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3 출시 후 곧 등장할 것만 같았던 Final Fantasy 13이 이제서야 출시가 되었다. FF13은 PS3 출시 전부터 라인업을 차지하고 있던 타이틀이었으나 라이트닝의 얼굴 컷만 돌아다녔을 뿐,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접할 수 있었다. 목표로 하는 게임 플레이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았던 타이틀이기도 했다.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이라던가 관련 정보는 전혀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XBOX360으로도 출시한다는 발표를 하여 이슈를 만들어 나가는 정도였다. 이후, FF7 advent children의 블루레이 버전 한정판에 FF13 체험판을 수록한다는 발표를 하기까지, 실제로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 조차 알 수 없는 시기가 계속되었다.
체험판을 보고난 후에야, 일단 개발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어 안심하게 될 정도로, FF13은 발표에 비해 실체가 늦게 드러난 타이틀이었다. 전작으로부터 3년 9개월 만에 등장한, 그리고 개발이 시작된 후 5년 만에 FF의 정식 후속작. 그런 FF13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콘솔로 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FF는 하나의 콘솔에서 3개의 작품을 내놓는 경향이 있었다. 1부터 3까지는 패미컴, 4에서 6는 슈퍼패미컴. 그리고, 7, 8, 9는 PS1이었고, 10, 11, 12는 PS2로 출시가 되었다. 13의 경우에는 12가 나올 때부터 이미 PS3로의 출시를 예고해두고 있을 정도였다. 13 이후에도 계속 멀티플랫폼으로 출시될 지는 알 수 없지만, 후속작인 14는 일단 PS3로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콘솔 사이클이 짧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HD시대이기에 15가 현행기로 나오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FF4, FF7, FF10 모두 새로운 콘솔로 나오면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던 타이틀이었다. 그 전철을 밟아 FF13 역시 새로운 콘솔로 나온 만큼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다.
Final Fantasy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요소들 중 하나는 바로 그래픽이었다. 새로운 콘솔이 나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동시기의 다른 게임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비주얼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단순히 그래픽 때문에라도 일단 잡아보게 만드는 타이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FF13은 전작들에 비해 새로운 콘솔에 정착하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이미, XBOX360 등으로 기존 콘솔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그래픽을 지닌 타이틀이 다수 출시된 상황. 이전의 FF는 이렇다 할 확실한 타이틀이 없었던 시기에 나와서 경쟁작들을 모두 눌러버릴 정도였지만, 이미 강렬한 비주얼을 보여주는 타이틀이 여럿 나와버린 HD 콘솔 시대에도 FF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해냈다. 완벽하게 압도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FF의 전통을 잇기에는 충분히 좋은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었다. 혹자는 동영상으로만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해상도 덕분에 게임 플레이 도중에 갑자기 동영상으로 바뀐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PS1 시절에는 동영상의 모델링과 실제 게임플레이 모델링 자체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다. PS2로 나온 FF10의 경우는 실제 게임플레이 모델링도 제법 좋았지만, 동영상은 그보다 더 좋았다. 동영상이 나올 때면 해상도가 바뀌기 때문에 동영상과 게임 플레이가 따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FF13의 경우에는 인게임 그래픽과 동영상 사이의 위화감이 전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다. 위화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어색할 정도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연출은 여전히 압도적이지만, 인물 표현의 경우에는 머리카락 같은 세밀한 부분들 외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수준까지 오게 되었다. 동영상과 게임플레이 내의 인물 표현이 비슷하다 보니, 게임플레이에서 영상으로 이어질 때의 연출 역시 자연스럽다. 리얼타임 렌더링 그래픽 자체의 수준 역시 뛰어나다.
FF10의 비주얼에서 유난히 돋보였던 것은 화려한 발색이었다. 다양한 색상들을 실제 게임플레이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트디렉션 상의 한계도 있지만, 콘솔 자체의 스펙 한계도 있었다. 그러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게임들이 대체로 특정한 톤의 색상으로 통일하여 분위기를 맞추려 했었다.
