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를 누리는 브랜드
와피데일이 창업한 시기는 1933년이다. 올해가 2023년이니까, 벌써 9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탄노이, JBL 등 여러 노포가 존재하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와피데일을 넘어서는 스피커 브랜드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백전노장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왜 브랜드명이 와피데일(Wharfedale)일까?

실은 길버트 브릭스(Gilbert Briggs)라는 분이 처음 이 회사를 론칭할 때, 그가 살던 마을 일클리(Ilkley)가 바로 와프(Wharfe) 강 주변에 소재하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착안해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알고 보면 무척 단순하다. 아무튼 길버트는 전체 스피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발자이면서 또 이론가다. 그의 제품과 기술은 이후 수많은 스피커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하나의 교과서로 자리 잡은 바 있다. 바로 이런 업적을 바탕으로 현재도 와피데일은 스피커 업계를 리드하는 업체 중 하나로 꿋꿋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오디오 콘서트

요즘 각종 오디오 쇼나 시청회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데, 그 효시에 해당하는 이벤트는 저 멀리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와피데일은 쿼드와 손잡고 영국과 미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오디오 콘서트를 개최한 것이다. 그런데 그 행사장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경우,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이 쓰였는가 하면, 미국에선 뉴욕의 카네기 홀이 채택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오디오라는 존재는 지금의 반도체나 전기차처럼 최신의 기술이 총집결된 물건이었다. 따라서 일반 애호가뿐 아니라 각종 엔지니어, 엘리트 그룹 등에서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유명 교향악단처럼 대접받으면서 콘서트홀을 누볐던 것이다.
또한 이때 들은 음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너도 나도 한숨을 쉬면서 언제 저런 제품을 집에 들일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이 탄식했다고 한다. 하긴 자신의 기술과 사운드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으니 이런 순회공연을 벌이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본다. 그런 면에서 와피데일이란 브랜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명성과 자부심을 쌓아가며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라 시리즈의 출현


얼마 전 와피데일은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을 하나 일으킨다. 새롭게 연마한 기술과 요즘 시대에 맞는 심미적 센스를 결합해서 엘리시안(Elysian)이라는 플래그십 시리즈를 론칭했기 때문이다. 나도 리뷰 덕분에 여러 모델을 접한 바 있는데, 주로 중저가 모델을 만들었던 브랜드의 명성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인상이 좋았던 것이다. 이후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엘리시안 시리즈의 장점을 계승할 시리즈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이번에 만난 오라(Aura) 시리즈다.
사실 엘리시안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AMT를 새롭게 개발해서 적극 활용했다는 부분이다. 흔히 리본 트위터로 알고는 있지만, AMT는 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적극적인 사운드를 조성한다는 면에서 리본과 차이가 있기는 하다. 즉, 리본의 넓은 대역과 저 왜곡의 장점을 살리면서 여기에 강력한 파워를 더한 것이 AMT인 것이다. 이상적인 트위터 중 하나라고 본다. 바로 엘리시안에 쓰인 AMT를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오라 시리즈에 넣었다는 것은 아무튼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참고로 와피데일의 상급기들을 보면, 에보 4(Evo 4) 시리즈 역시 AMT를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사이즈만 봐도 오라 시리즈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엘리시안과 오라는 모두 27X90mm 규격인데 반해, 에보 4 시리즈는 30X60mm에 그친다. 여러 면에서 엘리시안의 장점을 계승하면서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로 무장한 것이 오라 시리즈인 셈이다. 동급 최강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가격대에서 여러 제품을 비교할 때 쓰이는 말인데, 오라 시리즈에 이런 수식어를 붙여도 무방하다고 본다.
AMT의 특징
이번 기회에 AMT 방식의 장점 몇 개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 우선 일반 진동판이 전후로 피스톤 운동을 하는 데에 반해, AMT는 접힌 진동판으로 음성신호를 전달한다. 주름이 진 아코디언을 연상하면 된다.
