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서 변속기(트랜스미션)는 왜 필요할까? 엔진에서 나오는 토크를 효율적으로 분배해 사용하는데 있다. 1층에서 2층까지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자. 밧줄을 타고 올라간다면 힘이 많이 들고 이것을 매일 해야 한다면 못할 짓이다. 하지만 계단을 이용하면 적은 힘을 들여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변속기는 자동과 수동변속기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차이는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느냐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저절로 올라가느냐의 차이겠다. 요즘 국내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자동변속기를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수동변속기를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국산 소형차에서나 선택할 수 있고 중대형과 수입차에서는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자동과 수동변속기는 기계적인 구조와 작동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똑같은 엔진에서 나오는 출력이라도 자동과 수동변속기를 통해 바퀴로 전달되는 출력은 미세하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실제로 마쓰다 RX-8은 6단 수동이 232마력, 6단 자동이 212마력으로 최고출력이 다르다.
자동변속기는 구조상 동력 전달과정에서 손실이 일어나 연료효율이 떨어지고 리스폰스도 수동변속기보다 떨어진다.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유럽만 해도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절반 정도가 아직도 수동으로 변속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스포츠카나 소형차의 경우 수동변속기를 선택하는 수요가 꾸준히 있다.
자동으로 기어를 바꿔주는 자동변속기는 제법 오래전에 미국에서 먼저 개발됐다. 1940년 미국 올즈모빌에서 ‘하이드라-매틱(Hydra-Matic)’이라는 자동변속기를 처음으로 대량생산했다. 3개의 행성(planetary)기어 세트와 유체 커플링(토크 컨버터 개념) 구성으로 4단에 후진까지 있는 구조였다. 이후에 하이드라-매틱의 원리를 기본으로 여러 자동차 메이커에서 개발한 자동변속기가 널리 퍼지게 된다.
자동변속기 토크 컨버터의 동력 손실
요즘의 자동변속기는 엔진과 트랜스미션 사이에 토크 컨버터가 있다. 이것은 선풍기 날개 두 개를 가깝게 맞대고 하나를 돌리면 바람을 통해 반대편 날개로 저절로 돌아가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토크 컨버터 안에는 고정된 두 개의 프로펠러 날개가 있고 하나는 엔진에, 반대쪽은 변속기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프로펠러 사이에는 공기 대신에 끈적이는 유체가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다.
자동변속기를 D레인지에 놓으면 액셀을 밟지 않아도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는 클리핑 현상이 있다. 이것은 토크컨버터 한쪽 프로펠러가 엔진과 연결돼 계속 돌기 때문에 유체를 통해 반대쪽으로 전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 브레이크를 잡으면 트랜스미션과 연결된 프로펠러를 강제로 세우게 되고 이 경우에는 엔진과 연결된 프로펠러는 유체 속에서 계속 돌 수 있어 엔진 시동을 꺼뜨릴 염려가 없다.
자동변속기 기어 세트는 하나의 원통 구조다. 이 안에는 원형기어가 있고 다른 작은 기어가 안에 들어가 움직이는 ‘행성기어(planetary)’ 구조로 복잡하다. 기어비에 맞게 설계된 톱니기어들이 전자 유압식 유닛에 의해 서로 앞뒤로 밀리고 붙고 떨어지면서 상황에 맞게 변속된다.
자동변속기는 토크 컨버터에서의 동력 손실과 전자 신호를 받아 움직이는 기어들의 시간차이가 생긴다. 직접 손으로 기어를 끼워 맞물려 돌아가는 수동변속기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고 반응이 느린 이유다. 제작비용도 수동변속기보다 더 비싸다. 따라서 직접적인 반응과 순간적으로 빨리 움직여야하는 경주차나 스포츠카에서 수동변속기를 더 선호하고 있다.
그리고 동력 손실을 줄이고 연료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이유로 효율성을 생각하는 소형차에서 수동변속기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더 편안하고 쉽게 운전할 수 있다는 큰 매력 때문에 자동변속기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동변속기의 편리성과 수동변속기의 효율과 응답성을 잡기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스텝트로닉 오토매틱’, ‘반자동 변속기’, ‘팁트로닉’ 등 다양한 이름의 자동변속기다.
