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니우스(Plinius)는 클래스 A 증폭 파워앰프로 유명한 뉴질랜드 오디오 메이커다. 20세기에 나온 SA-250 파워앰프의 경우 클래스 A 증폭으로 8옴에서 250W, 4옴에서 무려 450W를 뿜어내는 괴력의 앰프였다. SA-250은 마크4까지 시리즈를 이어가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러한 클래스 A 앰프가 유저에게 클래스 AB 증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클래스 A로 듣다가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클래스 AB를 선택하라는 것이 플리니우스 설명이다. 제작사에 따르면 클래스 A는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야 할 때, 클래스 AB는 쉬면서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선택하면 된다.
플리니우스의 이러한 ‘클래스 A 사랑’은 인티앰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플리니우스 최초의 인티앰프 2100i부터 시작해 현행 인티앰프 히아토(Hiato)와 하우통가(Hautonga)까지 모두 클래스 AB 증폭, 푸시풀 구동을 취하고 있지만 아이들 전류(idle current)를 많이 흘려 동작 대부분이 클래스 A 구간에서 이뤄진다. 이번 시청기인 하우통가의 경우 아이들 전류가 400mA(92W)에 달한다.
플리니우스 히스토리
플리니우스의 설립자 피터 톰슨(Peter Thomson) (오른쪽)
플리니우스는 1980년 메커니컬 엔지니어 피터 톰슨(Peter Thompson)이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 설립했다. 데뷔작은 8옴에서 클래스 AB 증폭으로 80W를 내는 파워앰프 Plinius 3와 프리앰프 Plinius 2. 그러다 1986년 선보인 100W 출력의 모노블록 파워앰프 Ma100부터 클래스 A 증폭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개리 모리슨(Gary Morrison)이 이끄는 크래프트 오디오(Craft Audio)와 합병, 새 회사 오더블 테크놀로지(Audible Technologies)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브랜드 이름은 이후에도 플리니우스를 그대로 썼다. 일반 상식과 다르게 푸시풀 출력단을 비대칭(asymmetrical)으로 설계하기 시작한 것도 개리 모리슨이 가세한 후인 1989년부터다. 비대칭 설계가 보다 자연스러운 재생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플리니우스에서 또 한 명의 키맨을 꼽자면 2002년에 합류한 산업 디자이너 로스 스티븐스(Ross Stevens)다. 그가 처음 손을 댄 6채널 파워앰프 오데온(Odeon) 때부터 플리니우스 제품 디자인은 몰라볼 만큼 완성도를 갖추며 일취월장했다. 특히 플리니우스 제품들이 이후 디자인적 통일성을 갖게 된 점이 큰 수확이다.
플리니우스의 주요 제품 연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0 : Plinius 2 프리앰프
1980 : Plinius 3 파워앰프(클래스 AB 80W)
1986 : Ma100 모노블록 파워앰프(클래스 A 100W)
1989 : SA-50 파워앰프(클래스 A 50W)
1989 : SA-100 파워앰프(클래스 A 100W)
1990 : M5 프리앰프
1992 : SA-250 파워앰프(클래스 A 250W)
1994 : 2100i 인티앰프(클래스 AB 100W)
1995 : M12 프리앰프
2000 : 8100 인티앰프(클래스 AB 140W)
2000 : 8200 인티앰프(클래스 AB 175W)
2002 : SA-102 파워앰프(클래스 A 125W)
2002 : Odeon 6채널 파워앰프(클래스 AB 200W)
2003 : P8 파워앰프(클래스 AB 200W)
2003 : 9100 인티앰프(클래스 AB 120W)
2003 : 9200 인티앰프(클래스 AB 200W)
2004 : SA-Reference 파워앰프(클래스 A 300W)
2006 : Koru 포노앰프
2007 : Tautoro 프리앰프
2007 : P10 파워앰프(클래스 AB 200W)
2007 : SA-103 파워앰프(클래스 A 125W)
2008 : Hiato 인티앰프(클래스 AB 300W)
2011 : Hautonga 인티앰프(클래스 AB 200W)
2014 : Kaitaki 프리앰프
2015 : Inspire 880 DAC 내장 인티앰프(클래스 AB 80W)
2015 : Inspire 980 네트워크 인티앰프(클래스 AB 80W)
2017 : Reference A-300 파워앰프(클래스 A 300W)
2017 : Reference M-10 프리앰프
2018 : P100 포노앰프
2019 : Reference A-150 파워앰프(클래스 A 150W)
하우통가가 등장하기 전 플리니우스를 대표하는 인티앰프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9200이었다. SE 모델까지 나왔던 9200은 8옴에서 200W, 4옴에서 300W를 내는 솔리드 푸시풀 앰프로, 은빛 라운드 섀시에 블루 리어 패널, 여기에 후면 손잡이까지 후속 모델인 하우통가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전면의 3개 노브(하우통가는 1개)만 아니었다면 하우통가와 착각할 정도다.
