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하이파이 제조사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을 디지털앤아날로그(현 캘릭스)에서 새로운 인티앰프를 출시했습니다. 중저가 하이파이 기기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쉽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는 캘릭스 브랜드의 새로운 제품 소식은 참으로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출시했던 인티앰프 Calyx The Integrated(CTI)와 클래스 D라는 신호증폭의 방식은 공유하고 있지만 새 제품인 Calyx I는 풀 사이즈(Full-Size) 폼팩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들이 적용된 플래그십 모델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풀 사이즈(443mm)의 통 알루미늄 섀시는 단순히 시각적인 이유만의 결정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높아진 발열 효율과 넓어진 기판 적재 공간은 좀더 충실한 입출력 설계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넓어진 면적과 무거워진 섀시는 노이즈 아이솔레이션과 진동 제어에도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줍니다. 소리로도 이러한 장점들이 잘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앰프 자체의 노이즈가 매우 낮아졌습니다. 쉽게는 최대 볼륨에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노이즈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 음악 감상 시 낮은 레벨의 소리들을 좀 더 정확하게 들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최근 작업한 Michael Vokes의 Ulterior Meaning을 들어봅니다.

Michael Vokes - Ulterior Meaning
Ulterior Meaning
음반의 작,편곡은 물론 모든 악기들까지 다 직접 연주한 놀라운 재능의 젊은 뮤지션입니다. 엔지니어와 정성 들여 쌓아 올린 다양한 레이어의 잔향이 들어 있는 전자기타의 톤이 높은 해상도로 펼쳐집니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낮은 레벨의 다양한 잔향을 숨김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앰프의 놀랍게 낮은 노이즈 레벨 덕분입니다.
사실 배경의 정숙함이란 클리셰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기 자체의 낮은 노이즈 레벨은 낮은 레벨의 재생 신호를 매스킹없이 증폭해서 뛰어난 해상도의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뛰어난 해상도로 재생되는 소리는 때로는 악기와 악기 사이의 공간을 지저분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의도가 악기들 사이의 공간을 자연적/인공적 잔향으로 채우려 할 경우라면 말이죠. 높은 해상도의 기기는 그러한 의도를 더욱 잘 들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낮은 해상도의 기기가 이러한 잔향의 디테일들을 매스킹함으로 해서 배경이 좀 더 정숙해지거나 좀 더 깨끗해지도록 만들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배경의 정숙함에 집중하기보다는 악기들의 잔향, 때로는 악기의 자연적/인공적 배음들이 얼마나 자세히 구분되어 표현되는 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Calyx I는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성능을 보여줍니다.

Calyx I의 두 번째 장점으로 중역대의 충실함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위 클래스 D 증폭 방식의 단점이라 불리는 차갑고 거친 고역은 좀 더 정확하게는 중역대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따뜻한 고역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고역이 존재할 뿐이지요.
중역대의 밸런스가 고역과 잘 맞을 때(이것은 단순히 중역의 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관한 긴 설명은 다음의 기회에 해보겠습니다) 고역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리에 묻어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차갑거나 거친 느낌의 소리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을 Calyx I의 설계자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중역, 특히 1kHz 미만의 낮은 중역을 살짝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이미 강조한 바 있듯이 우리가 듣는 음악의 음향적 에너지는 중역대에 위치합니다.
그러하기에 중역대를 잘 재생하는 기기를 많은 이들이 “음악적”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Calyx I는 중역대를 매우 기분 좋게 들려줍니다. 다시 최근에 작업한 The Isaacs의 Praise & Worship - More Than a Hollow Hallelujah라는 앨범을 들어봅니다.

Praise & Worship: More Than A Hollow Hallelujah
The Isaacs
올해 그래미에 Best Roots Gospel Album으로 노미네이트되어 있고 Dove Awards에서도 Bluegrass/ Country/ Roots Album of the Year를 수상한 앨범입니다. 가수들의 목소리가 따뜻하지만 정확하게 표현됩니다. 목소리의 중심이 되는 낮은 중역대가 매우 기분 좋게 들려집니다.
작업 시 사용한 여러 진공관 장비의 특성들을 그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의 존재감(presence)을 드러내 주는 높은 고역대 역시 질과 양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마치 Issacs 가족들이 나의 앞에서 노래를 들려주는 듯 정확한 가수의 음상이 만들어집니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음반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며 스피커를 통해 재생되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여전히 마술 같은 순간입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아직도 음악을 듣고 음반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역의 충실함은 자연스레 고역의 존재감을 감추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고역을 만들어 줍니다.
스틸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제대로 펼쳐집니다. 기타 현의 배음들이 풍성히 표현되지만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Fiddle의 배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역대의 표현 또한 상당한 수준입니다. 콘트라베이스의 깊은 저음이 충분한 무게를 가지고 펼쳐집니다만 각 음들의 맺고 끊음은 분명함을 잃지 않습니다.
뛰어난 댐핑 팩터의 스펙이 거짓이 아님을 실제로 증명해 주는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잠깐 언급한 바대로 정확한 음상의 선형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독자 기술력으로 개발한 전자적 제어를 통해 구현한 볼륨단의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ILĀ의 Recurse를 들어봅니다.

ILĀ - Recurse
RECURSE
양자 컴퓨팅을 바탕으로 한 생성형 인공지능 툴을 처음으로 사용한 대중음악으로 필자 역시 흥미롭게 작업에 임했던 곡입니다. 매우 다양한 샘플들이 5분여의 시간 동안 흥미롭게 제시되는 곡이기에 특히 음상의 정확성이 재생의 퀄리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볼륨으로 음악을 재생해 보지만 볼륨의 위치에 상관없이 표현되는 음상의 정확성이 놀랍습니다. 음상의 위치뿐 아니라 각 샘플들의 에너지의 밀도(intensity)까지 선형적으로 보존되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다만 혹 다음 버전의 개발 계획이 있다면 볼륨의 양을 정확히 리콜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나 메모리 프리셋을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남겨봅니다.
마무리

입문자 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재생기기를 찾는 모든 분들께 주저함 없이 추천할 수 있는 기기입니다!
Calyx I는 다양한 입력단을 제공합니다. 두 개의 아날로그 입력과 하나의 USB를 포함한 총 4개의 디지털 입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로 USB를 통해 음악을 들었지만 고가의 별도 DAC과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다양한 입력들을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지면상 여러 입력단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최종적으로 USB 입력단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퀄리티의 재생을 해 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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