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산물
아날로그는 경험의 산물이다. 마니아 입장에서 아날로그 시스템을 운용하다 보면 디지털보다 더 많은 변수들과 마주친다. 그저 비싸고 좋은 기기들로 꾸미면 어느 정도 선까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디지털과 달리 아날로그는 적극적인 개입과 경험이 없으면 힘들다. 일단 세팅부터 지독한 경험과 노하우를 수반한다. 턴테이블만 해도 침압은 침압계가 간단히 맞추어 준다 해도 VTA, 아지무스, 안티스케이팅을 정확히 맞추려면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문제는 카트리지의 선택과 그 운용이다. 턴테이블의 톤암과 컴플라이언스 등 매칭을 고려해 카트리지를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다. 경침압, 중침압 그리고 그에 따른 톤암의 유효 질량 및 걸 수 있는 침압의 한계, 무게추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카트리지와 포노앰프의 매칭인데 이 즈음 되면 머리가 더 아파온다. 진공관 앰프냐 아니면 솔리드 스테이트 방식이냐부터 게인과 임피던스에 대해 헤드 앰프 방식이냐 승압 트랜스냐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러한 지독한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사실 프리, 파워앰프 매칭 등 오디오 시스템 운용의 다른 잡다한 문제는 무척 쉽게 느껴질 정도다. 제작자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외부 노이즈, 자기장 등으로부터 매우 민감한 것이 아날로그 시스템, 그중에서도 포노앰프다. 지금은 베테랑급 하이엔드 메이커로 성장한 그리폰의 경우 시작이 포노앰프 제작이었다. 락포트는 턴테이블을 만들면서 시작했고 골드문트는 톤암을 만들다가 오디오 제작의 길로 들어선 케이스다. 아날로그부터 시작한 메이커들의 성공 사례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크렐과 댄 다고스티노
댄다고스티노(Dan D'Agostino)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은 종종 필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우연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필연적인 연결고리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인 것이다. 최근 댄 다고스티노의 포노앰프를 듣게 된 이후 댄 다고스티노가 이런 포노앰프를 만들 수 있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놀랍거나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다. 댄 다고스티노는 과거 크렐의 수장이었음을 잠시 깜빡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앰프에 디지털 스트리밍 보드 옵션을 넣기도 하고 라이프스타일 하이엔드 오디오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는 시작부터 아날로그 앰프 전문가였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크렐의 PAM 프리앰프엔 그 당시 기준으로 걸출한 포노단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후 KBL이나 KSL 시리즈의 포노단 또한 뛰어났고 별도의 KBL 포노앰프는 RIAA Trim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이후 CD 세대가 열리면서 포노단은 기본 옵션에서 사라졌지만 KPE 같은 포노보드나 별도의 레퍼런스 포노앰프를 출시하기도 했다. 마크 레빈슨의 26 포노, 스펙트랄 프리앰프의 포노단과 함께 크렐도 아날로그 엘피에 대한 포노단 개발에 전력투구했던 당시였다.
Momentum 포노앰프
댄 다고스티노는 다시 한번 독보적인 포노앰프를 하나 만들어 자사의 라인업에 추가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의 연배로 보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의 젊은 시절엔 엘피가 음악의 주류 포맷이었기 때문. 또한 크렐에서 여러 포노단 및 독립적인 포노앰프를 제작해오면서 쌓아온 노하우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그런 포노앰프가 아니라 진정으로 가격과 관계없이 완벽한 포노앰프를 하나 만들고 싶었나 보다. 시중에 존재하는 그 어떤 포노앰프와도 비교 불가능한 그런 물건 말이다.
일단 댄 다고스티노 포노앰프를 마주하면 포노앰프인지 인티앰프인지 또는 프리앰프인지 헷갈릴 정도로 사이즈가 크다. 전면 우측엔 볼륨 노브 같은 것이 달려있는데 자세히 보면 현재 표준 커브인 RIAA 외에 여러 다양한 커브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터다. 그리고 좌측의 노브는 입력 선택용 셀렉터다. 중앙에 여러 디스플레이 창이 조각조각 설치되어 있다. 왜 이렇게 여러 개의 디스플레이 창을 설치해놓았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나름 댄 다고스티노의 재치 있는 발상에서 나온 디자인이다.
