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스피커 3대장
수많은 스피커를 만나고, 리뷰하고, 시연까지 한 상황에서 내 취향을 일단 밝히겠다. 개인적으로 숱한 바꿈질을 통해 3개의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살아남았다. 즉, 퍼스널한 영역에서 스피커 3대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JBL, 하베스 그리고 윌슨 오디오다. 이미 JBL에 관해서는 책까지 썼고, 이미 윌슨도 후보군에 올려놓은 상태다. 기본적으로 와트 퍼피를 무척 좋아하며, 환경이 완비되면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이번에 윌슨의 신작이면서 엔트리 클래스에 속하는 사브리나 X를 만나게 되어 여러모로 반갑기만 하다.
데이빗 윌슨

평론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 나는 우연찮게 데이빗 윌슨(David Wilson) 씨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내가 영어로 인터뷰한 최초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거물이어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훤칠한 키에 우아한 미소가 빛나는, 무척 매력적인 분으로, 향후 여러 차례 만나서 인터뷰하면서 개인적으로 배운 점도 많다. 사실 스피커의 역사만 파고들어도 엄청난 빅 네임이 많이 나오지만, 데이빗 윌슨 씨도 꼭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적어도 내게는 JBL의 짐 런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왜 윌슨인가?
개인적으로 처음 윌슨의 제품을 만난 것은 1989년 무렵이다. 강남에 있는 전시장에서 우연찮게 와트 퍼피의 시스템 3를 처음 접했는데, 듣는 순간부터 전율하고 말았다. 그 후 정말 엄청난 스피커를 만나 깜짝깜짝 놀라곤 했지만, 그래도 가장 큰 충격이 바로 이때였다. 베일을 몇 겹이나 벗긴 듯한 생생함과 뛰어난 해상도 거기에 엄청난 다이내믹스까지. 아니, 스피커가 이런 경지에 도달해도 되는 것인가?
그렇다. 윌슨은 처음 소개될 때부터 여타 스피커와 차원이 다른 음을 들려줬다. 이후, 윌슨의 음향 철학과 컨셉을 모방한 스피커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일일이 셀 수조차 없다. 적어도 현대 스피커를 논할 때, 윌슨의 임팩트를 무시한다면, 한 번쯤은 뭔가 내가 빼놓은 게 있지 않나 되돌아봐야 한다고 본다.

이후 윌슨은 남보다 한발 앞선 컨셉의 제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지금도 선도적인 위치에 서있다. 숱한 도전자들을 물리치면서 말이다. 이제는 2세 경영으로 바뀌어, 말하자면 2세대 윌슨이 진행 중이다. 과연 어떤 면이 바뀌었는지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다. 본 제품 사브리나 X를 점검하면서, 그 내용을 알아보고자 한다. 흥미진진한 여정이 될 것 같다.
사브리나? 오드리 헵번?

처음 사브리나라는 모델명을 접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오드리 헵번을 떠올렸다. 올드팬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겠지만, 그녀가 주연한 ⟨사브리나⟩(1954년작)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 만큼, 큰 반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영화 역사상 오드리만큼 화려한 임팩트를 끼치며 스크린에 등장한 여배우가 또 있을까?
1953년에 ⟨로마의 휴일⟩을 통해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르면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하오의 연정⟩(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샤레이드⟩,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 등 보석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아마도 이런 충격적인 등장은 오드리 이후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 정도? 그만큼 오드리의 존재감이 각별했던 것이다. 한편 그녀는 당시 글래머들이 판치던 할리우드의 여배우 기준을 바꿔놨다. 슬림하면서, 유연한 몸매는 오늘날 많은 여성이 담고 싶어 하는 몸매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거대한 혼 타입이나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걸어온 윌슨 오디오의 개성으로 볼 때, 사브리나는 어쩌면 오드리처럼 상당히 유니크하고 또 미래지향적인 컨셉을 갖고 있다고 보인다. 뭐, 사브리나를 대하면서 오드리 헵번을 떠올린 것이 그냥 나만의 상상은 아닐 것이다.
대릴의 고민

