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 작가의 작품 '걸푸'에는 "서기 2222년 세계가 대충 망한 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세상이 완전히 망하면 인류가 살아남을 리가 없으니 적당히 힘들게 살아남은 상황을 김성모 작가 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 대사는 상당히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현재도 간간이 쓰이는 일종의 ‘밈’(MEME)으로 자리 잡았다.

게임과 저 대사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아톰폴’에서 만난 세상이 딱 저 느낌이었다. 재난으로 인해 아포칼립스 세상이 펼쳐졌지만, 그렇게 살기 힘들지는 않고, 적당히 살아갈 만한 ‘대충 망한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지난 3월 27일 출시된 ‘아톰폴’은 국내에서는 ‘좀비 아미’와 게임을 하다 보면 “영 좋지 못한 곳을 저격하는” 것으로 변질되는 게임 ‘스나이퍼 엘리트’를 개발한 리벨리온에서 개발한 오픈월드 FPS 액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윈드스케일’(Windscale) 원전 사고로 인해 영국 북부 지역 대부분이 방사능 격리 구역으로 변한 1960년대 대체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으로,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고, 이 지역에서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다.
특히, 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핵 기술이 기묘한 형태로 발전한 ‘아톰펑크’(Atompunk) 분위기가 물씬 풍겨 ‘폴아웃’의 느낌도 나며, 격리된 장소에 방사능(혹은 다른 물질)으로 인해 변질된 변종이 등장하는 등 ‘스토커’의 향기도 함께 맡을 수 있는 것도 이 게임의 특징 중 하나다.

‘아톰폴’의 가장 특징은 모든 퀘스트를 이용자가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스토리의 주축이 되는 메인 퀘스트의 경우 맵을 탐험하면서 얻게 되는 문서와 중요 인물의 대사를 통해 점차 윤곽이 드러나는 식으로 진행된다.
심지어 부가 퀘스트는 NPC에게 특정 질문을 하지 않거나, 문서를 찾지 못하면 구체적인 정보를 놓쳐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여 맵 곳곳을 모두 뒤져야 하는 80~90년대 JRPG와 같은 느낌으로 플레이해야 한다.


여기에 하나의 맵에서 모든 퀘스트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 2번째 맵에서 입장키를 얻어야 3번째 맵에 위치한 건물에 입장할 수 있는 등 맵 이동을 강제하는 퀘스트도 빈번하게 발생해 상당히 번거로운 느낌이었다.
또한, 이 게임은 빠른 이동이 없어 모든 지역을 직접 이동해야 하며, 맵을 벗어나거나 시간이 지나면 같은 지역에 해충, 무법자, 드루이드 등의 적이 다시 리젠되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더욱 커져 후반부에 접어들면 서브 퀘스트가 흥미롭기보다는 짜증 나는 요소로 다가왔다.

더욱이 게임의 배경이 방사능이 유출된 긴박함보다는 뭔가 평화롭고, 사람들의 삶도 그리 힘들지 않은 ‘대충 망한 세계’의 느낌이 강하다 보니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끝까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흥미로운 스토리의 재미를 전개 과정이 갉아먹은 듯한 느낌이었다.

액션은 ‘좀비 아미’, ‘스나이퍼 엘리트’ 등 수준급의 총기 액션을 선보인 리벨리온의 작품답게 전투 하나는 상당히 볼만했다.
60년대 총기를 기반으로 하고, 격리 지역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처음 얻게 되는 총기는 대부분 녹이 슬어있으며, 게임 진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서로 같은 총기를 조합하는 식으로 총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 총기 업그레이드는 상당히 중요한데, 같은 총기라도 낮은 등급의 총기로는 몇 번 공격해야 하는 적을 ‘새것’ (3단계) 등급의 총기로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등 대미지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
총기 종류도 상당히 다양하다. ‘아톰폴’은 권총, 저격 소총, 돌격 소총, 활, 몽둥이, 크리켓 방방이 등의 근접 무기와 같은 다양한 무기가 등장하며, 총기를 사용할 때의 모션과 액션이 상당한 수준이라 이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이렇게 총기는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문제는 총알이다. 이 게임은 폭탄과 온갖 약품은 직접 생산할 수 있지만, 총알을 생산할 수 없고, 맵에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얼마나 총알이 부족하냐면 10시간에 가까운 게임 플레이 동안 돌격 소총 총알을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억척스레 모아 150발을 간신히 채울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대부분의 전투는 근접으로 진행되며, 전투 몇 번을 진행하면 총알이 모두 떨어져 은신 플레이가 강제된다. 흔히 액션 게임은 후반부 대규모 전투를 대비하여 넉넉히 탄을 제공하지만, 이 게임은 후반부도 똑같아서 엔딩 직전에 총알이 떨어져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해 의욕이 확 떨어질 정도였다.


이처럼 ‘아톰폴’은 뛰어난 액션과 맵 곳곳을 탐험하며, 퍼즐을 풀고, 단서를 찾아가는 재미는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편의 기능의 부재. 그리고 은신 + 근접 전투를 강제하는 플레이 패턴 그리고 스토리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등 흥미로운 초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등장하는 적 역시 숫자만 많아질 뿐 초반에 등장하는 적이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여 다양성이 부족하여 지루함이 더해지는 것도 단점 중 하나.
“리벨리온이 왜 굳이 액션이라는 자신들의 장점을 버리고 오픈월드를 선택했을까?”라고 의아해할 정도로, ‘아톰폴’은 오픈월드 게임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욱 드러난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