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루륨Q에 대하여
제프 머리건(Geoff Merrigan)
텔루륨큐(Tellurium Q)는 레코딩 스튜디오 엔지니어 출신 제프 메리건(Geoff Merrigan)이 영국 서머짓주 서머턴에 세운 오디오 케이블 전문 제작사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퀸즈 어워드(Queen's Award for Enterprise)를 2018년에 이어 2021년에도 수상했다.
현재 라인업은 블루(Blue), 블랙(Black), 실버(Silver), 그리고 플래그십 스테이트먼트(Statement) 시리즈로 나뉘며, 각 시리즈에는 또한 울트라(Ultra)와 다이아몬드(Diamond) 라인이라는 상위 등급이 존재한다.
엔트리부터 플래그십까지 그 순서대로 정리하면 Blue II - Ultra Blue II - Black II - Silver II - Blue Diamond - Ultra Black II - Ultra Silver - Black Diamond - Silver Diamond - Statement가 된다. 이번 시청기인 Black Diamond 랜케이블은 블랙 시리즈이지만 다이아몬드 라인이기 때문에 실버 II는 물론 울트라 실버보다 윗등급에 자리한 점이 눈길을 끈다.
텔루륨큐에서 밝힌 각 라인업별 소리 성향은 다음과 같다.
- 블루 패밀리 : 따뜻한 소리. 약간의 엣지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도드라지지 않고 편안한 소리를 들려준다.
- 블랙 패밀리 : 스무드하고 디테일한 해상력이 돋보이는 사운드. 그렇다고 자극적이거나 거칠지 않은 소리를 들려준다.
- 실버 패밀리 : 착색이 전혀 없고 선명하고 투명한 사운드. 최고의 해상력을 자랑한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고 특히 저역 재생 품질이 탁월하다.
텔루륨큐 케이블 설계 철학은 다음과 같다.
- 스피커케이블과 인터커넥터는 오디오 신호에 대해 일종의 필터(electronic filters) 작용을 하는데, 이 필터링이 적을수록 음질 면에서 유리하다.
- 케이블은 커패시턴스(capacitance)와 인덕턴스(inductance), 그리고 정확한 전송(accurate transmission)과 빠른 전송(high speed transmission), 이 4자 사이에서 밸런스가 이뤄져야 한다.
- 결과적으로, 이러한 밸런스가 잘 맞춰졌을 경우에만 오디오 신호의 위상이 정확하게 전송된다(phase accuracy).
결국 핵심은 주파수에 상관없이 언제나 뒤틀림이 없는 정확한 위상을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케이블의 가장 큰 책무이자 목표지점, 그리고 텔루륨 큐 케이블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 원 녹음 신호와 케이블을 통한 재생 신호가 서로 위상이 정확히 일치할 때에만 가장 선명하고 투명한 재생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텔루륨Q와 랜케이블
텔루륨Q에서는 이 같은 설계 철학과 라인업에 따라 다양한 케이블을 만들고 있지만 랜케이블은 블랙 다이아몬드 랜케이블이 유일하다. 랜케이블 대신 디지털 스트리밍 케이블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근거리 통신망을 뜻하는 랜(LAN)이 아니라, 디지털 스트리밍 음악에 특화한 케이블임을 강조한 분류로 짐작된다.
랜/스트리밍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연선(stranded) 또는 단선(solid) 8가닥이 들어있는 네트워크 케이블. 외부 서버와 정보를 ‘주고받는’ 역할이 기본이기 때문에 8가닥 선재에는 송신선(TX. Transmit), 수신선(RX. Receive), 송수신선(TRD. Transmit Receive Data)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 1번선 : TX+
- 2번선 : TX-
- 3번선 : RX+
- 4번선 : TRD2+
- 5번선 : TRD2-
- 6번선 : RX-
- 7번선 : TRD3+
- 8번선 : TRD3-
흥미로운 것은 통상의 랜케이블에서는 TX, RX 4개 선재만 사용하지만, 기가비트(1Gbps. 비트율) 이상의 랜 케이블에서는 TRD2, TRD3를 포함한 8가닥 선재 모두를 사용한다는 것. 이는 8비트를 동시에 송수신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16비트 CD 음질 수준의 1411bps, 또는 24비트 고음질 수준의 9216bps가 최대치인 스트리밍 케이블에서는 TR, RX 4개 선재만 사용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랜/스트리밍 케이블은 양 끝 단자로 RJ45 커넥터를 쓰며(Registered Jack), 전송속도와 대역폭과 관련해 CAT5/CAT5e(100Mbps, 100MHz), CAT6(1Gbps, 250MHz), CAT6a(1Gbps, 500MHz), CAT7(10Gbps, 600MHz) 등의 산업 표준이 있다(CAT은 Category의 약자). 또한 전송속도가 빠르고 대역폭이 넓어질수록 외부 전자파노이즈(EMI) 차단을 위한 쉴드 대책을 마련토록 하고 있다.