현재 윌슨 오디오를 주재하는 대릴 윌슨 씨는 정말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스피커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부친의 업적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와 개성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출사표라고 할까, 역작이라고 할까, 아무튼 얼마 전에 출시된 크로노소닉 XVX(이하 XVX)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거함 중 하나가 되었다. ⟨스테레오파일⟩ 선정 2021년 올해의 제품에 선정될 정도인데, 역시 윌슨이구나라는 찬사를 받을 만했다.
이후 대릴은 정반대의 행로를 걷는다. 동사의 다양한 라인업 중에 거의 엔트리급에 해당하는 사브리나에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사실 사브리나는 수많은 팬들을 이미 확보한 모델이다. 윌슨의 핵심을 담아서, 작은 공간에서도 운용할 수 있는 제품인 만큼, 전 세계에 정말 많은 애호가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바로 이 모델을 어떻게 개량해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냐라는 문제와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정말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사브리나 X의 핵심

자, 그럼 이 대목에서 대릴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여기서 약간 쇼킹한 결정이 따라온다. 그렇다. 비록 엔트리급 제품이지만, 과감하게 XVX의 업적과 노하우를 이양시키자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본다. 아무리 사브리나의 팬들이 많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플래그십 모델의 미덕을 가져온다는 것이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 싶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릴은 일종의 승부사 기질을 가진 것 같다. 이왕 도전하려면, 제대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그런 패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 이 부분만 확인하면, 사브리나 X에 대한 신뢰감은 저절로 생길 것도 같다.
인클로저의 혁신
전통적으로 윌슨 오디오는 스피커의 통 울림을 극력 억제해왔다. 이것이 일종의 디스토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것이 스피커 제조의 정답이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스피커의 세계는 정말로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접근법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새로운 소재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일종의 복합 물질인 X-매터리얼을 개발했다. 아무리 단단한 HDF나 혹은 알루미늄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겠지만, 마치 코카 콜라의 비법을 단 두 명만 알고 있고, 그 맛이 전 세계를 사로잡았듯이, 윌슨이 개발한 비기 중 하나가 바로 X-매터리얼인 것이다.

오리지널 사브리나에는 이 소재를 찔끔찔끔 투입했다. 전면 프런트 배플과 맨 밑바닥, 스파이크를 장착하는 부분에만 투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모델에서는 정말로 통이 크게, 통째로 X-매터리얼을 투입했다. 이 대목에서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역시 윌슨가의 혈통은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런 소재를 인클로저로 사용하면, 일단 배경이 정숙해진다. 말하자면 적막강산, 도심의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어디 한적한 시골에 온 듯하다. 따라서 음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리고, 디테일이 살아나며, 보컬과 연주자의 모습이 가상 현실처럼 떠오른다. 이게 바로 윌슨이 추구했던 사운드의 진수인 셈이다.
막강한 트위터

예전부터 내가 윌슨을 좋아했던 것은 일단 고역이다. 전혀 혼을 쓰지 않았지만, 혼 못지않은 직진성과 파괴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특히, 재즈의 심벌즈 소리라던가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고음이 정말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본 기에는 정말 최신의 트위터가 투입되었다. 과거 타사의 드라이버에 의존하던 시절과 이별을 고하고, 직접 드라이버를 생산한지 이미 10년이 훨씬 넘었다. 특히, 트위터는 제일 먼저 개발했는데, 이번에 투입된 모델이 벌써 마크 5에 해당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게 바로 XVX에 쓰였던 모델이라는 점이다! 아무튼 가격대나 공간이나 여러 요인에 의해 XVX는 그냥 사진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처지에, 사브리나 X에 이런 서비스를 해줬다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라 생각한다. 이 트위터는 1인치 사이즈에 진동판은 실크 패브릭 돔. 듣지 않아도 어떤 고품위한 음이 나올지 벌써 상상이 된다.
페이퍼 펄프 콘
한편 본 기에 투입된 미드레인지 및 우퍼가 페이퍼 펄프 콘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간 수많은 소재가 도입되었지만, 역시 기본은 페이퍼 펄프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있는 음을 찾는다면,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진공관 앰프와 턴테이블이라는 매칭을 좋아한다면, 페이퍼 펄프 콘은 제일 먼저 추천할 수 있다. 이것은 FM 중의 FM이다.
데이빗 윌슨 씨가 위대했던 것은, 스피커의 특성이나 기술에 밝은 면도 있었지만, 녹음을 하고, 음악을 즐기고 했던 부분도 컸다고 본다. 특히, 완벽한 밸런스를 맞춘 제품들을 접하면, 오랜 기간 음악을 즐기던 구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다.

