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장르마다 이를 대표하는 게임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RPG에는 파이널 판타지와 드래곤 퀘스트, SRPG에서는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대표작은 높은 게임성을 지닌 경우가 많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이 아닐지라도 게이머들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에서‘도키메키 메모리얼’은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PC98 등으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존재했고 콘솔 게임에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은 높은 캐릭터성을 바탕으로 그간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들과 차별화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등장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도 지대한 영항을 미친 작품이다. 이 게임의 등장 이후 한동안 콘솔에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인기는 국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1994년 PC엔진으로 처음 발매된 당시에는 국내에 PC엔진 유저가 별로 없어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 해볼 수 없었지만 PS와 SFC로 컨버전 되면서 이 시기에 입문한 게이머라면 대부분 플레이를 해보았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 30줄에 접어든 게이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묻어날 정도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알콩달콩한 재미, 추억의 오프닝 곡은 세월이 꽤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이펙트를 주었고, 일본어로 되어 있어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강렬한 경험’이었던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후속작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 등장했고 외전 형식으로 몇 편의 게임이 추가로 발매되면서 팬들을 즐겁게 만들기는 했지만 정통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2편의 경우 1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캐릭터들로 이질감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폭발적인 인기 뒤에는 ‘후지사키 시오리’나 ‘가가이 미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의 비중이 컸는데 그러한 부분을 간과한 듯한 느낌이랄까. 후속작인 만큼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지만(물론 1편의 팬들이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편에도 1편의 히로인들을 그대로 등장시킨 ‘센티멘탈 그래피티’ 같은 게임도 존재하기는 한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보니 전작을 재미있게 즐겼던 게이머들도 2편에서는 그다지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뒤이어 등장한 3편은 PS2로 발매되면서 3D 느낌이 어우러진 독특한 비주얼을 사용했는데, 처음의 느낌과 더욱 차이가 벌어지면서 결과는 대실패. 그나마 2편까지는 후속작이 나올 정도의 성적을 올렸지만 3편에 이르러서는 그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머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결국 3편 이후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는 잠정적인 종결을 맞이하여 2편까지 활발하게 선보이던 외전 형태의 게임도 3편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몇 년간 코나미는 ‘도키메키 메모리얼 걸스 사이드’라는 여성 유저용 게임을 선보이며 새로운 형태의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를 전개한다. 초창기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더 이상 새로운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았던 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무려 8년여의 시간 만에 부활한다. 강산이 한번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만큼이나 후속작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마저 사라질 무렵 4번째 후속작이 게이머들을 찾아 온 것이다. 그것도 거치형 콘솔이 아닌 PSP로 말이다.
사실 PSP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3편의 실패로 인해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PS3로 만들기에는 부담이 가고 그렇다고 해서 PS2로 발매하기도 모양새가 좋지 않은 가운데 PSP가 딱 적절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휴대용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그다지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니다 보니 게이머에게도 그리 나쁘지 않다. 제작사와 게이머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린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4편은 어떠한 느낌의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3편의 참사 원인 중 하나는 전작의 느낌과 전혀 다른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4편의 캐릭터 역시 초창기와는 거리감이 큰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처럼 밝고 깔끔한 인상이어서 퀄리티는 나쁘지 않지만 시리즈의 특징인 교복을 제외하면 도키메키 메모리얼이라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도 이질감이 팍팍 느껴지는 게임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작과의 차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이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3편 이후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기존 팬들의 연령대가 높아져 게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과거의 팬층보다는 현재 주류 게이머들의 취향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도키메키 메모리얼 4는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캐릭터의 매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단점이라 생각되지만 전반적으로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부드러운 그래픽을 사용하고 있고 SD 캐릭터의 개그스러운 표정도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느낌이라 할 만한 수준이다.
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소녀들은 소꿉친구이면서 친구인 주인공을 위해 다양한 여성들의 정보를 물어오는(?) 동급생 사츠키 유우와 같은 학급의 반장을 맡고 있는 호시카와 마키다. 다른 소녀들은 기존의 시리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게임을 진행하면서 하나 둘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연락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공략 가능한 캐릭터의 수도 적은 편이 아니고 풀 보이스와 메일 등 다양한 장치가 있어 플레이 시의 느낌은 나쁘지 않다. 다만 소녀들의 개성이 크지 않아 몇몇을 제외하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플레이 방식은 기존 시리즈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키라메키 고등학교가 배경이라는 점, 전설의 나무의 존재에서부터 3년간의 학창 시절을 플레이 한다는 것까지 전작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익숙한 모습이랄까.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변화들이 눈에 띈다.
어느 정도 친밀도를 쌓은 상태에서 데이트를 진행할 경우 천사와 악마가 등장하는 손잡기 시도가 진행된다든지 기존의 일정짜기를 개선해 직관적이면서도 편리한 스케줄 진행을 보여주는 등 업그레이드 된 요소가 많고, 게임도 보다 스피디 해져 한층 쾌적해진 인상이다. 여기에 간간히 1편의 캐릭터들을 암시하는 내용도 등장해 은근히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특기’시스템이 4편에 새로 추가된 요소인데 휴식이나 특정 과목의 공부 등 모든 커맨드를 통해 경험치를 얻을 수 있고 이러한 경험치를 소비해 각종 특기를 배울 수 있는 방식이다. 특기의 종류도 다양해 커뮤니티나 학업 등 여러 가지로 세분화 되어 있고 해당 챕터에 준비된 각각의 특기는 몇 단계의 트리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보다 높은 단계의 특기를 배우면 더 강력하면서도 세부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특기가 목표로 삼은 여성을 공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듯 기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몇 가지 새로운 요소들을 추가하다 보니 전작의 즐거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면서도 참신한 느낌을 준다. 기존 요소들 또한 세련된 형태로 리모델링 하여 최근에 나온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도키메키 메모리얼 4는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발매된 만큼 전작과의 이질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게임이다. 비주얼도 그렇고 캐릭터의 외모 또한 다르며 시스템도 많은 부분이 리모델링 되었다. 이로 인해 과거의 시리즈를 생각하고 플레이 한다면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뼈대는 동일하지만 플레이 시 느낌은 제법 다른 편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의 시리즈가 추억의 게임이라는 느낌이라면 본작은 현대적으로 만든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멋진 비주얼을 보여주면서도 전작들의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 게임은 현재의 게이머들에게 어필 하려는 게임이다.
어느 정도 과거의 팬들을 위한 장치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올드팬을 위한 작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8년이라는 시간만큼 게임도 변했다는 것. 이러한 변화가 지금의 게이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의 팬들에게마저 버림 받는 게임이 될 지 필자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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