪽 XB Diamond Mk II는 트위터가 자리한 배플 면적을 최소화하고 부드럽게 곡선으로 처리, 음의 확산성을 좋게 해 재생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스위트 스폿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에스텔론이 공개한 그림 3은 유닛 위치에 따른 타임 얼라인먼트(time alignment)를 단순하게 시각화시킨 것. XB Diamond Mk II를 옆에서 보면 미드우퍼, 트위터, 우퍼가 왼쪽 청취 위치를 기준으로 동일한 거리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각 유닛이 내는 소리가 동일한 시간에 사람 귀에 들려 보다 정교하고 밸런스가 잡힌 소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특히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동일한 시간에 도달하면 시간 지연에 따른 위상 왜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클로저 재질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에스텔론 스피커 인클로저를 손으로 두들기면 마치 돌덩이 같은데, 이는 재질 자체가 대리석 파우더(marble powder)와 광물질(mineral materials)을 기반으로 한 복합소재이기 때문이다. 접합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이 원피스 인클로저는 인클로저의 진동과 공진을 최소화하기 위한 에스텔론만의 레시피. 에스텔론에 따르면 우드는 쉽게 변형이 되고, MDF는 공진 제어가 어려우며, 알루미늄은 성형이 까다로워 마블 복합소재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제 유닛 배치를 살펴보자. 에스텔론 스피커를 보면 하나같이 미드우퍼가 맨 위에, 트위터가 그 밑에, 우퍼가 이들과 동떨어져 맨 아래에 자리 잡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트위터-미드우퍼-우퍼 유닛이 전면 배플 위쪽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일반 유닛 배치와는 완전히 다른데, 여기에도 에스텔론과 알프레드 바실코브 씨의 음향 철학이 베풀어졌다.
미드우퍼를 맨 위에 올려놓은 것은 이렇게 해야 일반적인 시청실 환경에서 미드우퍼가 시청실 바닥과 천장 그 중간에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 이렇게 되면 사람 귀가 가장 예민한 중저역대와 보컬 음역대가 바닥이나 천장의 반사음 피해를 가장 덜 입게 된다는 것이 에스텔론의 설명이다. 또한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트위터가 의자에 앉은 사람의 귀 높이에 와서 보다 정교하고 디테일한 재생음을 들을 수 있는 이점도 생긴다.
그러면 우퍼를 이들 유닛과 멀찌감치, 그것도 시청실 바닥에 가깝게 놓은 것은 왜일까. 우선 우퍼를 중고역 유닛과 멀리 떨어뜨린 것은 ‘일반적인 시청실의 두 마주 보는 벽의 거리는 100Hz 저음의 파장 3.4m가 안되기 때문에 우퍼의 위치 선정이 다른 유닛에 비해 자유롭다’는 설명. 우퍼를 시청실 바닥에 근접시킨 것은 ‘바닥면을 이용해 저음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청실에서 발생하는 정재파를 고루 분산시켜 스피커 위치 선정의 제약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XB Diamond 스피커는 Mk II 버전이 되면서 네트워크 회로를 개선하고 코퍼 포일 코일, 문도르프 저항과 실버 골드 오일 커패시터 등으로 업그레이드해 음질을 향상시켰다. 크로스오버 필터 슬로프는 우퍼와 미드가 3차 오더, 미드와 트위터가 2차 오더로 설계했다. 네트워크 회로는 전용 챔버 안에 수납됐다.
또한 쿠발라-소스나의 새 순동 케이블을 투입해 보다 섬세한 재생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에스텔론의 설명. 이 밖에 스피커케이블 커넥터 역시 새 후루텍 제품을 썼고, 바닥 스파이크는 에스텔론이 디자인한 새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시청
XB Diamond Mk II 시청에는 트루 라이프 오디오의 인티앰프 TSI-300을 동원했다. TSI-300은 프리단에 진공관, 출력단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쓴 하이브리드 구성으로 8옴에서 150W, 4옴에서 300W를 낸다. 소스기기는 크로노스 오디오의 Discovery 턴테이블 시스템과 Reference 포노앰프, 직스 오디오의 Ultmate Omega 카트리지를 동원했다.
