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달 아일랜드
혹시 타이달 아일랜드(Tidal Island)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타이달 하면, 명문 스트리머 회사만 연상하는데, 같은 이름의 스피커 회사도 있고, 원래는 파도가 치는,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아톨은 노르망디 지역에 있고, 이 지역의 대표 명소가 바로 몽생미셸이다. 육지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우뚝 서 있는 섬으로, 거대한 산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주변으로 높은 담을 쌓아서 외부의 공격에 맞서고 있는, 전형적인 중세 도시의 품격을 갖춘 곳이다.

나는 이곳을 딱 한 번 가봤지만, 지금도 골목 구석구석, 달팽이 요리를 먹은 식당, 엄청난 규모의 대성당 등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특히 성의 망루에서 바라본 해변의 풍경은 각별하다. 밀물이 되면 섬 전체가 물에 잠기고, 썰물이 되면 육지가 드러나는 형태라, 그래서 타이달 아일랜드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로 이 지역에 프랑스 오디오의 명가 중 하나인 아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마치 음의 파도가 몰아치듯, 스트리머 기능을 중심으로 한 올인원 스타일의 제품 SDA300 시그니처를 최근에 론칭했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제품이라고 본다.
형제가 만든 브랜드
현재 프렌치 오디오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아니, 프랑스어권 지역의 오디오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럴 경우, 프랑스와 인접하고 불어를 쓰는 스위스의 제네바 지역도 포함이 된다. 그럼 손가락 열 개를 다 사용해도 넘칠 정도로 숱한 명가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회사 대부분이 하이엔드 쪽이고, 일반인들은 물론 조금 오디오를 한다는 분들조차 버겁기는 하다. 그런 면에서 현실적인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고, 프렌치 특유의 에스프리와 음악성을 갖춘 아톨의 존재는 귀중하다.


이 회사는 1997년 스테판 & 에마누엘 뒤브로이 형제에 의해 창업되었다. 작은 인티앰프를 중심으로 빠르게 시장을 석권해서, 현재는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내는 중견 메이커로 성장한 상태. 특히, 부품과 소재를 80% 이상 프랑스 산으로 채우면서, 인하우스 형태의 제조 방식을 지켜나가고 있고, 그러면서 가성비가 높은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말하자면 프렌치 오디오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스피커 빼고 다 만든다.

아톨은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고 있고, 넘버링을 통해 적절한 하이어라키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100 시리즈는 입문용, 200과 300은 중급용이며 400이라는 플래그십 시리즈가 있다. 만드는 제품들도 다양해서 핵심인 앰프를 비롯, CD 플레이어, DAC 등을 내고 있고, 한때 AV 리시버라던가 DVD 플레이어를 만든 이력도 있다. 최근에 SDA 시리즈를 론칭하고 있는바, 고급형 올인원 제품이라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아톨은 프랑스산 스피커와 매칭하면 좋다고 생각한다. 아주 거창한 브랜드도 있지만, 의외로 가격대가 저렴하고, 알찬 브랜드도 많다. 카바세, 엘립송, 트라이앵글 등 조금만 찾아보면 참 많다. 물론 꼭 프랑스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프렌치 오디오는 마치 고급 와인이나 요리처럼 특유의 풍미랄까 개성이 있다. 이 부분이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오디오와 크게 차이가 나는데, 그 미덕이 점차 널리 알려져서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또 이번에 소개할 SDA300 시그니처는 가격대도 만만치 않고, 덩치고 꽤 큰 편인데, 말하자면 그간 가성비를 주로 추구했던 제품들과는 다르게, 아톨이 마음먹고 그간 쌓아 올린 노하우를 모두 담아낸 역작이라고 해도 좋다. 400이라는 플래그십 시리즈에 버금가는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봐도 좋은 것이다.
수려한 외관
전통적으로 아톨은 프런트 패널에 알루미늄을 사용했지만, 무뚝뚝하게 직사각형 모습을 띠지는 않는다. 모서리를 라운드 처리해서 상당히 세련된 인상을 풍긴다. 본 제품 역시 마찬가지. 단, 프런트 패널의 두께가 8mm에 달할 정도로 두툼하고, 브러쉬드 알루미늄 소재를 채용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전면 중앙에 위치한 큼지막한 디스플레이 역시 보기 좋다. 5인치짜리 TFT LCD를 사용했는데 무척 시인성이 좋도록 처리했다. 앨범 사진이 떠오를 땐, 확실히 선명한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알프스 볼륨단을 채용한 오른쪽의 볼륨 노브와 왼쪽의 셀렉터 노브가 디스플레이 창 양편에 나란히 대칭 구조를 이루며 심플하게 정리되어 있고, 거기에 세 개의 작은 단자가 돋보인다. 하나는 전원 버튼이고, 또 하나는 헤드폰 단자이며, 마지막으로 USB 단자가 있다. 그렇다. 본기는 USB 단자를 통해 외장 하드나 USB 드라이버에 담긴 음원도 손쉽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다양한 입출력단

