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늘 변화를 부르짖는다. 자동차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첨단, 프리미엄, 럭셔리를 운운하는 신차들이 줄 지어 선보여지고 있다. 디자인은 날로 갈수록 공기저항계수에 목 메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실내에는 정체 모를 첨단 기기들이 더해져 운전자에게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이 흐름이 반복되다보니 문득 '아날로그' 를 원하는 수요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됐다. 그런 점에서 쉐보레 캡티바는 자동차 시장에서 '아날로그' 범주에 묶어둘 수 있는 흔치 않은 차다.
쉐보레 캡티바는 GM대우 윈스톰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명목을 유지해 온 한국GM의 중형 SUV다. 경쟁 차종은 세대를 거듭하는 변화를 이룩했지만, 쉐보레 캡티바는 변화의 폭이 그리 넓진 않았다. 쉐보레 패밀리룩을 이어 받은 캡티바로 변경된 이후 파워트레인과 상품성을 보완하는 변화를 연식 변경을 통해 꾸준히 이어왔다. 끝물 중의 끝물이라 말할 수 있는 쉐보레 캡티바, 올 해에도 연식 변경 모델을 선보였다. 눈에 띄는 변화보다는 상품성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2014 쉐보레 캡티바는 크롬 도금 안개등을 2번째 하위 그레이드인 2.0 LT부터 기본 적용하고, 최근 추세에 맞는 다크 버건디(시승차 색상), 에스프레소 브라운 색상을 새로 더했다. 한편, 늘어나는 4륜구동 수요를 끌어오기 위해 스마트라 명명된 트림을 새롭게 더해 동급 & 동배기량 차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가격 책정(3,166만원, 경쟁 차종은 전부 선택 가능)을 이루기도 했다. 늘 그래왔듯 변화의 폭은 많지 않다. 정말 한결 같은 차, 2014 쉐보레 캡티바의 시승 소감을 풀어본다.
2014 쉐보레 캡티바의 파워트레인은 전년 모델과 동일하다. 2.0리터, 2.2리터 터보 디젤 엔진과 Gen2 6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된다. 기존 6단 자동변속기는 Gen2로 변경된 이후 변속 속도 및 체감 가속 성능이 향상되었고, 연비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개선된 바 있다.
시승차에 탑재된 2.0리터 터보 디젤 엔진은 163마력/3,800rpm, 40.8kg.m/1,750-2,250rpm의 성능을 발휘하며, 2.2리터 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이 21마력 높다는 차이가 있다. 변속기 라인업은 Gen2 6단 자동변속기만 준비되었으며, 한 때 판매됐었던 2.4리터 가솔린 모델과 2.2리터 디젤 모델에만 한정 탑재되던 수동변속기 트림도 삭제되었다. 판매량이 한 자리 수에 맴돈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동변속기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국GM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이 차는 그렇다 쳐도 RS엔 왜!
- 2014 캡티바의 실내에서는 이 차가 미국차임을 확실히 느끼게 만든다. 버스 것을 훔쳐온 것 같은 스티어링 휠, 투박한 디자인을 보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1. 쉐보레 캡티바를 탈 때마다 늘 묵직한 주행감에 감탄하게 된다. 경쟁 차종에 비해 세련된 느낌은 덜하지만, 이런 아날로그한 맛이 결코 나쁘지 않다. 투박해보이는 디자인과 빈 것 같은 실내 디자인 및 구성 영향도 있겠지만, 실은 기계를 움직이는 것 같은 묵직함은 캡티바가 유일하게 갖춰뒀다고 본다.
현재 동급 판매 1위인 현대 싼타페도 그렇고, 그 외 경쟁 차종들은 '도심형 SUV' 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다. 쉐보레 캡티바도 그 흐름을 따르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쉐보레 캡티바는 도심형 SUV를 선호하는 여성보다 마초적인 남성을 공략하는 쪽이 훨씬 쉬워보였기에.
2. 2.0리터 터보 디젤 엔진과 Gen2 6단 자동변속기는 호쾌한 가속감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 답답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시점 전후로 꾸준하게 밀어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급가속만 안 한다면, '답답함' 을 느낄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3. Gen2 6단 자동변속기는 변속 속도가 듀얼 클러치처럼 칼 같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자의 의도에 맞게 꽤 영리한 변속을 수행한다. 수동 변속 모드에 밀어두고 변속을 할 때 가급적 수동 변속 조작에 잘 따른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 기아자동차 변속기에 비해서 낫게 느껴졌다.
- 2013 캡티바에 새롭게 더해진 LED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는 출시 이후 크게 바뀌지 않은 후면부 분위기를 바꿔주는 착한 디테일이다.
4. 스포츠 드라이빙과는 거리가 있는 차량이지만, 생각보다 주행 한계가 높은 편이다. 작지 않은 크기, 그리고 가볍지 않은 1.9톤의 공차중량은 신기하게도 예상한 것보다 기민하게 움직인다. 롤은 상당히 크고, 하체는 올곧게 자세를 유지한다는 느낌은 없지만 움직임이 흐트러지진 않았다.
