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 수많은 관중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막 대중에게 소개되기 시작한 하이파이 장치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대체 무슨 기기이길래, 라이브 음향 못지 않은 사운드를 낸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 이 행사를 기획한 인물이 사기꾼이 아닐까? 이래저래 흥미진진한 순간이었다. 마치 19세기 말, 처음 영화가 대중에 공개되었을 때의 긴장감과 다름 없었다.
'Live VS. Recorded(라이브 대 녹음파일)'란 타이틀이 붙은 이 시청회는, 어디서 처음 들어보는 조그마한 스피커 회사가 기획을 했다. 물론 이 이벤트는, 전체적으로는 1951년부터 영국 정부가 주관한 “페스티발 오브 브리테인”(Festival of Britain)의 일환이었다. 여기서 페스티벌 오브 브레테인은 일종의 영국 산업의 쇼 케이스로, 건축이나 과학, 인더스트리 등 다양한 부분에 걸쳐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자리였다. 매년 그 행사가 이뤄진 가운데, 1954년에 그 틈을 비집고, 이 희한한 리스닝 세션이 벌어진 것이다.
일단 무대에 작은 공연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것을 녹음해서 오디오로 재생하는 것이다. 즉, 라이브와 레코딩의 비교 청취인 셈이다.
당시 동원된 쿼드 앰프는 출력이 고작 60W 정도. 요즘 같으면 5,000W 정도를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무지 말도 안되는 출력이 아닌가. 그리고 스피커는 바로 이번에 만나는 와피데일(Wharfedale). 말하자면 홈 오디오 정도의 시스템으로 이 넓은 홀에서 실황 연주와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한데 기적이 일어났다. 직접 음을 들은 관객들이 크게 환호성을 내지른 것이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라이브의 박력이나 리얼리티와 비교하자면 좀 모자랐겠지만, 그래도 꽤 들어줄 만한 음이 나왔을 것이다.
아무튼 이 행사의 중요성은, 비로소 하이파이 제품이 자격증을 획득했다고나 할까? 즉, 굳이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가정에서 오디오로 얼마든지 음악을 만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것이다. 이 이벤트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 하면, 4일짜리로 예정된 쇼가 모두 매진되었고 나중에 뉴욕에 건너가 카네기 홀에서 같은 행사가 벌어졌다. 심지어 이후 영국과 미국 여러 도시를 순회 공연할 정도가 되었다.
바로 이 행사를 연출한 인물이 길버트 브릭스(Gilbert Briggs)라는 분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오디오의 역사와 기술에 대해 연구한다면, 특히 스피커 분야에서 필히 만나야 할 사람이다.
그가 1947년에 쓴 “Loudspekaers : The Why and How of Good Reproduction”은, 이후 “Sound Reproduction”으로 개정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심지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감상평을 보낸 편지만 1만 통이 넘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이후, 서서히 기지개를 펴던 오디오 산업의 맹아 시절, 브릭스씨는 확실히 대중에게 어필하는 여러 공적을 이룩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당시의 영국 오디오 제작자들은 가히 전설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가이 R. 파운틴, 레이몬드 쿠크, 피터 워커 ... 일일이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10명 이상이 등장하며, 그들이 쌓은 업적은 후대의 오디오 테크놀로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중 한명이 바로 길버트 브릭스인 것이다. 심지어 그가 스피커와 오디오에 대해 쓴 책만 21권에 달한다.
한데 이 분이 오디오 산업에 뛰어든 계기가 재미있다. 원래는 직물쪽 관련 일을 했다. 2~30대 시절을 이 분야에서 보냈다. 그러나 대공황이 벌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이쪽 일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오디오, 특히 스피커 분야였다. 이미 클래식 음악광인데다가, 이런저런 오디오를 써본 경험이 바탕이 되어, 아예 스피커 제작자로 변신한 것이다. 그 때가 바로 1932년. 이후 1964년에 은퇴할 때까지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것이다.
