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18~19세기 사이는 역사와 전쟁을 좋아하는 이들뿐 아니라 이를 소재로 하는 게임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초음속 전투기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 고성능의 장갑차 등이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전투를 펼치는 현대전과는 다른 느린 템포를 갖고 있지만 그 전의 육탄전 위주의 대형 전투와 소총과 포, 함선 등이 섞인 과도기적인 면이 이 시기의 매력인 만큼 이 내용을 게임으로 담는 것 역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어 왔다.
큼직한 게임으로 그 첫 시도가 20여년 전 코에이가 내놓은 ‘나폴레옹’이 열었다면 토탈 워 시리즈가 바로 그 나폴레옹의 숨가빴던 전쟁들을 모니터 안에 가장 섬세하게 옮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쇼군 토탈 워를 시작으로 유럽 중세 시대의 미디블 토탈 워, 로마 토탈 워 등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주제로 삼아온 이 시리즈의 다음은 나폴레옹이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폴레옹 : 토탈 워의 주요 시나리오는 이탈리아, 이집트, 유럽의 세 곳을 배경으로 한다. 이것은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 강력한 라이벌인 영국을 의식해 이집트를 정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럽 전체 정복에 나서는 나폴레옹의 전성기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런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게임들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마니아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는 요소다.
‘나폴레옹 : 토탈 워’는 전략 시뮬레이션이다. 스타크래프트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형태와 삼국지 같은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매력이다. 정치 외교 화면은 한번에 정해진 만큼 움직이고 정해진 만큼만 일을 할 수 있는 턴 방식의 진행이지만 전투 화면은 생동감 넘치는 실시간 전투로 이뤄지는 것이다.
토탈 워 시리즈를 해 왔다면 기존 시스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전작인 엠파이어 토탈 워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 중 지형에 따라 병사들이 이탈하거나 보급을 받는 등의 효과를 비롯해 스파이와 제독, 장군 등의 캐릭터를 도입해 정치적인 면에서 더 다양한 전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DVD 2장으로 되어 있는 ‘나폴레옹 : 토탈 워’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사실을 기반으로 한 방대한 스케일이다. 몇 백 명, 몇 십 기의 유닛으로 싸우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병사 몇 만 명이 하나의 유닛처럼 뭉쳐 있는 삼국지 류의 전략 시뮬레이션과는 차원이 다르다. 몇 만 명의 병사와 기병, 포병 등의 유닛 하나하나가 저마다 역할을 갖고 움직인다. 물론 부대 단위로 명령은 내리지만 이동이나 전투 등의 세밀한 움직임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임무를 펼친다. 확대와 축소를 통해 병사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까지 볼 수 있는 점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다. 전작인 엠파이어 : 토탈 워에 비해 배경이 되는 공간은 약간 줄었지만 그 세부 내용들은 오히여 더 충실해져 유명한 전투들과 그 배경에 빠져들기 충분하다.
소총을 앞세운 병사들 사이로 기마병이 헤집고 그 뒤를 포병이 백업하는 육상전 외에도 이 시기를 빛내게 했던 큼직한 군함들을 앞세운 해상전도 지난 시리즈부터 이어져 온 토탈 워 시리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크고 강한 배가 좋은 것이 아니라 전술에 따라 돛을 여러 단계로 접었다 펴면서 다양한 기동과 상황에 알맞은 공격을 펼치는 세밀함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마치 내가 나폴레옹이 된 것 같은 생생한 긴박감을 만들어 낸다. ‘한 턴만 더!’라고 되뇌며 밤을 하얗게 지새는 건 다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큰 스케일만큼이나 PC에 대한 준비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일단 DVD 2장을 PC에 설치하는 데에만 1시간 가량 걸리고 하드디스크도 20GB나 차지한다. 스팀(steam)을 통해 제품 인증을 받는 방식으로 온라인게임처럼 스팀 계정에 로그인만 하면 PC와 노트북 등 두 대의 PC를 번갈아 즐길 수 있다.
나폴레옹 : 토탈 워는 3D 게임인 만큼 그래픽카드의 성능도 좋아야 하지만 CPU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워낙 많은 병사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행동들을 모두 CPU가 연산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멀티 코어를 강조하는 CPU 제조사들이 나폴레옹 : 토탈 워를 대상으로 멀티 코어의 우수성을 알릴 만큼 멀티 코어는 이 게임을 셀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이 실감나게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 요소다.
멀티 게임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게임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비롯해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등의 국가들을 지휘해 최대 8명까지 한번에 전투를 할 수 있다. 특히 스토리를 이어가는 캠페인 중에도 상대방의 게임 난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점은 이 게임의 묵직함 속에 재미를 심는 요소다. 마치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의 스토리 모드를 즐기는 동안 누군가 동전을 넣고 도전해 오는 것과 같은 시스템이다.
2000년 일본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시작한 토탈 워 시리즈는 세계사 책에 등장하는 고대, 로마시대, 중세를 거쳐 나폴레옹 시대를 마지막으로 그 대단원을 장식할 것으로 전해진다. 10여년 간 즐겨 온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지만 비행기와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현대전을 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혹시나 마지막 총포전으로 남은 미국 남북 전쟁이 다음 시리즈로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잘 만들어진 게임 하나에 빠져보고자 한다.
미디어잇 최호섭 기자 notebook@it.co.kr 상품전문 뉴스 채널 <미디어잇(www.i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