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텀 리뷰를 하고 싶습니다. 사진 촬영부터 포토샵에 테스트까지 마치고 글 쓰기까지 일주일이 채 안 걸리는 그런 거 말고요. 몇 달씩 두고두고 써 가며 스펙에 없었던 의외의 특징을 찾아가는 리뷰를 쓰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만족스러웠어도 나중에 평가가 갈리는 제품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되는 이유야 사용 습관이 바뀌거나 트렌드의 변화까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내구성입니다. 첫 인상이 아무리 좋았어도 생각보다 빠르게 고장이 나거나, 생각 이상으로 자주 고장이 나거나,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고장이 난다면 평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작년 5월, 하뉴님한테 마우스 3개를 받았습니다. https://gigglehd.com/gg/2681540 원래 돈 주고 사려고 했던 스틸시리즈 라이벌 500 https://gigglehd.com/gg/2916024 은 당당히 데스크탑 메인 컴퓨터를 차지하고 만족스럽게 썼고, 허세 충만한 커세어 게이밍 시미타 프로 RGB https://gigglehd.com/gg/3879801 는 괴상하게 생긴 마우스 쓴다는 티를 내는 허세용으로노트북 가방에 넣었습니다. 하드웨어 프로파일 기능이 증발하고 소프트웨어 설정이 짜증나지만, 추가 버튼이 왼쪽에 가득 몰린 마우스도 의외로 쓸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가 남았네요. 첫 인상이 워낙 칙칙하고 음침하고 음험하고 음습한데다, 레이저란 브랜드가 예전부터 썩 내키지 않아 우선 순위가 자연스레 밀렸습니다.
그러나 스틸시리즈 라이벌 500의 편애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휠 버튼이 사용 8개월 차부터 삐걱대서 DPI 변경 버튼에 휠 버튼을 맵핑해놓고 썼지만, 1년이 채 안 된 지금은 틸트 기능까지 망가졌습니다. 처음부터 돈 주고 사려 마음 먹었던 마우스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내구성이 1년도 안 되는 줄 알았으면 칭찬을 조금 덜어냈을 겁니다. 마우스 A/S를 보낸다 해도 그 동안 쓸 물건이 필요하니 1년 가까이 박스 안에서 숙성시킨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를 이제야 꺼냈습니다. 며칠 써 보니 의외네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앞서 소개한 두 마우스보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래서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까지 말고 뭐든 적당히 해야 합니다. 나중에 평가가 바뀔지 누가 어떻게 아나요?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도 그리 될지 모르겠지만요.
제품명 | Razer Naga Trinity |
디자인 | 오른손잡이 |
버튼 수 | 최대 19개 |
연결 | USB 유선 |
센서 | PMW3389 |
해상도 | 최고 16000DPI |
가속도 | 50G |
폴링 레이트 | 1000Hz |
LED | 1680만 컬러 RGB, 3구역 |
크기 | 119x74x43mm |
무게 | 120g |
소프트웨어 | 레이저 시냅스 3 |
케이블 길이 | 2m 되는듯? |
기타 | 측면 버튼 교체 |
참고 링크 | http://prod.danawa.com/info/?pcode=5831688 |
가격 | 129,000원(2018년 5월 구입 당시 다나와 최저가. 2019년 4월도 똑같음) |
하드웨어: 못 생겼지만 편하다
고시원 방마냥 다닥다닥 버튼이 많이 달린 마우스를 왜 고집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는 건 시간 낭비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관심법을 발휘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전에 올린 스틸시리즈 라이벌 500 마우스 https://gigglehd.com/gg/2916024 의 소개를 다시 봐 주세요. 클릭하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웹서핑에 필요한 각종 기능을 마우스 추가 버튼에 할당하고 쓰는 게 버릇이 되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우스 왼쪽에 버튼이 잔뜩 몰려, 엄지손가락을 혹사시키는 마우스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도 거부감이 심했지만, 커세어 게이밍 시미타 프로 RGB https://gigglehd.com/gg/3879801 를 써 보니 의외로 쓸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 차례군요.