- CAT3 : Unshielded, 10 Mbps, 16 MHz
- CAT5 : Unshielded, 10/100 Mbps, 100 MHz
- CAT5e : Unshielded, 1000 Mbps / 1 Gbps, 100 MHz
- CAT6 : Shielded or Unshielded, 1000 Mbps / 1 Gbps, 250 MHz
- CAT6a : Shielded, 1Gbps / 10 Gbps, 500 MHz
- CAT7 : Shielded, 1Gbps / 10 Gbps, 600 MHz
- CAT8 : Shielded, 25 Gbps or 40Gbps, 2000 MHz
그러나 오디오 애호가이자 오디오 평론가로서 블랙 다이아몬드 스트리밍 케이블은 난공불락 느낌. 선재부터 지오메트리, 절연, 쉴드 등 통상 케이블 메이커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스펙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스피커케이블이나 인터케이블도 마찬가지여서 제작자 제프 메리간은 “나의 제작 노하우를 왜 공개해야 하는가? 직접 귀로 듣고 판단하라”라는 메시지를 여러 인터뷰에서 전한 바 있다.
실제로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만난 블랙 다이아몬드 스트리밍 케이블은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흰색 수축 튜브에 쓰여진 모델명과 방향성 표시, 그리고 편조 피복이 PET, 단자가 핀 접촉력이 좋은 텔레가트너라는 점만 파악될 뿐이다. 선재가 구리선인지 은선인지, 아니면 단선인지 연선인지, 절연체와 쉴드는 어떤 재질을 어떻게 썼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선재와 단자의 결합방식도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 다이아몬드 스트리밍 케이블을 투입해서 유의미한 음질상 변화가 있다면 최소한 그 근거를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스트리밍 케이블이나 USB 케이블 같은 디지털 케이블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음질 논란이 심각한 상황. 이와 관련해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우선 스트리밍 케이블은 송수신 정보가 모두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케이블인 것은 맞다. 하지만 각 선재에 실제로 0과 1이라는 ‘추상적인’ 비트가 흐르는가. 아니다. 아날로그 케이블과 마찬가지로 전압이 흐른다. 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전기 역시 송수신 측 사이에 전압 차이가 있어야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송수신 측에서 일정 전압 구간, 예를 들어 0도에서 180도 구간은 0으로, 또 다른 일정 전압 구간, 예를 들어 180도에서 360도 구간은 1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는 같은 디지털 케이블인 동축케이블의 특성 임피던스가 75옴으로 규정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임피던스는 결국 전류와 전압의 관계이기 때문이다(R = V / I). 물론 전압의 아날로그 파형이 곧바로 음악 신호인 아날로그 케이블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선재와 절연, 쉴드, 단자와 연결 방식에 따라 랜 케이블 각 선재에 흐르는 전압이 크든 작든 영향을 받고 이것이 디지털 케이블의 전송속도나 대역폭뿐만 아니라 최종 음질에도 관여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블랙 다이아몬드 디지털 스트리밍 케이블 시청에는 웨이버사의 W라우터와 브라이스턴의 BDA-3.14 스트리밍 DAC, BR-20 프리앰프, 28B3 모노블럭 파워앰프, 아발론의 Precision Monitor 2 스피커를 동원했다. 그리고 시청은 일반 랜 케이블과 비청 방식으로 이뤄졌다.
Fourplay - Tally Ho!