이어서 후면을 살펴보자. 다양한 입출력단이 눈에 띈다. 일단 아날로그 입력단은 2개가 제공되고 있고, 디지털 입력단도 다양하다. 2개의 코액셜과 2개의 토스링크가 배치되어 있다. 참고로 24/192까지 대응하는 점도 고무적이다. 출력단도 다채롭다. 일단 프리아웃단이 있다. 이것은 별도의 파워 앰프를 달아 출력을 증강시킬 때 요긴하다. 그럴 경우, 본 제품은 프리 및 소스기의 역할만 담당하는 것이다.

또 코액셜과 토스링크가 하나씩 디지털 아웃이 된다. 외장 DAC를 달 때 유용한 기능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확장성을 가지면서, 본 기의 소스기 및 프리앰프의 기능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물론 본 제품 자체로 일종의 완결체의 모습을 보이지만, 좀 더 욕심이 많은 분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은 것이다. 오디오계에 이런 격언이 있다. 있어도 안 쓰는 것과 없어서 못 쓰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기본기에 충실하다.
본 기의 스트리머 기능을 소개하기 전에, 그 베이스가 되는 앰프 쪽을 우선 살펴보기로 하자. 정말 충실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전원부를 보면, 340VA 급의 토로이달 트랜스가 두 개 투입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오로지 오디오 스테이지 용이다. 그 정도로 전원부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아톨의 인티는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원가 절감의 요소를 챙기면서도 투자할 곳엔 확실하게 물량 투입을 하기 때문이다. 일단 프리부는 논 피드백 방식의 클래스 A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클래스 A 방식의 뛰어난 음질에 대해선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파워단에 넣으면 제품 자체의 크기가 커지고, 발열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래서 프리단에 넣어 기본적인 음질을 확보했다고 보면 된다.
한편 파워부는 클래스 AB 방식을 채택했지만, 빠른 반응과 투명한 음을 위해 MOS-FET 소재를 동원했다. 이것은 마치 진공관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서, 신호 경로를 짧게, 심플한 회로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하이엔드 회사들에서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유능한 스트리머 기능
인티앰프로 시작한 아톨이지만,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시장의 상황을 바로 파악해서 즉각 대응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R&D 부문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스트리머만 해도 그렇다. 이 시장이 처음 열리던 무렵인 2012년에 이미 ST100, ST200을 출시했으니, 전문적인 스트리머 회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척 발 빠른 행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이 분야에도 10년 이상 투자를 해서 어느 정도 기술력을 갖췄다는 뜻도 된다.

한편 SDA로 시작하는 올인원 제품 역시 2014년부터 론칭을 시작했다. 100과 200이 그 주인공이다. 참고로 SDA는 “Streamer, DAC, Inte Amp”의 약자다. 이런 종류의 제품이 갖춘 세 가지 주요 기능을 정리해서 모델명에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룬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가 가능하고, 타이달, 스포티파이, 디저, 코부즈 등 다양한 회사를 커버하고 있다. 타이달 커넥트와 같은 보다 고급스러운 음질을 자랑하는 스트리머도 가능하다.
또 인터넷 라디오 기능도 있어서, 좋아하는 방송을 하루 종일 틀어놓을 수 있다. 플락, MQA 등 다양한 파일을 읽는 것도 당연지사. 한편 이 모든 기능을 부속된 리모컨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아톨 시그니처 앱을 깔아서 휴대폰으로 이용할 수 있다.
본격적인 시청