디자인은 못생겼습니다. 레이저는 검은색의 이 칙칙한 마우스에 1989년 배트맨의 배트모빌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담으려 하지 않았나 싶은데, 결과적으로는 애매한 곡선과 어중간한 윤곽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몹시 실용적이며 또 인체공학적입니다. 스틸시리즈 마우스가 인체공학이라는 걸 모른다는 단호함을 투박하게 표현하고, 커세어가 일단 그럴싸하게 보이는 허세에 최적화했다면 레이저는 은근히 손에 잘 달라붙는 디자인을 빚어냈습니다. 다른 두 마우스에 손을 올리면 이물감을 한 가득 느끼며 조작하는데, 이건 손가락과 손바닥 안에 부드럽고 긴밀하게 달라 붙습니다. 손이 정말 편해졌음을 느끼네요.
크기는 큽니다. 다른 두 마우스가 더 커서 별로 크게 와닿지 않을 뿐이죠. 마우스 시장 전체를 돌아보면 이보다 더 큰 마우스보다는 작은 마우스의 수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19개의 버튼을 편하게 누르기 위해선 최소 이 정도의 크기는 필요하다 봅니다. 그리고 손 안에 편안하게 안기는 디자인 덕분에 별로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손이라면 마우스 조작에 불편함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손이 곱고 작거나 곱진 않은데 하여간 작다면, 의자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살짝 걸치듯 마우스를 쓰지 말고, 마우스 엉덩이를 손바닥에 바싹 붙여 당기는 듯한 느낌으로 써 보세요.
버튼이 많습니다. 측면의 추가 버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마우스의 휠은 보통 휠이 아니라 틸트까지 되는 물건입니다. 그러니 2버튼 추가. 휠 뒤에는 2개의 버튼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측면 버튼을 계산하지 않아도 7버튼 마우스가 되지요. 여기에 3종류의 측면 모듈을 제공합니다. 평범한 뒤로/앞으로의 2버튼, 엄지손가락을 중심으로 7개의 버튼을 원형으로 배치한 모듈, 12개의 버튼을 빼곡히 배치한 모듈까지. 저는 마지막 모듈 하나만 사용 중이지만, 용도에 따라서 모듈을 구분해 쓸 수 있습니다. 가격도 비싼데 그럴싸한 모듈 받침대라도 같이 넣어줬음 어땠을까 싶네요.
충전 케이스를 쓰는 무선 이어폰처럼, 이 모듈은 자석으로 마우스 본체와 고정합니다. 착 달라붙고 어렵지 않게 떼어냅니다. 마우스의 전체적인 버튼 느낌도 괜찮습니다만 아직 신제품이라 그럴지도 모르지지요. 이 마우스 쓰면서 가장 불안한 게 내구성이거든요. 2버튼 모듈은 큼직해서 누르기 좋고, 아래에 달린 미끄럼 방지 그립의 존재감도 확실합니다. 7버튼은 엄지손가락이 가장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구성입니다. 12버튼이 부담된다면 은근히 괜찮으리라 보입니다. 12버튼은 측면 버튼의 각도를 아주 잘 맞춰놔 엄지손가락을 옮겨가며 누르기 편합니다. 저는 이 각도에서 레이저의 수준이 나쁘지 않음을 느낍니다.
박스 전면. 3개의 모듈을 갈아 끼우는 마우스임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박스 뒷면.
뭔가 돈을 많이 들인듯한 박스 구조. 그냥 마우스 값을 천원이라도 빼주면 안 되나요?
자신들의 제품에 대단히 자부심을 느끼는 듯한 종이가 있군요. 높으신 분이 싸인도 했습니다.
설명서는 한국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합격.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어 설명서가 없는 제품은 고운 시선으로 봐지지 않더군요. 레이저 스티커도 줍니다. 지금은 다 버렸지만요. 전 레이저라는 브랜드 자체에 별 감흥이 없거든요.
