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헤밍웨이(Hemingway) 케이블을 들었다. 그것도 플래그십 Z-core 시리즈의 최상위 라인인 Omega XLR 인터케이블이다. 제트코어 시리즈가 처음 나왔던 2019년 봄, 헤밍웨이 정도영 대표와 함께 케이블 AB 비청을 해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필자는 그 해 연말, 하이파이클럽이 2019 올해의 케이블을 꼽아달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제트코어 시리즈를 선택했다.


이번에는 골드 컬러였다. 제트코어 시리즈는 현재 최상위 오메가부터 시작해 시그마(Sigma), 베타(Beta), 알파(Alpha)로 내려가는데, 외관상 구분은 커넥터와 스플리터 색상으로 할 수 있다. 오메가가 골드, 시그마가 퍼플, 베타가 블루, 알파가 블랙이다.
제트코어 오메가 XLR 인터케이블을 MSB의 Premier DAC과 MBL 6010D 프리앰프 사이에 투입, 2개 케이블과 비청했다. 세상에. 거의 모든 평가항목에서 월등했다. 넘사벽 가격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케이블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구나, 감탄 또 감탄했다. 오디오 기기 리뷰를 하면서 1년 중 몇 번 안 오는 별의 순간이었다.
헤밍웨이와 전자기장, 역기전력, 그리고 FMCF

헤밍웨이 케이블은 잘 아시는 대로 정도영 대표가 이끄는 시그마 전자가 2008년에 런칭한 하이엔드 케이블 브랜드다. 정 대표는 자택에 거의 박물관급 하이엔드 및 빈티지 오디오 기기들을 운용하는 마니아인데, 오디오 시스템의 가장 취약지점이 다름 아닌 케이블이라고 판단해 이 세계를 파고들었다.
정 대표가 주목한 것은 오디오 케이블이 맞닥뜨리는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과 역기전력(counter electromotive force) 문제였다. 그런데 그 시각이 남달랐다. 여느 케이블 제작사들이 전자기장과 역기전력을 어떻게 해서든 ‘제거' 또는 ‘차단' 하려고 한 것에 비해, 헤밍웨이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음질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첫째. “전자기장을 잘 활용하면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은 미국 와이어월드의 DNA 펠릭스 지오메트리를 연상케 한다. 이 역시 케이블 도체에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전자기장을 에너지 전송의 핵심 수단으로 파악, 결과적으로 최대 64 다발(묶음)의 은선을 최대한 집적시키고 있다. 적은 수의 도체 다발로는 에너지 전송에서 손실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어쨌든, 이런 맥락에서 헤밍웨이가 개발해 국내 특허까지 받은 것이 FMCF(Frequency Modulation Cavity Fundamentals. 주파수변조공동화원리) 기술이다. ‘구멍'(cavity)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어 인슐레이터에 일정 간격을 두고 낸 구멍을 통해 도체에서 발생한 전자기장을 컨트롤한다는 발상이다. 전자기장 입장에서는 일종의 숨통이 트인 셈이다.
그런데 기술 이름에 ‘주파수 변조'(frequency modulation)가 들어간 것은 FMCF 기술이 전자기장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주파수 변조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신호인 교류 주파수의 변화와 이에 따른 전자기장의 요동, 이로 인한 특정 지점에서 갑자기 커져버린 주파수의 진폭, 즉 주파수 변조를 일정 간격으로 뚫린 구멍을 통해 해소한다는 발상이다. 이는 헤밍웨이에서 공개한 FMCF 그림을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역기전력을 잘 활용하면 저역 품질을 높일 수 있다". 역기전력은 말 그대로 전력을 받아 움직인 스피커 진동판이 의도치 않게 일으킨 전력이다. 한마디로 스피커가 발전기가 되어버린 것. 우퍼의 움직임으로 트위터가 제 몫을 못하는 것도 결국 우퍼가 발생시킨 역기전력이 트위터 움직임을 방해,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역기전력은 스피커케이블의 리턴선(마이너스 신호선)을 타고 다시 앰프로, 소스기기로 흘러들어간다.
헤밍웨이가 고안해낸 역기전력 활용법은 2가지다. 하나는 FMCF 기술을 통한 것이다. 전자기장과 마찬가지로 일정 간격을 두고 뚫은 에어 인슐레이터 구멍을 통해 이를 배출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리턴선에 역기전력 전용 전송 채널을 추가, 일종의 저역 보상 값을 준 것이다. 이와 관련 정 대표는 필자에게 “마치 앰프의 네거티브 피드백처럼 저역에 대한 보상 값을 루프(loop) 방식으로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헤밍웨이 케이블 히스토리로 보면, FMCF 기술은 2013년 Indigo 시리즈에, 역기전력 보상 채널은 2017년 Creation S 시리즈에 처음 투입됐다. 헤밍웨이의 또 다른 키워드가 케이블 도체 굵기를 달리해 고역과 저역, 앰비언트 신호를 멀티로 전송한다는 것인데(멀티웨이 트랜스미션), 크리에이션 S 시리즈는 기존 3웨이(고역, 저역, 앰비언트) 채널에 역기전력 전용 채널을 마련, 4웨이로 변신했다.