참고로 하우통가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언어로 ‘남쪽에서 불어오는 강력하고 깨끗한 바람’(the strong and clean southerly wind)을 뜻한다. 남풍인데도 우리가 생각하는 훈훈한 남풍이 아닌 것은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고 하우통가는 남극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기 때문이다.
하우통가 외관과 인터페이스
하우통가의 첫인상은 슬림하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가로폭이 450mm, 높이가 120mm, 안길이가 400mm인 풀사이즈 앰프인데도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전면 패널 양쪽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된 덕이다. 좌우 측면이 비대칭인 점, 후면에 작은 손잡이가 달린 점도 눈길을 끈다. 무게는 14kg.
전면 패널부터 본다. 가운데 음각된 ‘PLINIUS’ 밑에 앰프의 동작 상태를 나타내주는 디스플레이 LED, 그 아래에 소스 선택 버튼 6개가 각각의 작은 LED 밑에 달렸다. 왼쪽부터 포노, CD, 라인 1~4 순이다. 맨 왼쪽의 작은 LED는 홈시어터(HT) 바이패스를 선택할 경우 불이 들어온다. 맨 오른쪽 둥근 노브는 볼륨 컨트롤용.
동봉된 크고 길며 무거운, 거의 몽둥이 수준의 알루미늄 리모컨도 플리니우스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다.
파란색이 인상적인 후면 패널은 보는 일 자체가 즐겁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이와이어링이 가능한 스피커 케이블 커넥터. 양쪽에 2페어씩 달렸다. 가운데 위에는 입력단(포노, CD, 라인 1~4)과 HT 바이패스(서라운드 프리앰프에 연결할 경우 하우통가 프리단을 바이패스), 프리아웃(다른 파워앰프에 연결), 라인아웃(레코드 아웃), 트리거 단자가 있다(모두 RCA 단자). 아래 오른쪽에는 XLR 입력단자가 1조 마련됐다.
하우통가 설계 디자인
하우통가는 8옴에서 200W, 4옴에서 280W를 내는 클래스 AB 증폭, 푸시풀 구동의 솔리드 인티앰프다. 입력단은 왜율이 적고 3극 진공관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J-FET이 듀얼 디퍼런셜(dual-differential) 회로에 투입됐고, 전력 증폭이 이뤄지는 출력단은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채널당 3페어씩 썼다. 트리플 패럴렐 구성인 것인데, 일반적인 NPN-PNP 구성이 아니라 NPN으로만 이뤄지는 점이 플리니우스 앰프 출력단의 특징이다.
하우통가는 클래스 AB 앰프이지만 아이들 전류가 400mA(92W), 스탠바이 전류가 140mA(32W)에 달할 정도로 높다. ‘상시 대기중’인 아이들 전류가 높으면 그만큼 클래스 A 증폭 구간이 높아지기 때문에 음질면에서 유리하다. 단점은 열이 많이 난다는 것. 참고로 플래그십 인티앰프 히아토는 아이들 전류가 600mA(138W), 클래스 AB와 클래스 A 증폭을 선택할 수 있는 플래그십 파워앰프 레퍼런스 A-300은 아이들 전류가 각각 800mA(184W)와 4.8A(1100W)에 달한다.