12버튼 모듈이 장착된 채로 포장됐고, 다른 두 모듈은 옆에 따로 있습니다. 모듈을 바꿔가며 쓰는 마우스라면 모듈 보관함이나 받침대라도 줬음 어땠을까요. 한 두폰도 아니고 13만 원짜리 마우스인데요.
바닥의 보호 비닐과 포트의 보호 커넥터. 어차피 마우스 쓸려면 다 벗겨내야 하지요. 부질 없는 것들입니다.
위. 휠 버튼은 좀 약해 보인다는 느낌을 줍니다. 새 창으로 열기, 탭 이동 등의 기능을 여기에 할당해놔서 휠을 자주 쓰고, 기존 마우스도 휠부터 해먹어서 좀 불안하네요. 휠은 걸리는 느낌이 확실합니다. 휠 뒤의 버튼을 누르긴 쉽지 않네요. 이런 버튼을 볼 때마다 차라리 클릭 버튼 왼쪽에 하나 넣어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른편에 튀어나온 견갑골같은 날개가 마우스 덩치를 키우는데 일조합니다. 약지를 올려두는 공간이지요.
앞. 좌/우 메인 버튼의 중간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안으로 패여 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올려두면 제 자리를 찾은듯한 느낌을 줍니다. 버튼 자체의 느낌은 평범합니다. 표면은 적당이 꺼끌한데 입자가 고와 손에 걸리는 느낌은 없습니다. 이게 너무 매끄러우면 땀과 기름으로 떡칠돼 맨들거리는 느낌이 늘어나잖아요? 딱 이정도가 적당한 듯.
왼쪽. 기본 장착된 12버튼 모듈입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3개의 모듈이 있으니, 이 모듈 하나만 가지고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 마우스를 평가하면 안되겠지요. 모듈에 대해선 아래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오른쪽. 위의 패여있는 부분에 약지를 올리고, 아래의 고무 그립에 새끼 손가락을 붙입니다. 덕분에 미끄러짐 없이 마우스를 확실하게 잡아줍니다.
뒤. 엉덩이는 못생겼습니다. 레이저 로고도 썩 마음에 들진 않네요. 이음매가 눈에 걸리지만 왼쪽의 확장 버튼 모듈을 갈아야 하니 이음매가 보이는 건 당연하겠지요.
바닥. 센서가 정 중앙에 위치하진 않습니다. 이걸 은근히 따지는 분들이 있지요. 프로필 변경 버튼이 바닥에 달려 있고, 프로필 표시 LED도 있습니다. 프로필을 바꿀 때마다 마우스를 뒤집는 게 기본이란 소리. 그게 싫으면 남는 버튼 많으니 위쪽에 할당하면 됩니다.
크기는 119x74mm.
높이는 43mm
다른 마우스와 비교. 평범한 마우스에 비해 위아래로 좀 더 길고 특히 옆으로 더 퍼졌습니다.
높이는 보통 마우스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동글동글.
무게는 120g
케이블이 꽤 무겁군요. 155g.
직조 케이블인데 매듭이 크지 않습니다. 쉽게 풀어지진 않을 것 같은데 그건 두고 봐야 알 일. 레이저 아니랄까봐 포트 안쪽이 형광색입니다.
이제 다른 모듈과 비교해 봅시다.
모듈 안쪽의 구조는 모두 같습니다. 빼곡한 접점으로 연결하고, 양 끝에 달린 2개의 자석으로 고정합니다. 버튼 수가 적다고 해서 접점의 수가 줄어들진 않네요.
평범한 2버튼 모듈입니다. 여기에 들어갈 기능은 뻔하죠. 뒤로, 그리고 앞으로. 자잘한 버튼이 달려 있으면 방해될 때 이 모듈을 쓰면 되겠으나, 애시당초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이 마우스를 왜 살까요? 이보다 훨씬 저렴한 데스애더가 있는데 말입니다.
모듈 자체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두 개의 버튼이 큼지막해서 누르기 편하고, 아래의 고무 그립 역시 면적이 넓어 절대로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2버튼 모듈을 쥐었을 때.