Z-core Omega XLR 인터케이블 본격 탐구
제트코어(Z-core) 시리즈는 2019년 봄에 탄생했다. 전자기장 컨트롤을 위해 가운데 그라운드선을 이중으로 두고 신호선을 ‘Z’ 모양으로 감았다고 해서 Z-core라고 명명됐다. 제트코어 지오메트리 목표는 전자기장 컨트롤을 통해 원음과 동일한 정보량을 뒷단에 전송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FMCF 기술이 제트코어 시리즈에도 베풀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제트코어 시리즈는 앞서 나왔던 크리에이션 S 시리즈가 4웨이(고역, 저역, 앰비언트, 역기전력) 전송 방식이었던 데 비해 한 채널을 더 늘린 5웨이 전송 방식을 채택했다. 추가 채널이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역시 도체 굵기를 달리해 다른 전송 채널과 차별화를 이뤘을 것으로 보인다. 알파, 베타, 시그마, 오메가 순으로 높아지는 제트코어 시리즈 등급은 투입된 도체 수에 따라 나눠진다.
시청기인 제트코어 오메가 XLR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1) 도체로 동선과 실버-골드 합금선, 2) 차폐재(인슐레이터)로 테플론과 우레탄, 고무, 실리콘, 3) 피복으로 나일론 네트를 쓴, 4) 길이 1.5m짜리 3심 밸런스 인터케이블이다.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접한 이 케이블의 피복이나 커넥터, 스플리터 마감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예상대로 다소 뻣뻣했다. 피복을 만져보면 내부 선재가 나선형 모양으로 꼬아져 있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Z-core 지오메트리 때문으로 보인다.

헤밍웨이가 공개한 Z-core 시리즈 케이블 내부 모습을 보면, 선재 지오메트리와 차폐 구조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가장 안쪽에 1차 절연을 끝낸 30~60개에 달하는 도체가 있고, 그 위를 뒤퐁이 개발한 절연체 테플론(Teflon)으로 감쌌다. 이어 우레탄(Urethane), 고무(Rubber), 실드(Shielding), 실리콘(Silicon)으로 감싼 뒤 나일론 네트(Nylon Net)로 최종 마감했다. 결국 총 6겹으로 차폐가 이뤄진 셈이다.
한편 이 케이블에 베풀어진 지오메트리는 위에서 말한 Z-core이며, 핵심 기술은 FMCF, 전송 채널은 5웨이 방식을 채택했다. FMCF의 경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1) 아주 얇은 공기층을 사이에 두고 도체에 감긴 감긴 테플론 등 각 절연체에 2) 일정 간격으로 어긋나게 구멍을 뚫어 3) 전자기장과 역기전력을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 제트코어 오메가 케이블은 헤밍웨이의 또다른 전매특허인 ‘3파장/5파장’(Three/Five wavelength) 선재 구성 방식을 투입, 기음과 배음을 철저히 분리해 전송하고 있다. 즉, 플러스, 마이너스, 그라운드 선에 각각 기음과 배음 전송을 위한 선재 2개를 투입한 것인데, 이를 통해 보다 선명한 음상과 자연스러운 배음, 디테일한 표현력, 더 넓어진 공간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시청

제트코어 오메가 XLR 시청에는 소스기기로 MSB Premier DAC, 프리앰프로 MBL 6010D를 동원했다. 파워앰프는 MBL의 모노블럭 9008A, 스피커는 마르텐의 Parker Trio Diamond Edition. 프리와 파워앰프 사이에는 제트코어 시그마 XLR 인터케이블, 스피커케이블은 에콜의 Limited Edition 2를 썼다. 음원은 룬으로 타이달과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본격 시청에 앞서 헤밍웨이의 Indio 2 XLR 케이블(A)과 다른 브랜드의 XLR 케이블(B)을 번갈아가며 같은 자리에 투입, 시스템 성향을 익혔다. 인디고 2에서는 전체적으로 똑 부러지고 야무진 소리, B 케이블에서는 깨끗하고 섬세하고 맑으며 SN비가 높은 소리가 나왔다.
아티스트 Boz Scaggs
곡 Lowdown
앨범 Greatest Hits Live
제트코어 오메가 XLR을 투입하자 무대가 확 넓어진다. B 케이블보다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앞서고 에너지와 스피드도 넘친다. 거의 모든 항목이 나아진다. 체감상으로는 일단 소리가 파워풀해졌고, 음상 역시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각자 제 자리에서 노래하고 연주한다는 인상. 덕분에 스피커는 완전히 자리를 감추고 무대는 실물처럼 그려진다.
