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닛산 리프가 나왔을 때도,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나왔을 때도, BMW i3가 나왔을 때도, 심지어 테슬라가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렸을 때도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쉐보레 볼트 EV를 보고 정말 전기차 시대가 왔다고 실감했다. 테슬라를 제외한다면 경쟁자들 보다 두배 이상의 주행거리를 자랑함은 물론이고, 그럼에도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한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다.
봄기운이 완연했던 어느 날, 일산 킨텍스에서 파주 헤이리를 오가는 왕복 70여km 구간에서 쉐보레 볼트 EV를 시승했다.
■ 전기차지만 익숙한 디자인..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디자인
볼트 EV의 디자인은 눈에 띄는 디자인은 아니다. 조금 껑충한 해치백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주 짧게 설정된 보닛과 낮게 누운 A필러, 플로팅 타입의 루프와 점점 좁아지는 형상의 윈도우 라인 등 재밌는 디자인 포인트가 가득하다. 이는 전기차 특성상 내연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의 자유도가 더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차체 일부가 알루미늄으로 설계된 탓에 디자인 적 측면으로는 큰 도전이었다는 게 한국지엠 디자이너들의 전언이다. 알루미늄은 일반 스틸 재질과 휘는 값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초 아키텍쳐를 설계할 당시엔 실내 공간 설계가 선행됐다. 때문에 휠 베이스는 넓게 설정됐다. 볼트 EV는 소형차로 설계 돼 전장은 아이오닉 일렉트릭보다 305mm짧은 4165mm의 차체 사이즈를 지녔다.
휠베이스는 2600mm로 아이오닉보다 100mm 짧은 수준이다. 다만 전고는 아이오닉보다 160mm 높은 1610mm로 설계돼 거주성을 높인 점이 특징이다.
후면부는 아이코닉한 느낌의 테일램프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입체감이 강조된 LED 테일램프 형상과 블랙 톤의 후면부 디자인이 더해져 독특한 인상을 보여준다.

■ 익숙함 속 낮설음..쉐보레 인테리어 디자인의 미래 제시
실내 디자인은 익숙함과 파격 그 어딘가를 오간다. 쉐보레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인 듀얼콕핏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있지만, 부분 부분 새롭게 디자인된 부분들이 눈에 띈다.
특히 전자식 기어노브는 쉐보레 차에서 접하기 힘든 아이템 중 하나다. 여느 수입차들이나 국산 고급 세단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사양인데, 전자식 기어노브가 익숙치않은 국내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을 위해 영업 일선에서 충분한 가이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풀 LCD 타입의 컬러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클러스터 역시 인상적이다. 전기차 답게 회전계 대신 배터리의 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게이지를, 유온 게이지와 연료 게이지 대신 배터리의 충전 잔량을 확인할 수 있는 눈금이 위치해있다.
10.2인치 컬러 디스플레이는 시원시원하다. 수직으로 곧게 서있는 대신 약간 누워있는 형상이어서 시인성도 탁월하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자량의 에너지 흐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애플 카플레이, 스마트폰 미러링크 등 최근 트렌드에 따라 커넥티비티 기술도 보다 강화됐다. 다만 내비게이션이 부재하기 때문에 애플 지도 혹은 내비게이션 어플을 활용해야 하는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2열 공간 거주성은 만족스럽다. 배터리가 수평으로 배치된 탓에 바닥도 평평하게 설계할 수 있었다는 게 한국지엠 측의 설명이다. 1열 시트도 보다 얇게 설계돼 2열 거주성에 일조한다.
■ 듣도보도못한 주행성능..쉐보레 특유의 기본기는 여전
시동을 걸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전기로만 구동되는 탓에 시동이 걸렸는지도 알아채지 못하거니와, 있지도 않은 스타팅 모터의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볼트 EV는 150kW급의 전기모터와 60kWh급의 배터리를 장착, 최고출력 204마력에 36.7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소형차에 속하는 체급이지만, 출력은 3리터급의 6기통 세단과 맞먹는 출력이다.

엑셀을 밟아도 어느 정도 밟았는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인다. 미끄러져 나간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일산 시내 구간을 빠져나와 자유로에 올라서서 엑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아봤다. 최고 출력은 150kW에 달하지만 순간 160kW를 상회하는 최고 출력이 뿜어져 나오며 시트 안쪽으로 몸이 쭉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여타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라면 거친 엔진소리가 귀를 두드릴만도 하지만, 그 흔한 풍절음도 들리지 않은 채, 볼트 EV는 침묵 속에서 속도를 올려나간다. 동승한 기자와 함께 ‘으아악’ 하며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만 들릴 뿐이다.
제동은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회생제동을 이용하는 걸 적극적으로 권한다. 볼트 EV는 스티어링 휠 좌측 후면에 에너지 재생 페달과 기어노브의 L 모드를 활용해 제동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얻어진 제동에너지는 온전히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에 활용되는데, 두가지 모드를 적극 활용한다면 만족스러운 제동력과 배터리 효율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습관적으로 브레이크 폐달을 밟을 수도 있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때엔 브레이크 위에 무언가가 얹혀져 있는 듯한 이질감이 꽤 불편하다.

움직임은 쉐보레 특유의 탄탄한 기본기 그대로다. 스티어링의 응답성은 산뜻하고 움직임은 제법 기민하다. 오히려 주행 성능에 있어선 아이오닉 일렉트릭이나 BMW i3보다 한수 위라는 생각이다.
다만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구름 저항이 적은 타이어가 적용된 탓에 타이어의 그립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커브길에서 조금이라도 격한 코너링을 전개하면 ‘끼이익’하는 타이어 울음소리가 귀를 때린다. 무엇보다 엔진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에 타이어의 울부짖는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한때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는 언덕을 잘 오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옛날 이야기로 전해질 지도 모르겠다. 30kg.m에 육박하는 강력한 토크는 정지 상태에서 10% 이상의 경사각을 가진 언덕에서도 든든한 등판 능력을 선사한다.
■ 전기차 대중화의 방향성 제시한 볼트 EV
많은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전기차에 대한 걱정은 뭘까, 인프라는 점차 확충되고 있는 추세지만 당장엔 내연기관 엔진 자동차와 동일한 수준의 주행가능거리일 것이다.

볼트 EV는 이런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 100km 남짓을 주행하는 여타 전기차와 달리 볼트 EV는 주행거리 383km를 인증 받았다. 한국지엠은 이보다 더 높은 500km대의 주행도 성공하며 전기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점은 한국지엠 관계자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다. 볼트 EV는 저속에서 효율적으로 주행할 경우 기존 주행거리의 두배 이상 멀리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넉넉한 공간 활용성과 편의사양, 첨단 안전시스템 등 주행거리를 위해 어느 하나 희생하지 않은 점도 칭찬할 만 하다.
다만 물량은 올해보다 대폭 확대됐으면 한다. 볼트 EV는 사전계약 첫날 완판된 탓에 지금 사고싶어도 사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다. 계약도 받고 있지 않다.
이쯤 되면 전기차 시장의 게임체인저, 혹은 그 이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사회 양상과 가장 잘 맞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볼트 EV는 전기차 패러다임의 정권교체를 해낼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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