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경우 예전 막선에서 벗어나 처음 구매한 오디오 등급의 케이블이 미국 오디오퀘스트(AudioQuest) 제품이었다. 엔트리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질 개선 효과가 확연해 ‘이래서 케이블을 바꾸는구나' 무릎을 치고 말았다. 케이스에 적힌 일목요연한 도체와 차폐, 단자, 지오메트리 설명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이후 리뷰 제품으로 여러 오디오퀘스트 케이블을 들어봤다. 충격적인 바이와이어링의 세계를 체험케 해준 Dragon Zero+Bass와 William Tell 스피커케이블, 무대 배경을 칠흑처럼 만들었던 Tornado 파워케이블, 여유로운 데이터 처리 능력이 돋보였던 HDMI Carbon 케이블 등이 기억에 남는다. 2019년에는 친절한 노신사이자 엔지니어, 오디오퀘스트 설립자인 윌리엄 로우(William E. Low) 씨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각설하고 이번에 리뷰한 제품은 오디오퀘스트의 FireBird XLR 인터케이블이다. 오디오퀘스트는 2019년에 신화속 생명체를 뜻하는 미씨컬 크리처(Mythical Creature)와 민간 전설 영웅을 뜻하는 포크 히어로(Folk Hero)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상위 미씨컬 크리처 시리즈는 용(Dragon), 불새(Firebird), 천둥새(Thunderbird) 순으로, 포크 히어로즈 시리즈는 윌리엄 텔(William Tell), 로빈 후드(Robin Hood) 순으로 구성됐다.
본격 비청에 앞서 제품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니 역시 오디오퀘스트다웠다. 일부 케이블 제작사는 영업 비밀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도체와 차폐, 지오메트리 등에 대한 정보를 꽁꽁 싸매지만, 오디오퀘스트는 그런 일이 1도 없다. 도체는 무엇이고, 절연과 쉴드는 어떻게 이뤄졌으며, 케이블 출구 쪽에 달린 배터리 전원 팩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쾌도난마다.
비청에 들어가니 승부(?)는 예상외로 싱겁게 끝났다. 비청을 당한 비슷한 가격대 케이블에 비해 최소 10가지 항목에서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였다. 청감상으로는 음이 깨끗하고 맑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다, 배경이 정숙하다, 무대 앞이 투명하다로 요약된다. 이를 다시 압축하면 결국 ‘노이즈가 사라졌다'는 것. 이번 리뷰는 불새 XLR 인터케이블은 어떻게 노이즈를 없앴고, 노이즈를 없앤 결과 어떤 음과 무대를 들려줬는지에 대한 필자의 리포트다.
Firebird XLR 인터케이블 탐구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은 기본적으로 도체로 솔리드 은선을 쓴 3심 밸런스(정위상 +신호선, 역위상 +신호선, 접지선) 인터케이블이다. 3심은 각자 독립된 블랙/레드 피복에 쌓였고, 출구, 그러니까 수놈 단자 쪽에 절연체 둘레에 전기를 쏴주는 배터리 팩이 달렸다. 실버 마감의 구리 단자에는 불새 그림과 글자, 방향 표시가 적혀 있다.
먼저 도체(선재)다.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은 오디오퀘스트에서 PSS(Perfect Surface Silver)라고 명명한 은선을 신호선 및 접지선 도체로 썼다. PSS는 오디오퀘스트 최상위 도체인데, 상급 드래곤에는 투입량이 더 많고, 아래 모델 썬더버드에는 PSS 대신 동선 PSC+(Perfect Surface Copper+)가 투입됐다.
여러 가닥의 연선(stranded) 대신 굵은 한 가닥 단선(solid)을 쓰고, 단선 표면을 매끄럽고 깨끗하게 마감했을 때 음질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 오디오퀘스트의 주장이다.
