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주류시장 키워드를 아세요?”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과도 같은 서울바앤스피릿쇼(앞으로 줄여서 ‘서울바쇼’)에서 음료계의 거목(?) 마시즘에 질문을 했다. 문제는 나의 뇌는 ‘어제보다 조금 더 먹기? 아니면 어제보다 조금 덜 먹기?‘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 실망한 서울바쇼는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그것은 CHILL(칠)….”
칠이라니. 그것은 나에게 수많은 의문을 남겼다. 인스타그램에 요즘 유행하는 ‘칠 가이’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칠성사이다’가 주류로 나온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7월’ 25일부터 서울바쇼가 할 테니 기다리라는 것일까. 나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서울바쇼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물어보고 말았다.
굴욕(?)은 잠시지만, 올해 술자리 내내 유식해질 미래를 위해 2025년 주류시장 키워드 ‘CHILL’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여러분도 함께 알아가면 술맛이 더 즐거워질 것이다.
Casual cocktails,
편하게 즐기는 칵테일의 시대

모름지기 칵테일이란 과거에 어두운 바 조명 아래에서 마시는 특별한 무언가였다. 햇빛이 들어서도 안되고(때문에 지하에 있거나, 계단을 열심히 타고 올라가야 했다), 적당히 마시기 편해도 안 되는 것이었다(식도에 스파이크는 내줘야 진정한…).
하지만 이제 칵테일은 너무나도 편해진 캐주얼 복장 같아졌다. 바들 뿐만 아니라, 카페나 식당에도 자신들만의 칵테일을 서비스한다. 칵테일을 서비스하는 바들 역시 한낮에 문을 연다거나, 격식 대신 편안함으로 무장한 캐주얼한 바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누구나 쉽게 내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찾을 수 있는 시대.
… 그래도 캐주얼 칵테일을 잘 모르겠다고? 어젯밤 당신이 편의점에서 산 하이볼 캔 제품 역시 캐주얼 칵테일 유행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Horizon of Spirits,
위스키 가격이 떨어졌는데 새로운 게 떠오른다(?!)

지드래곤을 바라보는 신발 콜렉터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위스키의 인기가 수년동안 가파르게 오르면서 음지의 위스키 매니아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 세월이 끝나고 위스키의 가격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마시는 입장에서는 좋은데, 주류 회사 입장에서는 눈물 나는 거 아니야?
재미있는 점은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주춤한 사이 ‘데킬라’와 ‘메즈칼’이라는 멕시코 술들이 인기를 끈다는 것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데프콘’님이 데킬라를 아주 맛있게 마시는 장면이 인기를 끌기도 했고, 몇 년 사이에 돈 훌리오나 818 데낄라 같은 새로운 제품들이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다. 위스키의 빈자리를 과연 데낄라가 차지할 수 있을까?
Innovative Heritage,
전통주는 정말 힙해질 수 있어?

전통주에 대해서 애정과 응원을 보내는 마시즘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숙제는 거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같은 난이도 같다… 는 있어 보여서 한 말이고, 봉산탈춤전승자에게 인기가요 나와서 1위를 하라는 것 같은 미션이다. 전통을 찾아 지키고 계승하면서 세련되기까지 해야 하다니. 이건 제품명이나 병모양 정도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민을 해결한다면 시장은 참 넓어질 수 있다. 한국적이면서도 힙한 것을 원하는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요즘에는 한국 외에 더 많은 것 같거든. 이미 대중적으로 팔리는 희석식 소주가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보라! 적어도 소주는 문화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세계인을 설득시켰다.
전통주는 혁신을 하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Luxury for Less,
비싸고 좋거나 아니면 싸거나

다른 말로 하면 ‘중간은 없어졌다’다. 취향을 찾는 소비자들은 어중간한 경험보다 비싸더라도 확실한 경험을 찾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알코올 섭취가 목적이라면? 안주와 함께할 술이 목표라면? 당연히 가성비 좋은 제품을 선택할 것이다. 아니 이 경우는 알성비(알콜 대 성능비)라고 불러야 하나?
물가 상승 역시 이 현상을 가속화했다. 일상적으로 마셔야 하는 술에는 큰돈을 쓰지 않지만, 특별한 순간을 위한 한 병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가 이어진 것이다. 2025년 양극화된 소비패턴을 과연 맞출 주류제품은 과연 무엇이 될까?
Lasting Enjoyment,
건강을 챙겨야 즐거운 술자리

“음주에 건강을 붙이려거든 마시지 마라”라는 마시즘 술선생님의 전언이 있지만, 요즘은 정말 건강을 챙긴다. 같은 잔을 마셔도 이것은 저알콜, 이것은 논알콜(술이 아니지 않나?), 이것은 당질제로, 슈거제로… 등 여러 가지 옵션이 생겼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변했냐고? 편의점 맥주코너에 가보라 국내맥주가 모인 자리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게 이런 저알콜, 논알콜 제품이다.
제품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회식을 한다거나 ‘내일은 없다’식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문화가 없어진 것도 한 몫한다.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를 찾지 않은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음주를 적당히 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안 마시는 게 좋지만, 그래도 마셔야 한다면 건강을 너무 해칠 수는 없으니까.
한 잔 속에 담긴 사회트렌드
매일 똑같은 술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술의 종류, 그리고 술 마시는 풍경은 매년 달라지고 있다(그것도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25년 대 변화 속에서 주류시장은 ‘CHILL’함을 지킬 수 있을지… 과연 우리가 마시게 된 한 잔의 술에는 어떤 사회상이 담겨있을까?
<제공 :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