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리뷰 : 스토커 - 체르노빌의 그림자 (PC_Wind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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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스토커’(S.T.A.L.K.E.R: Oblivion Lost) 공식 발표, 2004년 2월 ‘체르노빌의 그림자’(S.T.A.L.K.E.R: Shadow of Chernobyl)로 부제 변경, 2004년 10월 발매일 발표, 2005년 발매 연기, 그리고 2007년 3월 발매. 10년 만에 발매된 게임이라든가 아직도 개발 중인 게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이라는 세월은 별로 긴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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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L.K.E.R. 사전식 의미로도 조금 연결이 되긴 하지만 제목에 담긴 의미는 Zone이라는 구역에 모여든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Scavengers, Tresspassers, Adventures, Loners, Killers, Explorers, 그리고 Robber의 약칭이라고 한다.
Zone이라는 구역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에 의해 방사능과 방사능에 의해 변질된 동물과 자연적인 현상(게임 내 용어: 어노멀리(Anomaly))으로 가득 차 접근이 통제되고 있는 지역. 많은 사람들이 별로 좋지 않은 목적으로 모여들어 끊임없이 대립하는 곳이기도 하다.
게임의 시간적 배경은 2012년. 미래라고는 해도 몇 년 남지 않은 상황이라 공상과학(SF)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방사능에 의해 모든 것이 변질되어버린 '통제된` 구역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던 일이 벌어져도 ‘현실적이지 않다’며 불만을 갖게 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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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오염 또는 다른 위험 지역에서는 색감 변화로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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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붉게 물든 세상을 보게 되기도 한다 |
처음 스토커가 공식 발표됐을 때엔 전술형 FPS로 소개됐지만 국내에 사용된 광고 문구만 보더라도 그것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처음 시작하자마자 곧 슈팅이라기 보다는 RPG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총을 주요 무기로 사용하고 1인칭 시점에서 총을 쏜다는 개념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RPG라고 할 수 있을 정도랄까.
제작사에서는 FPS라고 하고 있지만 총을 무기로 사용하는 현대적 배경의 RPG라고 하는 쪽이 더 납득이 간다. 모든 주요 임무와 보조 임무는 퀘스트 기반이고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구입하거나 쓰러뜨린 적의 것을 얻어서 활용해야 하는데다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초반의 부족한 화력과 방어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보다는 보조 퀘스트에 치중하게 되는 흐름 역시 RPG의 그것과 흡사하다.
물건을 갖고 다닐 수 있는 양에 제한이 있고 모든 무기에 수명이 있으며 일반 슈팅 게임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무기가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갖고 다닐 수 있는 무기의 수에 제한이 있는 게임의 경우 숫자키 0부터 9까지 무기 선택이 지정되는 게임에 비해 한 분류 내에 다양한 종류의 무기를 제공하는 편이긴 하지만 스토커 만큼 많은 게임은 드물다. 기본 모델도 많지만 모델을 수정한 버전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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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목록에 위치 확인용 맵을 함께 배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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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구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전체 지도 화면 |
무기는 모두 네 가지 타입으로 성능과 특성이 구분되는데 이들 특성에 사정거리라는 설정이 없는 만큼 쌍안경이나 조준경의 도움 없이 적으로 보이는 물체를 겨냥해 크로스헤어가 붉게 변하는 거리만 되면 언제 어떤 무기로든 적을 공격할 수 있다.
다만 정확도와 데미지 수준에 의해 총알 낭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가급적 거리를 좁히는 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중반을 넘어가면 그럴 일이 점차 줄어들기는 하지만).
처음 게임을 시작해 물건 거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트레이더(Traders)의 물건 가격을 보면 정말 많은 퀘스트를 해야겠다는 위압감을 느끼게 될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 이런 물건 가격을 보게 되면서 '정말 RPG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는 메인 스토리 퀘스트보다는 일거리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서브 퀘스트의 내용은 그다지 다채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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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사고 팔 때 장착한 아이템을 따로 표시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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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을 모두 제거하면 주인공은 평범한 인간 |
숨겨진, 또는 떨어뜨리고 온 물건을 찾아온다거나 특정 구역에 있는 악당 또는 괴물을 물리친다거나 하는 형식으로 거의 비슷비슷하다. 돈을 벌고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서브 퀘스트를 몇 번 하다 보면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동 수단이라는 것이 따로 없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맵은 상당히 넓은데 걷거나 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별로 시원치 않은 보상이 담긴 퀘스트들은 허탈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서브 퀘스트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받아서 여행을 떠나는 방법을 고려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제작사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메인 스토리 퀘스트를 제외한 모든 서브 퀘스트에 시간 제한이 있는 것이다.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면 하루 정도의 제한 시간이 설정되기 때문에 마음 놓고 10개 정도의 퀘스트를 모두 해결하고 유유히 마을 또는 스토커들이 모여 있는 구역으로 돌아온다는 RPG스런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제한된 시간이 넘어가면 화면에는 퀘스트 실패라는 메시지가 큼지막하게 표시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실패로 기록된 퀘스트도 1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얻을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들지 말라는 제작사의 배려(?)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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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나게 부서진 건물 표현에서 섬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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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시간대가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 |
전투 시 적들은 놀라울 정도로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숨어서 공격을 하거나 장애물을 이용해 공격 지점을 선정하는 부분은 일견 대단해 보이기까지 한다. 때로는 반복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종잡을 수가 없게 된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불리하다 싶으면 숨는 데에 주력하기도 한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버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짧지만 즐거운 슈팅의 기회가 되어주니 안 좋게 얘기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똑똑한 적들 덕택에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재미가 붙기 시작하는데, 모든 적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형 적들의 경우에만 해당하고 방사능 오염으로 좀비가 되어 버린 스토커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진 괴물들과의 전투는 이것과 전혀 다르다.