도체를 감싼 유전체(dielectric)로는 공기를 가둔 FEP 에어 튜브를 썼다. 역시 절연율이 세상 최고인 공기를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3심 모두를 유전체로 감싼 것이 아니라 플러스 신호선(정위상, 역위상)에만 유전체를 감쌌다. 이는 2심인 RCA 케이블도 마찬가지. 이렇게 의도적으로 손실 절연(lossy insulation)을 시켰을 때 네거티브 신호선이나 접지선의 퍼포먼스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 오디오퀘스트의 설명이다.
유전체에는 또한 지난 2014년에 도입된 DBS(Dielectric-Bias System) 테크놀로지가 베풀어졌다. 말 그대로 유전체에 전기적으로 바이어스를 걸어 음질 향상을 꾀한 것이다. 오디오퀘스트에 따르면 유전체 둘레에 강력한 정전기장(electrostatic field)을 생성, 1) 신호 전송에 방해가 되는 에너지가 유전체에 축적되는 것을 막고, 2) 유도성 전자파 노이즈(induced RF noise)가 신호선에 침범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유전체 바이어스 시스템에 동원된 것이 배터리 팩이다. 유전체 곁에 심어 넣은 얇은 선재(DBS Field Element)에 72V DC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네거티브 신호선이나 접지선에는 유전체가 없으므로 RCA 케이블에는 +신호선 1곳에, XLR 케이블에는 정위상 +신호선과 역위상 +신호선 2곳에 전기를 가한다. XLR 케이블에 72V 전기가 듀얼로 공급되는 이유다.
실제로 파이어버드 XLR 배터리 팩을 열어보면, 12V 건전지가 총 12개(6개 72V + 6개 72V) 투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자파(RF) 노이즈를 본격적으로 차단하는 쉴드(shield)는 그래핀과 카본을 썼다. 이들로 여러 겹의 메쉬 망을 만들어 안쪽의 FEP 에어 튜브를 감싼 것. 오디오퀘스트에서는 고조파 배음과 공간 정보를 담고 있는 로우 레벨 신호를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RF 노이즈를 꼽고 있는데, 이 메쉬 망이 RF 노이즈를 열로 바꿔 소멸시킨다고 한다(NDS. Noise Dissipation System). 또한 메쉬 망 안쪽에는 RF 노이즈를 따로 빼내는 전용 은도금 구리 선재(RF Drain Metal)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끝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오디오퀘스트의 전용 지오메트리라 할 제로 테크놀로지(Zero Characteristic Impedance Technology). 오디오퀘스트에 따르면 케이블에 고유한 특성 임피던스를 ‘제거’함으로써 케이블의 고역쪽 트랜지언트 특성과 저역의 다이내믹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고정 값인 특성 임피던스가 정말로 제거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도체에서 발생하는 정전기장을 제거하고 RF 노이즈를 소멸시킴으로써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참고로, 제로 테크놀로지는 오디오퀘스트가 전원 장치 Niagara 7000과 Storm 시리즈 파워케이블에 처음 적용한 기술. 두 제품 자체가 파워 컨디셔너로 유명한 퍼맨 사운드(Furman Sound) 출신 엔지니어 가스 파웰(Garth Powell)이 오디오퀘스트로 옮겨 내놓은 첫 결과물이었다. 전원 관련 기술을 케이블에도 적용하니 기존보다 훨씬 나은 음질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RF 노이즈가 뭐길래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의 기술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지점에서 모이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RF 노이즈다. 이 노이즈를 차단하고 소멸시키기 위해 카본 그래핀 메쉬 실드 망, RF 드레인 은 도금 선재, 72V DC 전기를 이용한 DBS가 총동원되었다. 오디오퀘스트가 자랑하는 제로 테크놀로지도 RF 노이즈 제거를 통해 얻게 된 자랑스러운 부산물이다.
RF 노이즈는 쉽게 말해 전자파 노이즈다. 전자파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전자파 노이즈'라고 부르는 것은 원 음악 신호의 품질을 갉아먹는 노이즈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영미권에서는 이처럼 전자파로 인해 원 신호가 방해받는 현상을 전자기장 간섭, EMI(Electro-Magnetic Interference)라고 부른다.
