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전문직 종사자 U씨는 올 3월에 신형 5시리즈를 계약했다. 실물은 보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528의 경우 빨리 계약해야 5월에 차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얼른 계약금을 냈다. 그 동안 타온 10살짜리 국산 중형차가 부쩍 불안한 증세를 보이고 있는 터라 마음이 급했다.
(시승기는 U씨의 입장으로 빙의해 적어본다.)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새거’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은 신형 5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게 됐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그러길 잘한 것 같다. 막상 실물을 보니 의외로 마음에 들어서다. 보닛과 측면의 탄탄한 근육질 굴곡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는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뜯어 볼수록 조형미를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딜러 초대로 사전공개 행사에 참석해 ‘황금비율’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로는 더욱 그럴듯해 보이는 것 같다.
523에서 눈에 확 띄게 빠진 옵션이라고는 자동 주차장치뿐인 듯 했다. 그런데 이것은 535에도 들어가지 않는 528만의 사양이다. 528의 고객층이 워낙 폭넓기 때문에 특별히 넣은 것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장치의 도움을 받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에 차라리 빼버리고 싶을 정도다. 아무튼, 그 밖의 차이로는 528이 3.0리터, 523이 2.5리터 엔진이라 상대적으로 출력이 약하다는 것 정도인데, 일상적으로 타고 다니는데 있어서 523이라고 힘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변속기도 똑같이 자동 8단이다. 그런데 가격은 523이 410만원 싸게 나왔다. 큰 차이는 아니더라도 연비든 세금이든 유지비 역시 523이 유리할 것이다.
시승차는 하필 ‘스페이스 그레이’ 컬러였다. 차를 빨리 받으려면 검정, 흰색, 은색 중에 골라야 한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바로 그 색. 국내 초도 물량에는 빠져있기 때문에 몇 달을 더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던 그 색! BMW가 신형 5시리즈의 홍보에 적극 내세우고 있는 색상인데도 정작 (우리나라) 시장에는 제때에 공급이 안 된다니 이해 못할 노릇이다. ‘우주회색’으로 빛나는 시승차의 멋진 자태를 보고 있자니, ‘그럼……………은색이요.’라고 주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생각나 속이 쓰렸다.
도어를 열어보니, 어이쿠, 실내 색상도 하필 베이지다. 초도 물량은 죄다 검정색이라고 해서 역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부분이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가는 또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단다. ‘베이지는 금방 때가 타는데다가 잘 지워지지도 않아서 못써요’라는 경험자들의 얘기에 억지로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이놈의 시승차, 실내가 왜이리 넓고 화사하게 보이는 게야… 검정색은 안 이럴 텐데…아흑
그런데, 팔걸이를 열어보니 AUX와 USB단자가 있을 뿐, 사진에서 봤던 도킹장치가 없다. 아…옵션인건가? 하긴 아이폰을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장치니까 그럴만하다. 아쉬운 대로 블루투스라도 잡아보려고 했는데, i드라이브의 TEL 버튼은 먹통이고 블루투스 관련 메뉴도 찾을 수 없었다. (i드라이브의 메뉴를 뒤지는 일은 아무래도 낯설어서 지인에게 맡겼다.) 이거 설마하니 블루투스가 지원되지 않는 것인가? 그랬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블루투스 연결기능은 528에는 있지만 523에는 빠져있었다. 역시 528로 하길...
동호회에서 이슈가 된 것 중 하나는 (의외로) 오디오에 CD가 몇 장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CD는 한 장만 들어간다. 어차피 내장된 하드디스크에 음악을 저장할 수 있으니 거추장스러운 CD체인져 메커니즘은 불필요해 보인다. 스피커도 523, 528 모두 6개뿐이지만 음악애호가가 아닌지라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물론 535에 달린 로직7을 거저 준다면 마다할 리 없겠지만 말이다.
전동 조절 시트는 메모리 기능이 있고 운전대도 전동 조절과 이지액세스를 지원한다. 헤드레스트 높이까지 전동으로 조절되는데, 요추받침 조절 기능만은 아예 빠져있어서 의아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대로도 편하지만,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헤드레스트는 수동으로 앞뒤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 방석부분은 앞뒤 높이를 따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높이를 조절한 뒤 레버를 비틀어 각도를 조절하는 방식인 것이 특이했다.