불의 세계가 나오면 대체적으로 붉은 색 위주로 배경이 이루어지고, 물의 세계가 나오면 역시 그에 어울리는 톤으로 색상을 맞추는 것. 이런 식의 속성 세계관은 아주 전통적이면서도 전형적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활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색상 톤을 맞추어야만 상대적으로 그래픽 표현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의식하여 세계관을 맞추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면에서 FF10은 제법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FF10에도 톤을 맞추기 위한 숲이라던가 얼음 위주의 세계 같은 공간들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색상을 섞어 쓰는 화려한 곳들이 눈에 띄었다. FF13은 대체로 FF10의 아트디렉션을 느낄 수 있다. 환수의 디자인, 보스 캐릭터 디자인 등 세계관은 전혀 다르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매 시리즈 마다 색다른 감각을 전해주는 것이 FF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감각과 감성이 이어지는 것이 FF이기도 하다.
FF11과 FF12는 각기 다른 개발팀에 의한 결과물이었으나, FF13은 사실상 FF10을 개발한 이들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Final Fantasy를 집대성한 타이틀은 사실 FF11이었지만, 높은 진입 장벽 덕분에 제대로 접한 콘솔 유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FF 시리즈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경우에도 FF11까지 즐긴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그 덕분에 FF12가 FF10의 정규 후속작이라고 인식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FF12는 FF11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타이틀이었으며, 자기 주장이 강한 디렉터가 맡은 타이틀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역시 모호한 타이틀로 남아버렸다.
그래서 최근 Final Fantasy에 대한 기억이라고 한다면, 결국 FF10을 떠올리게 된다. FF10의 강렬한 존재감에 비해 상대적으로 FF11과 FF12가 어중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FF10을 계승한 듯한 인상을 주는 FF13은 보다 인상적일 수 밖에 없다. FF10 이후 거의 10년 만에 만나는 FF 같은 느낌의 FF였던 것.
아트디렉션의 경우도 그렇지만, 전반적인 게임 시스템 역시 FF10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번 작품에는 별도의 레벨이 존재하지 않는 대신, 크리스탈리움을 통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게 되는데, 크리스탈리움의 구조가 FF10의 스피어반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투 승리 후에 받는 CP를 이용해서 HP, 공격력 등을 올리게 된다.
FF12의 경우에도 라이센스보드라는 유사한 성장 시스템이 있었지만, 크리스탈리움은 라이센스보드 보다 확실히 스피어반에 더 가까운 성장 시스템이다. 적당히 CP를 얻을 때 마다 능력치를 올려도 되고, 한참 진행하다가, 적이 강해서 막힐 경우에 모아둔 CP를 한번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해도 된다.
초반에는 세심하게 능력치를 올리게 되겠지만, 계속 진행하다 보면 포인트를 얻을 때 마다 한번씩 성장시키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게 된다. 한번에 여러 능력치를 얻을 때의 재미도 좋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면 되겠다. 그리고 크리스탈리움은 전투 시스템 중 하나인 옵티마와 연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외길을 타는 성장판의 형태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옵티마는 일종의 직업이라 할 수 있는데, 각 역할 별로 독자적인 크리스탈리움 영역이 있기 때문에, 주로 키우고 싶은 루트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HP라던가 공격력 등의 기본 능력치는 각 역할 별로 공유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골고루 키워줘야 할 필요는 있다. 각 인물별로 기본적으로는 세 종류의 역할이 주어지지만, 후일을 위해 다른 역할들도 키울 수 있도록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열심히 경험치를 모으면, 압도적인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전형적인 FF 다운 성장 시스템인 셈이다.
FF하면 떠올리게 되는, 흑마도사, 백마도사와 같은 직업군은 FF13에 존재하지 않는다. 잡체인지 시스템을 갖춘 FF3이라던가 FF5가 워낙 인상적인 타이틀이었던 덕분에, 직업들 역시 FF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FF6부터 이미 특정 직업에 얽매이지 않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잡 체인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FF5 역시 어빌리티 시스템을 도입하여, 다른 직업의 기술을 섞어서 쓸 수 있는 구조이기도 했다.
이후의 FF는 한 직업에 얽매이기 보다는, 플레이어가 의도하는 대로 기술과 능력치를 조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물론 과거로의 회귀를 보여준 FF9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직업 구성을 보여주기도 했고, FF11 역시 잡체인지 시스템을 채용한 전통적인 스타일이었다. FF13의 경우에는 직업 대신 옵티마라는 걸 내세우고 있다. 이번 작품의 전투는 3인 파티로 이루어지는 구성에서 리더만 직접 커맨드를 넣으며, 다른 파티원은 AI에 의하여 알아서 움직이게 되는데, AI를 컨트롤하기 위한 시스템이 바로 옵티마이다.
