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이 상을 주다니?
내가 처음 텔루륨 Q(TQ)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것은 2019년 초엽이었다. 당시 나는 영국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 브리스톨에서 매년 2월 말에 개최하는 ⟨브리스톨 오디오 쇼⟩에 참관하고 있었다.
사실 이 쇼는 규모가 작고, 참관객들도 많지 않은, 일종의 로컬 쇼다. 절대 인터내셔널 쇼는 아니다. 따라서 주로 영국 브랜드가 많이 보이는데, 실제로 영국에서 오디오 좀 만든다는 회사는 총집결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새삼 대영제국의 오디오 산업이 갖는 힘을 제대로 느꼈다. 로컬 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브랜드가 내게는 친숙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아시아 또 전 세계에 영국 오디오 회사들이 갖는 영향력과 친화력이 엄청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나는 TQ라는 신생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영향력을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 영국의 오디오라고 하면 스피커와 앰프 그리고 소스기가 주류를 이룬다. 몇몇 케이블 회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중저가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브리티시 사운드라는 것이 일반 애호가들이 부담 없이 음악을 즐기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케이블 역시 이런 정책을 따르는 모양이다.
한데 TQ는 창업한지 10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저가는 물론 하이엔드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또 영국 여왕, 당시 엘리자베스 2세가 상까지 줬다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퀸스 어워드(Queen’s Award)
현재 퀸스 어워드는 킹스 어워드로 바뀌었다. 당연하다. 여왕의 아들 찰스가 현재 왕위를 계승한 상태니까. 하지만 이 상의 전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여왕 상의 정식 명칭은 “Queen’s Award for Enterprise”이다. 즉, 영국의 기업이나 회사를 대상으로 다음 4개의 항목에 걸쳐 심사를 한 후, 매년 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1966년부터 시작했으니 참 역사가 길다.
그럼 TQ는 IT나 대기업이 아닌데, 왜 이 상을 받았을까? 실제로 오디오 쪽에선 네임이나 린과 같은 회사는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고 한다. 즉, 오디오 업체에도 문호는 열려 있는 셈이다.
그 4가지 항목은 다음과 같다. 국제 무역, 혁신, 지속적인 서장,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카테고리로 해서, 영국의 수많은 기업과 회사를 대상으로 심사하는 것이다. 총 12개의 권역에 걸쳐 철저한 리서치가 이뤄지며, TQ는 “사우스 웨스트” 지역에서 선발되었다.
여기서 사우스 웨스트는 런던을 기점으로 할 때, 서쪽 끝 지역, 그러니까 대서양을 향한 지역을 말한다. 그 위로는 웨일스가 있으니, 아무튼 꽤 촌 동네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TQ는 이 상을 받는 데에 있어서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직원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유구한 전통을 가진 것도 아니며, 지역 역시 산골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한데 왜 이 상을 받았을까?
텔루륨 Q의 진정한 가치

나는 이번 리뷰를 쓰면서, 당시의 기억이나 만남이 생각나서 황급히 이 부분을 찾아봤다. 현재 TQ는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상을 받았는데, 2018년의 시상 이유를 보고 아하, 잠시 탄복하고 말았다.
TQ가 받은 부문은 국제 무역이다. 즉, 해외에 활발하게 수출한 것이 눈길을 끈 것이다.
그런데 선정된 이유를 자세히 읽어보니, 심사를 담당하는 측이 오디오 산업에 꽤 정통하다는 알 수 있었다. 이 점은 우리 입장에서 참 부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일단 영국 내에 별로 적수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연하다. 영국의 케이블 회사 중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대체 몇 개나 될까?
또 R&D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서, 이런 전통적인 마켓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홈뿐 아니라, 프로 오디오, 레코딩 스튜디오 등에 골고루 납품해서 유럽뿐 아니라 북미,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두루두루 커버한 점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나는 이것이 절대 단순한 인사치레라고 보지 않는다. 이 상이 갖는 영광과 의미가 영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말로 꼼꼼하게 심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비드 사태가 벌어져, 개인적으로 TQ와 친숙해질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 4년이 흐른 지금, 두 개의 스피커 케이블을 받았다. 바로 블랙 2와 울트라 블랙 2다. 여러모로 만감이 교차한다.