이제부터 본격적인 다기능 모듈입니다. 7개의 버튼이 달린 원형 모듈인데요. 12버튼이 겉보기에 좀 부담되고 버튼이 너무 많아 오타가 날것 같으면 이걸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나가 헥스를 사지 뭐하러 이걸 살... 이유는 있겠군요. 가격 차이가 별로 안 나니까요. 나가 헥스를 살 바에는 트리니티를 사는 게 이득이겠지요.
가운데의 원형 고무 그립에 엄지손가락을 올려두고, 이리저리 위치를 옮겨가며 누릅니다. 이 배열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많은 단축 버튼이 필요할 땐 12버튼, 그 정도까지는 아닐 때 7버튼 모듈을 장착하면 상당히 효율적이리라 보입니다. 프로필을 바꿔도 되지만, 프로필 변경은 지금 무슨 프로필을 쓰는지 헷갈릴 수 있잖아요? 모듈을 바꾸면 엄지손가락의 느낌이 다르니 구분이 확실하게 되지요.
7버튼 모듈을 쥐었을 때.
주인공인 12버튼 모듈입니다. 7버튼 모듈과 무게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측면에 12개의 버튼을 몰아넣은 마우스는 나가 트리니티 말고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우스를 볼 때마다 저걸 어떻게 쓰냐고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댓글을 다는 분들이 은근히 많은데, 적응하면 다 쓸만 합니다. 지금 자신이 쓰는 방법만이 유일한 진리는 아닙니다.
버튼을 무성의하게 배열한 것처럼 보이나 레이저가 그 정도로 불성실한 회사는 아닙니다. 지금 어느 줄의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는지 바로 파악하고, 원하는 버튼을 최대한 거슬리지 않고 누르도록 표면의 각도를 세심히 조정했습니다. 처음부터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를 써봤다면 몰랐을텐데, 어찌 보면 무성의한 커세어의 버튼 배열을 접하고 나니 레이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가 느껴집니다. 이게 완성도고, 이게 수준입니다.
12버튼 모듈을 쥐었을 때.
소프트웨어: 이렇게 만들기가 그렇게 힘듭니까?
평범한 마우스는 소프트웨어를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으나, 추가 버튼이 많이 달려있는 마우스라면 소프트웨어가 필수입니다. 레이저는 다양한 게이밍 디바이스를 취급하는 회사답게, 자사 제품들을 하나로 모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시냅스를 내놓았습니다. 이것도 첫 인상은 썩 좋지 않았는데, 자동 인식해서 설치하는 프로그램은 에러가 나서 결국 다시 설치해야 했고, 매크로 기능이라도 할당할라치면 추가 모듈을 설치해야 합니다. 요새 클라우드가 대세니 개나소나말이나 가입을 강제하는구나 생각도 들지요. 여기까지 보면 썩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첫 인상은 엉망이나 제공하는 기능과 설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기능 설정에 지장이 없습니다. 매크로 설정에서 좀 해맸을 뿐. 그것도 모듈을 추가 설치하니 바로 해결됐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건드리면 뭘 할 수 있는지 바로 파악됩니다. 번역도 한국인에게 맡겼음이 분명합니다. 요새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글자는 한글인데 말은 한국어가 아닌 글들이 범람해 수준 높은 글을 읽기가 참 어려운 세상이지요. 위키부터 리뷰까지 국어 점수를 의심케 하는 문장들이 난립하는 이 시대에, 이 정도 번역은 합격점을 받기 충분합니다. 그럼 불합격은 뭐냐고요? 당연히 커세어지요.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하드웨어 프로파일 설정입니다. 레이저 시냅스에서 원하는 프로파일을 만들고, 그걸 하드웨어 프로파일 영역에 끌어다 놓으면 쓰기 성공. 삭제도 자유롭습니다. 하드웨어 프로파일 설정을 이렇게 대놓고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로지텍 이후 처음인 듯 합니다. 마우스에 메모리를 넣고, 그걸 저장하는 기능을 구현했으면, 프로그램에서 이를 설정하도록 만들기가 그렇게 힘듭니까? 이게 기본이어야 하는데 그 기본을 지킨 마우스 프로그램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보니, 지극히 기본인 기능이 참 대단한 장점이 되버렸습니다. 쓰다보니 열받네요. 커세어는 도대체 왜 그런데요?