모멘텀 포노앰프는 MM 및 MC 모두 별도의 입력단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게인, 로딩 임피던스, 커패시턴스 등을 일일이 조정할 수 있다. 대게 이를 조정하는 스위치를 내부 PCB 보드 또는 후면이나 하단에 딥 스위치 등으로 조정 기능을 탑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댄 다고스티노는 이런 딥 스위치 등 아날로그 스위치로 인한 음질 열화를 애초에 제거하기 위해 전면에서 모두 버튼으로 조정하게 만들었다. 디스플레이 창을 따로 만들고 하단에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버튼을 마련해놓은 것이다.
후면을 보면 이 포노앰프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입력단은 RCA과 XLR 입력을 모두 지원하며 MC 두 조 그리고 MM 두 조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출력단은 XLR 한조만 지원하고 있는데 더블, 트리플 톤암을 운용하거나 여러 대의 턴테이블을 운용한다면 상당히 반길만한 설계다. 특히 XLR 입/출력은 단순히 인터페이스를 위해 설치해놓은 것이 아니다. 모멘텀 포노는 풀디스크리트 밸런스 회로를 구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XLR 입/출력이 마련된 포노앰프를 들어보면 청감상으로도 SN비가 상당히 높고 배경이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부에 완벽한 디퍼런셜 회로를 구축해놓고 있다.
무엇보다 포노앰프는 노이즈와의 전쟁이다. 워낙 미세한 신호를 증폭하는 제품군이고 카트리지로 읽어 들이는 신호의 특성상 노이즈 대비 신호의 순도가 상당히 중요하다. 내부를 보면 노이즈에 대해 얼마나 집요하게 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전면의 컨트롤 회로는 여타 신호 전송부와 격벽으로 막아 신호 간섭을 피했다. 더불어 후면엔 본격적인 포노 증폭 회로가 내장되어 있는데 좌/우 채널에 대해 완벽히 동일한 PCB 보드가 각각 한 장씩 탑재되어 있다. 이 포노앰프 내부엔 무려 500여 개의 부품들이 내장되며 모두 특별히 선별된 소자들이라고 한다.
전원부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모멘텀 포노앰프는 대충 보면 모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두 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모멘텀 프리앰프나 인티앰프처럼 하단 받침이 전원부다. 이곳에 레귤레이터가 내장되어 있다. 그럼 트랜스포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별도의 또 다른 전원부에 내장된다. 참고로 별도의 이 전원부는 본체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이 좋다.
성능
테스트 환경은 B&W 800D3 스피커를 중심으로 프리앰는 C1100, 파워앰프는 MC611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활용해 꾸며졌다. 한편 아날로그 소스기기는 클리어오디오 Master Innovation에 TT1 리니어 트래킹 톤암 그리고 골드핑거 Statement 카트리지를 동원했다. 모멘텀 포노앰프의 경우 RIAA 외에 데카, 컬럼비아 등 다양한 커브를 제공하는데 이번엔 RIAA 커브에 대해서만 테스트해보았다. 포노앰프의 MC1 입력단을 활용하고 로딩 임피던스는 420에 세팅해 청음해보면서 모멘텀 포노앰프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골드핑거 카트리지와 클리어오디오 리니어 트래킹 톤암의 조합 그리고 대형 플래그십 턴테이블 속에서 엘피는 마치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작동하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 시스템은 굉장히 예민한 모습을 보이는 시스템이다. 특히 리니어 트래킹 톤암에 매달려 엘피 소릿골을 예리하게 읽어나가는 모습이 예술인데 그만큼 포노앰프에 따라서 무척 다른 소리를 들려준다.
Diana Krall - California Dreamin'
Wallflower
이번 모멘텀 포노앰프의 경우 골드핑거 카트리지의 특성을 발가벗긴 듯 가감 없이 표현해 준다. 다이애나 크롤의 ‘California Dreamin'’을 들어보면 보컬과 피아노 모두 투명하고 탁 트인 고역을 드려주며 디테일이 살아 있어 정확한 액센트로 들려준다. 광대역에 매우 맑고 선명한 사운드인데 얼핏 들으면 엘피인 줄 모를 정도로 배경이 깨끗하다.
Gaia Quartet - Borodin : String Quartet No. 2 D Major
Borodin / Tchaikovsky : String Quartet
예를 들어 DSD 녹음을 릴테잎에 옮긴 뒤 이를 마스터로 제작한 가이아 사중주단의 보로딘 현악 사중주를 들어보자. 마치 애초에 아날로그 레코딩 방식으로 녹음한 듯 해상도가 최고조에 이르며 충분한 다이내믹스를 펼쳐낸다. 충분한 다이내믹 마진 속에서 선명한 컨트라스트를 표현하기 때문에 다이내믹스 표현 부족으로 인해 압축되거나 억눌린 듯한 느낌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다. 다른 포노앰프로 시청했을 때보다 약음도 더 세밀하게 들리는데 마치 깃털처럼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 주도면밀함이 돋보인다.
