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5호기', 자동차 커뮤니티를 자주 보는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기아자동차의 K5를 지칭하는 용어다. 20~30대 오너들의 현란한 튜닝, 과속은 기본이고 난폭운전을 일삼아 생긴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를 일반화할 수 없고, 이렇다 할 통계는 없지만 주변에서 인식하는 K5란 이런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K5 오너다. 작년 이맘때쯤 신형 K5를 구입했고,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특히, 디자인, 성능, 연비, 첨단 기능들까지 3천만 원 초반 가격대로 호화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갓성비’라 평가하고 싶다.
이 글을 쓴 이유는 K5의 부정적인 인식이 이 차의 꼬리표가 될 것 같아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 K5가 어떤 차인지, 그동안 이 차와 함께 해오며 어떤 느낌이 들었지는 지 담백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 3세대 K5가 탄생했다. 지난 2010년 자동차 시장에 첫 선을 보인 K5 1세대와 버금갈 정도로 큰 화젯거리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얇아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Z 형식의 DRL 디자인은 혁신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보닛이 앞코까지 길게 이어져 툭 떨어진 디자인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에어커튼 부근에 위치한 범퍼 가니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공기구멍이 뚫려 있어 타이어와 브레이크의 방열을 도와주고, 디자인까지 상당히 공격적인 느낌이다.
측면뷰 역시 굉장히 스포티하다. 패스트백에 가까운 루프라인으로 스포츠 세단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플래그 타입의 사이드 미러와 차체와 일체감 있게 디자인된 도어 손잡이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쓴 모습이 역력하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라면 상단에 크롬 장식이 부담스럽다. 후면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데 오너들 사이에서 ‘크롬 죽이기’라고 명명하며 랩핑 시공이 유행할 정도다. 애초에 과하게 반짝이는 크롬보단 톤 다운된 반광으로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좌우로 이어진 리어램프 디테일도 정말 좋다. 다소 무난한 형태의 리어램프는 점선으로 이어진 세부 그래픽으로 디테일을 살렸다.
또, 범퍼 양쪽에도 에어커튼이 적용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막혀 있다. 그리고 하단부에는 듀얼 머플러(실제 배기구는 오른쪽에만 있음.)와 리어 디퓨져로 ‘달리는 차’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가짜면 어떠랴, 차 가격을 생각하면 이걸로도 만족한다.
차를 구입하기 전에 쏘나타와 많은 비교를 했었다. 특히 외관보다 실내를 유심히 비교해봤다. 내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공간인 실내 디자인을 따져 K5를 선택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K5의 안정감 있는 레이아웃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에 매료되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우드 가니시와 브라운 색상의 시트의 조화가 매우 훌륭했다. 우드 트림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아빠차’같이 올드해 보일 수 있다. 과거 고급차의 상징인 유광 우드 트림이 아닌, 과하지 않게 잘 배치되어 스타일리시해 보인다. 또, 우드 트림은 실제 나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질감을 정말 잘 표현해 냈다.
구입한 모델은 노블레스 트림이어서 앰비언트 라이트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쉬운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형급 모델답게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 부근에는 인조가죽으로 덧대어 저렴한 플라스틱 재질은 찾기 힘들다.
K5 실내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꼽자면 두 가지를 예로 들 수 있다. 하이그로시 마감과 터치 타입 공조버튼.
첫 번째로 하이그로시 마감의 경우 겉으로 봤을 때는 고급스럽다. 다만 각종 먼지들이 쌓인 것이 쉽게 보이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그 먼지를 그대로 닦아 버리면 대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세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용어인 '스월마크'가 정말 잘 생긴다.
쉽게 말해 잔기스인데, 하필이면 손이 가장 많이 닿는 기어 박스와 창문 조절 버튼부에 넓게 적용된다. 그래서 많은 오너들이 투명 보호필름인 PPF 시공을 많이 한다. 참고로 혼자 붙이겠다고 호기롭게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나도 실제로 해보고 빠르게 포기했다.
이어서 터치 방식의 공조장치는 정말 불편하다. 매번 운전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별로다. 좌측에 위치한 성에 제거 버튼을 제외한 모든 조작이 터치 방식인데, 차라리 AUTO 와 OFF만이라도 물리버튼으로 적용했으면 그나마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최소한 햅틱 반응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K5를 구매하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아 조금 더 재밌는 차를 타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기에는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문짝 두 개 달린 차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래도 스포츠까진 아니더라도 스포티한 느낌의 차를 구매하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이 전에 탔던 차가 준중형이었기 때문에 차급을 올려 쏘나타, K5를 두고 저울질을 했다. 두 모델을 시승해보고 난 뒤, 나의 결정은 바로 K5. 물론 과학 5호기라는 오명을 안고 있지만 딱히 선택권이 없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 버튼을 누르자, 희미하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배기음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여느 고성능 모델처럼 청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배기음이다. 과하지 않고 젊은 감성이 느껴진다.
파워트레인은 1.6 터보 가솔린과 8단 자동변속기가 합을 이룬다. 출력은 180ps – 27.0kgf.m 이다. ‘와 정말 잘나가!’하는 수준의 출력과 체감은 아니다.