- 또 강력한 자석을 결합해서, 공기에 강한 압력을 가하도록 했다. 일반 돔에서나 가능한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진동판의 크기가 큰 만큼, 거기에 필적하는 사이즈의 자석을 붙인 부분이 돋보인다.
- 극단적으로 왜곡을 줄일 수 있다. 디테일 묘사에 뛰어나고, 스피드와 다이내믹스에서도 유리하다.
글래스 파이버 콘
이렇게 스피드와 다이내믹스가 좋은 AMT 트위터에 어울리는 미드베이스나 우퍼 등을 개발하는 작업은 그리 만만치 않다. 와피데일은 오랜 기간 직접 드라이버를 생산해온 만큼, 이 부분에서 확실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진동판의 재질은 글래스 파이버 소재를 택했다. 직조된 매트릭스 형태로, 어떤 음성 신호든 빠르게 대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편 여기에 고무로 된 서라운드를 붙여 아주 작은 움직임도 커버할 수 있도록 했고, 이것을 강력한 자석으로 구동한다. 이 드라이버는 다이캐스트 된 알루미늄 섀시에 담기는데, 캐비닛에 부착할 때 특별히 제조된 커다란 볼트를 동원하고 있다. 알루미늄 섀시와 우드 캐비닛의 결합 시 발생할 수 있는 공진을 제어하기 위해, 드라이버의 주변에 고무로 된 트림을 부착했다. 이렇게 세밀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서 드라이버를 제작한 것이다.
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의 역할은 서로 다른 대역을 다루는 드라이버를 얼마나 스무스하게 결합시키는가에 있다. 이 부분에서 스피커 설계자의 역량이 빛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피터 코마우(Peter Comeau)란 분의 오랜 경력과 노하우를 믿는 편이다. 이 번 시리즈에도 피터의 솜씨가 발휘되어, AMT와 콘을 멋지게 결합해서 마치 하나의 드라이버에서 나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SLPP(Slot Loaded Profited Port)
본 시리즈는 베이스 리플렉스 방식으로 설계된 만큼, 포트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요는 스피커 본체에서 강력한 압력으로 나오는 공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터뷸런스라고 해서 일종의 난기류가 발생하면, 그것이 저역을 혼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라의 제품들은 일종의 플린스가 달려 있고, 여기에 슬롯을 배치해서 교묘하게 공기를 배출하고 있다. 사방으로 공평하게 빠지도록 조치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운 파이어의 형태라서 스피커의 설치 시 옆벽과 뒷벽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점 역시 지적할 만하다. 한편 이 기술은 와피데일을 창업한 길버트 브릭스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하니, 역시 저력의 메이커라 하겠다.
오라 1(Aura 1)
오라 1은 2와 함께 북셀프 타입이다. 동 시리즈의 막내라 보면 된다. 2웨이 방식으로, AMT에 5인치 구경의 미드베이스가 결합된 형태다. 본 기의 임피던스는 6옴이지만, 최소 4.1옴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상당히 안정적인 임피던스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감도는 86dB. 따라서 메이커에선 25~100W 정도의 출력을 내는 앰프를 권하고 있다. 참고로 본 기는 48Hz~22KHz의 주파수 대역을 보유하고 있으며,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2.9KHz다.
본격적인 시청
오라 1을 듣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톨에서 나온 올인원 플레이어 SDA 300 시그너처다. 인티앰프는 물론 DAC, 스트리머 기능까지 완비했으므로, 여기에 스피커만 더하면 조합이 완성되는 셈이다. 참고로 이 제품의 출력은 8옴에 150W.
