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리미엄 SUV 시장 규모가 정말 거대해졌습니다. 이전에 소개드린 랜드로버를 시작으로, G바겐, 우루스, 카이엔 등등, 정말 다양한 브랜드에서 프리미엄 SUV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 모델'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기존에 소개드린 모델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인기만큼은 그 어떤 모델보다 폭발적입니다. 특히 세상 모든 아버지가 이 모델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패밀리 SUV 시장에서 이 모델의 인기는 그야말로 독보적이죠.
도심형 럭셔리 SUV의 선구자이자 BMW SUV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모델! '제왕'이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오늘의 모델은 바로 BMW X5입니다.
지금이야 해마다 200만대 가량의 차량을 판매하며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90년대까지만해도 BMW의 연간 생산량은 100만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명성은 탁월했으나, 누구나 구매할 수 있을 만큼의 대중성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넘어,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자동차 회사는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넘쳐나는데, 시장의 파이는 한정되어 있었죠. 즉, 한정된 파이를 최대한 갖기 위해선, 회사의 규모를 늘려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은 곧 ‘대규모 인수합병’이라는 전략으로 이어졌습니다. 잘 나가는 자동차 회사들이 비교적 약소한 기업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죠. 대우자동차가 GM에게, 삼성자동차가 르노에게 인수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BMW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무작정 아무 회사나 인수하는 것은 BMW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짓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BMW는 남들보다 신중하게 인수할 회사를 물색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영국의 자동차 회사인 ‘로버 그룹’이 매물로 올라오게 됩니다. BMW가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오랜 역사와 명성을 보유한 브랜드’였죠.
자동차를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로버 그룹? 그게 뭐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버 그룹이 만든 자동차 이름은 모를래야 모르실 수가 없을 겁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미니’와 ‘랜드로버’이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BMW를 경영하던 ‘베른트 피세츠리더’ 회장과 ‘볼프강 라이츨레’ 사장은 로버 그룹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미니와 랜드로버를 1+1으로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알렉 이시고니스>
특히 피세츠리더 회장은 BMW 내부에서 ‘영국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로버 그룹에 광적인 집착을 보였는데, 이는 최초의 미니를 디자인한 ‘알렉 이시고니스’가 피세츠리더 회장의 삼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연이나 지연보다 끈끈한 ‘혈연’으로 이어진 인수 합병이었죠.
그리하여 1994년, BMW는 로버 그룹을 인수하는 데 성공합니다. ‘미니’나 ‘랜드로버’처럼 로버 그룹이 가진 상표권은 물론, 기술력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피세츠리더 회장과 라이츨레 사장의 머리 속에는 창창한 앞날만이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5년 뒤인 1999년, 로버 그룹을 활용하려는 그들의 계획은 시작조차 못해보고 물거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로버 그룹의 방대한 적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BMW는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랜드로버를 포드에 넘기고, 미니를 제외한 로버 그룹의 모든 것을 단돈 1달러에 매각했습니다. 아울러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피세츠리더 회장과 라이츨레 사장은 이사회에 의해 BMW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버 그룹이 BMW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BMW는 한동안 로버 그룹의 기술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죠. 그중에서도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에 적용되었던 기술은 BMW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바로 ‘SUV’라는 장르였죠.
1990년대 후반, BMW는 기존 사륜구동 차량의 오프로드 운행율이 고작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험로를 달리기 위해 개발된 SUV가 본래와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었죠. 이러한 사실은 BMW가 SUV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때마침 BMW에겐 로버 그룹에서 얻어낸 랜드로버의 기술력이 있었습니다. 온로드 기술을 가장 잘 구현하는 기업에게 오프로드 기술력까지 더해진 셈이었죠.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BMW는 곧바로 새로운 차량 개발에 돌입합니다.
얼마 뒤인 1999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SUV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BMW는 이 모델을 SUV라고 부르지 않았고, 대신 SAV(sport activity vehicle)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BMW는 이 모델을 ‘X5’라고 명명했습니다.
X5는 ‘불편함’과 ‘투박함’으로 점철되어 있던 SUV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야외 레저 활동은 물론, 격조 높은 품격과 운전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SUV는 X5가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X5는 최첨단 편의기능을 갖춰, 소비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 ‘오프로드 엔진관리 시스템’, ‘자동 차등 제어장치(ADB-X)’, ‘내리막 주행안정장치 (HDC)’ 등등, 기존의 SUV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기능들을 한가득 품고 있었죠. SUV를 처음 만들어본 기업의 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여기에 90년대 말부터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X5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전세계 판매량만 해도 70만 대에 달했죠. 3시리즈와 함께 BMW를 먹여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2000년 8월에는 한국 시장에 진출해, 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X5만큼의 운동 성능과 디자인을 가진 SUV는 존재하지 않았죠. 이 당시 충격 때문에 아직까지도 X5를 드림카로 삼고 계신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이후 1세대의 인기에 힘입어, 2006년에는 2세대 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기름값 폭등으로 인해 이전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으나, 디자인 하나만큼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습니다. 1세대 모델 대비 획기적으로 넓어진 차체도 한몫을 했죠.
반면 3세대 모델은 디자인 대신 성능으로 승부를 봤습니다. 특히 xDrive50i 모델은 V8 가솔린 엔진을 탑재해, 45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뿜어냈어요. 디자인에서는 호불호가 갈렸으나, 성능에서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들에겐 정말 최고의 패밀리 SUV 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X5는 4세대 모델에 이르렀습니다. 이쯤되니 BMW도 SUV 만드는데 도가 텄는지, 단점을 아무지 찾아봐도 흠 잡을 데가 없는 수준입니다. ‘완벽’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X5에요.
그래서인지, X5는 유난히 한층 더 비싼 모델들과 비교를 당합니다. 사실상 동급에서는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거든요. 동급에서 비교하려고 하면 “아니 그 돈이면 당연히 X5지”라는 말부터 나오죠. 괜히 X5가 ‘제왕’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X5의 상징과도 같았던 ‘고성능 디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정말 아쉬울 따름입니다. I6 디젤 쿼드 터보를 장착한 X5 M50d의 폭발적인 토크는 정말 끝내줬는데 말이죠. X5 팬들에게는 환경 규제만큼 서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1세대 X5 출시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X5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경쟁 브랜드에서 어떤 모델을 출시해도, X5는 꿋꿋이 선두주자 자리를 지키고 있죠.
BMW가 정말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한, X5의 명성은 계속될 것입니다. 최근 X5를 기반으로 한 수소연료전지차 소식이 들려오던데, 혹여 X5의 명성에 흠집이라도 낼까 여간 걱정 되는게 아닙니다.
과연 X5는 전기차 시대가 다가와도 ‘제왕의 품격’을 지킬 수 있을까요? 모든 아버지의 로망이 빛 바래지 않기를 바라며, X5에 버금가는 또 한번의 혁신을 기대해 봅니다.
글 / 다키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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