5. 경쟁 차종과 확연히 비교되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경쟁 상대인 현대 & 기아자동차의 경우 주행 한계가 낮기도 낮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하체가 자신의 수행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을 때 어찌할 줄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는 게 문제였다. 승용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무게 중심이 높은 SUV를 탔을 때에는 그 불안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쉐보레 캡티바는 자세가 흐트러질 지언정 움직임까지 예측 불가능하진 않았다. 요철을 넘어갈 때는 무르디 무른 것 같지만, 정작 선회 및 고속 주행 시에는 정반대로 꽤 안정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6. 2014 캡티바를 시승할 때 인제 스피디움을 다녀올 일이 있어 고속도로와 와인딩 로드를 각각 절반씩 경험해보면서 생각 이상의 추종성에 반했다. 같은 선상에 묶어둘 수는 없겠지만, 스바루 포레스터를 탔을 때 느꼈던 '충격' 을 다시금 회상해볼 수 있었다. 물론 그보단 '조금' 못했지만.
7. 버스 스티어링 휠을 연상시키는 지름이 큰 스티어링 휠은 캡티바의 큰 단점이라 생각한다. 쉐보레 서버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 적용되는 큰 지름의 스티어링 휠이 적용되는데, 이는 차급을 고려해 조금 크기를 줄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쉐보레 패밀리룩을 더한 쉐보레 올란도 스티어링 휠이 적합해 보인다.
지름이 큰 스티어링 휠은 손에서 겉돈다는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뜩이나 큰 조향 유격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속도가 높아질수록 가벼워지는 스티어링 휠 조향감도 좋게 보긴 어렵다. 캡티바가 내세울 수 있는 꽤 매력적인 하체에 비해서 스티어링이 잘 못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8. 브레이크는 다른 쉐보레 차량과 마찬가지로 밟을수록 제동력이 살아나는 타입이며, 제동 성능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수준이다.
날이 선 제동 성능을 자랑하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주구장창 밀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차급에 비해 딱 평균을 갖춘 셈이다.
9. 이번에 2014 캡티바를 시승할 때에는 연비와는 크게 담을 쌓은 주행을 계속 했었다. 고속도로 제한 속도를 자주 넘나들며, 도로 흐름에 맞게 주행을 한 결과 평균 13km/L를 기록해줬다. 번거로운 점은 한국GM이 쉐보레 캡티바를 선보인 이후, 아직까지 트립 컴퓨터와 순정 AVN이 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그래도 요즘 '신차' 라는 타이틀을 달고 판매되는 차들은 기본형을 제외하고, 평균 연비 및 주행가능거리를 확인할 수 있는 트립 컴퓨터가 계기판에 갖춰져 있다.
하지만 2014 캡티바는 연식 변경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정 AVN을 선택해야만 트립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평균 연비를 표시하는 단위도 '아날로그 시대' 에 나온 차량들처럼 km/L 단위 대신 L/100km로 표기되고 있다. 이 계기, 단위를 보다 보면 이 차가 신차인지 중고차인지 분간이 안 간다. 결과적으로, 2014 캡티바는 연식 변경을 거듭해왔지만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핵심 디테일은 바뀌지 않았다는 소리다. 로터리식 스마트키도 같은 예로 들 수 있겠다.
10. 2014 캡티바는 결정적으로 큰 변화를 이룩한 것 없이 오랫동안 한결 같은 모습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다른 차에서는 볼 수 없는 투박함이 매력인 차다.
객관적으로 같은 가격대의 사양을 비교한다면, 2014 캡티바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첨단, 고급을 운운하는 사양이 필요치 않고, 거기에 희소성까지 갖추길 원한다면 이 차가 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SUV를 생각했을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탱크' 같은 묵직한 주행감을 갖춰두고, 실연비도 동급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동급 평균에는 도달한다. 쉐보레를 타면서 이야기하게 되는 '기본기' 라는 철학을 가장 많이 되짚고, 기억해야 할 차로 생각한다.
2014 캡티바는 이성을 자극하기보다는 '감성' 을 자극하는 차다. 유려한 디자인으로 가득 찬 중형 SUV 시장에서 이렇게 각을 중시한 투박한 디자인을 갖춘 차는 현재로선 이 차가 유일하다. 차량 가격을 낮추고, 사양을 조절했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판매량의 변화가 크게 이뤄질 차가 아니란 소리다. 차라리 대외적으로 많이 노출되는 방법을 찾아 '투박함' 을 곳곳에 어필하는 게 중요해보인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한국GM은 기억에 남는 PPL을 해내진 못했던 것 같다.
Good : 경쟁 차종과 구별되는 투박한 디자인, 꽤 기민하게 변속되는 Gen2 6단 자동변속기, 예측할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이는 하체
Bad : 아무래도 버스 것을 훔쳐온 것 같은 지름 큰 스티어링 휠, 신차인지 중고차인지 분간 안 가게 만들어버리는 부족한 상품성
* 시승차 정보 및 가격 : 2014 쉐보레 캡티바 2.0 디젤 LT, 옵션 포함가 총 3,174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