이번 시청은 아주 심플한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본 기에 인티앰프는 물론 스트리머, DAC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스피커만 연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선정한 스피커는 딥티크의 DP-107. 나는 오디오 매칭할 때 일단 국적이 같은 제품들을 우선시한다. 해당 국가의 전통이나 음악성, 뉘앙스 등 미묘한 부분에서 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번 매칭도 기본은 먹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매우 인상적인 음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1악장⟩ 앨리스 사라 오트(피아노)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악장⟩ 리사 바티아쉬빌리(바이올린)
- 스탄 게츠 ⟨Corcovado⟩
- 사라 본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
아티스트 Alice Sara Ott
곡 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 - I. Allegro Molto Moderato
앨범 Wonderland - Edvard Grieg: Piano Concerto, Lyric Pieces
일단 그리그부터. 분리형으로 매칭했을 때와 비교하면, 일단 신호 경로가 엄청 짧다. 그 장점이 일단 부각된다. 음성 정보가 그대로 스피커에 투영된 듯하다.
관악기의 포실한 음향이 기분 좋고, 그리그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 피아노는 왼손과 오른손이 명료하게 포착되며, 아름다운 울림을 동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율이 잘 된 음이다. 투수로 치면 컨트롤이 무척 좋다고 할까?
바이올린 Lisa Batiashvili
지휘 Christian Thielemann
오케스트라 Sa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
곡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 I. Allegro Non Troppo In D Major
앨범 Johannes Brahms / Clara Schumann
브람스를 들어보면, 역시 바이올린의 음색이 압권이다. 이런 부분은 스피커의 성향 탓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본 제품을 럭셔리하게 만들면서 고급 부품과 기술로 하이엔드급 사운드를 추구한 바가 크다고 본다.
브람스 특유의 고독하고, 우수에 찬 분위기에 바이올린 연주자의 기교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포착되고 있다. 전체적인 앙상블이나 밸런스가 뛰어나고, 마치 아날로그로 플레이하는 듯한 어쿠스틱한 느낌 또한 일품이다. 정말 이번에 온갖 기술과 기량을 발휘해 제대로 만들었구나, 탄복하게 한다.
아티스트 Stan Getz
곡 Corcovado (Quiet Nights Of Quiet Stars) (feat. Astrud Gilberto, Antonio Carlos Jobim)
앨범 Verve Jazz Masters 13: Antonio Carlos Jobim
스탄 게츠의 관능적이고 풍요로운 테너 색스가 빛나는 세 번째 트랙에는 조앙 및 아스트러드 길베르토 부부의 보컬이 포함되어 있어, 듣는 내내 미소 짓게 만든다. 신명 난 보사 노바 리듬을 바탕으로 차분하면서, 치밀하게 전개되는 플레이는 역시 급수 자체가 다르다.
또 잔향이 깊고, 스튜디오의 공기까지 담아낸 아날로그 녹음 특유의 장점도 여기서 잘 살아나고 있다. 베이스 라인도 명료하고, 피아노의 간결한 터치, 풍부한 색소폰의 질주, 환상적인 아스트러드의 보컬 등, 듣는 와중에 다시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음이다.
아티스트 Sarah Vaughan
곡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
앨범 Crazy And Mixed Up
마지막으로 사라 본. 이 가을의 정취에 걸맞은 트랙이 아닐까 한다. 롤랜드 한나의 시적인 피아노 반주와 현란한 조 패스의 기타가 어우리진 백업을 바탕으로, 깊고, 진솔한 사라가 나온다. 중역대의 달콤한 톤이 갑자기 거친 샤우트로 바뀌다가 다시 속삭이듯 중얼거린다.
정말 대가의 반열에서나 볼 수 있는 테크닉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있다. 드럼과 베이스의 풍부한 리듬을 바탕으로, 악단과 보컬이 혼연일체가 되어, 절로 발장단이 나오게 한다. 역시 재즈에서도 본 제품은 고상하면서 혈기 왕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

사실 이 제품은 가격대나 음질을 생각해 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기기는 아니다. 올인원이라는 장르가 주로 이쪽 세계에 입문하려는 분들을 위한 아이템이지만, 본 기는 오히려 하이파이를 쭉 운용하다가 어느 정도 정리하겠다고 할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제품인 것이다.
요즘 주거 환경이 열악해지고, 필요 없는 구매를 꺼리는, 일종의 미니멀리즘의 생활 양식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오디오 쪽의 복잡한 시스템을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즐기고자 할 때, 본 기는 적극 추천할 만한 제품이다. 기존 하이파이를 대체할 수 있는 퀄리티를 갖춘, 보기 드문 역작이기 때문이다. 괜히 시그니처라는 말을 붙인 게 아니다.
이 종학(Johnny Lee)
<저작권자 ⓒ 하이파이클럽(http://www.hificlu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