패들시프트나 기어 레버를 조작해서 운전자가 원하는 기어 단수를 직접 조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자동변속기의 기계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여전히 반응은 느리다. 페라리의 F1 변속기, 람보르기니의 e기어, BMW SMG 같이 수동변속기 구조의 ‘시퀀셜 트랜스미션’은 사람이 손으로 기어를 바꾸는 동작을 전자 유압식 모터가 대신하는 원리다. 변속 속도는 빠르지만 구조가 복잡하고 제작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기어가 연결되는 과정에서 울컥거림이나 이질감이 느껴져 부자연스럽다는 단점도 있다.
자동과 수동 변속기의 만남
2003년 폭스바겐·아우디가 선보인 DSG (Direct Shift Gearbox)는 자동변속기의 편안함과 수동변속기의 직접적인 반응과 효율을 모두 살린 변속기다. 수동변속기는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을 트랜스미션에 전달하는 중간에 클러치가 있는데 이것을 운전자가 클러치 패달을 밟아서 기계적으로 연결시켰다 떼었다 한다. DSG는 이 클러치가 듀얼 방식이고 전자 유압식 컨트롤 유닛으로 움직인다.
클러치와 변속기 기어 단수를 이어주는 샤프트가 이중으로 되어 있다. 볼펜 원통 껍데기 안에 볼펜심이 있는 구조처럼 커다란 하나의 샤프트가 있고 그 안에 작은 지름의 샤프트가 있어 번갈아 돌아가는 구조다. 습식 클러치 역시 듀얼 형태로 커다란 클러치 안에 작은 원형 클러치가 숨어 있다. 여기에 바깥쪽 클러치와 안쪽 샤프트는 1, 3, 5단(R 포함) 기어와 결합하고 안쪽 클러치와 바깥쪽 샤프트는 2, 4, 6단에 연결된다.
예를(그림참조) 들어 4단으로 달리다가 5단으로 변속을 된다고(한다고) 보자. 4단과 연결된 바깥쪽 샤프트와 안쪽 클러치를 통해 엔진의 토크를 전달받아 굴러간다. 한편 안쪽 샤프트는 5단 기어에 이미 연결돼 있으나 바깥쪽 클러치부분은 엔진과 떨어져 5단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 이때 운전자가 수동모드에서 기어레버나 패들시프트를 조작하던지 오토모드에서 ECU가 신호를 보낸다.
전자 유압식 컨트롤 유닛이 작동해 4단과 연결된 안쪽 클러치를 서서히 떨어뜨리고 5단이 연결된 바깥쪽 클러치를 서서 붙여 동력을 연결하는 식이다. 이후에 자연스럽게 동력이 떨어진 안쪽 클러치는 저절로 6단과 맞물려 있게 되는 식이다. 이 변속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어진다. 양쪽에서 미리 들어갈 기어 단수를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반응 속도가 빠르다. 골프 GTI DSG의 경우 0→시속100km 도달 시간도 수동변속기보다 빠르다. 또한 ECU 프로그램 세팅으로 완전 자동모드에서도 rpm을 높여 변속하고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S(스포츠)모드와 다운시프시 rpm을 보상하는 기능도 완벽하게 구현했다. 6단 DSG 변속기는 폭스바겐 골프, 파사트와 아우디 TT, A4 등에서 두루 사용하면서 2007년 말에 100만 대 생산을 돌파했다.
올해 1월 말에는 폭스바겐 소형차를 위한 7단 DSG를 개발하고 상용화한다고 밝혔다. 기어를 7단으로 늘리고 습식 클러치를 건식으로 바꾸어 연료효율을 더욱 높였다. 2005년 말부터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테스트하기 시작한 7단 DSG 변속기는 6만 시간 동안 200만km의 내구성 테스트를 거쳐 태어났다. 지난해 11월말부터 독일 카셀(Kassel)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폭스바겐·아우디의 DSG 발표 이후에 듀얼클러치 방식의 변속기에 눈독을 들이고 개발하고 있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도쿄모터쇼에서 발표한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X의 SMT 변속기와 닛산 GT-R의 트랜스미션도 듀얼클러치 방식의 변속기로 발 빠르게 상용화에 성공했다. 올해 초에는 볼보도 게트락(Getrag)과 공동 개발한 트윈클러치 방식의 ‘파워시프트’ 변속기를 2.0ℓ터보 디젤 엔진을 얹는 C30, S40, V50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계단보다는 비탈길을 올라가는 것처럼 무단으로 변속되는 CVT가 가장 이상적인 변속기라고 하지만 아직 기계적인 완성도가 높지 못하고 주행감각의 이질감으로 인기가 떨어져 있다. 반면에 DSG는 자동의 편하고 부드러운 변속에 수동처럼 효율 좋고 직접적인 응답성까지 두루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