아티스트 Musica Nuda
곡 Eleanor RIgby
앨범 Musica Nuda
첫인상은 배경이 놀랍도록 적막하다는 것과 음 하나하나가 꿈틀꿈틀 살아있다는 것. 역시 진동과 공진이라는 스피커 최대의 적을 처음부터 꽁꽁 묶어버린 인클로저와, 60kHz까지 플랫하게 뻗는 아큐톤 다이아몬드 트위터의 존재감이 빛을 발한다. 여성 보컬 페트라 마고니의 발음은 선명하고 소릿결은 촉촉한데 이는 아큐톤 유닛들의 물성과 배치, 그리고 인클로저 디자인의 혜택을 톡톡히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페루치오 스피네티의 베이스 연주도 이 스피커를 돋보이게 한 대목. 통통 튀는 싱싱한 탄력감과 시청실 공기를 지긋이 눌러대는 저음의 압력이 과연 8.7인치 세라믹 우퍼답다. 생각 이상으로 넓은 내부 용적을 확보한 우퍼부 챔버와 후면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 로우패스 필터의 핵심인 코퍼 포일 코일이 이러한 여유 있고 품위 있는 저음 재생에 큰 도움을 줬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티스트 Seong-Jin Cho
곡 George Frideric Handel: Suite No. 5 In E Major HWV 430
앨범 The Handel Project
이 곡은 아날로그라운지 시청실에서 여러 스피커로 자주 들어봤었는데, 확실히 XB Diamond Mk II가 해상력이나 SN비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무대에 등장한 피아노의 윤곽선이 색 번짐 없이 또렷하게 그려지고, 사운드스테이지 역시 끝 모를 정도로 넓게, 그러면서도 견고하고 야무지게 펼쳐진다. 만약 인클로저가 MDF였어도 이런 음과 무대가 나왔을까 싶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은 음의 촉감인데 무르거나 뻣뻣하지 않고 사각사각, 이런 느낌이 난다. 한마디로 모터 시스템과 진동판에 의한 스피커 재생음이 아니라 그냥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같다. 감칠맛 나는 이러한 소릿결이야말로 아큐톤 유닛이 지금도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특히 피아노 고음의 여린 끝음이 끝까지 소멸되지 않고 지속되는 모습이 대단하다.
첼로 Pierre Fournier
피아노 Friedrich Gulda
곡 Sonata for Cello and PianoNo.1
앨범 Beethoven: Complete Works for Cello and Piano
웰메이드 아날로그 재생 시스템으로 음악을 듣다보면 가장 돋보이는 것이 무대 앞이 무척 투명하다는 것인데, 이 베토벤 첼로 소나타가 특히 그러했다. 막이 끼었다거나, 윤곽선이 흐린 듯한 느낌 없이 두 첼로와 피아노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덕분에 첼로는 더욱 생생하게 바닥 긁는 저음을 들려주고, 피아노는 식욕이 돌 만큼 맛깔스러운 타건음을 토해낸다. 마치 시청실에 밤새 함박눈이 내려 그 위를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것 같다. 대단한 음의 촉감이다.
아티스트 Chet Baker
곡 Alone Together
앨범 Chet
필자의 애청곡인데, 그냥 처음부터 피아노와 트럼펫의 리얼 사운드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이 와중에 작게 들리는 드럼의 찰랑찰랑 심벌 소리는 그야말로 삼삼한 사운드 그 자체. 시청실이 갑자기 이들 여러 재즈 악기들로 가득 찬 것 같다. 덕분에 연주자들 사이의 호흡과 긴장감, 아니면 1959년 이 곡 녹음 당시의 분위기까지 왠지 다 전해지는 것 같다.
맞다. 스피커 퍼포먼스를 평가하는 항목은 플랫한 주파수응답특성이라든가, 가지런한 대역밸런스, 다이내믹스나 다이내믹 레인지, SN비, 이런 것들이지만, 결국 관건은 청자가 얼마나 곡에 빠져드느냐다. 흥겨움이나 발장단, 즐거운 상상, 이런 것. 이런 맥락에서 XB Diamond Mk II는 올해 가장 설득력이 있는 Alone Together를 들려줬다.
총평
필자가 에스텔론 스피커 실물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2015년 뮌헨 오디오쇼였다. 워낙 이 브랜드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터라 쇼룸에서 마주한 Extreme 스피커는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스피커 디자인이 다 있나?’였다. 인클로저 디자인이 너무 충격적이고 압도적이어서 당시 이 스피커가 들려준 소리가 어땠는지는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에스텔론 스피커 소리에 감탄한 것은 2018년 역시 뮌헨 오디오쇼였는데 이번에도 Extreme이었다. 매칭 앰프는 비투스 오디오의 프리와 모노블럭 파워 조합이었는데, 그야말로 음수가 많으면서도 섬세하고, 입자가 고우면서도 순도가 높은 사운드였다. 이 정도는 돼야 하이엔드 스피커구나, 감탄 또 감탄했고 필자는 당시 쓰던 신문 칼럼에 이 조합을 ‘뮌헨쇼 베스트 5’로 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XB Diamond Mk II. 플래그십 Extreme에 비하면 덩치는 물론 디자인도 얌전한 모델이지만, 마블 베이스 복합소재로 만든 비대칭 곡면 인클로저, 미드우퍼-트위터-우퍼의 독특한 배치, 여기에 아큐톤 유닛의 아낌없는 사용까지 그냥 뼛속까지 에스텔론인 스피커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스피커가 들려준 섬세하고 순도 높은 사운드, 그러면서도 쉽게 범접하기 힘든 위엄 가득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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