오늘날 와피데일 하면, 아무래도 다이아몬드, 덴톤 시리즈를 연상한다. 이들 시리즈는 이미 1970~80년대에 큰 히트를 기록한 바 있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하이파이와 홈 씨어터를 두루두루 아우르기 때문에, 엔트리 클래스를 찾는 분들에겐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므로 와피데일 하면 그냥 대중적인 브랜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회사의 기술력과 명성을 종합한 에어데일(Airedale)의 존재를 무시하면 안되고, 최근에 그 찬란한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일종의 리플리카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처음에 나온 것이 에어데일 헤리티지와 네오다. 네오는 상급기를 좀 간략하게 만든 형태다. 물론 큰 화제가 되어 꾸준히 판매가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2016년 말에, 좀 더 개량과 혁신을 더한 제품이 나왔으니 바로 이번에 만날 에어데일 클래식 헤리티지(Airedale Classic Heritage)인 것이다.
일단 외관을 보면, 저 좋았던 빈티지 오디오 시대의 향기와 멋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특히, 영국의 탄노이, 바이타복스 등 유서 깊은 회사들이 내놓은 제품과 맥을 같이 하면서, 독자적인 음색과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쪽 분야에 관심이 높은 분들에게 크게 어필할 만하다.
물론 이런 대형기는 아무래도 쓰임새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커다란 리스닝 룸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운용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편성을 중심으로 편하게 즐기고자 한다면, 작은 공간에서도 별 무리가 없다.

일단 스펙을 보면 6오옴에 90dB라는 안정적인 감도를 보여준다. 대략 100W 내외의 인티 앰프로도 충분히 구동이 되고, 5극관을 쓴 진공관 인티도 무난하다. 그런 면에서 스피커가 크다고 겁부터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단, 내구성과 파워 핸들링이 높아, 400W 정도를 걸어 쾅쾅 틀면, 천지가 진동하는 음이 나온다. 대형기를 제대로, 엄청난 스케일로 즐길 수 있는 무시무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담당 주파수 대역을 보면, 25Hz~45KHz 사이를 커버한다. 저역으로 25Hz라고 하면, 정말 바닥이 쿵쿵거릴 만한 스펙이다. 또 45KHz는 일종의 수퍼 트위터를 달았다고 보면 된다.
본 기의 구성을 보면, 맨 위에서부터 4개의 유닛이 차례차례 밑으로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통상 4웨이 4스피커 구성이라 볼 수 있지만, 인클로저 상단에 앰비언트 트위터가 따로 하나 더 있어서, 결국 4웨이 5스피커의 내용을 갖고 있다. 여기서 앰비언트 트위터는 인클로저 상판에 부착되어 천장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즉, 천장에 반사된 음이 풍부하게 공간을 확보하면서, 보다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지점에서도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이어서 인클로저 전면에 수납된 드라이버를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훑어보자. 맨 위에 있는 트위터가 1인치 소프트 돔 방식으로 3.5KHz~9KHz까지 재생한다. 그 이상은 상판에 있는 수퍼 트위터의 몫.
한편 미드레인지는 3인치 구경으로, 700Hz~3.5KHz까지, 미드 베이스는 8인치 구경으로 180Hz~700Hz 사이, 마지막으로 380mm 구경의 우퍼가 25Hz~180Hz를 담당한다. 약간 복잡한 내용을 갖고 있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모두 알니코 자석을 채용했다는 점이다. 알니코는 일종의 천연 자석으로, 일관된 스펙을 갖고 채용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따라서 상당한 양을 준비해서 페어 매칭을 통해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오리지널기가 알니코 자석으로 만들어졌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하지 않을까?
