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나라 독일
평소에 왜 나는 저머니(Germany)를 독일(獨逸)라고 번역해서 쓸까, 좀 의아했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덕국(德國)이라고 쓴다. 저머니와 게르만과는 상관이 없다. 가만, 그러고 보니 도이칠란트가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여기서 음역했다고 한다. 독일을 중국어로 읽으면 두이가 된다. 대충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독(獨)에 주목하고 있다. 독야청청이라는 말이 있듯이, 단순한 개인의 존재가 아니라, 뭔가 남들보다 능력이 빼어나서 우뚝 선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보면 독일의 국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민족이라는 노랫말이 나오는데, 그만큼 자국에 대한 긍지가 높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히틀러식의 아리안 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요즘 지인을 만나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해서 어떡해요?” 정말 답답하다. 요 기간 동안 최소 10여 회는 외국에 나갔을 터인데, 이렇게 국내에 발이 묶여 있어서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전 세계가 같은 상황이니 나만 혼자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 이참에 MBL의 신작 CD-DAC N31을 만나면서 새삼 독일을 조금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좀 객관화된 시각이라고나 할까?
나는 독일이라고 하면, 당연히 장인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그냥 솜씨만 좋은, 단순히 손기술만 자랑하는 장인이 결코 아니다. 그 바탕에는 어마어마한 R&D와 현장에서 다져진 노하우가 결합되어 있다. 덕분에 승용차부터 각종 공업 제품은 독일산을 최고로 친다. 나 또한 마찬가지. 오디오의 경우, 취향이라는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최고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그 만듦새와 완벽주의는 인정할 만하다. 이번에 만난 제품은 거기에 빼어난 음악성까지 확보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최상의 소스기를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장인과 R&D와 예술의 만남, 그게 바로 N31인 것이다.
주방 기구의 강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옆길로 새겠다. 사실 승용차부터 모든 제품을 독일산으로 꾸며보는 것이 소원이기는 하지만, 내 형편에 언감생심. 그래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주방 기구를 꼽고 있다. 혼자 사는 처지에 아무래도 부엌살림에 손을 대야 하는 입장이고, 그래서 나는 이 분야에도 꽤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 뮌헨 하이엔드 오디오 쇼를 다닐 때, 일부러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우회하는 전략을 짰다. 뮌헨 직항보다 가격도 쌀뿐 아니라, 그곳에 지인이 운영하는 민박도 있어서, 입국 및 출국 시 며칠간 지낼 수 있는 메리트가 일단 컸다. 게다가 이 도시는 중심지와 공항 간의 거리가 극히 짧다. 지하철을 타면 20분이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출국 시 여기서 넉넉히 쇼핑을 하고 공항으로 가는 패턴을 선호한 것이다.
대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지로 생각하고, 심각하게 관광지로 생각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곳을 30여 회 이상 방문한 경험에 따르면, 작은 유럽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어느 도시에 견줘도 부족함이 없는 인프라와 관광 자원과 강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100년이 넘는 커피숍을 자주 방문하고, 중심가의 쇼핑센터를 자주 간다. 그중 자툰이라는 체인점은 우리로 치면 하이마트와 같은 곳. 단, 가전제품뿐 아니라, 게임, 영화, CD, LP 등을 골고루 팔고 있다. 내 CD 라이브러리에서 꽤 많은 분량이 여기 출신이다. 아직도 뜯지 않은 CD를 집었다가 자툰이라는 딱지를 보면 가볍게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본격 사냥터는 바로 주방 기구. 각종 칼과 와인 따개와 프라이팬과 냄비 등이 그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크고, 무거운 것이 많아 망설였는데, 일단 하나씩 컬렉션 하다 보니 중독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냥 눈에 보이면 사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벤츠나 BMW를 타는 분들은 보다 독일 장인 정신에 대해 잘 알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런저런 연유로, 이번에 만난 N31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주방 기구조차 이렇게 잘 만드는 독일에서 이 정도 물량 투입으로 만든 소스기라니, 벌써 군침이 당긴다.
