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MBL은 무지향 스피커의 본산이다. 1979년 설립 이래 무지향 스피커, 독일어로 라디알슈트랄러(Radialstrahler)를 만들어왔다. 현행 모델은 좌우채널 총 4타워의 위용을 자랑하는 플래그십 101 X-Treme, MBL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린 101 E MKII, 플로어스탠딩 2개 모델 111 F와 116 F, 스탠드마운트 2개 모델 120과 126이다.
이번 시청기는 스탠드마운트 윗 모델 120이다. 사진으로만 보면 동생 모델 126과 차이를 모르겠지만, 실물을 보면 확실히 덩치가 크고, 소리를 들어보면 확실히 윗급이다. 양 사이드에 장착된 다이내믹 드라이버 우퍼 2발의 직경 차이, 이로 인한 저역 하한의 차이일까 싶다. 120은 6.5인치, 126은 5인치를 쓰고, 120은 49Hz, 126은 70Hz까지 플랫하게 커버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MBL 라디알슈트랄러를 리뷰해오면서 간과했던 것이 하나 있음을 이번에 120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했던 팩터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MBL 무지향 유닛이 공기를 밀어내는 면적이 같은 크기의 일반 지향성 유닛보다 훨씬 넓다는 것이다.
이는 진동판이 360도 전방향으로 움직이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넓은 ‘면적’은 곧바로 밀어내고 잡아당기고, 압축하고 풀어주는 ‘공기의 양’을 뜻한다는 점에서 음질적 이득이 상당하다. 120에서 들려온 바이올린의 중고음이 왜 그 맑은 가을 하늘을 닮았으면서도 그렇게나 단단하고 촘촘하며 풍성했었던 이유다.
MBL과 라디알슈트랄러

MBL은 1979년에 설립됐으며, 회사 이름 MBL은 설립자인 멜레츠키(Meletzky), 바이네케(Beinecke), 렌하르트(Lehnhardt)의 이름 앞 글자에서 따왔다. 현 CEO는 크리스티안 헤멜링(Christian Hermeling), 수석 엔지니어는 유르겐 라이스(Jurgen Reis). 본사는 독일 에베르스발데(Eberswalde)에 있다.

MBL은 설립 첫해에 현행 101 E MKII 스피커의 전신인 2웨이 무지향 스피커 100을 내놓는 등 처음부터 라디알슈트랄러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독일어로 ‘모든 방향으로’(radial), ‘음을 방사하는 기기'(Strahler)라고 해서 라디알슈트랄러다. 라디알슈트랄러에는 한 방향으로만 소리를 내는 리히트슈트랄러(지향성 스피커)에는 없는 세계가 있었다.
라디알슈트랄러 유닛의 기본 원리는 라멜라(Lamella)라는 얇은 금속판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꽃봉오리 모양의 진동판을 플레밍의 왼손 법칙으로 울린다는 것. 그런데 이 진동판 윗부분이 축에 고정돼 있고, 아래쪽 라멜라들은 마그넷과 보이스코일에 의해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보이스코일에 가해진 로렌츠의 힘 덕분이다.
위는 고정돼 있고 아래는 위·아래로 움직이니 결국 전체 진동판이 활처럼 360도 전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우산을 빠르게 열었다 닫았다 했을 때 붕붕 소리가 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물론 진동판 지름이 작을수록 고역대, 진동판 지름이 클수록 중저역대를 담당한다. 라멜라 진동판 겉모습만 보고 ‘이게 어디 쉽게 움직이겠어?’ 싶지만 실제 만져보면 깃털처럼 부드럽다.
라멜라 재질은 초창기에는 얇은 구리를 썼으나 지금은 훨씬 가벼운 카본 섬유를 쓴다. 120의 경우 트위터는 24개의 카본 섬유 라멜라 (HT37), 미드레인지 유닛은 12개의 카본 섬유 라멜라 (MT50)가 투입됐다. 개수는 적지만 미드레인지의 각 라멜라 면적이 트위터 라멜라보다 넓다. 위에서 본 직경 역시 MT50이 HT37보다 넓다.
필자가 파악한 라디알슈트랄러 유닛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인클로저가 필요 없다, 2. 따라서 내부 정재파나 배플로 인한 회절, 포트 노이즈 같은 왜곡이 없다, 3. 360도 방사형 발음체에서 소리를 듣는 구조는 악기와 새소리가 사람 귀에 들리는 과정과 흡사하다, 4. 무지향 서브우퍼처럼 스피커 위치 선정이 180도 지향성 스피커보다 자유롭다.
