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PC라 불리던 휴대용 PC는 시장 규모도 크지 않고 그저 명맥만 유지하던 수준였다.

하지만, 모바일 프로세서의 기술 발전이 게이밍 시장과 맞물리면서 스팀덱이라는 히트작이 등장하게 됐고 그보다 업그레이드 된 성능과 화질로 무장한 메이저 브랜드의 핸드헬드 게이밍 PC들이 시장에 출시하게 됐다.

올 여름 예판 대란을 불러 왔던 A사 제품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오늘은 A사 보다 시장 진입은 늦었지만 차별화된 기능성과 업그레이드된 디스플레이 사양으로 무장한 레노버의 핸드헬드 게이밍 PC, 리전 고(Legion Go)를 소개하는 기사를 준비했다.

■ 레노버 리전 고, 차별화 했지만 늦었다

레노버 리전 고는 A사 보다 시장 진입이 늦었다. 개발 자체가 늦은건지 세부 사항은 알 수가 없지만 출시 시기가 늦어진 건 사실이다.

출시 시점만 좀 더 빨랐다면 스팀덱에서 업그레이드 하려는 게이머를 많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늦어진 탓에 A사 같은 예판 대란이 조용하게 시장 출시만 된 상황이다. 그렇다고 예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회차를 이어갈 만큼 수요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레노버도 이런 점을 고려한 건지 리전 고의 기능과 사양은 꽤 괜찮게 기획됐다.

디스플레이도 스팀덱이나 ROG ALLY 보다 크고 선명한 8.8인치 2560x1600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이 디스플레이는 최고 휘도 500니트에 DCI-P3 기준 97%를 실현하는 고화질 디스플레이면서 144Hz의 부드러운 모션 재생이 가능한 게이밍 디스플레이다. 60Hz나 120Hz인 타사 제품과 비교해도 월등한 것이 리전 고의 8.8인치 디스플레이다.

그외에도 LPDDR5X 메모리가 ROG ALLY 보다 빠르고 배터리 용량이 9.2Wh 더 크며 2개의 USB-C 포트를 제공해 확장성이 더 나아졌다.

거기다 닌텐도 스위치 같은 분리형 패드 구조와 킥스탠드 일체형 디자인을 채택해 스팀덱과 다를게 없는 ROG ALLY와 차별했다.

하지만 프로세서 자체는 ROG ALLY와 동일하기에 출시 시기가 늦어진 점은 치명타일 수 밖에 없다. 출시 시기가 비슷했거나 미리 존재 사실과 사양 정도만 공개했더라면 ROG ALLY에 몰렸던 수요를 조금은 가져갈 수 있었을텐데 그런 면에서 참 아쉬운 제품이 아닐 수 없다.

■ 너무 많은 기능, 심플하고 저렴하게는 안됐나?

레노버 리전 고의 분리형 게임 패드는 닌텐도 스위치를 경험한 게이머에게는 익숙한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윈도우 기반 PC에서 이런 구조가 쓸모 있는지는 의문이 남을 수 밖에 없다.

PC 게임에서 이런 컨트롤러가 흔한 것도 아니고 닌텐도 스위치 처럼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이 많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런 구조를 채택했다는 건 판매를 위한 선택일 뿐이지 소비자에게 필요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분리된 패드를 연결해서 게임 패드로 활용할 수 있는 브라켓이라도 있었다면 어느 정도 이해했을텐데 그런 것도 없고 FPS 모드라 불리는 용도의 브라켓만 있다.

이 브라켓은 오른쪽 패드에 부착된 마우스용 센서를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플라이트 시물레이터용 스틱 처럼 잡고 마우스를 움직여 FPS 게임에서 조준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제품 소개에도 FPS 모드라고 나와 있지만 일반 마우스 기능을 대신하는 용도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 쓸 기능은 아니었다.

호환성도 문제다. XBOX 클라우드 게임에선 인식에 문제가 있었고 디아블로4에선 마우스로 플레이는 됐지만 버튼 배치가 엉망이었다. 굳이 스틱과 패드로 충분한 게임이라면 이렇게 까지 피곤하게 쓸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버튼도 너무 많다. 게임 패드에도 백버튼이나 추가 버튼이 제공되는 고가 모델이 있다지만 이런 버튼을 모두 지원하는 게임은 드물다. 사용자가 일일이 지정해 줘야 쓰는게 일반적이라서 리전 고의 이 많은 버튼을 100% 활용할 게이머는 많지 않아 보인다. 버튼 때문에 그립감이 좀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잡을때 마다 백버튼들이 눌리다 보니 일반 패드 처럼 꽉 잡기가 어렵다.

스탠드는 책상에서 플레이할때 매우 유용했다. 리전 고 자체가 좀 무겁다 보니 손으로 들고 플레이하는게 살짝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스탠드를 펴서 책상에 그대로 올려논 상태로 양쪽 패드를 잡고 플레이하면 무게 부담이 전혀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각도 조절도 잘되고 여러번 접고 펴도 내구성에는 문제 없을 것 같은 느낌이라 일체형 패드에 스탠드 조합이 최적였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 성능 보다 안정성?

앞서 언급했듯이 ROG ALLY와 리전 고의 프로세서 사양은 동일하다. 둘 다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을 사용했다. 메모리 사양만 보면 7500MHz 메모리가 탑재된 리전 고가 좀 더 나은 상황이다.