최상의 소스기
오디오 컴포넌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 스피커를 떠올린다. 당연하다. 음의 최종 출구이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성이나 개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최상의 디바이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의 음질을 추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단연코 소스기다. 일단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스피커를 갖고 있어도 소스기가 시시하면, 당연히 시시한 소리가 나온다. 여기서 켄 케슬러의 명언,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라는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이번에 만난 N31은 단순히 CDP다 혹은 DAC다 단정하기 힘든 제품이다. 심지어 스트리머 기능도 있다. 일종의 복합기라고나 할까? 프린트도 되고, 복사도 되고, 팩스도 된다. 따라서 되도록 분리해서 전문성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애호가들에겐 시시해 보일 수도 있다.
또 스펙을 보면 평범하다고나 할까, 별로 두드러진 점이 없다. PCM의 경우 24/192까지 되고, DSD는 64에 머물러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런 스펙을 내세웠다는 점 자체가 경이적이다. 아니 엽기적이다.
하지만 직접 음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한없이 투명하고 또 자연스럽다. 최상의 아날로그 디바이스에서 나오는 음과 통하는 레벨이다. 굳이 이 정도라면 더 이상의 스펙이 필요 없다는 확신이 든다.
사실 우리는 지나치게 스펙에 경도된 경향이 있다. 물론 디지털의 경우, 비트 레이트나 샘플 레이트가 올라갈수록 좋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디오는 다르다. 음악을 다루고, 예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귀가 박쥐와 동일하지 않은 터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화를 입을 수도 있다.
단, 본 기는 철저한 R&D와 신기술로 무장되어 있다. 즉, 이런 스펙을 상회하는 엄청난 테크놀로지가 바탕이 되어 있으므로, 단순히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싶다. 바로 이 점이 본 기의 가장 유니크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위르겐 라이스의 비기(祕技)
현행 MBL의 수석 엔지니어 위르겐 라이스(Jürgen Reis)
현행 MBL의 수석 엔지니어는 위르겐 라이스다. 본 기를 기획하면서, 그가 중점을 둔 것은 지터의 저감이다. 물론 모든 디지털 기기의 숙원 사업이 지터의 억제이기 때문에 그리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비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게 바로 3단계에 걸친 지터 억제책이다.
첫째 단계에서 그는 디지털 PLL을 무려 10KHz 대역까지 넓힌다.
둘째 단계에서 아날로그 스무싱(smoothing) PLL을 동원해 1Hz 대역으로 줄인 후, 고주파 대역의 지터를 제거한다.
셋째 단계에서 비동기화된 버퍼를 이용해 본 기의 오버 샘플링 필터를 작동시킨다.
따라서 본 기에서 재생되는 음은 디지털 디바이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날로그 디바이스처럼 들린다. 지터에 대한 철저한 방지책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본 기는 노블 라인에 속해 있다. 최상의 레퍼런스와 인트로급의 코로나 라인의 중간이다. 그러나 본 기의 퍼포먼스는 레퍼런스급에 못지않다고 본다. 가격을 생각하면, 최소한 이보다 서 너배의 기기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N31로 명명된 본 기는 같은 노블 라인에서 나온 N51 인티 앰프와 짝을 이루고 있다. 이른바 권장 매칭이다. 하지만 그 실력을 감안하면 레퍼런스 라인의 분리형 앰프에 사용해도 괜찮다고 본다. 한편 본 기는 바로 N51에 투입된 LASA 20. 기술의 덕을 단단히 입고 있다. 이 부분을 꼭 설명해야 한다.
MBL N51 인티앰프
N51은 기본적으로 클래스 D 방식이다. 이 방식의 장단점이 극명하다. 요는 그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억제하는 것이 관건. 그래서 동원된 것이 LASA 2.0이다. 이것은 “Linear Analog Switching Amplifier”의 약자다. 클래스 D 방식으로 증폭할 때 고주파에서 임피던스의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특성 변화를 없애는 것이 주요 골자다. 즉, 출력 임피던스에서 어떤 매칭을 하건 그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동작과 균일한 주파수 응답 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 클래스 D 방식의 높은 효율과 낮은 왜곡을 살리기 위해 높은 출력 상태에서도 균등한 리니어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도 똑같은 THD 특성을 확보하고 있다.
바로 이 기술이 본 기에 투입된 것이다. 따라서 임피던스 매칭과 전원의 영향에 따른 리니어리티의 훼손과 다이내믹 특성의 저하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의외로 디지털 기기에서 전원부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이 부분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 또한 N51을 개발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본 기에 이양한 것이라 위르겐 라이스가 투입한 또 다른 비기라 볼 수 있다.