이런 윌슨의 DNA나 음향 철학을 생각해 볼 때, 직접 드라이버 제조를 시작하면서 떠오른 소재는 페이퍼 펄프가 답일 수밖에 없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 결과 미드레인지는 5.75인치 구경, 우퍼는 8인치 구경의 드라이버가 각각 투입되었다. 특히, 우퍼는 사샤 DAW에 쓰인 것과 같은 모델이란 점을 잊지 말자.
한편 본 제품의 뒷면을 보면 상단과 하단에 일종의 포트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에 있는 것은 옆으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벤트이고, 이것은 미드레인지 용이다. 그리고 밑에 나 있는 포트는 우퍼용이다. 특히, 미드레인지 용은 이미 XVX에 도입된 기술로, 이번에 본 제품에도 과감하게 이양되었다.
오디오캡 X(AudioCap X)
참, X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번에는 오디오캡 X다. 이게 뭐냐 하면, 윌슨에서 자체 개발한 커패시터다. 아니, 윌슨에서도 커패시터를 만드냐 반문하겠지만, 맞다. 사실 스피커 회사들 중에 드라이버를 직접 만드는 회사는 많지만, 이런 부품까지 손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리서치를 하고, 정확하게 계측을 하면,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음을 내기 위해선 커패시터 정도까지는 직접 해결해야 한다.
물론 향후에 인덕터나 저항에까지 손을 댈지, 그 부분은 모르겠지만, 일단 커패시터를 직접 생산하는 부분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것은 순전히 XVX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베른 크레딜(Vern Credille)이라는 분을 초빙해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이다. 이 분이 만일 프랑스 계열이라고 하면, 성은 크레딜이 아니라 크레디유로 읽어야겠지만, 현재까지 그 부분에 대한 정보는 없으니 일단 크레딜로 하자.
아무튼 이왕에 개발을 시작한 것, 하는 심정으로 사브리나 X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동시에 이 제품만을 위한 커패시터의 개발도 이뤄진 것이다. 이래서 본 제품만을 위한 커패시터가 투입되었으니, 정말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윌슨의 집중력과 승부 근성에 놀라게 된다.
스펙 둘러보기
본 기는 외관상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오드리 헵번을 빼어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이를 따지면 96Cm 정도 하지만, 스파이크를 장착하면 102Cm 정도 한다. 우리 주거 환경을 생각하면 딱 맞는 사이즈라 하겠다. 참고로 본 제품에 투입된 스파이크와 커넥터 역시 XVX에 쓰인 것들이다. 새삼 경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게는 꽤 나간다. 최대한 통울림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 때문에 과감하게 X-매터리얼을 투입한 덕분이다. 그 결과 무려 50.8Kg이나 한다. 혼자서 들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한편 감도를 보면 87dB. 이렇게 감도가 낮은 것은, 현대 스피커의 특징 중 하나다. 가장 큰 이유는 노이즈나 디스토션 레벨을 낮추기 위함이다. 이것을 위해 이것저것 손대다 보면, 감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임피던스는 기본이 4옴이고, 최대 2.6옴까지 내려간다. 이 클래스의 제품치고는 제법 까다롭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윌슨의 제품은 대출력 파워로 구동해도 좋지만, 진공관 소출력에서도 매력적인 음을 재생해 왔다. 본 제품 역시 최소 50W면 구동이 가능하다고 표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5극관을 사용한 진공관 앰프가 어울릴 것이라 본다. 전통적으로 윌슨은 진공관 앰프 친화적이며, 더구나 페이퍼 펄프 콘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추천할 만하다. 참고로 담당 주파수 대역은 31Hz~23KHz.
본격적인 시청

