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은 늘 극적이다. 지루하고 뻔한 스토리가 180° 뒤집어엎어질 때면 짜릿하고 알싸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자동차에도 분명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존재한다. 보수적인 S-클래스의 반전이 더욱 극적인 것도 이런 이유다.
S-클래스 CDI 디젤로 라인업 확장
메르세데스-벤츠가 프리미엄 라인업의 꼭짓점 S-클래스에 CDI 디젤을 얹었다. 유럽에선 흔한 일이지만 이곳에선 커다란 발상의 전환으로 봐야한다. 디젤에 대한 선입견이 여전히 뚜렷해서다. 더욱이 프리미엄 벤츠의 대표모델 S-클래스로선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어색하지만 우리도 하루빨리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새 차는 오너 중심 성격이 강하다. W221 S-클래스를 들여오면서 롱 휠베이스 버전만 소개했던 벤츠가 한국시장에 처음으로 선보인 노멀 휠베이스다. 휠베이스가 짧아지면서 차 길이는 약 10cm 줄었다. 뒷자리에 어른을 모셔야할 이유가 없다면, 스스로 운전하는 일이 많다면 차는 길어야할 이유가 없다. 이전 S-클래스(W220)는 라이프사이클이 다해갈 즈음 S 280으로 노멀 휠베이스를 소개했다. 이제 그 자리에 CDI가 들어앉은 셈이다.
CDI S-클래스는 차 길이를 줄이면서 편의장비도 적당히 덜어내 타협점을 찾았다. S 350과 비교해 하만 카돈 로직7 사운드 시스템, 앰비언트 라이트를 비롯해 실내등 패키지가 빠졌다. 나아가 앞뒤 컴포트 시트와 헤드 레스트도 뺐다. 이 정도는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비들, 그러나 큼지막한 파노라마 선루프마저 덜어낸 것은 아쉽다.
커맨드 시스템은 여느 S-클래스와 다를 게 없다. 다이얼 하나로 차의 모든 기능을 손쉽게 차근차근 주무를 수 있으다. 또한 나아진 점도 있다.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MP3 플레이어 등 차 안에 들어간 모든 커맨드 시스템에 정갈한 우리 한글이 지원된다.
안타까운 단점이 최고의 장점으로 거듭나다
‘타워 팰리스에서 바라보는 흑백 TV’. 누군가 S-클래스의 내비게이션을 두고 한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초기 S-클래스의 한글 내비게이션은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작은 화면을 커다란 모니터에 띄우다보니 화면은 가볍게 일그러졌다. 글씨도 휘어졌고 그래픽은 형편없었으며 기능을 찾아가는 인터페이스 역시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았다. S-클래스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2008년, S-클래스는 CDI를 더하면서 이 최악의 단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뒤바꿔 놓았다. 새롭게 더해진 내비게이션은 국산, 수입차를 막론하고 국내 내비게이션 가운데 최고수준의 그래픽을 인스톨했다. 하나하나 메뉴를 익히지 않아도 쓰기 쉬울 만큼 인터페이스도 훌륭하다. 각 교차로마다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이 화면 오른쪽에 ‘뿅’하고 나타나는 점도 기특하다. 프리미엄 세단에게 당연한 스토리지만 수치스러울 만큼 졸작이었던 전작 탓에 새 내비게이션이 더욱 반갑다.
가장 중요한 반전은 역시 엔진. S-클래스에 처음 이름을 올렸을 뿐이지 벤츠의 V6 CDI 유닛은 이미 친숙해져 있다. E-클래스 320 CDI(국내에는 220 CDI만 들어온다)는 2006년 ‘파리-베이징 대륙횡단’을 훌륭하게 치러내며 탄탄한 내구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내구성과 성능은 또 다른 방식으로 검증되기도 했다. 벤츠는 독일 진델핑엔 공장에서 출고한 E 320 CDI 가운데 무작위로 3대를 뽑아 미국으로 보냈다. 1주 약 4km의 미국의 라레도 서킷을 밤낮없이 달려 10만km 논스톱 주행 기록을 거머쥐기 위해서다. 평균 시속 200km를 넘나들며 200랩 이상을 도는 동안 기본적인 메인터넌스와 드라이버 교체만 있었다. 결국 1대의 CDI가 야간주행 때 서킷으로 달려든 동물과 충돌해 리타이어했고, 2대의 320 CDI가 10만km 논스톱 주행을 기록했다. 디젤의 내구성을 확실하게 입증한 순간이었다.
7G-트로닉과 육중한 디젤 토크 어우러져
벤츠는 같은 엔진의 출력을 조금 조정해 ML 280 CDI에 얹고 있다. 뿐만 아니다. 크라이슬러와 손잡던 시절 300C에게도 V6 3.0 디젤을 건네줬다. 국내 크라이슬러 300C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RD 엔진의 근간이 바로 벤츠의 이 320 CDI다. 최고출력은 제각각이다. ML 280 CDI가 190마력, 크라이슬러 300C CRD가 218마력을 내는 것과 달리 S 320 CDI는 235마력으로 자존심을 지킨다. 최대토크 역시 다른 두 모델을 앞선다.
7G-트로닉과 맞물린 토크는 초기 가속을 부드럽고 빠르게 이끈다. 급가속 때 레드존 가까이 혹사하지 않아도 부지런히 7개의 기어를 갈아탄다. 차 길이가 짧아진 것에 대한 드라이빙 감각의 차이는 적다. 오히려 디젤 엔진의 특성이 더욱 짜릿하게 와 닿는다. 최대토크 시점에 올라선 순간 와락 쏟아져 나오는 토크는 적당한 차 무게에 짓눌려 우아한 움직임으로 받아친다.
변속충격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 7G-트로닉과 커다란 토크가 조화를 이뤘으나 변속 때 별다른 엉킴현상이 없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7단 변속기와 만난 CDI 엔진은 S-클래스의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1ℓ당 공인연비 10.0km를 기록했다. 최대토크가 나오는 시점은 1천rpm 후반이지만 계기판으로 판단하거니와 2천rpm을 넘겨야 파괴력을 맛볼 수 있다.
차 안팎의 디젤 소음도 적절히 다듬었다. 제 아무리 조용한 디젤이라한들 휘발유 차보다 조용할 순 없다. 적당한 태핏 소음을 흘려내는 모습에서 우리도 유럽처럼 다양한 모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국산차가 맥을 못 추고 있는 디젤 세단 시장이 수입차에게는 분명 블루오션이다. 여전히 엔트리급 무대를 대신하고 있으나 S-클래스 CDI의 등장으로 판세가 역전되는 반전 드라마를 기대해 본다. 연료비를 염두에 두고 디젤을 고른 오너는 물론 디젤의 파괴적 드라이빙 퍼포먼스에 매료된 오너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