사실 FF12의 경우에도 메인 플레이어만 조작이 가능했으며, 동료는 AI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AI를 컨트롤하기 위해 마련해둔 시스템이 갬빗 시스템이었는데, 갬빗 시스템은 일종의 AI 프로그래밍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패턴들을 직접 지정을 해두면, 그 조건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었다.
HP가 몇 퍼센트 이하로 내려가면 회복 마법을 사용하고, 약점을 만든 후에 약점 공격 마법을 하게 하고, 리더가 공격을 시작하면 따라가서 공격을 하게도 하고. 갬빗을 잘 짜두면, 그야말로 오토 프로그램을 돌리듯 게임 진행이 가능했다. 물론, 메인 플레이어를 바꿔가면서 순간순간 필요한 기술들을 사용해야만 하는 절묘한 게임이기도 했다.
하지만, 갬빗은 그만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감도 있었다. 보기 쉽고, 만들기 쉽게 구성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AI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FF13의 옵티마는 갬빗의 그러한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시스템이다. Attacker, Blaster, Defender, Healer, Enhancer, Jammer. 이렇게 여섯 종류의 역할을 미리 나눠준 것이다. 각 역할 구성을 일단 지정해두면, 전투 중에 원하는 구성을 선택해서 AI패턴을 바꿔주는 식이다.
공격할 때는 Attacker, Blaster, Blaster로 맞춰뒀다가, 누군가의 HP가 적을 경우에는 Attacker, Blaster, Healer의 구성 혹은 Attacker, Healer, Healer의 구성으로 한번에 바꿀 수 있다. 직접 조작을 하는 플레이어 캐릭터 역시 역할이 바뀌면 사용하는 기술이 달라졌다. 역할은 여섯 종류지만 각 인물별로 세 종류의 역할이 서로 다르게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공격 패턴을 찾는 재미도 있다.
역할 구분이 확연하게 이루어지는 만큼, 이번 작품은 전작들 이상으로 상태 보조 마법들의 효율이 뛰어나다. 전작들에서는 있으면 좋은 정도의 기술들도, 이번 작품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적의 약점을 확인하는 기술인 라이브러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전투 시스템의 특징이기도 하다.
역할 선택이 가능한 AI라고는 하지만, 그 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술을 항상 사용해주지는 않는다. 불속성의 마법을 흡수하는 적을 만났을 때도, 무작정 파이어 마법을 쓰게 되는 것이 AI였다. 하지만, AI는 학습이 가능하다. 처음 파이어 공격을 했을 때에 적이 그 공격을 흡수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파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약점을 공략하는 듯한 기술을 성공시키면, 이후에는 그 기술들만 사용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처음 만난 적이라 할 지라도 일단 라이브러를 먼저 사용해서 약점을 확인했다면, AI는 바로 그 약점 공략에 들어가게 된다. 라이브러는 AI의 시행착오 과정을 줄여주는 기술인 셈이며, 전작들에 비해 라이브러에서 보여주는 정보가 보다 다양한데, 어떤 식으로 공략하면 보다 효과적인 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재미있다.
FF13 전투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커맨드 스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커맨드 스톡 시스템은 FF13 체험판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었다. 한 번에 세 종류의 동작을 할 수도 있으며, 게이지가 차는 도중에 끊어서 하나의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주 강력한 기술들의 경우에는 게이지 칸을 여럿 소비하는 구조였다.
체험판에서는 대체로 게이지가 전부 찰 때까지 기다려서, 타격, 파이어, 타격 같은 식의 조합을 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본편은 체험판과는 구성이 다소 달랐다. 스톡 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은 당연히 예측 가능한 요소였지만, 커맨드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빠른 전투를 위해서였을까. 한 번 전투할 때마다, 한번에 여러 번의 커맨드를 넣는 것 자체가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알아서 스톡 커맨드를 맞춰주는 공격 커맨드를 추가했다.
커맨드 메뉴에 들어가서 원하는 조합을 직접 맞춰도 되지만, 귀찮은 경우에는 그냥 공격 버튼을 선택하면, 알아서 커맨드를 맞춰줬다. 초기 FF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레벨이 올라갔을 경우 그저 기본 공격 버튼 연타로 전투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한다.