다만 프로파일이 완벽하진 않습니다. LED 색상은 마우스가 아닌 레이저 시냅스에 저장됩니다. 그 색상 바꾸는 게 얼마나 대단하다고 꼭 자기네 프로그램을 통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아무도 설치를 안 할것 같아서 그런가봐요? 거창한 모듈식 시스템도 못마땅한 부분입니다. 레이저가 마우스, 키보드에 만족하지 않고 게이밍 노트북부터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이것저것 다 해먹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니, 거기에 맞춰서 소프트웨어도 모듈을 도입해서 유연성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물론 레이저가 어떤 야망을 품었건 일개 소비자는 알 바 아니며, 그냥 가볍게 소프트웨어를 쓰고 싶을 뿐인데 그런 바램과는 대조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덩치가 너무 크네요.
레이저 나가 트리니티만의 모듈과 시너지 효과도 있습니다. 장착된 모듈을 떼어내고 새 모듈을 장착하면 설정도 바뀝니다. 레이저 시냅스에서 일일이 프로파일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사용자에 따라서 포토샵용 모듈, 웹서핑용 모듈, 게임용 모듈 같은 식으로 설정하면 활용도가 높겠지요. 다만 이것도 완전하진 않습니다. 모듈을 떼어내고 새 모듈을 착 붙이면 대체로 잘 인식하는 편인데, 가끔 가다 인식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듈을 바꿔도 마우스의 LED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뭔 수를 써도 글러먹었으니 포기하고 재부팅하세요. 이 미묘한 안정성과 가격 상승이 모듈 시스템의 단점입니다.
마우스를 컴퓨터에 연결하면 알아서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설치하지만, 그 후엔 이런 화면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처음에 다운받겠다고 설치는 건 가볍게 무시하고 레이저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받아 설치하세요.
레이저 시냅스는 꼭 깔아야 하는데 그 아래에 달린 게 많습니다. 크로마고 나발이고 어차피 손 안에 들어가면 보이지도 않을 RGB LED에 뭐 그리 공을 들이겠다는건지. 여기서 매크로에 체크하는 걸 놓친 댓가로 나중에 매크로 설정이 어딨는지 한참을 찾아 해메는 벌을 받게 됩니다.
힘들게 설치한 레이저 시냅스. 당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두 개 뿐. 로그인과 회원 가입입니다. '나중에 할께요'라던가 '오프라인 사용' 같은 선택지는 없습니다. 포교하지 못해 안달이 난 종교꾼을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부친가출하시고 모친조기사망하시어 삼대가신용불량한 집안의 자제분이구나라는 불쾌한 언행을 안겨주고 싶어지지요.
하지만 욕은 하지 않았는데, ID, 이메일, 암호만 요구하거든요. 진짜 개념도 없고 양심도 없고 생각도 없고 뇌도 없는 정책을 들이대는 프로그램이 가득한 이 시대에, 저 정도면 많은 걸 바라지 않는 실로 소박하고 검소한 프로그램이구나 싶습니다.
RAZER SYNAPS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기네 브랜드는 영어로 쓰나 봅니다. 시냅스, 마우스, 프로필, 대시보드, 모듈, 전역 단축키, 기기, 모듈, 온라인 서비스 등 배치가 몹시 중구난방이라 어딜 어떻게 들어가서 뭘 눌러야 내가 원하고 바라며 필요한 기능이 나올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씩 다 눌러보는 거지요.