MBL 120 본격 탐구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접한 MBL 120은 예의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뽐냈다. 전용 스탠드 위에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우퍼부 인클로저가 있고, 그 위에 중고역 라디알슈트랄러 유닛이 2층 석탑처럼 솟아 있다. 이들 앞과 뒤에는 알루미늄 그릴이 방패처럼 장착됐다. 중고역 유닛은 이처럼 인클로저가 없어서 어느 각도에서 봐도 다 보인다.
MBL 120은 기본적으로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에 각각 HT37과 MT50 라디알슈트랄러 유닛, 우퍼에 6.5인치 알루미늄 콘 유닛 2개를 투입한 3웨이 하이브리드 스피커다. 우퍼는 전용 인클로저 양쪽 사이드에 한 발씩 장착됐고, 인클로저 내부에서 알루미늄 바로 서로 연결돼 푸시-푸시로 작동한다. 콘 움직임에 따른 인클로저 진동을 차단시키고 저역 재생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스펙을 살펴보면, 주파수 응답 특성은 49Hz~30kHz, 공칭 임피던스는 4옴, 감도는 82dB를 보인다.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600Hz, 3.5kHz. 우퍼용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내부용적 22리터의 인클로저 뒷면에 하나가 나 있다. 가로폭은 29.9cm, 스탠드를 포함한 높이는 121.1cm, 안길이는 38.8cm, 무게는 28kg이다.

독특한 것은 스피커 케이블 연결 방식. 커넥터는 싱글 와이어링 전용으로, 스탠드 하단과 본체 하단에 마련된 커넥터 1조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스피커케이블을 스탠드 하단 커넥터와 체결할 경우, 스탠드 상단 커넥터와 본체 하단 커넥터는 점퍼 케이블로 연결해야 한다. 이 같은 방식은 사용자에게 일종의 옵션을 준 것으로 보인다. 126은 본체 하단에만 커넥터 1조가 있다.
정리를 해보면, MBL 120은 6.5인치 우퍼 2발이 600Hz 이하 대역을 커버하고, 미드레인지 MT50은 600Hz~3.5kHz, 트위터 HT37은 3.5kHz 이상 대역을 커버한다. 미드레인지 수비 범위가 무척 넓다는 점, 트위터가 30kHz까지 커버한다는 점,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통상(1kHz~3kHz)보다 높게 설정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처럼 미드레인지 재생 대역이 넓은 것은 그만큼 MT50 유닛이 밀어내거나(push), 끌어당기는(push) 공기의 양 또는 사람 귀에 닿는 밀도가 크게 변한다는 것이다. 고역대일수록 적거나 약하고, 저역대일수록 크거나 높다. 겉보기에는 미드레인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밑으로는 600Hz, 위로는 3.5kHz까지 커버할 수 있는 것도 360도로 진동판이 움직이는 덕분이다. 한마디로 무지향 풀레인지 유닛인 셈.
한편 동생 모델 MBL 126은 HT37, MT50 두 중고역 유닛과 공칭 임피던스, 감도 모두 동일하다. 대신 양 사이드 우퍼가 5인치, 우퍼 인클로저 내부 용적이 11리터를 보인다. 우퍼 사이즈가 상대적으로 작은 만큼 중저역 크로스오버가 650Hz로 올라온 점, 스펙상 저역 하한이 70Hz인 점도 차이를 보인다.
시청
MBL 120은 공칭 임피던스가 4옴으로 낮은 데다 감도까지 82dB로 아주 낮은 만큼 앰프 매칭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MBL이 앰프를 만들게 된 것도 자신들의 라디알슈트랄러 스피커를 제대로 울려 줄 앰프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 경험상 4옴 출력이 300W를 넘고 피크 전류가 25A 급은 되어야 MBL 스피커의 제 실력을 파악할 수 있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MBL 120 시청에는 MBL 노블(Noble) 라인의 소스기기 N31과 인티앰프 N51을 동원했다. N51은 클래스D 증폭으로 4옴에서 380W를 내는데, 예전 일반 스피커에 물려봐도 화끈한 구동력을 자랑했다. 피크 전류는 28A. 스피커케이블은 텔루륨Q의 실버 다이아몬드를 썼고, 음원은 룬으로 코부즈와 타이달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아티스트 Michael Jackson
곡 Black or White
앨범 Dangerous
N31과 N51 조합에 물려 들은 MBL 120의 첫인상은 배경이 무척 조용하고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다는 것. 만약 스피커가 전기로 작동하는 액티브 타입이었으면 전원 스위치를 껐나 의심했을 만큼 남달랐다. 진동판이 움직인다는 기척이 전혀 없이, 그냥 사람 목소리와 악기 소리, 그리고 마이클 잭슨 노래가 시청실 앞벽에서 터져 나왔다. 기본적으로 감도가 살벌하게 낮은 데 따른 반사이익이다.