이 모든 변화의 배경에는 헤밍웨이의 FMCF 기술이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원 음악 신호에 담긴 에너지와 정보가 소스기기에서 프리앰프로 손실 없이 그리고 상처 없이 넘어간 증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첫 곡부터 1년 중 몇 번 안 찾아오는 별의 순간을 만끽했다. 모든 소리가 싱싱하게 살아났다.
아티스트 Olafur Arnalds, Alice Sara Ott
곡 Nocturne In C Sharp Minor, B.49
앨범 The Chopin Project
인디고 2 케이블에서는 조금 억센 느낌을 받았고, B 케이블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보다 연해지고 활 긋는 동작음이 더 잘 들렸다. 제트코어 오메가 XLR 케이블을 투입하니 지금까지 놓쳤던 초반 피아노의 바디 울림소리가 포착돼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피아노가 바로 앞에 있는 느낌.
더 놀란 것은 바이올린이었는데, 활과 현, 바디에서 나무 향과 쇠 비린내까지 났다. 이는 3파장/5파장 선재 구성으로 배음 정보를 착실히 전송하고, 내부 전자기장을 활용한 FMCF 기술 덕에 외부 전자파 노이즈가 힘을 못 쓴 결과로 보인다. 어쨌든, 황급히 시청 메모에 휘갈겼다. ‘이 케이블로 들은 이 곡의 바이올린 소리는 진정 역대급이다’라고.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I’ve Got You Under My Skin
앨범 Live In Paris
B 케이블로 들어보면 무대를 꽉 채운 풍성한 음이 압권이다. 칠흑처럼 펼쳐진 무대 배경 위로 들리는 현악 소리 또한 아주 그윽해서 듣기에 좋았다. 제트코어 오메가 케이블을 투입하면 어떻게 더 좋아질까 기대가 컸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각 이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첫째. 플루트와 하프 소리가 명확히 들렸다. 둘째. 덕분에 스피커가 완전히 사라졌다. 셋째. 크롤의 노래와 반주 기타 및 드럼이 모조리 수두룩하게 들렸다. 따지고 보면, 소스기기와 프리앰프 사이의 윗물이 맑아진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앞에서 놓친 것은 뒤에서 뭘 해도 복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휘 Kirill Petrenko
오케스트라 Berliner Philharmoniker
곡 Beethoven: Symphony No. 9
앨범 Beethoven: Symphony No. 9
남성 독창자의 낮은 저음을 어쩌면 이렇게 맑고 똑 부러지게 낼 수 있을까. 여기에 오케스트라 현악들과 가세해도 전체적인 해상력은 조금도 나빠지지 않는다. 합창은 저마다 발음이 또렷하고 분명하게 들린다. 소프라노의 고음 역시 위로 보다 잘 뻗는다. 혼탁, 어수선, 흐릿, 이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터케이블이다. 어쩌면 필자만 몰랐고 남들은 다 알았던 세계로 들어선 듯했다.
아티스트 Michael Jackson
곡 Who Is It
앨범 Dangerous
드럼과 퍼커션 소리가 분별력 있게 들리고, 전체적인 음의 스피드가 훨씬 빨라졌다. 체감상으로는 파워앰프의 댐핑팩터가 더 상승한 느낌. 덕분에 깔끔하고 핏이 좋은 저음이 술술 나온다. 타격감도 세진 상황. 이에 비하면 인디고 2는 드럼 터치에서 약간의 부밍과 펑퍼짐한 구석이 있고,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는 주변 저음에 약간 파묻히고 만다. 다시 제트코어 오메가로 들어보면,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가 이 정도로 탄력적이고 리퀴드 했었나 싶을 만큼 크게 변한다.
총평
이 밖에도 여러 곡을 들었다. 샨탈 챔버랜드의 ‘Miss Sarajevo’는 그녀가 바로 앞에서 노래하는 통에 스피커가 왜 서 있는지 모를 정도였고, 산타나의 ‘Whole Lotta Love’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일렉 기타의 에너지에 거의 넋을 잃고 말았다. 마이클 잭슨의 ‘Black Or White’는 무대 좌우는 물론 위아래까지 꽉 채운 음들의 향연을 만끽했다.
이번 기회에 헤밍웨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예전 크리에이션 S는 물론이거니와 제트코어 시리즈를 처음 접한 4년 전만 해도 헤밍웨이의 FMCF 지오메트리와 멀티웨이 전송 기술 등의 효과를 반신반의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무엇보다 제트코어 오메가 XLR 케이블이 선사한 톱 티어급 퍼포먼스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호가들의 세심한 비청을 권해드린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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