대시보드야 일단 다 깔아놓고 보는거고, 모듈은 영업사원이 어거지로 들이미는 것 같은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표현은 그럴싸한데 전혀 필요하지 않은 기능이란 소리죠. 하지만 여기서 스크롤을 내려 매크로를 설치했어야 나중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에요. 어쨌건. 돈 받고 쓰는 리뷰도 아니고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건데 이런걸 하나하나 짚어가며 구질구질하게 풍부한 기능이 많다고 칭송할 필요는 없겠죠? 넘어갑시다.
매크로 설정을 아무리 찾아봐도 안 나오기에 이게 매크롤 설정인가 하고 몇 번을 들춰봤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레이저 제품을 많이 쓰는 게 아니라서 글로벌 단축키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이제 본론인 마우스입니다. 어디를 누르면 무슨 기능이 작동하는지를 바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저 기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기능 이름을 눌러서 다른 걸로 바꾸면 됩니다. 좌측 클릭은 고정이군요.
2버튼 모듈은 마우스 버튼 4와 5가 할당됐습니다. 이걸 바꿀 필요는 없겠죠?
7버튼 모듈은 1번부터 7번까지.
12버튼 모듈은 1번부터 0. 그리고 -와 =가 있습니다. QWERTY 윗줄의 숫자키 부분을 단축키로 쓰는 게임이 그렇게 많은가봐요? 저게 기본값인 걸 보면. 이 모듈만 녹색 체크 표시가 있는데, 당연히 이 모듈을 장착해서 그렇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버튼에 기능을 넣어 봅시다. 첫 희생양은 기본 키 3번 버튼입니다.
키보드 기능에서 원하는 키를 누르고 저장을 누르면 끝. 터보는 연사 기능이겠고, 그 속도도 정해줄 수 있습니다.
다른 마우스 버튼을 할당하는 기능. 여기도 터보 옵션이 있는데 그건 위에서 봤으니까 넘어가고, 마우스에 이런 기능이 있었나 싶은 다양한 옵션들이 있네요.
순간적으로 감도를 바꾸는 기능인가 봅니다. 스나이퍼 버튼과도 같은 역할이라 보면 되겠지요.
인터디바이스가 도대체 뭔가 싶은데, 추가로 뭘 설치하라니까 그냥 넘어갈래요. 레이저 시냅스에 연결된 다른 제품의 기능을 설정하는건가 싶은데, 어차피 지금 쓰는 레이저 제품은 이 마우스 하나 뿐이라.
프로파일 전환 단축키입니다. 다음/이전/사이클, 그리고 특정 프로파일로의 전환까지. 있을 건 다 있군요.
레이저 하이퍼시프트가 뭔지 찾아보기 귀찮으니까 넘어갑시다.
특정 프로그램이나 웹사이트를 켜는 기능입니다. 여기에 몹시 건전한 걸 할당하고, 현재 창을 끄는 프로그램을 다른 단축버튼에 설정하면 직상 상사나 부모님의 갱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조금 높아지지 않을까요?
멀티미디어. 바로 위의 갱에 더불어 음소거까지 쓰면 금상첨화겠군요. 동영상 많이 보는 분들은 키보드보다 마우스로 조작하는 게 더 편할지도요. 자막 제작이라던가.
윈도우 바로가기의 범주가 넓군요. 지금은 잘 안 쓰지만 계산기와 그림판, 메모장이 있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앱 순환이나 작업 관리자, 그리고 잘라내기/붙여넣기 같은 기능을 일일이 단축키 설정할 필요 없이 여기서 찾아 지정하면 된다는 점도 매력적.
텍스트 기능은 미리 정해둔 상용구를 넣어주나 봅니다. 인터넷 방송하면서 영혼없는 리액션 넣을 때 이걸 쓰면 편하겠군요. 지금까지 '~하나 봅니다'라고 말하는 건 직접 써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어차피 쓰고 싶었던 기능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12버튼 모듈에 대충 원하는 기능들을 설정했습니다. 왼쪽의 탭에서 현재 할당된 기능을 보여줍니다. 각각의 기능에 이름을 지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은데 그런 기능은 없네요. 기능을 보면 용도가 바로 나오니까 필요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다른 기능은 다 키보드의 특정 키를 할당하면 끝나는데, 이미지 저장 단축키는 매크로 설정이 필요합니다. 모듈에서 스크롤을 내리면 매크로가 나오는데 이걸 설치해 줍시다.