오디오와 관련해 전자파 노이즈를 발생시키는 기기나 부품은 많다. 디지털 클럭, SMPS 전원부, 평활 커패시터, 마이크로프로세서, LED,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전자파 노이즈는 전류 변화가 급격할 경우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스위칭 주파수가 높은 SMPS가 주범으로 꼽히지만, 리니어 전원부도 예외는 아니다. 정류단 뒤에 위치하는 평활 커패시터에 양파 정류의 경우 120Hz, 즉 1초에 120번이나 출렁이는 전기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파워앰프 역시 이들 커패시터가 발생시키는 순간 피크 전류값이 최대 1000A에 달하기 때문에 엄청난 전자파 노이즈를 발생시킨다. 대형 파워앰프의 전원 케이블일수록 특별히 쉴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도 전원부에서 발생한 전자파 노이즈가 전원 케이블을 타고 섀시 바깥으로 빠져나와 케이블 주위로 방사되기 때문이다.
RFI(Radio Frequency Interference), 무선주파수 간섭은 이 같은 EMI 노이즈가 무선주파수 대역(10kHz~1GHz)에서 발생할 때를 일컫는다. 때문에 RF 노이즈는 가청 영역대(20Hz~20kHz)와 배음 영역대(6kHz~20kHz)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가청 영역대 중에서 10kHz 이상에 해당되는 대역은 배음 영역대에 불과하지만, 이 배음 영역이 각 악기의 음색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오디오 재생음은 RF 노이즈에 의해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MSB Premier DAC, 프리앰프로 MBL 6010D를 동원했다. 파워앰프는 MBL의 모노블럭 9008A, 스피커는 마르텐의 Parker Trio Diamond Edition. 먼저 비슷한 가격대의 XLR 인터케이블 A로 들어본 후 파이어버드 XLR로 교체해 다시 들어보고, 이후 다시 처음 들었던 A 케이블로 마무리를 했다.
아티스트 Boz Scaggs
곡 Lowdown
앨범 Greatest Hits Live
먼저 A 케이블로 들어보면, 라이브 무대 특유의 열렬한 관객 환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경 노이즈가 아주 적은 점이 눈에 띈다. 드럼은 파워풀하고, 일렉 기타 역시 똑 부러지고 야무진 소리를 낸다. 중고음을 약간 강조하는 듯하지만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을 교체 투입하자 많은 차이가 났다. 음악이 더 탄력적이고 리드미컬하게 들리고, 무대에 등장한 각 악기들과 보컬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졌다. 무엇보다 해상력이 대폭 늘어났고 음이 보다 깨끗해졌다. 맞다. 절연과 쉴드가 잘 이뤄진 은선 케이블의 특성이다. 정리 정돈이 잘 된 음, SN비가 높아진 무대다.
다시 A 케이블로 바꿔보면, 확실히 정보량이 줄어든다. A 케이블을 처음 들었을 때 깔끔한 소리라고 느낀 것은 어쩌면 무엇인가를 잘라먹었다는 안 좋은 반증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노이즈 플로어가 소폭 올라왔다.
아티스트 Olafur Arnalds, Alice Sara Ott
곡 Nocturne In C Sharp Minor, B.49
앨범 The Chopin Project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이 상대적으로 맑은 피아노 소리를 들려준다. 음악에서 감칠맛, 은은한 맛이 더 도는 것도 파이어버드 XLR 쪽이다. 바이올린 연주자의 활 긋는 동작 음이나 기척도 잘 포착해낸다. 비유컨대 표정이 풍부해진 상황. 고음 쪽도 확 살아났다. 파커 트리오 스피커의 다이아몬드 트위터가 비로소 제 실력을 발휘한 것 같다.