저역의 양감은 두터운 붓으로 여러 번 칠한 유화 같았다. 확실히 22리터 인클로저 양 사이드에 붙은 6.5인치 알루미늄 우퍼 역할이 크다. 생각 이상으로 근육질의 음인데도 중고역과 매끄럽게 연결되는 모습이 멋지다. 중고음은 역시나 스트레스 없이 위아래로 확 열린 상황. 만약 중고음을 여는 문이 있었다면 ‘조심조심’이 아니라 단숨에 ‘활짝’ 열어젖힌 것 같다.
아티스트 Olafur Arnalds, Alice Sara Ott
곡 Nocturne In C Sharp Minor, B.49
앨범 The Chopin Project
하이엔드 스피커를 듣다 보면 악기나 가수의 이미지가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맺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트위터의 직진성(directivity)이 높을 때 그러한데, 유닛에서 나온 직접음이 시청실 벽에 맞고 튀어나오는 간접 음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듣는 실제 음이라는 것은 대개 360도 방사음이고, 이에 따라 허허벌판이 아닌 이상 간접음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MBL 120은 예술의 전당이나 빈 뮤지크페라인에서 실제 피아노와 실제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듯했다. 무지향 덕분에 음상과 음색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MBL 스피커를 듣다 보면 스피커가 자주 사라지는 것, 스피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무대 배경이 워낙 조용해서 바이올린 현이 손가락에 맞고 튕기는 소리도 세세히 들려왔다.
아티스트 Anne-Sofie Von Otter
곡 Green Song
앨범 For The Stars
여성보컬 곡에서도 적막한 배경과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안네-소피 폰 오터의 고음이 위로 올라가도 결코 얇아지지 않는 점이 대단하다.
이 역시 중고역 두 라디알슈트랄러 유닛이 인클로저가 없는 상태에서 워낙 많은 공기를 밀고 당긴 덕이다. 목소리의 음끝이나 스튜디오 잔향음도 잘 포착되고, 첼로가 주도한 저역과의 이음매는 매끄럽기 짝이 없다. 맞다. MBL 120이 들려주는 음과 무대는 찐이다.
지휘자 Leonard Bernstein
오케스트라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곡 Symphony No. 2 In C Minor "Resurrection" - I. Allegro Maestoso
앨범 Mahler: Symphony No. 2 In C Minor
말러의 오케스트라 대편성곡을 들어보면 1악장 초반, 오른쪽 무대에서 등장한 첼로와 베이스가 낮은 음들을 제대로 건드려준다. 두텁고 진득하며 꽉 찼다. 이어 왼쪽에서 등장한 현악 무리들은 유려하고 그윽하다.
600Hz 이상 대역을 커버하는 MT50과 HT37이 토해내는 음수가 많으니 이런 대편성곡 재생시 더욱 유리한 것 같다. 스탠드마운트 스피커 중에서 말러 2번을 이 정도로 재생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확실히 대형기 뺨치는 소리다.
아티스트 Fausto Mesolella
곡 Sonatina Improvvisata D’inizio Estate
앨범 Live ad Alcatraz
이번에 N31, N51, 120 조합으로 들으면서 몇 번이나 무릎을 친 곡이다. 파우스토 메소렐라가 연주한 기타 소리는 분명 맑은 청정 하늘을 닮았는데, 그 와중에도 음 하나하나가 힘이 배어있다. 결코 매가리 없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크지 않은 미드레인지에서 이처럼 풍성하고 탄탄한 중음이 나올 수 있는 배경도 다름 아닌 라디알슈트랄러 유닛에 있다. 맑고 깨끗한 음의 촉감은 물론 인클로저라는 속박을 벗어던짐으로써, 내부 정재파나 후면파 교란, 외부 회절 따위를 모두 없앤 결과다.
총평
MBL 독일 현지 공장도 가보고, 플래그십 101 X-Treme이나 101 E MKII도 여러 차례 들어봤지만, MBL 라디알슈트랄러 스피커는 양파 같다. 들을수록 새로운 매력이 발견된다. 이번에 들은 스탠드마운트 타입의 MBL 120은 그동안 지나쳤던 무지향 유닛의 숨은 장점을 속살처럼 보여줬다. 현장의 실제 악기 소리를 들어보면 그 풍성한 음수와 높은 음량에 깜짝 놀라는데, N51에 물린 MBL 120이 바로 그러했다. 진정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스피커가 아닐까 싶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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