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출근시간에는 숟가락 드는 것도 사치다. 빠르게 넘어가는 시간, 가득 차려진 식탁. 차라리 이것들이 다 음료였더라면! 마시고 출근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이가 없는 꿈이다. 이곳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나는 오랜 숙원을 발견하고 말았다. 일본의 전철역 음료 자판기의 캔 음료다. ‘매운 순두부가 들어간 음료, 육개장 국밥맛 음료’. 이 사람들은 뚝배기에 담아야 할 음식을 캔에 담았다. 대체, 도대체, 어째서, 이런 끔찍한 짓을 한 것일까? 궁금함에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집어넣었다.
낯선 캔음료에서 국밥 맛이 느껴져요
검은 캔에 국밥 사진 하나. 생김새부터 폭력적인 이 음료를 보자니 입안의 긴장감이 가득하다. 맛이 없을 것을 확신하는데 안 마시면 후회할 것 같다. 하지만 종종 일본 직장인들이 뽑는 걸 보니 외국 사람 놀림용 벌칙음료는 아닌 듯하다.
첫 번째로 매운 순두부가 들어간… 줄여서 순두부찌개 음료를 마셨다. 놀랍게도 맵지 않다. 오히려 고소한 맛이 강하고 수프처럼 꾸덕하다. 중간중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두부의 식감도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아서 더 무서운 맛. 마시고 나서 프리토킹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향.
하지만 이 음료는 시작일 뿐이다. 육개장 국밥맛 음료에는 무려 ‘밥’이 들어있었다. 식혜처럼 풀이 죽은 밥이 아니라 탄탄한 밥알이 들었다. 자취 1년 차가 감각으로만 만든 국밥을 먹는 느낌이다. 못 먹을 맛은 아닌데, 이게 육개장이나 국밥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고.
심리적 장벽만 넘는다면 나쁘지 않은 맛이다. 오히려 배가 따뜻하고 든든하다. 세 가지 주의점이 있다면. 일단 차게 마시면 안 되며, 컵에 따라 마시면 안 되며, 마시고 함부로 대화하면 안 된다(한 가지라도 어길 시 마신 사람은 큰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차라리 삼각김밥을 더 만들지, 왜 이런 음료를 만든 것일까?
포만감을 음료로 해결하는 나라
출근길 지하철이 미어터지는 것은 한국만큼이나 일본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한국의 지각의 표정이 짜증 대폭발이라면, 일본 지각의 표정은(지각인 줄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구하지 못하고 절망한 주인공 같다. 때문에 그들 역시 아침밥을 거른다. 아침밥 프리패스는 한국인만의 풍경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전철이라는 점이다. 1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빠르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자판기’다. 그리고 자판기 안에 (특히 겨울철이면) 따뜻한 수프 같은 음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옥수수 수프였고, 그다음은 팥죽, 한식이 유행이라고? 그렇다면 삼계탕에, 육개장, 순두부찌개까지.
유독 길거리 자판기가 아니라, 전철 안에 자판기에 이런 국물음료가 있는 이유 역시 직장인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은 출근지옥만큼이나 야근빈도도 높아서 이 음료를 저녁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어쩔 수 없는 든든함이지만, 저녁에는 훌륭한 요리 재료가 된다.
어떻게 생각한다면 괜찮지 않은가? 바빠 죽겠는데 배는 고프고. 따뜻하면서 든든한 음료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일본이 보여준 풍경, 국물의 미래는 음료다
생각이 넓어지니 마시고 싶은 아침 국물 아니 음료가 넘친다. 따끈한 어묵 국물, 고소한 곰탕 국물, 여름철에는 오이냉국이나 동치미 탄산음료는 마시즘에서 냈다가 크게 역풍을 맞았으니 일단 빼놓고.
실제로 일본 도쿄에서는 카페 공간에서 커피가 아닌 가쓰오부시 국물을 파는 ‘다시 카페’가 유행을 하기도 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어 2024년 기준으로 107만 잔이나 팔았다나. 갈증이 아니라 허기를 채우는 국물음료의 등장이다. 놀랍지 않은가.
매일 아침 전쟁 같은 출근길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분초를 의식하겠지만, 한 가지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언젠가 한국에도 나올 것이다. 국물의 미래는 음료니까.
<제공 : 마시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