음악의 신전과 같은 자태
본 기의 외관은 정말 수려하다. 황금빛 기둥에 얹힌 본체는 마치 음악의 여신 뮤즈에게 바치는 제단과도 같다. 단단한 마무리와 화려한 고광택 외관 그리고 묵직한 무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더구나 가격까지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구매 의욕을 불사르게 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MBL 기기 전반에서 보이는 2층 구조의 몸체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또 외관에 일체 나사가 보이지 않는다. 정밀한 케이스 결합 방식이다. 한 치의 오차나 틈이 있을 수 없다.
전면 디스플레이는 무려 5인치의 컬러 TFT LCD 타입이다. 플레이되는 앨범의 자켓이 정말 멋지게 나온다. 또 각종 동작 상태와 자세한 정보도 함께 제공된다. 터치 방식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상단을 보면 동그란 원 스타일의 마크가 보인다. 그 중앙에 당당히 MBL이 쓰여 있다. 누르면 디스플레이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디머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부속되는 원형의 리모콘은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빼어난 편의성과 기능으로 무장
본 기는 다양한 디지털 입출력을 자랑한다. AES/EBU, 코액셜, 옵티컬, USB 등이 제공된다. 여기서 왜 디지털 출력부가 따로 있냐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본 기를 일종의 트랜스포트로도 활용하라는 뜻이다. 또 경우에 따라 성격이 다른 DAC를 구해서 본 기로도 듣고 또 다른 DAC로도 들을 수 있다.
한편 USB는 1과 2, 총 두 개가 제공된다. 그 각각의 성격이 다르다. 우선 USB1은 클래스 1 방식이다. 즉, 별도의 드라이버 없이 PC와 연결해서 쓸 수 있다. 이 경우 PCM을 96KHz 사양으로 플레이한다. 한편 USB2는 클래스 2 사양이다. 즉, 드라이버를 PC에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PCM은 24/192까지, DSD는 64까지 가능해진다. 다이렉트로 아이폰을 연결해서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편 USB를 사용할 경우, 전원부는 철저하게 디지털과 아날로그 회로와 분리시킨다. 즉, 자체 트랜스포머에서 공급되는 전원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PC를 소스기로 쓸 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응한 조치라 하겠다.
3개의 디지털 필터를 제공하는 점도 반갑다. 표준이 있고, 패스트와 슬로우도 제공된다. 본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이어서 CD 쪽을 보자. 제일 중요한 트랜스포트 메커니즘을 파악하면, 일단 슬롯 방식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소니/산요에서 만든 헤드/메커니즘을 가져왔다. 이어서 소니/필립스 개발의 디코더, 컨트롤 장치가 투입되었다. 슬롯 자체는 진동에 강하도록 기계적인 제어 장치를 추가로 투입했다. DAC 칩셋은 정평 있는 ESS 사의 ES9018K2M을 사용했다.
본 기에는 룬(Roon)이 제공된다. 룬 레디와 룬 테스티드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 대응한다. 이더넷 케이블을 연결하고, 룬에 가입하면 끝. 룬 레디는 스트리밍 테크놀로지가 중심이고, 룬 테스티드는 USB, HDMI, 에어 플레이, 구글 캐스트 등 여러 프로토콜에 대응한다. 즉, 스트리머와 여러 부가 기능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음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DAC의 아날로그부는 풀 디퍼런셜 회로를 기본으로 하되 별도의 싱글 회로를 첨가했다. 아무래도 하이엔드 앰프를 제조하는 회사라, 이 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이 돋보인다.
만일 본 기를 노블 라인에서 사용한다고 전제한다면, 일차로 N51 인티 앰프가 추천된다. 그러나 그 퍼포먼스나 레벨로 볼 때, 분리형인 N11 프리와 N15 모노 블록 파워의 조합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스피커는 101 E MK2 정도도 무리가 없다. 더 욕심을 내면 동사의 레퍼런스 라인이나 타사의 고가의 하이엔드 라인업에 넣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 시대에 필요한 기능을 망라하면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구현하고 있음은 여러모로 고무적이다.