뒷자리가 좁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것도 확인해봤다 편한 운전자세를 잡을 수 있게 운전석 위치를 맞춘 다음, 그 뒷자리에 가서 앉아 봤는데, 왠걸? 공간은 충분하게 느껴졌다. 시트 등받이가 파여있어 무릎 공간이 좁지 않고, 머리 위로도 여유가 한참이다. 어차피 뒷좌석에는 사람 태울 일이 많지 않지만 이 정도라면 필요한 때에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U씨의 키는 185cm에 조금 못 미친다.) 트렁크도 마찬가지다. 골프백 4개를 실으려면 3개를 세로로 넣은 뒤 하나는 가로로 얹어야 한다니 조금 안쓰러운데, 어차피 그렇게 싣고 다닐 일은 없다. 이 정도 용량과 형상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시동키는 반-스마트키다. 밖에서 문을 잠그거나 해제할 때는 키를 꺼내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시동을 걸 때는 꽂을 필요 없이 시동버튼만 누르면 된다. 키 자체에 개인설정을 저장할 수 있는 걸 보면 분명 똑똑한 키이긴 한데, 우리나라 고객들이 바라는 스마트키는 이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어쨌거나 컵홀더에 키를 꽂아둘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스마트키로 인한 여러가지 실수를 예방하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남다르게 생긴 기어레버도 시간을 두고 친해져야 할 것 같다. 기분 좋은 낯섦이다. ‘조이’스틱처럼 생긴 -그리고 전자식으로 작동하는- 기어레버라니, 달리는 ‘즐거움’을 강조해온 BMW답다.
가속페달은 예상보다 깊이 밟아야 원하는 정도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나치게 민감해서 신경이 곤두서게 하는 것보다는 마음 편하게 조작할 수 있어서 좋다. 이번에 전동식으로 바뀌었다는 파워스티어링도 예상보다 가볍고 아주 자연스럽다. 독일차는 운전대가 죄다 무거운 줄 알았다. 유턴도 한번에 쉽게 돌아낸다. 짧은 오버행 탓에 회전반경이 더 짧게 느껴지는 듯 했다.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은 굳이 추가할 필요가 없겠다.
무엇보다도, 523 정도면 황송할 정도로 잘 달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타는 차로 친구들을 가득 태우고 산길을 오르다가 심각할 정도의 힘 부족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새로 구입할 차의 기본 조건 중 하나는 ‘필요 충분한 힘’이었다. 물론 528이 더 좋긴 하겠지만 523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하기야 제원상 0-100km/h 가속이 8.5초이니 평범한 운전자 입장에서 더 바랄 나위가 있을까. "고속에서는 아무래도 힘이 쳐지고 안정감도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만 200km/h는 무난하게 찍더라구요"하는 지인의 체험담을 듣는둥 마는둥, 가속페달을 콱 밟았을 때 들리는 아아아앙~하는 엔진 소리에 빠져들고 말았다.
주차브레이크는 전동식이고 오토홀드까지 제공한다. 막힐 때, 신호대기 할 때 너무너무 편리한 기능이다. 덤으로 언덕길에서는 밀림 방지까지 된다. 523에도 기본인 HUD가 운전할 때 신경 쓰인 다는 이들도 있던데, 막상 써보니 편리하기만 했다. 높이나 밝기 조절도 되고, 정 필요 없으면 꺼버릴 수도 있다. 현재 속도뿐 아니라 각종 경고나 내비게이션 안내까지 보여주니 안전운전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겠다. 화질 좋은 10.2인치 화면도 그렇지만, 본사에서 개발해 다른 기능들과의 연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한글내비게이션은 경쟁사들과 뚜렷이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솔직히, 몇 백 만원 아끼겠다고 528대신 523을 선택했다가 어디 가서 무시당하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몇 백만 원은 분명 아까운 돈이다. 528 대비 저렴한 523의 유지비는 말할 것도 없다. (공인 연비만 봐도 528은 10.9km/L, 523은 11.3km/L이다.)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 물론 지금 타는 차가 퍼지기 전에 새 차를 받을 수만 있다면- 고민 없이 523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블루투스와 후방카메라와 조금 더 짙은 우드 그레인, 그리고 잉여의 출력이 주어졌음에 위안을 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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