Herbert Von Karajan, Sviatoslav Richter, David Oistrakh, Mstislav Rostropovich, Berliner Philharmoniker
Triple Concerto In C Major, Op.56
Beethoven: Triple Concerto
게인의 경우 +/-6dB 조정이 가능해 카트리지, 특히 MC 카트리지 운용 시 편리히다. 이번 시청에선 디폴트 값이 0에서 매킨토시 프리앰프의 볼륨을 40 정도로 놓았을 때 충분한 음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카라얀 지휘, 리히터,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비치가 함께한 베토벤 삼중 협주곡에서 음장은 상당히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마치 최신 녹음처럼 들리는 면이 있는데 선예도 높고 정교한 정위감이 느껴져 놀라웠다. 과거 녹음도 마치 요즘 녹음처럼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재생해 주는 면이 돋보였다. 중역대 디테일은 마치 장막이 걷힌 듯 세밀하고 투명한데 절대 어두운 음색이나 옹색한 음장과는 거리가 멀다.
The Oscar Peterson Trio - You Look Good To Me
We Get Request
워낙 많이 들어서 이젠 친숙함을 넘어서 좀 지루할 만도 한 녹음 ‘You Look Good To Me’.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이 곡을 아날로그 프로덕션의 45RPM 엘피로 재생해보았는데 좌측에서 반짝거리는 트라이앵글 소리에 놀랐다. 종종 흐릿하고 묽게 들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엔 매우 또렷하게 반짝거린다. 이어 드럼의 경우 적당한 두께도 담백하며 우측 베이스는 왜소하지도 두껍지도 않게 아주 적당한 사이즈의 바디를 연상시켰다. 역시 동적인 부분에서 날렵하고 스피드 있게 치고 나오는 소리다. 민첩하게 리듬을 타는 모습으로 악기들의 표면 질감도 단단하고 에지가 잘 살아있어 명징하게 들린다.
총평
최근 수년간 지속적인 아날로그 붐은 이젠 르네상스라고 명명해도 될 만큼 그 양과 폭이 충만해졌다. 그에 따라 엘피를 재생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가 봇물 터지듯 우후죽순 생산되어 보급되고 있다. 대량생산을 통해 커다란 이익을 창출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보이지만 진지한 하이엔드 오디오파일들을 위한 제품들은 오히려 흔치 않아졌다. 얼마 전 젤코는 문을 닫았고 몇몇 소수의 장인들만이 톤암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카트리지는 이전 창업자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수순이다.
하이엔드 포노앰프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여전히 존 컬 등 몇몇 장인들이 현역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않아 보인다. 이 상황에서 하이엔드 오디오 1세대를 열었던 댄 다고스티노의 포노앰프에 대한 집념은 반갑기 그지없다. 또한 그 결과물은 아날로그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치열한 경험의 산물로서 값지며 성능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모멘텀 포노앰프는 크렐과 댄 다고스티노에 이르는 필생의 아날로그 명품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Specificatio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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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ish | Silver Black Custom Finishes Available Upon Request |
Inputs | 4 pr inputs via XLR and RCA 2 MOVING COIL Inputs 2 MOVING MAGNET Inputs Inputs are selectable from the front panel |
Outputs | 1 pr Balanced outputs via XLR |
Gain | 70 dB for MOVING COIL 50dB for MOVING MAGNET |
Input Clipping | 1Khz typical for 70cM/sec recorded velocity, gain trim at "0" MC 6mV MM 6mV Equivalent input noise, 20 to 20 kHz < 60nV Equivalent input noise current None Gain adjustment is +/- 6dB and is selectable from the front panel. |
Equalization Curves | There are five selectable equalization curves available from the front panel. These include the Standard RIAA equalization curves and 4 alternatives used by various record labels. The available curves are: RIAA Frequency response |
Loads | 16 selectable resistive loads for MOVING COIL and MOVINg MAGNET 16 selectable capacitive loads for MOVING MAGNET inputs |
Power Supply | The base of the phono stage houses critical power supply rectificaition circuitry while a third chassis houses the power transformer for maximum isolation from AC-generated electromagnetic fields. |
Dimensions | Separate: Main: 15.5 x 12.75 x 3 1/2 Power Supply: 13.5 x 11 x 2.5 Total Height: 7 Transformer Box: 4 x 10.5 x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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