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비자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시장들이 있다. 일반적인 가성비를 논할 수 없는 매니아들만의 시장이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비용과 최신 기술들이 투자되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오디오 시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매니아 시장이다. 음질과 음색에 대한 투자는 일반 소비자 시장 기준에선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 오디오 시장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곳이 바로 DAP 시장이다.
한때 ESS 쿼드 DAC과 메리디안의 하이파이 오디오 튜닝이 더해지며 DAP의 대체재로 LG 스마트폰이 인기를 모으기도 했으나 DAP 시장의 존재감은 여전하고 변함이 없다.
DAP 시장을 주도해 온 브랜드들은 매해 신제품이 쏟아내고 있고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로 자리 잡은 아스텔앤컨에서도 모듈형 구조를 채택한 신형 DAP을 선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오늘은 아스텔앤컨의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 된 신형 DAP, SE180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 교체 가능한 모듈형 DAC, 아스텔앤컨 SE180
모든 전자 기기는 원래 설계된 부품을 그대로 사용하고 교체가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부 부품을 교체 가능한 모듈로 만들면 동일한 기기에서도 다른 경험이 가능해 진다. 그러나 이런 구조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수익성 또한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어 이런 제품을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런 면에서 아스텔앤컨이 모듈형 DAP을 개발한 것은 모험이자 도전일 수 밖에 없다.
DAP의 핵심 부품 중 소리와 직결되는 모든 파츠를 모듈로 만들면 모듈마다 다른 소리를 담아낼 수 있어 사용자 입장에서도 꽤 좋은 선택이나 그런 변화를 시장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모험이자 도전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모듈형 구조의 한계인데 과연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아스텔앤컨의 SE180은 DAP을 구성하는 메인 부품들만 기기내에 내장했고 오디오를 처리하는 DAC과 앰프, 출력단을 분리해 하나의 모듈로 구성했다. 이렇게 하면 DAP의 기본 기능과 성능을 그대로 제공하면서 DAC에 따른 소리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ESS9038PRO가 적용된 SE180 기본 음색은?
아스텔앤컨 SE180에는 ESS9038PRO가 탑재된 모듈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메인 부품만 탑재된 DAP 본체와 모듈을 분리해 구매할 수는 없고 ESS9038PRO를 탑재한 모듈이 기본 탑재된 완제품 형태로만 구매가 가능하다.
처음부터 교체형 모듈을 선택할 수 있으며 좋겠지만 수익성이나 판매 방식에 따른 혼선 등을 고려할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어쨌거나 아스텔앤컨 SE180을 구매하면 ESS9038PRO가 기본 DAC으로 사용하게 되고 그렇게 셋팅된 소리를 경험하게 된다.
아스텔앤컨 SE180의 소리는 전형적인 ESS9038PRO의 소리다. 맑고 적막한 높은 해상력의 사운드에 음의 분리도가 상당히 좋다. 헤드폰에 따라 느낌 차이는 있지만 다른 거치형 DAC과 비교해 보면 성향 차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비교 대상은 ESS9038PRO가 탑재된 거치형 DAC 중에서도 가성비로 인기가 높았던 SMSL M500이란 제품인데 둘다 성향 자체는 확실히 비슷하다.
단, 아스텔앤컨 SE180의 소리는 SMSL M500 같은 메마른 소리가 아니다. 차이파이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그런 가늘고 쏘는 거친 느낌 없이 ESS9038PRO의 높은 해상력과 뛰어난 분리도를 유지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잔향과 질감을 표현해 주는 것이 아스텔앤컨 SE180 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스테이징 자체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필자가 사용 중인 GL850이 AMT 드라이버 특유의 넓은 공간감 덕분에 소스 기기의 스테이징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거치형 DAC + AMP 조합 보다는 공간이 조금 축소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거치형도 아닌 DAP에서 이 정도 소리면 매우 훌륭했다.
■ AK4497 듀얼 DAC, SEM2 모듈로 교체하면?
아스텔앤컨 SE180에는 AK4497 DAC을 듀얼로 구성한 SEM2 라는 모듈을 추가할 수 있다.
기본에 쓰던 ESS9038PRO는 싱글 DAC이라 음질면에선 듀얼 DAC 구조인 SEM2가 좀더 유리할 수 있으나 AK DAC과 ESS DAC의 성향 차이가 있으니 음질 보다는 그 성향 차이에 따라 선택을 달리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필자는 AK DAC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 더 자극적이긴 해도 ESS DAC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SEM2 모듈이 적용된 아스텔앤컨 SE180의 음색은 GL850을 사용하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GL850의 장점인 AMT 드라이버와 그로 인한 넓은 스테이징에 걸맞는 소리가 아니다. 좌우 공간이 넓고 그 사이를 메워주는 충분히 편하고 좋은 소리지만 AMT 특유의 공간에 대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마치.. 일반 DD 드라이버 처럼 여기 저기에 자리 잡은 악기들을 다 끌고와서 일열로 쫙 펼쳐논 느낌이다. 헤드폰 매칭에 따라 이런 소리가 더 좋을 수도 있겠으나 GL850이 주력인 필자에게는 그렇게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다행히 젠하이저 HD650에선 그런 느낌은 없었다. 전형적인 다이나믹 드라이버의 현장감과 공간에 대한 느낌을 잘 살려줬고 저역에 대한 느낌도 과하지 않게 적절한 타격감과 양감을 살려주었다. 그래도 ESS9038PRO의 기본 성향 차이는 그대로였다.
■ 아스텔앤컨 SE180의 앰프 출력 수준은?
아스텔앤컨 SE180은 앰프 출력이 그래도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채널 당 3W 이상을 출력하는 거치형 앰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GL850을 울리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GL850은 리뷰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권장 파워 3W를 요구하고 너무 출력이 낮으면 빈 소리가 난다.
하지만, 아스텔앤컨 SE180은 4.4 밸런스 출력과 하이 게인 모드를 통해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불륨 설정은 90이었으며 로우 게인에서도 95 정도의 볼륨 만으로도 거의 모든 음악을 재현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하이 게인과 로우 게인의 음색적인 차이는 매우 미묘한데 하이 게인이 좀 더 다이나믹하지만 공간이 살짝 좁혀진 느낌이다. 로우 게인은 음이 좀 가벼워서 필자처럼 고출력 헤드폰에 연결한다면 하이 게인을 추천한다.
3.5 TRS 연결인 싱글 엔드 출력으로는 젠하이저 HD650을 볼륨 레벨 90 정도에서 정상적으로 재생했다. 출력이 부족한 느낌은 전혀 없었으며 굳이 하이 게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 튀지 않은 편안함, 아스텔앤컨 SE180
아스텔앤컨 SE180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소리에 대한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 그리고 ESS와 AK로 갈라진 시장층을 모두 공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소리에 대한 완성도는 아스텔앤컨에 대한 신뢰가 기반이 되기는 했으나 SE180 자체 소리도 잘 매칭된 DAC + AMP 조합과 비교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입문기나 중급기로 시작할때 경험하게 되는 그런 허전함이나 거칠고 쏘는 소리 없이 각각의 모듈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소리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 소리가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기준으로 삼기에 충분하고 누구나 경험해 보면 좋은 소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인 취향에 따른 평가는 ESS9038PRO 모듈과 AK4497 듀얼 DAC 모듈로 선택이 가능하니 이런 점도 괜찮은 선택이다. 다만, 이 구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의문인데 한번 칼을 뽑았으니 추후 신형 DAC이나 R2R 같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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