ATB에 커맨드 스톡, 그리고 옵티마를 이용한 AI 교체가 FF13 전투의 기본 구성이다. 라이브러 혹은 시행착오를 통해 AI패턴을 만들어가야 하며, 약점을 잘 공략해야 할 필요도 있다. FF13은 무작정 버튼 연타로 이루어진 전투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두었는데, 대체로 적들의 일반적인 방어력이 높다는 것이 그 장치 중 하나다.
일단 기본 공격만으로는 적이 잘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조 마법으로 공격력을 올리거나, 적의 능력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그렇게 하더라도, 적이 질긴 경우가 많은데, 그 때를 대비한 것이 브레이크이다. Blaster 공격이 연속적으로 계속 약점에 맞게 잘 들어가면 브레이크 게이지가 올라가다가 어느 포인트를 넘기면 브레이크 상태가 된다.
브레이크 상태가 되면 적은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어 방어력이 매우 낮아진다. 이 틈을 노려 집중 공격을 하는 것이지만, Blaster만으로만 공격을 하면 브레이크 게이지가 빠르게 회복되어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Attacker의 공격을 섞어줘야 한다. 물론 Attacker의 기술로만 공격을 하면 그다지 브레이크 게이지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중후반 이후에는 속성도 맞추고, 보조 마법으로 공격력도 올린 후에 브레이크까지 노려가면서 전투를 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AI 전투원들이 있고 리더만 조작하는 전투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 어떠한 정규 FF 시리즈 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게임이 또한 FF13이기도 하다.
게다가, FF13의 전투는 놀랍게도, 리더가 죽으면 바로 게임오버가 된다. 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시스템을 FF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 아주 신선하다. 동료 캐릭터의 경우에는 죽어도, 레이즈라던가 피닉스의 깃털 같은 아이템으로 살릴 수가 있는데, 리더의 경우에는 죽는 동시에 게임오버가 되기 때문에 회복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어디에서나 세이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투 중에 게임오버를 당하면 그 전투 직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데이터를 날릴 일은 없어 안심해도 좋다. 그 전투 직전의 위치로 돌아가기 때문에, 옵티마 구성을 바꿔본다던가, 파티 구성 자체를 바꿔보거나 하는 것으로 다시 전투에 도전할 수 있다. 이 요소가 없어도 제법 까다로운 전투라 할 수 있는데, 사망 시스템 덕분에 FF13의 전투는 보다 전략적인 형태가 되었다.
소환수는 여전히 건재한데, FF12의 형태와 FF10의 형태가 합쳐진 인상이다. AI 캐릭터의 형태로 자신의 할 일을 하는데, 드라이브를 발동시켜서 소환수 고유의 강력한 기술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번 작품의 소환수 역시 아주 강력하지만, 적들 역시 HP가 상당하고, 방어력이 높은 덕분에 소환수 하나로 모든 게 만사해결 되는 초창기 FF와는 다르다.
적을 모두 쓸어가는 식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아주 위급한 경우에 사용하여 전체 회복의 계기로 삼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저런 환수 디자인은 아주 색다른 느낌인데, 일반 참여형과 드라이브 형태로 변신하는 두 종류의 형태가 있어서 보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이 둘의 연출은 모두 캔슬이 가능하다.
ATB에 이런저런 복잡한 커맨드가 섞여있다 보니,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감이 안 올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무작정 버튼을 난타하게 되고, 옵티마를 수시로 바꾸게 되기도 했는데, 화면을 보다 보면, 생각 보다 그리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다 보니 버튼을 난타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정도 흐름이 보이면, 커맨드를 선택하게 되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만, 더 쉽게 전투를 풀어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전투가 반복되다 보면, 어느 정도 패턴화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파티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략이 많이 달라지며, 리더를 누구로 하는가에 따라서도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게임을 오래 즐길 수 있다.
이번 작품은 코쿤과 펄스, 그리고 팔시와 루시에 대한 이야기다. 그야말로 고유명사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스토리 진행은 상당히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랄까. 특히나 팔시와 루시, 펄스의 루시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혼란스러울 때도 많다. 그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는 오토 클립 항목에서 세계관과 스토리에 대한 소개를 정리해주고 있다.
게임을 진행해나가다 보면 어느 샌가 오토 클립이 갱신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에 맞는 클립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저런 고유명사들 덕분에 내용 파악이 힘들 때는 클립에 있는 다양한 세계관 정보들을 복습하는 것도 좋다.