바이올린 Anne-Sophie Mutter
지휘 Herbert Von Karajan
오케스트라 Berliner Philharmoniker
앨범 Mozart: Violin Concerto No.3 In G, K.216; Violin Concerto No.5 In A, K.219
첫 곡으로 들은 것은 안네 조피 무터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악장⟩. 역시 AMT에서 나오는 바이올린의 음향은 각별하다. 일체 스트레스 없이 고역으로 쭉 치고 올라가는데, 그래도 공간이 한참 남는 듯하다. 매우 디테일한 부분의 묘사가 뛰어나서, 무터의 다양한 기교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배후의 오케스트라도 음색이 고급스럽고, 펀치력도 뛰어나다. 천사의 고역과 악마의 저역이 결합했다고나 할까?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S Wonderful
앨범 Live In Paris
이어서 다이애나 크롤의 ⟨‘S Wonderful⟩. 보컬이 중앙에 우뚝 선 가운데, 자연스럽게 베이스 라인이 펼쳐진다. 마치 LP를 듣는 듯, 어쿠스틱한 질감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우아하면서 밸런스가 좋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백업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고, 크롤의 목소리는 명료하면서 매력이 넘친다. 이런 재생음이라면 하루 종일 틀어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오라 4(Aura 4)
이제 오라 시리즈의 톱 모델 오라 4로 가보자. 당당한 3웨이 플로워 스탠딩 타입이고, 6.5인치 구경의 우퍼가 두 발이나 달려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정도다. 한편 4인치 미드가 한 발 달려 있어서, 와피데일이 고수하고 있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충실한 중역대를 지켜 내고 있다.
본 기는 기본 임피던스가 4옴이며, 3.1옴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감도는 89dB. 메이커에서는 30~200W 정도의 출력을 내는 앰프를 권하고 있다. 참고로 담당 주파수 대역은 37Hz~22KHz.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475Hz, 3.3KHz다. 1미터 10센티가 넘는 높이에 25Kg에 가까운 무게는 이 제품이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짐작하게 한다.
본격적인 시청
오라 4 역시 아톨의 SDA 300 시그너쳐를 물려서 들었다. 오라 1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저역의 양감이나 움직임이 보다 확장되어, 과연 3웨이 플로워 스탠딩의 장점이 뭔지 알게 해줬다.
지휘 Mariss Jansons
오케스트라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곡 Mahler: Symphony No. 3 in D Minor: I. Kräftig. Entschieden (Live)
앨범 Mahler: Symphony No. 3 in D Minor (Live)
첫 곡은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3번 1악장⟩. 거침없는 진격이 이뤄지고 있고, 전대역이 마치 하나의 드라이버에서 나오는 듯한 일체감을 보여주고 있다. 실황 공연인 만큼, 공연장의 분위기나 관객의 반응을 중간중간에 파악할 수도 있다. 확실히 풍부한 저역을 바탕으로 활짝 열린 고역의 상쾌함도 느낄 수 있다. 스피드도 출중하고, 음의 골격이 단단하며, 충실한 중역대를 바탕으로 한 밀도감 넘치는 음엔 분명 중독성이 있다.
아티스트 AC/DC
곡 Back In Black
앨범 Back In Black
이어서 AC/DC의 을 들어본다. 단단한 킥 드럼과 일렉트릭 베이스의 조화.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기타 리프가 반복된다. 보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기타 솔로는 불을 뿜는다. 강력한 헤비메탈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자극적이거나 거칠지 않다. 피가 통하는 음이지만, 얼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다. 역시 오랜 내공을 가진 메이커다운 솜씨다.
결론
정통 브리티시 사운드가 지닌 충실한 중역을 바탕으로 AMT의 과감한 사용을 통해 활짝 열린 고역을 결합한 것이 이번 오라 시리즈의 특징이다. 자칫 음색이나 타임 얼라인먼트 면에서 어긋날 수 있는 드라이버들의 결합이 순조롭게 이뤄져,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와 와피데일은 보급형부터 고급형까지 골고루 론칭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중급대 이상의 기기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기술이 쌓이고, 내공이 풍부한 만큼, 이런 변화된 전략에 가격적인 메리트를 아울러 갖추고 있는 오라 시리즈는 여러모로 추천할 만하다.
이 종학(Joh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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