본격적인 시청
본 기를 듣기 위해 앰프는 파라사운드의 JC 2 BP와 JC 5 세트를 사용했고, 스피커는 피에가의 코액스 511을 동원했다. 참고로 시청 트랙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처음 두 곡은 스트리머로 들었고, 나중의 두 곡은 CD로 들었다.
- 베토벤〈교향곡 7번 1악장〉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
- 차이코프스키〈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반 클라이번(피아노)
- 레이 브라운〈Fly Me to the Moon〉
- 다이애나 크롤〈Wallflower〉
Carlos Kleiber, Wiener Philharmoniker
Symphony Nr. 7 A-dur Op. 92: 1. Poco Sostenuto - Vivace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y No.5,7/ Kleiber
우선 베토벤부터. 일단 LP를 듣는 듯한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정말 이 기기가 대단하다고 느낀 순간이다. 모든 악기들이 제자리에 질서정연하게 자리한 가운데, 목관의 질감이나 바이올린의 감촉 등, 어쿠스틱 악기의 맛이 풍요롭게 나타난다. 전혀 디지털의 냄새를 느낄 수 없을 정도. 마치 목재로 만든 대형 스피커를 LP로 플레이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거기에 음악에 담긴 서정성과 아름다움을 정말 가감 없이 표현한다. 듣는 순간 이쪽을 무장 해제시키는 듯하다.
Van Cliburn - I. Allegro non troppo - Allegro con spirito
Tchaikovsky : Piano Concerto No.1 / Rachmaninov : Piano Concerto No.2 : Cliburn / Kondrashin / Reiner
이어서 차이코프스키. 연주 자체가 갖는 호방함과 기백이 여축없이 드러난다. 각종 관악기들은 마구 포효하고, 피아노는 스케일이 크다. 그랜드 피아노의 광대한 모습이 아낌없이 표현되고 있다. 분명 녹음 연대가 꽤 되었고, 그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처럼 엄청난 음성 정보와 다이내믹스가 포함되어 있음을 처음 알았다. 이 기기를 사용한다면, 그간 들었던 음악을 처음부터 새롭게 들어보고 싶다.
Ray Brown - Fly Me to the Moon
Ray Brown, Monty Alexander & Russell Malone
한편 CD로 들은 레이 브라운. 정말 깜짝 놀랐다. 스트리머쪽도 좋았지만, CD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심지가 곧고, 에너지가 넘치면서, 풍요로운 느낌은 CD에서도 아직 개척할 영역이 많이 남았다고 깨닫게 된다.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한 내 CD 라이브러리를 생각하면, 본 기에 저절로 욕심이 난다.
레이 브라운 연주에는 드럼이 없다. 대신 피아노와 기타가 가세해서 신명난 플레이를 들려준다. 스윙감이 풍부한 베이스 라인을 바탕으로, 피아노와 기타가 정말 물을 만난 생선처럼 펄떡펄떡 요동친다. 당연히 포지션도 명확하다. 디테일한 부분을 묘사하는 능력도 탁월해서, 마치 세 연주자가 바로 요 앞에 있는 듯하다.
Diana Krall - Wallflower
Wallflower
마지막으로 다이애나 크롤. 이제는 노련미를 발휘하는 부분이 잘 포착된다. 피아노의 간결한 반주와 영롱한 울림. 일렉트릭 기타의 두툼한 질감. 아무튼 여러 요소들이 오소독스하게 잘 어우러지고 있다. 밥 딜런의 곡을 부른 것인데, 약간 아이리쉬 민요와 같은 냄새가 난다. 이 부분을 잘 살리고 있다. 특히, 숨을 쉬고, 침을 삼키는 등, 크롤의 여러 디테일한 부분이 너무도 생생하게 포착되어 소름이 돋을 정도다. 정말 CD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듯한 모습에 단연코 감격했다.
결론
이 시대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다 담은 디바이스다. 특히, CD의 높은 퀄리티에 감동했다. 우리나라에서 CD는 빠르게 퇴조했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에서는 아직도 메인이다. 그러므로 그 가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한 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다. 스트리머의 기능도 빼어나서, 마치 LP를 듣는 듯한 자연스러움은 특필할 만하다. 묵직하고, 성스러운 느낌까지 나는 외관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 종학(Joh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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