처음엔 코쿤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필드의 구조는 직선형에 가깝다. 전진하면서 나아가다 보면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식의 구성으로, 대체로 타이트하게 짜여진 공간이 많다. 완전 일자 진행이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FF 7이라던가, FF10에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FF10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데, 스토리의 흐름과 필드 이동 스타일 역시 FF10과 같은 스타일이 눈에 띈다.
단, FF10에 비해 FF13은 보다 타이트한 구조물이란 인상이 강한데, 코쿤이라는 특유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게임 후반에 펄스라고 부르는 하계로 나가게 되는데, 이 때는 상당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게임 내의 세계관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게임플레이 측면에서 볼 때엔 꽉 막힌 세계에서 탁 트인 세계로 옮겨온 기분을 받기 때문이다.
코쿤에서 펄스로 나왔을 때의 느낌은, FF3에서 부유 대륙을 벗어났을 때의 느낌이기도 하고, FF7에서 미드갈을 벗어났을 때의 느낌이기도 하다. FF10에서 나기 평원을 만났을 때의 느낌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할까. 실제 게임플레이 감각만 보면 FF10의 나기 평원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일자 진행이라고는 하지만 이런저런 인물들 사이의 이야기는, NDS로 최근에 나왔던 ‘FF 외전 빛의 4전사’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각 등장인물들이 다 모이는 시기가 의외로 늦다는 점. 그리고, 각각 따로 다니는 시기가 길다는 점 때문이었다. 빛의 4전사의 경우에는 4인 파티제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둘이서만 다닐 때가 많았는데, FF13 또한 2인1조로 다니는 경우가 많다.
옵티마 시스템이라던가, 파티 멤버 변경 같은 본격적인 시스템은 한참 뒤에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초반에는 각 등장인물들의 존재의미와 당위성을 파악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즐기고, 모두 모인 후에는 전투 시스템을 즐기면 되는 셈이랄까. 몬스터 토벌 시스템인 미션 같은 경우는 펄스로 나온 이후에야 처음 접하게 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무기나 액세서리는 업그레이드가 가능한데, 소재들이 워낙 다양하고 그 결과가 모호하여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싶을 때도 많다.
FF13의 음악을 하마우즈 마사시가 전담한 것도 이례적이다. FF12의 경우에는 메인 디렉터였던 마츠노 야스미의 영향 때문에 사키모토 히토시가 음악을 전담했다면,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스퀘어 사운드의 주축 멤버인 하마우즈 마사시가 담당하고 있다. 하마우즈 마사시는 사가 프론티어 2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준 바 있는데, 이후 FF10의 음악에 서브로 합류하면서 스펙트럼이 다양해졌고, FF10 이후에 담당했던 타이틀인 언리미티드 사가의 경우에는 보다 확실한 흡인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퀘어의 사운드 스탭이라고 하면 FF의 우에마츠 노부오라던가 로맨싱사가의 이토 겐지, 패러사이트이브, 킹덤하츠의 시모무라 요코, 크로노트리거의 미츠다 야스노리가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4인방 모두 각자 자기 회사를 차리거나 하면서 독립을 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하마우즈 마사시가 어느 새 원로가 되어버렸는데, 덕분에 FF13을 전담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FF12의 경우에는 게임 내 거의 모든 곡을 사키모토 히토시가 담당했지만, 주제가는 우에마츠 노부오가 만들었었다. 그런데, FF13은 주제가도 하마우즈 마사시가 담당하여 정규 FF 타이틀로는 처음으로 우에마츠 노부오가 완전히 빠진 타이틀이 되었다.
FF의 중심에 있던 사카구치 히로노부와 우에마츠 노부오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 FF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이 게임 초반에는 음악이 귀에 잘 안 들어오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메인 테마가 강하게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전투 음악의 경우에는 하마우즈 마사시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현악 진행이 돋보인다.
당초에는 우려도 많았지만, 아주 멋진 비주얼을 보여주는데 성공하였고, 스토리라인 역시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다. 전투 시스템 역시 체험판에 비해 확연히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에 인스톨 하지 않는 블루레이 디스크 게임이지만, 별다른 로딩 딜레이 없이 쾌적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한 점도 좋았다.
한 마디로 이번에도 역시 Final Fantasy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게임이었다. 다만, 시스템 지향적인 FF로서의 포인트가 생각 보다 제법 후반부에 등장한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