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후로 해수면이 높아지자 해안 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 지형을 변경하려던 정부의 방책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미국 중앙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해 동서가 갈라져 생존을 위해 한 쪽은 유전자 변형을, 다른 한 쪽은 사이버네틱 기술을 이용하면서 대립하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땅을 솟아 오르게 만들거나 꺼지게 만드는 독특한 무기를 내세워 전장의 모습이 항상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주 무기로 내세운 게임 ‘프랙쳐’.
지면을 높이고 낮출 수 있다면 벽으로 막혀 있는 곳에 길을 만들어 적을 공략할 새로운 경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은 프랙쳐가 내세웠던 특징의 몰락을 의미한다. 물론 높은 곳에서 끊어져 올라갈 수 없는 곳에 길을 만든다거나 1층 바닥에 있던 커다란 물건을 위로 들어올려 2층에 징검다리 형식의 경로를 만드는 것은 가능했지만 새로운 경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어 길을 찾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초반에는 그런 색다른 능력을 이용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하겠지만 계속 반복되는데다 다른 경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면서부터 높이 변경에 대한 신선함이 급속히 감퇴된다. 지면 높이 변경 방법 외에도 길을 찾고 만드는 것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시원시원하고 색다른 전장을 경험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게다가 설명대로라면 아군만 지형 변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군 중에서는 주인공만 사용할 수 있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사용한다는 쪽에서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다는 어색한 설정까지 겹쳐 분위기가 더욱 애매하게 됐다. 데모 버전에도 포함되어 있는 도입부 튜터리얼의 컷씬에서 유전자 변형된 적의 군인들은 놀라운 점프력을 구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놀라운 운동능력으로 진행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일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발로만 뛰어다닐 뿐이었다. 그런 정도의 움직임을 갖는 병사는 2-3종류로 아주 가끔 등장하는데 점프 지점이 3-4곳으로 고정되어 있어 조금만 눈여겨 보면 다음 도착 지점을 미리 파악해 한 곳에 가서 기다렸다 주먹으로 가격하거나 갈 장소에 폭탄을 심어두는 방법으로도 처리할 수 있었다.
게임 초반에는 적군의 유형이 계속 추가되어 매우 다양한 종류의 적들이 대기 중인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초반 유입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추가되는 새로운 적들은 점점 더 일반 무기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강력한 갑옷을 입고 나오는데 확실히 총으로는 쓰러뜨리기 어렵다. 사이버네틱이 발전했다는 편에서 진행하고 있음에도 무기의 성능이 더 뛰어난 것도 아니고 종류가 더 많은 것도 아니라는 점도 어색하다. 오히려 종류는 유전자 변형 진영이 더 많아 보인다.
적들의 AI가 적당한 수준 이상이어서 가만히 넋을 놓고 당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고, 맷집 좋은 병사는 대부분 좋은 화력을 갖고 있어 시야를 잡기 어렵게 만들면서 그렇지 않은 병사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어느 한 곳에 가만히 숨어서 하나씩 처리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슈팅 면에서는 어느 정도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가까이에 있는 적들은 공격을 받으면 곤충처럼 체액이 쏟아져 나오는 표현이 있어 분간을 할 수 있지만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다면 타격감 부재로 총알의 도달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단점이다. 제대로 맞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쓰러지는 것으로 알아채기도 한다.
극초반이라고 해도 보통 수준 이상의 난이도이고 이를 넘어서면 적들의 공격에 아머가 줄어드는 수준이 대단한데다 쉬지 않고 쏘아대는 통에 전투가 그다지 쉽지 않다. 여기에 보다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오는 적들이 하나 둘 추가되면 전투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적들이 쏟아 붓는 총알은 너무나 잘 맞는데 쏘는 입장에서는 명중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범용 어썰트 라이플은 든든한 정도로 총알을 많이 갖고 다닐 수 있지만 총알 낭비가 심해 효율적이지 않고, 극 초반을 지나 적군의 더 나은 조준력을 가진 총들을 얻게 되면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보유 탄약 수가 적은데다 단 두 가지 무기만 갖고 다닐 수 있어 어느 한 쪽은 계속 바꿔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무기 중 일부는 앞서 언급한 길 찾기 또는 길 만들기용으로만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하는 무기들도 있다. 결국 총알이 부족하지만 잘 맞는 총을 갖고 있거나 잘 맞지는 않아도 보유 탄약 수가 많은 총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형 변경이라는 독특한 특징 덕택에 기존 게임 엔진을 사용할 수 없어 자체 개발한 것을 사용했다는데 그래픽 디테일만 따지면 고품질 범용 엔진의 최고봉으로 꼽는 언리얼 엔진 3와 비교해도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최적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스크롤 속도 저하는 일부 장면의 경우 심각한 수준까지 경험할 수 있다. 특히 화면 전체가 흔들리고 많은 효과가 화면을 뒤덮을 때 심한 편이며, 체크 포인트를 지날 때에도 매끄럽지 않은 화면 전환을 보게 된다.
다양한 분위기에 맞게 준비된 클래식풍의 배경 음악에 무기 사용 시 귀로 전달되는 사운드 박력이 좋아 귀가 즐거운 게임이다. 한글화도 무난한 수준이어서 전개 자체는 조금 어색하더라도 게임 진행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좋다. 다만, 한 단어가 잘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일이 간혹 있어 자막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해야 할 일에 대한 힌트를 말로만 전달하기 때문에 다시 듣거나 보기 위해 이전 체크포인트로 돌아가는 일도 발생하는 등 전체적으로 편리하다고는 할 수 없다.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을 제대로 표현하기만 했다면 프랙쳐는 다른 어떤 게임과도 차별화된 독특한 게임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저 조금 다른 슈팅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지형 높낮이 변경 기능이 단순히 길 찾기와 만드는 데 할애되기 보다는 홍보했던 것처럼 전투 국면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서로 다른 발전 방향을 가진 진영의 특징이 확고해 다른 게임에서 사용하는 전술이 먹히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