단, 시내 구간에서 가속감은 정말 시원한 수준이다. DCT 만큼 재빠른 변속감도 일품이다. 물론 DCT 특유의 직결감과 견줄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변속 체결 후 쭉쭉 밀어주는 느낌이 매우 깔끔하다.
현대기아자동차에서 매번 이야기하는 실용영역구간에서의 토크감이 정말 좋은데, 시속 100km까지 전혀 부족함 없는 출력이다.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에서 주행을 하다 보면 약간 연비 중심의 셋팅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정속 주행 중에 어느 순간 알피엠이 속도와 딱 떨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바로 락업 클러치가 걸리는 시점이다.
락업 클러치가 걸리는 순간 연비는 대폭 상승하게 된다. 오일을 통해 동력을 전달하는 토크컨버터 특성상 어느 정도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락업 클러치가 걸리면 동력 전달 방식을 물리적으로 이어줘 수동변속기와 같은 효율을 자랑한다.
즉, 연비가 정말 좋아진다는 뜻이다. 고속도로에서 이 락업 클러치가 걸리는 상황이 잦아 장거리 주행 시에는 높은 연비 수준을 자랑한다.
사실 연비를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라 체크해본 적은 없지만, 40~50km 구간 고속도로 주행 시 얼핏 보기로 18km/l 언저리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변속기가 똑똑한 수준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정속 주행 중 킥다운 상황이나 저속 주행 중 갑자기 속력을 낼 때 반응이 늦는 감이 있다. 특히, 정체된 차선에서 뻥 뚫려 있는 차선으로 속력을 내서 들어가려 할 때 한 박자 늦게 가속이 진행된다.
또, 노말 모드에서 ‘아 굳이 지금 단수를 안 올려도 될 것 같은데?’라고 느껴진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고알피엠을 사용할수록 현대기아차의 특징인 특유의 쥐어짜는 듯한 엔진음과 함께 가속이 진행된다. 물론 조금 더 경쾌한 가속감을 생각하면 스포츠 모드가 낫긴 하지만, 쥐어짜는 듯한 소음이 엔진에 무리가 가는 듯한 느낌이다.
한편, 하체 느낌은 동급 모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서스펜션의 적당한 하드함과 잔진동에서 유럽맛이 살짝 느껴졌다. 동급 쏘나타와 비교하더라도 K5의 시트포지션이 더 낮고, 승차감도 더 하드하다. 하드한 느낌이라고 해서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쏘나타와 비교한다면 동일한 속도에서 동일한 방지턱 구간을 지날 때 더 탄탄하게 잡아주는 느낌이다. 또, 경량화 및 저중심으로 설계된 플랫폼이 적용된 덕에 안정감 있는 코너링 성능 또한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특히, 깊숙한 코너 진입 후 탈출 시 중형급 치고는 상당히 날렵한 몸놀림을 보인다. 자세를 잡는 과정도 안정적이다. 운전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 과격한 스포츠 주행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일상에서 나름 경쾌한 손맛을 즐길 수 있다.
편의 사양도 빼놓을 수 없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가끔 장거리 이동 중에 잠깐 사용하는 정도이다.
이런 반자율주행 관련 옵션 중에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이 제일 유용하다는 조언들이 많은데, 글쎄다. 옆 차가 언제 끼어들지 몰라 불안해서 사용을 잘 안 하게 된다.
드라이브 와이즈 옵션을 추가해서 가장 큰 혜택을 봤던 기능은 ‘후방교차 충돌방지 보조’이다. 골목길이나 전면 주차를 한 뒤 후진으로 출차를 하려 할 때 작동을 한다.
후진 출차 시에는 온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양옆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 시야도 가리고 사이드미러, 후방 글라스, 후방 카메라 등을 보면서 출차를 하게 되는데 번거롭다. 교차되어 오는 차량을 확인하기 정말 어렵다.
‘후방 교차 충돌 방지’는 후방 카메라와 함께 양옆으로 다가오는 차량에 대해 경고음과 그래픽을 표현해 주고, 위급한 상황에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제어한다.
이 기능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경험이 있다. 후진 출차 중 오토바이가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부딪힐 뻔했는데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제어돼 사고를 면했었다. 옵션 값 벌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차를 구입하려고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선택지에 올려 둔 모델이 K5였다.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잘 팔려서
실제로 작년 한 해 동안 국산 승용차 중에서 그랜저 다음으로 가장 잘 팔린 모델이 K5였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자동차에 관한 일을 하면서 누군가가 ‘좋은 차가 뭐야?’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차종 선택에 도움을 준다. 라이프 스타일, 주행 스타일, A/S 등등 세세한 부분까지 따져가면서 추천해 주는 나지만, 막상 내 차를 살 때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잘 팔리는 차를 선택한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3천만 원대에 고급스럽고 스포티한 디자인, 나름 괜찮은 성능, 풍성한 편의 기능까지, 직접 소유하고 있는 오너로서 국산 중형 모델은 정말 가성비가 넘친다.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자동차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부분과 불만족스러운 부분. 이 중에서 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나에게만큼은 ‘좋은 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