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하자 지난 몇 년 동안 질소 가득 들어있는 과자처럼 텅 비었던 극장에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의 전작이자 오스카 청소기 같던 ‘기생충’은 나를 포함한 한국관객의 입맛을 높일 대로 높여버렸다. 과연 미키17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맛있는 영화였다. 기대했던 요리가 아니기 때문에 취향이 갈릴 수 있다. 기생충을 만들었던 봉준호19가 날카로운 메시지와 변태스러운 영화력으로 가득 찬(하지만 재미를 놓치지 않은) 감독이었다면, 미키17을 만든 봉준호25는 만화 같은 상상력과 따뜻한 호기심의 (하지만 메시지를 놓치지 않은) 감독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교훈이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미키17은 3가지 큰 가르침을 줬다. 친구 믿고 마카롱 가게를 창업하면 안 된다는 것과 콩벌레를 괴롭히지 말라는 것, 그리고 개쩌는 휴먼 프린터를 만들더라도 출력물 받침대가 없으면 테무산 애물단지 복합기 취급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움도 있다. 미키17은 SF영화 치고 정말 입맛이 떨어지는 영화다. 물론 좋은 뜻으로. 오늘 마시즘은 ‘먹고 마실 것 시점에서 본 미키17’에 대한 리뷰다.
(※ 해당 글은 <미키17>의 스포일러성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보시면 재미있고, 리뷰를 보고 또 영화를 보면 정말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미키17과 같은 SF를 맛있게 감상하는 법

미키17과 같은 SF영화를 볼 때는 감상법이 달라야 한다. 인물들의 스토리를 즐기는 것보다 세계관을 음미하는 게 더욱 재미있다(영화도 이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나는 휴먼 프린터 광고인줄 알았다). 현실과 닮아있으면서도 미래 시점이기 때문에 전혀 없는 개념들이나 제품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관심사는 ‘먹고 마시는 것’이다. SF는 대부분 ‘지구의 자연이 작살난 상황에서 펼쳐지는 먹고 마시기 쇼’다. 핵폭발로 망한 시대 속의 방사능 콜라 ‘폴아웃’의 누카콜라, 인구수가 넘치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바이오 식량(그것은 사실 XX)의 정체를 다루는 ‘소일렌트 그린’이나, 비슷한 의미로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의 밤양갱이 그렇다.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음료와 음식에 대한 설정은 SF영화를 보는 재미다. 이 영화 미키17 역시 4년 동안의 우주여행으로 식량에 민감하다. 웬만한 경범죄는 용서할 것 같은데 칼로리 초과섭취는 엄벌을 내릴 것 같다. 그런데 먹을 것들이 하나같이 입맛이 뚝 떨어진다. 왜냐하면…

음료가 없다. 아니 물만 있다. 안 그래도 맛없는 프로틴 바같은 거만 주면서 마실 것도 물밖에 없다고? 사실상 이건 우주선이 아니라 단식원 아니야?
영화적으로 맛있는데, 입맛 없는 영화 미키17

사실 이 부분은 봉준호 감독이 의도했을 것이다. 우주선 안에서 사람들이 물이 아니라 콜라 한 캔을 즐긴다면, 그것은 탄광 같은 노동환경이 아니라 우주관광버스처럼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우주선을 이끼는 마샬부부의 몰취향의 책임이기도 하다. 미키17에는 물 말고 음료가 2번 정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드디어 사료신세를 벗어나 마샬부부의 디너에 초대되는 장면이다. 스테이크와 각종 요리를 함께 먹는 장면인데 이곳에도 그 흔한 와인이나 탄산음료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 번 와인병 같은 것이 카메라에 잡힐 때가 있다. 그런데 식탁이 아닌 부엌 쪽에 있다. 그렇다. 이 부부에게 와인은 음료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만들 ‘소스’ 중 일부였던 거지.

두 번째는 주인공 미키17을 에이전트 ‘카이’가 달래줄 때다. 그녀는 아름답고 총도 잘 쏘고, 소스와 번식 빼고는 생각이 없는 마샬부부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밝힐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미키를 위해 지구에서 가져온 음료를 준다. 물을 끓여서 내리는 것을 보아 저것은 ‘차’다. 이 영화를 보며 유일하게 입맛이 돌아왔던 시간이다.
맹물들 사이에서 한 잔의 차가 주는 향긋함, 우주로 떠나는 삭막한 환경 속에서 지구에서 지켜온 한 잔의 취향 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는가. 문제는 이 차를 가지고 여자친구가 있는 주인공 미키를 유혹하려 했다는 점인데(미안해 난 넘어갔다). 차를 두고 여자친구를 선택한 미키17의 선하고 올곧은 성품을 알 수 있었다.
미키17에 마실 게 있더라면?

영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다른 음료들도 있을 수 있다. 일단 과학자들의 연구와 역할이 중요한 환경에서 커피가 없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카페인 없는 이공계는 앙꼬 없는 찐빵, 음료 없는 마시즘, 콩벌레 없는 봉준호 아닌가.

영화에도 충분히 보이지만 미키17이 사는 2054년은 감히 커피나 와인 같은 음료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미 2025년인 현재도 각종 기후변화로 커피가격이 우주돌파를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 성분을 복제하여 투명한 커피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속 잠시 나온 배양육 스테이크처럼 미국에서 한창 연구되었던 커피 없는 대체커피의 제작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다음은 미키17에 나오는 금지된 물약 ‘옥시조폴’의 존재다. 술 대신에 무엇을 마시며 고통을 잊을까 싶었더니 마약이었다. 확실치 않지만 물에 희석을 해서 마시는 게 아닐까 싶다. 마치 미국에서 술을 대체하고 있는 대마성분을 넣은 CBD 음료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니 미키17과 같은 우주선에 탄 것 같았다. 그래 카페인과 알콜없는 아니 음료 없는 삶은 사는 게 아니지. 이 우주선에서 만약 물만 제공된다면 각자 나름의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음료나 음식을 따로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가장 독특하지만, 동시에 가장 일상적인 영화

미키17은 블록버스터 SF영화인척 하지만 사실 일상영화다. 풀어 말하자면 사람의 몸과 기억이 복제되고, 덕분에 죽음이 일상화되고, 지구가 아니라 콩벌레들이 가득 사는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장 인간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영화였다.
매일 존재하는 ‘나’라는 개체는 무엇인지, 사랑이란 또 트라우마란 어떤 것인지, 음료 페어링까지 신경 쓰지 못하고 소스타령만 하는 리더를 만나면 얼마나 개빡침라이프를 살 수 있는지를 말이다. 다음에 우주를 가게 된다면 꼭 홍차와 커피와 약간의 와인과 콜라 가득 챙겨가야지. 물만 먹고사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미가 없으니까. 이거 맞죠? 봉준호 감독님?
<제공 :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