여기에 수려한 인클로저는 기본적으로 25mm 두께의 강성이 높은 MDF로 만들어졌다. 적절한 통 울림을 이용하면서, 은은하고, 향기가 넘치는 음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단, 음이 번지거나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에 단단한 보강재를 설치했고, 저역의 경우 뒤로 빠지는 음을 좁은 통로를 통해 빼내서 앞의 개구부로 배출되도록 했다. 일종의 백 로드 혼이라 부를 수 있지만, 메이커에서는 굳이 이런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
아무튼 요즘 들어 스피커 하면, 작고, 성능이 우수한 쪽으로 치중하기 때문에, 이런 제품은 매우 드물다. 어떤 면에서는 쥬라기 공원처럼 새롭게 공룡을 재창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음을 들어보면, 오랜만에 고향에 온 듯,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고, 포근해진다. 마치 오랫동안 써온 스피커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또 자세히 들어보면 하이 스피드라던가 다이내믹스, 해상도 등 여러 요건들이 골고루 충족되고 있다. 즉, 겉모습은 좀 빈티지와 같지만, 그 내용은 현대 하이엔드의 음과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온고지신, 참 적절하게 신구의 강점을 잘 조화시켰다고 봐도 좋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앰프는 패스의 인티앰프 INT-150이고, CDP는 엑스포저의 2010이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야니네 얀센(바이올린)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중 행진> 정 명훈(지휘)
-조수미 <도나 도나>
-오스카 피터슨

Janine Jansen - Mendelssohn Violin Concerto
Riccardo Chailly
첫 곡으로 들은 멘델스존. 확실히 대형기라는 느낌이 확 와 닿는다. 스케일이 크면서, 공간을 음성 정보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귀를 기울여보면, 일체의 빅 마우스 현상이 없이, 정확한 크기의 음이 나온다. 반응이 빠르고, 다이내믹스가 훌륭해서, 눈을 감으면 실연을 듣는 느낌도 준다. 또 여러 드라이버가 투입되고, 광대역의 재생인데도 일체 흐트러짐이 없으며, 밸런스도 좋다. 특히, 고역에서 부드러우면서 광채가 나는 듯한 느낌이 좋다.

정명훈 -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rchestre de I'Opera Bastille
베를리오즈의 경우, 서서히 압박해오는 퍼커션의 임팩트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가운데, 휙휙 공간을 가르는 현악군의 움직임에 움찔하게 된다. 과연 넓은 공간 여기저기에 각종 현과 혼 악기들이 출몰하는데, 일종의 홀로그램 효과도 감지된다. 또 투티에서 강력하게 밀어부칠 때엔 대형기만이 낼 수 있는 스케일에 탄복하게 된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하다. 이런 음을 듣고 나면,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정도.

Sumi Jo - Dona Dona
missing you
반면 조 수미를 들으면, 작고 아담한 편성에서도 각별한 맛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부드러운 나일론 줄의 어쿠스틱 기타, 환각적인 클라리넷, 툭툭 던지는 더블 베이스 등, 악기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이 살아있고, 이를 배경으로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보컬의 매력은 함초롱하기까지 하다. 소편성이라고는 해도, 적절하게 공간을 장악하고 있으며, 별로 빈 틈이 없다. 또 보컬의 개성이나 여러 다양한 부대음이 사실적으로 나오는데, 이조차 음악적으로 들린다.
Oscar Peterson Trio - You look good to me
We Get Requests
마지막으로 오스카 피터슨. 처음에 활로 더블 베이스를 길게 긋는 대목에서, 과연 깊은 저역이 뭔지 실감하게 된다. 이윽고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리듬을 따라 질주하는데, 절로 발 장단이 나올 정도. 왼편의 드럼은, 브러쉬로 긁는 스네어의 질감이 확실하게 포착이 되고, 심벌즈 타격 시의 임팩트도 제대로 묘사된다. 한편 피아노의 경우, 처음에는 밝고 명랑하게 시작하다가 점차 리듬을 타고 빨라지면서 열기가 넘치는 솔로로 전개되는데, 그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포착된다. 모던 재즈 특유의 어씨한 느낌이라던가, 찰진 음이 잘 살아있으면서도 일정한 격조도 유지하고 있다. 요즘에도 왜 이런 스타일의 스피커가 필요한지 웅변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 종학 (Johnny Lee)
Specifi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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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 driver |
380mm Alnico |
Bass/Mid |
200mm Alnico |
Mid-range |
75mm soft dome |
Tweeter |
25mm soft dome alnico |
Super tweeter |
25mm soft dome |
Frequency Response | +/- 3dB 25Hz – 45kHz |
SPL 1W@1m | 90dB |
Nominal impedance | 6 ohm |
Impedance variation | 4.0 – 17.0 ohms |
Dimensions H x W x D (mm) | 1215 x 688 x 514 |
Wharfedale Airedale Spea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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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사 |
사운드솔루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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