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rd Electronics Suzi Pre
작지만 강력한, 정통 아날로그 프리앰프의 귀환
글 | 이종학 (오디오 평론가)
Chord Electronics는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영국 켄트의 고풍스러운 구도심, ‘펌프하우스(Pumphouse)’라 불리는 옛 물레방아 건물에서 시작된 이 회사는, 엔지니어 존 프랭크스(John Franks)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는 브랜드다. 그와의 인연은 20여 년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간 여러 오디오쇼에서 신제품을 함께 들어볼 기회도 많았다. 이번에 만난 Suzi Pre는 그 오랜 관계 속에서도 유독 인상 깊은 제품이다.
정통 아날로그 프리앰프의 복귀
Chord Electronics는 오랫동안 디지털 휴대기기와 헤드폰 앰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모조(Mojo)’와 ‘휴고(Hugo)’ 시리즈는 특히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했다. 그러나 이 회사의 본질은 여전히 정통 하이엔드 아날로그 앰프에 있다. 창립 초기부터 프로페셔널용 아날로그 앰프를 만들어온 뿌리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번 Suzi Pre는 오랜만에 등장한 순수 아날로그 프리앰프다. 디지털 회로를 완전히 배제한 채, 프리앰프 본연의 역할에 집중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포노단(Phono Stage)을 내장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오늘날 대부분의 프리앰프가 라인단만으로 구성되는 현실에서, Suzi Pre는 아날로그의 정수를 복원한 셈이다.
설계 철학과 기술적 배경
Chord Electronics의 전원부는 전통적으로 스위칭 파워(SMPS) 방식을 사용한다. 증폭단은 클래스 AB로 설계되었다. 프랭크스는 클래스 D 증폭에 대해 일관된 회의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밀어줘야 할 때 밀어주지 못한다"는 그의 발언처럼, Suzi Pre는 밀도와 탄력, 에너지 전달력을 중시하는 철저한 음악적 기준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상위 울티마(Ultima) 시리즈에서 내려온 기술이 적용되었다. 울티마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라인으로, 그 회로 구조와 부품 설계 철학이 Suzi Pre에도 일부 계승되어 있다. 이 덕분에 크기와 가격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제품 구성과 확장성
Suzi Pre는 같은 시리즈의 Suzi Amp 파워앰프와 모듈형으로 결합할 수 있다. 별도의 인터케이블 없이 본체끼리 ‘철컥’ 하고 맞물리는 구조로, 한 몸처럼 작동한다. 출력은 30W지만, 이는 버티컬 모스펫(Vertical MOSFET)을 사용해 완전한 제어가 가능한 설계 덕분에 실제 구동력은 체감상 100W 이상이다.
후면에는 RCA 아웃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출력 임피던스가 낮아 진공관 파워앰프나 대출력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와도 안정적으로 매칭된다. 입력단은 포노단 외에 두 개의 RCA가 추가되어 있어, 스트리머나 DAC 등 다양한 소스 기기를 연결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우측에는 헤드폰 앰프가 함께 내장되어 있다. Chord Electronics의 헤드폰 회로는 이미 헤드파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를 Suzi Pre에 통합함으로써, 공간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도 고품질 아날로그 사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포노단의 설계와 의의
아날로그 프리앰프의 핵심은 포노단이다. 과거 마란츠 7, 메킨토시 C22, 오디오리서치 SP 시리즈처럼 명기로 평가받는 프리앰프는 모두 탁월한 포노단을 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CD의 등장 이후 포노단이 사라지고, 별도의 포노앰프를 구매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Suzi Pre는 이 부분을 되살렸다. MM과 MC 모두 지원하며, 게인과 임피던스 조절 기능을 통해 다양한 카트리지와의 호환성을 확보했다. 게인은 빨강(High)과 파랑(Low), 임피던스는 55Ω, 235Ω, 475Ω 세 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세밀한 매칭을 통해 MC 카트리지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디자인과 조작성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전면부 중앙의 노브는 볼륨과 셀렉터를 겸하며, 선택된 입력에 따라 LED 색상이 변한다.
빨강(MM), 파랑(MC), 녹색(RCA2), 노랑(RCA3)으로 구분되어 직관적이다.
별도의 디스플레이 없이도 사용자가 쉽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리모컨 또한 고급스럽게 제작되어 있으며, 사용감이 뛰어나다. 전체적으로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다듬어진, 작지만 세련된 오디오 기기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음악 감상
Wynton Marsalis – You and Me
Børresen X2 스피커와 매칭된 첫 청음에서 Suzi Pre는 놀라운 통제력을 보여주었다. 빠른 반응과 강한 펀치력을 동시에 구현하며, 각 악기의 질감이 또렷하다. 트럼펫의 뮤트톤은 마일즈 데이비스를 연상시킬 만큼 유려하고, 킥드럼의 타격감은 작지만 단단한 힘을 전한다. 음의 층위가 정돈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밸런스가 명료하다.
Mercedes Sosa – Misa Criolla : Kyrie
보컬 뒤에서 펼쳐지는 코러스와 둥둥 울리는 큰북의 울림이 탁월한 공간감을 만든다. 녹음의 깊이와 현장의 잔향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며, 수지 프리의 투명도와 다이내믹스가 빛난다. 음색은 농후하면서도 상쾌한 기운을 품고 있어 장엄한 분위기를 훌륭히 재현했다.
Hector Berlioz – Symphonie Fantastique : March to the Scaffold
LP 재생에서는 포노단의 진가가 드러난다. 유타 심포니의 현악은 유연하면서도 고역이 매끄럽게 뻗고, 팀파니의 타격감은 극적이다. LP의 시대적 질감이 그대로 전해지며, ‘축축하다’는 편견을 깨는 스피디한 사운드다.
John Coltrane – Say It (Over and over again)
1960년대의 사회적 긴장감 속에서도 담담한 서정이 깃든 연주다. 색소폰의 나른한 톤과 피아노의 유려한 터치, 브러시 스네어의 섬세한 질감이 조화롭게 녹아든다. 좌우로 펼쳐진 스테이지의 깊이는 탁월하며, 콜트레인의 특유의 ‘몽환적 울림’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총평
Suzi Pre는 단순히 ‘작은 프리앰프’가 아니다. Chord Electronics의 약 40년에 달하는 기술과 철학이 응축된 결정체다. THD 0.0007%, S/N비 103dB, 주파수 응답 7Hz~30kHz라는 수치는 단순한 스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음의 밀도, 질감, 레이어 표현에서 분명히 울티마 시리즈의 DNA가 느껴진다.
포노단을 포함한 정통 아날로그 프리앰프로서의 존재감, 헤드폰 앰프를 통한 활용성, 그리고 미니멀한 디자인 속의 정교한 완성도까지. 이 세 가지가 만나 Suzi Pre는 ‘작지만 하이엔드’라는 Chord의 철학을 완벽히 구현해냈다. 단순한 보조기기가 아닌, 음악의 중심을 지탱하는 진정한 프리앰프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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