하우통가는 또한 포노단을 갖춰 MM/MC 카트리지에 모두 대응한다. 포노단 게인은 디폴트인 하이 게인 선택 시 66dB, 로우 게인 선택 시 60dB를 보이며, 부하 임피던스는 5가지(47k옴, 470옴, 100옴, 47옴, 22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게인과 임피던스 모두 상판을 열고 포노 기판의 점퍼를 건드리면 된다. 디폴트는 MM 카트리지의 업계 표준 부하 임피던스인 47k옴이다.
전원부는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위시한 풀 리니어 구성. 바닥에 트랜스와 파워서플라이 기판이 있고, 그 위에 증폭 기판, 양쪽 내부 방열핀 안쪽에 출력 트랜지스터가 도열한 구조다. 입력단과 전압 증폭단에는 정전압 회로를 거친 전원이, 출력단과 이를 드라이빙하는 드라이브단에는 정전압 회로를 거치지 않은 전원이 공급된다. 음색과 음질을 결정짓는 전압 증폭단에는 보다 전압변동률이 낮은 전원을 공급하고, 구동력을 좌우하는 전력출력단에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설계로 보인다.
스펙은 플리니우스의 롱런 모델답게 지금 갓 나온 인티앰프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주파수 응답 특성은 가청 주파수대역인 20Hz~20kHz에서 음압 변동폭이 불과 +,-0.2dB에 그치고, 5Hz~70kHz에서도 -3dB에 머물 정도로 광대역에 걸쳐 플랫하다. 앰프 스피드를 알 수 있는 슬루 레이트(slew rate)는 50V/us, 채널당 피크 전류는 40A에 달한다. 게인은 40dB, 프리아웃 출력 레벨은 47k옴에서 1.5Vrms, 라인아웃 출력 레벨은 200옴에서 190mV를 보인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이뤄진 시청에는 린의 셀렉트(Selekt) DSM과 모파이의 울트라덱(UltraDeck) 턴테이블, 다인오디오의 헤리티지 스페셜(Heritage Special) 스피커를 동원했다. 음원은 주로 룬(Roon)으로 타이달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고, 내장 포노단 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LP도 몇 장 들어봤다. 포노 카트리지는 3mV 출력의 모파이 마스터트래커(MasterTracker) MM 카트리지로, 하우통가의 포노 게인(66dB)과 부하 임피던스(47k옴)는 모두 디폴트 값 그대로 세팅했다.
Gilbert Kaplan, Vienna Philharmonic
Mahler: Symphony No.2
볼륨 노브를 11시 방향까지 올리자 원하는 음량과 무대, 이미지가 잡혔다. 첫인상은 재생음이 묵직하고 리드미컬하다는 것. 작지 않은 시청실 공기를 순식간에 뜨겁게 달궈버리는 이 파워감이 장난이 아니다. 역시 MOSFET 앰프와는 결이 다른, 시원시원하고 남성미 가득한 바이폴라 앰프의 포스가 작렬한다. 북쉘프 스피커와 8옴 200W 인티앰프 조합으로 말러 2번을 이렇게 호방하게 감상한 것은 거의 2,3년 만에 처음이 아닐까 싶다. 1악장 처음 등장하는 총주에서는 박력과 준엄, 음압과 에너지, 그 어는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음 자체가 깨끗하고 무대는 투명한 것은 과연 플리니우스 앰프의 사운드 시그니처라 할 것이다.
Sting - If I Ever Lost My Faith in You
Ten Summoner’s Tales
왜 이 앰프 이름을 하우통가라고 지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재생음에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깔끔하고, 강단이 있으면서도 윤곽선에 색 번짐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출력 임피던스가 극도로 낮은 덕분에 벌어진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4옴 280W 앰프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구동력과 댐핑 파워인 것은 분명하다. 클래스 A 증폭 구간이 긴 덕일 수도 있다. 어쨌든 타고나길 통뼈로 태어나 팔씨름에 재능을 보인 친구 같다. 그 손아귀 힘이 생각 이상으로 세다. 맞다. 지금 하우통가가 들려주는 음과 무대는 지난 2011년 필자가 뉴질랜드 남섬 설원에서 직접 맞아본 그 매서우면서도 시원한 바람을 빼닮았다.