텔루륨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잠까 회사명으로 쓰고 있는 텔루륨(Tellurium)이 대체 뭔가, 잠깐 점검해 보자. 실은 준금속에 속하는 특수 물질로, 원자 기호로 52번째에 속한다. “Te”라고 쓰고 있다. 정말 극도로 희귀한 물질이어서, 대학 때 화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상,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는 원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 물질을 회사 이름으로 썼을까?
들리는 이야기로는, 영국의 저명한 스튜디오 관계자가 케이블에 매우 정통한 바, 그의 입에서 이 물질에 대한 언급을 듣고, TQ의 창업자가 정열적으로 연구한 끝에 이 희귀한 물질에 케이블에 도입했다는 점이다.
물론 도체에 일정량이 들어갔겠지만, 정확한 레시피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극히 비밀주의를 준수하는 곳이어서, 마치 코카 콜라의 제조법처럼 엄중히 감춰져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정책도 괜찮다고 본다. 시시콜콜 숱한 이론을 들먹이는 케이블 회사가 많은 요즘, 그냥 들어보라, 이렇게 나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가면 음악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직접 모니터링한 결과, 나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로 음악성이 풍부한 케이블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봐도 좋다.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다.

물론 스테이트먼트 같은 모델은 넘사벽이지만, 적어도 울트라 블랙 2 정도는 노려볼 만하다. 일단 블랙 2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 솔직한 시청 소감이다.
참고로 텔루륨은 녹는 점이 449.51도, 끓는 점이 무려 998도나 한다. 주로 다른 금속과 합금 형태로 사용되며, 납을 첨가하면 강도와 굳기가 향상된다고 한다. 반도체나 전자 부품에 많이 쓰이고, 전자 냉각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강도, 냉각, 가벼움 ... 아마도 케이블에 이상적인 물질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추측이 되지 않는가?
기본은 블랙

2009년 처음 TQ가 케이블을 만든 것은 바로 블랙 스피커 케이블이다. 이 제품을 영국의 여러 오디오 숍과 스튜디오에 들고 가서 일종의 비청회를 개최한 모양이다. 한데 이보다 훨씬 비싼 제품들도 펑펑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이에 용기를 얻어 블랙을 기본으로 밑으로는 블루, 위로는 실버라는 라인업이 형성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거기에 울트라라던가 다이아몬드 등이 더해져서 좀 복잡한 양상이지만, 기본은 블랙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만난 것은 현행 TQ가 내놓은 총 10종의 스피커 케이블 중 서열 5위와 8위의 제품을 들었다. 모두 블랙에 속한 제품으로, 아무튼 TQ의 표준 사운드가 어떤 것인지 알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두 제품은 약 3배의 가격차가 난다. 따라서 단순 비교로 하면, 5위가 8위보다 나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디오라는 것이 꼭 그런 기준으로만 성립되지 않는다. 8위의 사운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런 단순 비교를 하는 데에 이번 리뷰의 목적이 있지 않다. 요는 각각의 케이블이 가진 강점과 매력을 기술해서, 애호가 입장에서 나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다, 그런 마음이 들게 설명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시청

이번 시청에는 아주 심플한 라인업이 동원되었다. 일단 올인원 기기로 일렉트로콤파니에트의 ECI 6 DX MK2를 선정했다. 이 제품은 상당한 실력기로, 일전에 리뷰 관계로 접해서 정말 놀란 적이 있다.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기만 하다.
아무튼 올인원이기 때문에, 소스기 역할도 하고, DAC도 있으며, 프리와 파워도 당연히 된다. 따라서 이와 연결되는 피에가 프리미엄 701 스피커와 매칭이 중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스피커 케이블의 능력이나 특성에 따라 매칭의 성공 여부도 일정 부분 달려있는 셈이다.
일단 시청 트랙 리스트부터 소개하도록 하겠다.
- 베토벤 ⟨교향곡 4번 2악장⟩ 파보 예르비(지휘)
- Chet Baker ⟨Alone Together⟩
- Diana Krall ⟨‘S Wonderful⟩
블랙 2의 시청
일단 서열 8위인 블랙 2부터 들어보자. 생김새부터 보면, 한숨이 푹 나온다. 너무 얇고, 가벼워 보인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들어갔다고는 해도, 가격적인 면을 고려한다고 해도 좀 너무한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휘 Paavo Järvi
오케스트라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앨범 Beethoven: Symphonies Nos. 4 & 7
그러나 정작 음악을 듣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우선 1)을 들어보면, 음 자체가 포실하고, 아날로그 느낌이 물씬 난다. 안길이도 의외로 깊은데, 이것은 스피커의 성능이 제일 큰 이유일 것 같다.