본 제품의 시청을 위해 앰프는 코드의 울티마 인티 앰프, 소스기는 MBL N31 CD-DAC를 각각 사용했다. 이 제품에는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내장되어 있어서, 이 부분을 사용했다. 한편 안수즈에서 나온 C2 케이블을 중점적으로 사용하면서, A3 파워 스위치를 실험해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랄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스트리머나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음에 불만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놀라운 개선이 이뤄졌던 것이다. 향후 A3를 위시한 여러 제품들의 움직임을 주시해 볼 생각이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 베토벤 ⟨교향곡 7번 1악장⟩ 파보 예르비(지휘)
-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악장⟩ 아르투르 그뤼미오(바이올린)
- 마일스 데이비스 ⟨Bye Bye Blackbird⟩
- 딥 퍼플 ⟨Smoke on the Water⟩
지휘 Paavo Järvi
오케스트라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곡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I. Poco Sostenuto - Vivace
앨범 Beethoven: Symphonies Nos. 4 & 7
첫 트랙을 듣자마자 그리운 윌슨의 사운드가 밀어닥친다. 개인적으로 무척 친숙하면서 또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음에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확실히 선대의 유산을 지키면서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부분이 포착이 된다.
전체적으로 투명하고, 다이내믹하며 또 빠르다. 그러면서 온화한 느낌도 있다. 너무 차거나 기계적인 음이 아니다. 특히 바이올린의 감칠맛 나는 음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윌슨은 고역의 대역을 지나치게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청 주파수 대역 내에서 진솔하고, 적극적인 표현을 지향하는 쪽이다. 이런 부분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이즈를 초월하는 광대역한 무대 재생도 특필할 만하다.
아티스트 Arthur Grumiaux
곡 Violin Concerto No. 3 in G Major, K. 216: I. Allegro
앨범 Mozart: The Five Violin Concertos
이어서 모차르트. 일단 강력한 보잉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진다. 평소 고답적이면서 점잖은 연주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본 그뤼미오인데, 여기서는 전혀 다르다. 혈기왕성하다고나 할까? 최소한 젊은 날의 모차르트가 보이는 재기 발랄한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온다.
또 꽤 오래전의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투명하면서 싱싱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새롭게 녹음한 것 같다. 나올 소리가 다 나오지만, 전혀 거북하지 않다. 젊고, 적극적이면서 또한 밸런스가 절묘하다. 확실히 윌슨의 급수는 다르구나 새삼 느꼈다.
아티스트 Miles Davis
곡 Bye Bye Blackbird
앨범 'Round About Midnight
마일스의 연주는 모노 녹음. 따라서 무대가 중앙에 몰린 감이 있지만, 놀랍도록 정교하게 레이어를 분해하고 있다. 확실히 최신 하이엔드의 기술이 투입된 제품다운 면모다. 애매하거나 엉거주춤한 모습이 없이 악기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풍부한 리듬 섹션이 절로 발 장단을 하게 만든다.
여기서 감동한 것은 마일스의 뮤트 트럼펫. 사실 자칫 잘못하면 가늘고 또 신경질적이 되는데 이 부분에서 역시 차원이 다르다. 적당한 볼륨과 잔향을 갖추면서, 다소 클래식한 느낌의 고급스러운 질감이 잘 표현된다. 반대로 콜트레인의 강속구 일변도의 저돌적인 돌진도 매력적이다. 서로 개성이 다른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긴장감과 앙상블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모던 재즈에서 정말 발군의 재생을 보여주고 있다.
아티스트 Deep Purple
곡 Smoke On the Water
앨범 Machine Head
마지막으로 딥 퍼플. 저 유명한 기타 리프를 시작으로, 악기들이 하나씩 얹히면서 진행되다가 단순하면서 도발적인 베이스 라인이 합쳐지면서 피가 통하는 음이 터져 나온다. 와우, 탄성을 지를 만큼, 강력하고, 멋지다. 5명의 멤버가 이뤄내는 보컬과 악기들이 무대를 빈틈없이 채운다.
분명 스튜디오 녹음이지만, 라이브를 방불케 하는 에너지는 과연 일품. 그러나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는 순화된 면모도 보인다. 귀가 따갑지 않으면서 나올 소리는 다 나온다. 정말 신기하다. 작은 우퍼에서 이토록 펀치력 넘치는 드럼과 베이스가 나온다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결론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중립적인 음색을 지켜가며, 정확한 사운드를 드러내지만,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있다. 기술이나 노하우는 전수가 될지 모르지만, 음악성이라는 부분은 좀 애매하다. 그런 면에서 본 기는 윌슨의 레거시와 DNA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격대와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정말 추천할 만한 제품이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진공관 앰프를 걸어서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이 종학(Joh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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