Freddie Hubbard - Hub-Tones
Hub-Tones
오른쪽 무대에서 갑자기 등장한 드럼의 존재감이 강력하다. 프레디 허바드가 연주하는 트럼펫은 필자 바로 앞에서 훅 입김을 불어대고, 무대 중앙에서 서서히 조여오는 베이스의 워킹은 ‘그래, 이게 재즈지!’ 싶다. 아주 비현실적인 현장감이다. 알토 색소폰은 거의 트럼펫에 육박할 정도로 매혹적인 고음의 잔치. 1950~60년대 전형적인 모던 재즈에서 벗어난, 상큼하고 비관습적인 재즈의 기운이 생생하기 짝이 없다. 상식적으로 모노블록이나 대출력 진공관 앰프에서나 나올 법한 음의 기세가 이 14kg짜리 앰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터져 나온다. 알 디 메올라 등이 연주한 ‘Mediterranean Sundance’에서는 기타 저음이 하도 강력해 시청실 바닥이 박박 긁히는 듯했다.
Colin Davis, BBC Symphony Orchestra
Kyrie, Dies Irae, Tuba Mirum
Mozart Requiem
LP A면을 내리 들었다. MM 카트리지 특유의 호방한 음량과 시원시원한 무대 펼침이 돋보인다. 에너지와 디테일에서 고급 MC 카트리지에 비해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그게 관건이 아니다. 인티앰프에 내장된 포노단으로, 그것도 승압 트랜스나 헤드앰프를 거치지 않고 MM 카트리지 신호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점이 중요하다. ‘Kyrie’에서는 합창단 규모가 꽤 크고 남녀 성부가 잘 구분이 되었고 목소리에서는 온기가 가득했다. ‘Dies Irae’는 그야말로 몰아치는 기세가 매서웠으며, ‘Tuba Mirum’에서는 맨 왼쪽에서 등장한 소프라노의 예쁜 고음에 푹 빠져들었다. 내장 포노단을 써서 이처럼 LP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롱셀러 하우통가 인티앰프의 히든카드라 할 만하다.
총평
한 앰프가 하우통가처럼 장수를 누리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일단 기기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부품 수급이 원활해야 하며 음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모양만 바꿔 나오는 후속 모델, 업그레이드 모델, 2.0 모델투성이다. 이는 제작사의 건전한 양식과도 관련된 문제다. 이런 맥락에서 하우통가는 롱셀러의 기본 자질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인다. 시대를 앞서간 듯한 외관 디자인, 3극 진공관처럼 리니어리티가 빼어난 음의 감촉, 웬만한 스피커는 아무렇지도 않게 울려버리는 찰진 구동력 등. 하우통가는 앞으로 10년 후에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런 인티앰프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Specific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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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
200 watts RMS per channel into 8 ohms. |
Frequency response | 20Hz to 20kHz ±0.2dB -3dB at 5Hz and -3dB at 70kHz |
Distortion | Typically <0.05% THD at rated power 0.2% THD and IM worst case prior to clipping |
Current output | 40A short duration peak per channel Fuse protected |
Slew rate | 50V/µs |
Hum & Noise | 90dB below rated output 20Hz to 20kHz unweighted |
Input impedence | 47k ohms all inputs Phono adjustable to 47k ohms, 470 ohms, 100 ohms,47 ohms, 22 ohms |
Rated pre out level | 1.5V RMS into 47k ohms or higher |
Pre out source impedence | Typically 1.5k ohms |
Pre out minimum recommended load | 47k ohms |
Line out level | 190mV at 200 ohms |
Gain | Line inputs to speaker out: 40dB Phono Input To Pre-Out: 66dB on high gain, 60dB on low gain |
Power/current consumption | 600W 0.4A (92W) Class AB Idle 0.14A (32W) Standby |
Dimensions | Height: 120mm (4 3/4") Width: 450mm (17 3/4") Depth: 400mm (15 3/4") Weight: 14kg (30l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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