정보량이 많고, 저역이 풍부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이 한 곡으로 블랙 2는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티스트 Chet Baker
곡 Alone Together
앨범 Chet
이어서 2)를 들어보면, 아날로그 녹음 특유의 히쓰 음향이 귀에 들어온다. 요즘 이상하게 첨단 오디오에 이런 음향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음악을 오래 들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런 히쓰 음향도 음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낭랑한 트럼펫이 진한 고독감을 선사하고, 바리톤 색스의 깊은 저역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심벌즈의 찰랑거림은 마치 혼을 통해 듣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피에가 스피커가 꽤 잘 만든 제품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 풍윤하고, 에너지가 넘실거리며, 고역의 쨍한 맛도 잊지 않는다.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S Wonderful
앨범 Live In Paris
마지막으로 3)을 들어보자. 전설적인 파리 공연에서 발췌한 트랙인데, 라이브 특유의 활기가 살아나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의 노련한 플레이가 여기서는 잘 살아 있고, 드럼의 강력한 임팩트도 일품이다.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화려한 오케스트라가 더해지지만, 이렇게 4인조 캄보밴드로 연주하는 모습도 멋지다. 보컬은 약간 빅 마우스 경향이 있지만, 그 때문에 더 임팩트가 강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좋아한다. 가수와 악단 멤버들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모습에서 절로 발장단이 나왔다.
울트라 블랙 2의 시청
이어서 울트라 블랙 2로 바꿔서 들어봤다.
지휘 Paavo Järvi
오케스트라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앨범 Beethoven: Symphonies Nos. 4 & 7
우선 1)을 들어보면, 좀 더 차분하고, 해상도가 올라가며, 뭔가 조여진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하이엔드 느낌의, 개운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음이다. 반응도 빠르고, 다이내믹스도 풍부하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착착 대오를 맞춰 행진하는 느낌이다. 위상을 제일 중요한 항목으로 보는 TQ다운 실력이다. 재생음만 따지면 급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블랙 2의 넉넉한 느낌도 버리기 힘들다.
아티스트 Chet Baker
곡 Alone Together
앨범 Chet
2)의 경우, 다소 차분하고, 정제된 느낌이다. 심벌즈는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트럼펫의 울림도 다소 줄어들었다. 이렇게 보면, 울트라 블랙 2가 제 소리를 내고, 블랙 2는 약간 과장이 들어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디오라는 것이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약간의 컬러링이나 과장도 때론 매력을 준다. 결국 취향의 문제라는 뜻이다.
단, 고역으로 치고 올라갈 때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고,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꽉 짜인 부분이 매우 높은 레벨의 재생음을 내고 있다. 아날로그 느낌의 음에는 확실히 매력이 넘친다.
아티스트 Diana Krall
곡 ‘S Wonderful
앨범 Live In Paris
마지막으로 3)을 들어보면, 보이스에서 빅 마우스 현상이 일체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더 정교치밀하며, 인터 플레이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포착하고 있다. 보사노바 리듬이 신명나게 펼쳐지며, 특정 대역에서 파탄이나 과장이 일체 보이지 않는다. 숙제를 너무나 잘한 학생답다고나 할까? 별로 지적할 사항이 없다.
만일 하이엔드 제품을 쓰면서, 그다지 과한 케이블을 쓰고 싶지 않다면, 본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결론
얼마 전에 타계한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이 넘는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영국 뮤지션들에게 MBE 훈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비틀즈를 필두로, 엘튼 존, 데이빗 보위, 밥 겔도프, 아델 등이 그 영예를 안았다.
또한 퀸스 어워드를 통해 오디오 산업에도 역시 큰 도움을 줬다. 그 마지막 수혜자가 바로 텔루륨 Q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괜찮다 싶으면 케이블 가격이 1,000만 원이 넘는 시대. 그런 면에서 이번에 리뷰한 제품들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브리티시 사운드가 갖고 있는, 일반 애호가들을 위한 배려는 이 케이블에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나 또한 이런 미덕을 한껏 추켜세우고 싶다. 두 제품의 특성이 다른 만큼, 각자 취향에 맞게 고른다면, 가격대비 상당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음악이 저 안에 있으니까.
이 종학(Johnn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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