Heartfelt
일반 랜 케이블에서 텔루륨Q 스트리밍 케이블로 바꾸자 정보량의 확 늘어난다. 메인 멜로디 뒤에서 옹기종기 뛰어놀던 서브 멜로디가 보다 잘, 그리고 보다 탄력적으로 들린다. 덕분에 무대마저 더욱 입체적으로 바뀐다.
또한 리듬감도 살아났는데 마치 소스기기와 앰프를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시간축 특성이 좋아진다. 이 밖에 음들이 보다 싱싱하게 생기가 도는 것도 큰 변화. 전체적으로 쉴드 대책이 잘 이뤄진 아날로그 케이블을 들을 때, 혹은 룸 튜닝이 잘 이뤄진 시청실에서 음악을 들을 때와 비슷한 음의 촉감을 받았다.
Bill Evans Trio - Autumn Leaves
Portrait In Jazz
일반 랜 케이블로 들어도 SN비가 좋고 무대 앞도 맑고 투명하다. 공유기, 스트리밍 DAC, 앰프, 스피커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인이 워낙 상급이기 때문일 것이다. 블랙 다이아몬드 스트리밍 케이블로 바꾸자, 체감상 노이즈가 더 줄어든다. 그나마 남아있던 노이즈를 진공청소기로 쭈욱 빨아들인 느낌.
이 역시도 쉴드를 통해 전자파노이즈를 차단했을 때 얻는 이득과 비슷하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살아나고 음의 입자도 보다 고와지는 등 여러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됐다. 드럼의 경우 음들을 보다 잘게 쪼개서 들려주는 이미지.
Norah Jones - Those Sweet Words
Feels Like Home
일반 랜 케이블로 들어도 저음의 양감이나 탄력감, 대역간 밸런스가 좋다. 노라 존스 목소리의 온기도 잘 전해진다. 현재 룬 코어로 쓰고 있는 W 코어 덕도 크게 봤을 것이다. 블랙 다이아몬드 케이블로 바꾸면, 음의 확산성이 갑자기 좋아졌다는 인상.
좀 전이 가두리였다면 지금은 방목 자연산의 음이다. 전망도 보다 탁 트인 것 같고, 목소리의 텐션도 보다 잘 느껴진다. 무엇보다 보컬의 이미지가 또렷하고 목소리가 깨끗해졌는데, 마치 쉴드에 이어 접지까지 잘 이뤄진 오디오 시스템으로 바꾼 것 같다.
Brian Bromberg - The Saga of Harrison Crabfeathers
Wood
결과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선사한 곡이었다. 일반 랜 케이블로 들어봐도 저음의 핏이 좋고 배음 정보가 충실해 더 나아질까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음들이 무대 가운데를 아예 찢고 나와버린다.
파워는 세지고 음상은 또렷해졌으며 저음은 밑으로 더 내려간다. 필자의 가슴이 더 벌렁거리게 된 이유다. 특히 무대 가운데에 맺힌 음상 포커싱이 기막히다. 전형적인 하이엔드의 음과 무대다. 또 하나 체감상 유의미한 변화는 소릿결이 보다 소프트해졌다는 것. 기존에 살짝 남아있던 뻣뻣한 구석이 대폭 사라졌다.
총평
워낙 민감한 디지털 케이블이라 이 밖에도 많은 곡을 들으며 신중히 비청을 했다. 마이클 잭슨의 ‘Will You Be There’(Dangerous)에서는 보컬과 악기 윤곽선이 진해졌고, 콜레기움 보칼레의 ‘Cum Sancto Spiritu’(Bach Mass in B minor)에서는 보다 시원해진 음의 샤워를 만끽했다. 마치 전원부와 파워케이블을 바꾼 듯한 느낌. 앨리스 사라 오트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은 음끝이 아주 오래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사실 그리 놀랍지는 않다. 현재 텔루륨Q의 아날로그 XLR 인터케이블을 쓰고 있는 애호가 입장에서, 그리고 스테이트먼트 스피커케이블을 여러 번 비청한 오디오 평론가 입장에서 이 제작사의 실력은 이미 귀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디지털 케이블에서도 그러한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지 여부였는데 청감상 블랙 다이아몬드 스트리밍 케이블은 마치 전원부와 파워케이블을 동시에 바꾼 듯했다. 모든 오디오가 그렇지만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하이파이클럽(http://www.hificlu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