하지만, 모바일 디바이스는 메이커의 선택에 따라 최종 사양이 달라질 수 있다. 프로세서가 같아도 TDP나 클럭 세팅을 기획한 제품에 맞추다 보니 실제 성능이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리전 고도 그런 영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3DMARK 타임스파이 결과에서 ROG ALLY 보다 점수가 낮게 측정됐다. 총점 차이는 크지 않지만 CPU 점수가 1800점 정도 낮았고 GPU 점수도 5% 가까이 낮았다. GPU 점수는 차이가 크지 않아 FPS에 큰 영향이 없겠지만 점수에 민감하다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결과다.

아무래도 성능 보다는 배터리 시간이나 발열 중심으로 프로세서를 세팅한 것이 아닐까 생각 되는데 이런 세팅 덕분인지 리전 고의 CPU와 GPU 온도는 60도가 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됐다. 팬 속도도 최고 속도 6800 RPM 대비 20% 낮은 5350 내외로 유지되어 시끄러운 소음은 경험할 수 없었다. 팬 속도를 최고로 높이면 모를까 이 정도면 게임 플레이에 집중하기 충분한 수준이다.

참고로, 리전 고는 열 관리 모드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며 이를 사용자 지정으로 변경할 경우 30W로 세팅해 봤자 퍼포먼스 모드 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하지 못했다.

■ 디아블로4 시즌2, 최적의 세팅은?

AMD 라이젠 Z1 익스트림의 성능은 1080p 게임을 완벽하게 소화하긴 힘들다. 720p 정도만 무난한 정도지 1080p를 소화하려면 옵션 조절과 FSR 같은 부가 기능이 필수다.

레노버 리전 고도 다르지 않았다.

필자가 자주 플레이하는 디아블로4도 1080p는 소화하기 어려워서 디스플레이 해상도를 1920x1200으로 낮추고 그래픽 옵션 프로파일을 중간으로 변경했다. 이런 조합으로도 리전 고로 플레이한 디아블로4는 30Fps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FSR 기능을 추가할 수 밖에 없었다.

FSR은 처음에는 성능 모드로 플레이했지만 일반 필드에서 80~90 Fps, 던전이나 보스전에서 60~70 Fps가 가능한 고성능 모드로 정착했다. 고성능 모드는 맵 이동이나 던전 진입 시 발생하는 딜레이 현상을 최소화 할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 8.8인치 144Hz 디스플레이 품질과 배터리 시간

8.8인치 144Hz 디스플레이는 리전 고가 타사 보다 장점인 부분이다. 주사율도 더 빠르고 색재현율도 높다.

화질이나 게이밍 조건으로 ROG ALLY 보다 나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메이커가 밝힌 사양이 실제와 다른 경우도 많은 것이 디스플레이라서 이를 확인해 봤다.

DisplayCal과 i1 디스플레이 프로로 측정한 결과 리전 고의 디스플레이 색역은 DCI-P3 기준 91.8%로 나타났다. 볼륨 기준으로는 94%지만 실제 색역과 일치하는 비율은 91.8%라서 메이커가 강조한 97%와는 차이가 좀 큰 편이었다.

게이밍에 필수인 VRR 기술은 지원하지 않았다. ROG ALLY가 120Hz라서 144Hz인 리전 고가 더 나은 것 같지만 프리싱크 미지원 모델이라 셔터링 같은 이질감은 막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배터리 시간은 디아블로4를 1920x1200 해상도에서 중간 옵션, FSR 고성능 모드를 기준으로 1시간 20분간 플레이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리전 고 세팅은 144Hz에 TDP 퍼포먼스 모드, OS 전원 퍼포먼스 모드 기준이다.

주사율을 60Hz로 낮추면 배터리 시간이 좀 더 늘어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화면 밝기는 자동이었으나 실내임에도 100%로 작동했다. 밝기 100%는 디스플레이가 500니트로 작동한다.

■ 레노버 리전 고, 늦지만 않았어도...

레노버 리전 고의 장점은 화면이 크고 스탠드 일체형이라는 점에 있다.

타사 대비 1.8인치나 큰 화면은 게임 플레이를 더 쾌적하게 만들어 주는 절대적인 가치라서 이 하나만으로 리전 고를 선택할 이유나 명분은 충분하지만 스탠드까지 일체형이니 ROG ALLY나 스팀덱은 편의성 면에서 월등한 것은 사실이다.

분리형 패드나 FPS 모드, 더 많은 버튼은 굳이 왜? 라는 의문이 남을 만큼 쓸데 없는 시도지만 안정적인 기본기에 개선된 편의성 만큼은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야 할 제품이다.

물론, 큰 화면 만큼 무거워진 무게는 휴대용 게임기에겐 치명적인 단점이라서 거부감이 없지 않을 것이다. 대신 레노버는 스팀덱 처럼 안정적으로 수납 가능한 휴대용 케이스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어 본체만 주는 ROG ALLY 보다 조건도 좋다.

가격은 어차피 둘 다 비슷한 상황이고 때에 따라 할인율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 지금 상황에서 적절한 비교는 아닌 것 같은데 결국 깔끔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 아니면 투박하지만 큰 화면과 쾌적한 게임 플레이 환경을 두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