다시 A 케이블로 바꿔 보면 처음 피아노 음이 매가리가 없고 윤곽선도 살짝 뭉개진다. 타격감이 약해진 것은 정말 예상 못 했던 변화다. 오디오퀘스트가 주장한 대로 케이블의 특성 임피던스를 제거, 소스(Premier DAC)와 로딩(6010D)의 임피던스 매칭이 보다 제대로 이뤄진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밖에 무대 앞은 덜 투명해졌고 바이올린의 고음은 심하게 죽었다. 이는 RF 노이즈의 관리 부실 탓으로 짐작된다.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I’ve Got You Under My Skin
앨범 Live In Paris
과거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자주 들었던 A 케이블이기에 그 성향이 비교적 쉽게 파악된다. 플루트, 현악, 하프, 기타의 질감이 포근하게 잘 전해지고, 보컬의 음상도 흔들림 없이 잘 맺힌다.
더 나아질까 싶었지만 파이어버드 XLR 케이블로 바꾸자 보다 많은 음들이 들리고, 플루트의 고음은 체감상 더 위로 올라간다. 현악은 더 그윽한 소리를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선명하며, 야무지고 풍성한 소리다. 배경이 칠흑으로 바뀐 것도 기분 좋은 변화다.
다시 A 케이블로 듣자 음들이 하나같이 강성으로 변했다. 케이블에 자기 색채가 있다는 증거다. 포근했던 다이애나 크롤의 목소리에서는 공기감과 습기가 살짝 빠졌다. 가수의 컨디션이 갑자기 안 좋아진 것 같은 상황. 다른 반주 악기들도 파이어버드 XLR 케이블에 비해 덜 부각되었다.
지휘 Kirill Petrenko
오케스트라 Berliner Philharmoniker
곡 Beethoven: Symphony No. 9
앨범 Beethoven: Symphony No. 9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을 투입하자 합창 악장의 남성 독창자가 아주 맑은 소리를 낸다. 색 번짐은 사라지고 발음은 보다 뚜렷하게 들린다. 무엇보다 필자의 귀에 와닿는 음의 감촉이 몇 배는 고급스러워졌다.
DAC이 일궈낸 해상력을 손실 없이 그대로 프리앰프로 넘겨주는 것 같다. 다시 A 케이블로 바꿔보면 남성 독창자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볼륨감도 크게 줄어들었다. 무대의 좌우 폭과 안길이도 짧아졌다.
아티스트 Charles Mingus
곡 Goodbye Pork Pie Hat
앨범 Mingus Ah Um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을 투입하자 음의 결이 훨씬 매끄럽고 입자가 고와졌다. 찰스 밍거스의 베이스 핑거링도 더 생생하게 들리고 무대를 감싸는 공기감이 무척 쾌적해졌다. 악기들의 배치가 더욱 입체적으로 바뀐 것도 큰 변화
특히 오른쪽에서 등장한 알토 색소폰의 숨결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 다시 A 케이블로 바꿔 들어보면, 그냥 평범한 음과 무대가 되고 말았다. 투명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확 줄어든 것이다.
총평
오디오 케이블은 결국 시청을 통해 그 퍼포먼스를 입증할 수밖에 없다. 선재로 표면 처리에 신경을 쓴 솔리드 은선을 투입하고, 유전체와 쉴드에 케이블에 좋다는 여러 재질이 투입됐어도 소리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특히 다른 브랜드에는 없는 기술들, 예를 들어 배터리 팩을 이용한 DBS나 특성 임피던스를 없앤 제로 테크놀로지 같은 경우는 그 평가 잣대가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오디오퀘스트의 파이어버드 XLR 인터케이블은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비청 결과, 음이 보다 깨끗하고 맑아지고,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어지며, 배경이 정숙해지고, 무대 앞이 투명해졌다. 청음 노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투명'과 ‘정숙'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을 따져보면, 여린 음악 신호가 흐르는 인터케이블 특성상 RF 노이즈의 폐해를 극도로 줄인 효과가 가장 커 보인다. 애호가들의 진지한 비청을 권해드린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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