방법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투를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단순 무식하게 달려드는 괴물은 단독으로 공격하는 일이 없고, 수가 많지 않은 괴물은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을 사용하는 시기가 오면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타격감이 약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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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여유가 생기면 항상 같은 음악만 연주하는 기타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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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접할 수 없는 시원한 느낌의 폭발 장면 |
RPG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은 현실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부분도 눈에 띈다. 다른 많은 부분들이 RPG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캐릭터의 능력 상승이라는 개념은 없다.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템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
공격 능력은 전적으로 게이머에게 달려 있는 것 같지만 무기가 점차 좋아지기 때문에 개선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방어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는데, 이러한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 아티팩트라고 하는 위해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잔여 물질이다. 퀘스트를 통해 보상으로 얻을 수도 있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길가에 굴러다니기도 한다(물론 아주 좋은 것은 퀘스트 보상인 경우가 많다).
아티팩트는 벨트에 총 다섯 개를 넣을 수 있는데 아머의 능력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약점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 적당한 조합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아티팩트를 잔뜩 갖고 다니면서 다양한 조합으로 위험 환경을 헤쳐나가면 좋겠지만 인벤토리에 그럴 만한 여유 공간이 남는 일은 별로 없다. 아무튼 스토커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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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할 때에는 체력 등 기타 HUD가 모두 사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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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부는 날도 있지만 비가 내리는 날도 있다 |
그래픽은 최신 기술을 접목시킨 조명 효과를 잔뜩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화려해 보이지만, 사물에 가까이 가보면 고전적인 표현도 쉽게 눈에 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나무나 풀의 잎사귀인데, 평면 텍스쳐 이미지를 여러 방향으로 얹어놓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2002년에 개발된 자체 게임 엔진에서는 이런 자잘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하다. 시간대의 변화에 의해 눈 앞 풍경의 색감이 달라지는 표현에서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와 함께 어딘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운드는 방향성은 상당히 좋으나 거리감 표현이 부족하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달라지기 때문에 매우 거슬린다. 때로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내는 것과 비슷한 음량으로 들리기도 한다. 괴물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면 경계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돌아보면 꽤 멀리 떨어져 있거나 그냥 지나치며 내는 소리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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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해 보이지만 아무도 활용하지 않는 장갑차가 자주 눈에 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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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의미가 숨어 있을 것 같던 PDA 내의 스토커 순위 |
이외에도 아쉬운 점은 꽤 많다. 예를 들면, 서브 퀘스트를 꺼리게 되는 이유로 앞에서 이동 수단을 예로 들었지만, 원하는 방향을 지정하는 기능조차 없는 지도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PDA 내에 들어가 있지만 종이로 된 지도를 펼쳐보는 것보다 더 나은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앞에서 전투 시 아쉽다고 한 미약한 타격감은 어쩌면 이 게임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화를 하고 있다거나 적당한 사격 지점을 찾아 총을 쏘려고 하는데 옆에서 움직이는 캐릭터에 밀려 얼음판에서 미끄러지듯 밀려나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존재감마저 의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 물건을 사고 팔 때 자동으로 열리는 인벤토리에서 사용 중인 아이템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다거나 메시지가 겹치는 상황, PDA 인터페이스 불일치 등 완성이 덜 된 듯한 느낌이 크다. 메인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전개 상의 매력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것도 전체적인 구성을 산만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고 날씨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등 FPS라는 장르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신선한 요소가 많은 게임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만큼 아쉬운 점도 많다. 스토커는 원래 올해도 발매가 확실치 않은 게임들 중 하나였다. 발매일 확정 뉴스가 나왔을 때 과연 그대로 믿은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는 약속을 지켰고 뛸 듯이 기뻐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제작사가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흔적을 접하게 될 때마다 신선함에 놀라기보다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이미 발매가 되어 버렸으니 큼지막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게 됐다. 하지만 패치를 통해 자잘한 문제들이라도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