그럼 모듈에 매크로가 추가됐습니다.
매크로를 추가하고 시작 버튼을 누른 후 원하는 작업을 실행하면 끝.
크롬에서 이미지 저장 대화창은 우클릭 후 나오는 메뉴에서 단축키 V를 누르면 뜹니다. 그래서 매크로 입력도 이걸로 끝. 지연 시간은 일부러 0.1로 줄여줬습니다. 0으로 하면 완전 동시 입력이 되서 씹히는 경향이 있더군요.
설정된 매크로를 마우스에 바인딩해줍니다.
무슨 매크로 하나 설정하는데 이렇게 복잡하게 해야하나 싶은데, 레이저 시냅스가 마우스 뿐만 아니라 키보드까지 고려한 프로그램에다보니 매크로를 따로 모듈로 빼지 않았나 싶습니다.
프로파일 이름의 메모리카드 버튼을 누르면 프로파일을 온보드 메모리에 덮어 씌우거나 삭제하는 창이 나옵니다. 이렇게 알기 쉬운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커세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프로파일을 늘려서 다른 메모리에 할당했습니다. 마우스 바닥의 프로파일 LED 색상이 현재 설정된 프로파일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빨간색, 녹색, 파란색, 하늘색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 색도 마음대로 바꿨으면 어떨까 싶지만 이 정도는 넘어가죠.
12버튼 모듈에 참 지저분하게도 설정해 뒀습니다. 이래도 다른 모듈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2버튼과 7버튼은 별개의 마우스처럼 작동하지요. 그래서 모듈을 바꾸면 완전히 다른 마우스, 다른 설정으로 작동합니다. 가끔 새로 바뀐 모듈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 완벽하네요. 그게 가장 크다는 게 문제지만.
성능 탭으로 넘어갑시다. 감도 단계를 잘게 나눠서 원하는 버튼에 설정해두고 쓸 수 있습니다. X와 Y 축을 따로 바꾸는 것도 가능.
LED 기능은 의외로 단촐합니다. RGB LED라면 대단히 요란할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습니다. 레이저 시냅스를 끄면 기본값인 리액티브로 작동합니다.
마우스 패드 표면 보정.
특정 게임에 특정 프로파일 연결 가능.
옵션. 시냅스 자동 시작을 끄고 싶네요.
Razer Naga Trinity
레이저란 브랜드를 썩 좋게 보진 않았습니다. 커세어와 동급으로 허세 가득찬 회사겠거니 했지요. 그런데 써보니 의외로 괜찮네요. 마우스를 잡아보고 버튼을 눌러보면 버튼 하나하나의 생김새에 대단한 내공이 들어갔음이 느껴집니다. 설정 프로그램의 수준도 괜찮습니다. 커세어의 프로그램은 이제 프로그램이라 부르기도 싫어질 정도네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만족스러운 제품이나 가격은 많이 비쌉니다. 레이저가 무슨 명품이라고 이리 비싸게 받을까 싶지만, 교환 모듈을 주니까 거기에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이해해 보렵니다. 이렇게 실드를 쳐 줄 정도로 마음에 들었거든요.
문제는 내구성입니다. 이 마우스를 꺼낸 원인도 내구성이었고, 레이저 제품에서 꾸준히 말이 나오는 부분 역시 내구성입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제품을 보았으니 오래 썼으면 좋겠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최근 모델은 예전보다 내구성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데, 한 2년 정도만 버텨도 마우스를 워낙 많이 썼으니 수명이 짧을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 주렵니다. 이것도 1년 쯤 되면 슬슬 삐걱거리지 않을까 불안하긴 한데, 이것도 두고 봐야 알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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