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브랜드의 첫 3열 전기 SUV TZ 550e. 렉서스 특유의 균형감을 강조한 디자인을 갖고 있다. (오토헤럴드)
[일본 시모야마=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렉서스의 전동화 전략은 늘 조심스러웠다. 경쟁 브랜드가 앞다퉈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고성능 EV를 쏟아내는 동안에도 하이브리드 중심의 보폭을 유지했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다. 렉서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전기차를 다듬어왔고 작년 상하이 오토쇼를 시작으로 토요타와 함께 굵직한 전기 신차를 내놓고 있다.
렉서스 브랜드에 가장 주목을 받은 전기 신차는 볼륨 모델인 ES의 전기 버전과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최초의 3열 전기 SUV 'TZ'다. 지난 5월 초, 일본 아이치현 시모야마(Shimoyama) 테크니컬 센터에서 체험한 신형 전기 SUV ‘TZ 550e’는 꽤 다른 분위기였다.
단순히 3열 전기 SUV를 추가한 수준이 아니라 렉서스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동화 시대를 풀어갈 것인지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시모야마, ‘주행의 맛’이 익어가는 곳
렉서스 시모야마 테크니컬 센터 시험로에서 진행된 TZ 550e 시승. 요철과 슬라럼, 고속 주행 등 다양한 코스에서 2열 승차감을 체험했다. (렉서스)
시모야마 테크니컬 센터는 토요타와 렉서스의 핵심 개발 거점이다. 전체 면적만 약 650만㎡에 달한다.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참고해 설계한 일반도로 시험 코스를 비롯해 고속 주행 시험장, 비포장 더티 코스 등 총 12종의 시험 코스를 갖추고 있다. 렉서스가 “아지 미가키(Aji-Migaki, 주행의 맛 다듬기)”라고 표현하는 주행 감성 튜닝이 대부분 이곳에서 완성된다.
이곳에서 체험한 TZ 550e는 아직 위장막도 완전히 벗지 않은 최종 양산 직전 프로토타입이었다. 실내 곳곳에는 조립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흔적도 남아 있었다. 패널 연결부 일부는 다소 거칠었고 소재 마감도 최종 양산차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오히려 개발 막바지 단계의 차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2열을 선택해 TZ 550e를 체험했다. 전기차는 조용하고 빠르지만 의외로 2열 승차감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기차는 중량이 많이 나갈 수록 무거운 배터리와 순간적인 토크 반응 때문에 멀미를 유발하거나 노면 충격이 어색하게 전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TZ 550e가 진짜 렉서스다운 전기 SUV인지 확인하려면 오히려 뒷좌석 승차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기차 아킬레스건 ‘2열 승차감’ 살펴보니
시모야마 서킷을 질주하는 렉서스 TZ 550e. DIRECT4 사륜구동과 다이내믹 리어 스티어링(DRS)이 조합되어 육중한 SUV임에도 날렵하고 단정한 주행 감성을 전한다. (렉서스)
첫인상은 예상 밖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공간감이다. 운전석에는 체격이 큰 드라이버가 넉넉하게 시트를 맞춘 상태였는데도 2열 무릎 공간은 여유가 상당했다. 특히 B필러를 넘지 않는 자연스러운 착좌 위치 덕분에 다리를 편안하게 둘 수 있었다. 여기에 2열 너머로 보이는 3열 공간도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TZ 550e의 휠베이스는 3050mm다. 동급 최고 수준이다. 전용 플랫폼을 활용해 낮은 플로어와 긴 휠베이스를 확보했고 덕분에 3열 SUV 특유의 답답함이 크게 줄었다. 앞서 정차 상태에서 살펴봤을 때는 골프백 4개를 무리 없이 직선으로 적재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 활용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TZ 550e의 적재 용량은 최대 2017ℓ에 달한다.
시트의 질감이나 소재 완성도는 아직 양산 직전 단계였던 만큼 평가를 보류한다. 다만 착좌 자세와 공간 설계만 놓고 보면 렉서스가 “드라이빙 라운지”라는 콘셉트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는 충분히 느껴졌다.
육중한 체구를 잊게 하는 매끄러운 질감과 민첩한 거동
렉서스 TZ 550e는 동급 최고 수준인 3050mm의 휠베이스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활용해 2열은 물론 3열까지 성인이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는 넉넉한 거주성을 확보했다. (오토헤럴드)
주행이 시작되자 TZ 550e의 진짜 성격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속 감각이다. 일반적인 전기 SUV는 가속 초반 강한 토크를 앞세워 몸을 밀어붙이는 느낌을 강조한다. 반면 TZ 550e는 훨씬 부드럽고 정교했다. 출발과 동시에 이어지는 가속 과정에서 엑셀러레이터에 전달되는 압력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연결감이 매끄러웠다.
전기차 특유의 급작스러운 튀어나감 대신, 커다란 고급 세단이 미끄러지듯 속도를 끌어올리는 감각에 가까웠다. 운전을 직접 하지 않아도 차의 성격은 충분히 전달됐다. 일반 시험로의 요철 구간에서는 충격을 억지로 숨기기보다 한 번 걸러낸 뒤 자연스럽게 정리해냈고 슬라럼 구간에서는 큰 차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단정했다. 특히 좌우 하중 이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인상적이었다. 3열 SUV 특유의 흔들림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렉서스는 TZ 550e에 전용 서스펜션과 다이내믹 리어 스티어링(DRS)을 적용했다. 속도에 따라 뒷바퀴를 최대 4도까지 조향해 저속에서는 민첩성을 고속에서는 안정성을 높인다. 여기에 전후륜 독립 제어 브레이크 시스템과 DIRECT4 사륜구동 시스템까지 조합해 거대한 차체를 훨씬 작고 가볍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배터리는 95.82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시스템 최고 출력은 300kW(약 408마력) 수준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은 5.4초. 수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힘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급가속 상황에서도 불안하거나 거친 느낌 없이 속도를 계속 밀어붙인다. 렉서스 특유의 정숙성과 매끄러운 질감을 전기차 시대 방식으로 다시 해석한 느낌이다.
속도보다 방향, 전기차 시대에도 결론은 ‘감성’
렉서스 TZ 550e는 올겨울 글로벌 시장 출격을 앞두고 있다. (오토헤럴드)
정숙성 역시 상당했다. 전기차는 엔진 소음이 없는 대신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더 크게 드러난다. 하지만 TZ 550e는 후방에서 들어오는 소음을 최소화하고 전방 사운드를 자연스럽게 인지하도록 설계해 대화 자체가 편안했다. 실제 2열에서는 속도가 올라가도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거의 없었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TZ 550e는 꽤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조용하고 빠른 전기 SUV가 아니라 “사람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는 렉서스 특유의 감성을 전동화 시대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동안 렉서스의 전동화 전략은 경쟁사 대비 다소 느려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TZ 550e를 통해 확인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었다. 적어도 승차감과 정숙성, 그리고 이동 자체의 감성 품질에서는 렉서스가 여전히 자신들만의 기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차 시대에도 렉서스는 결국 ‘감성’을 이야기하려는 브랜드였다.
오는 겨울부터 글로벌 시장에 순차적으로 출시될 계획으로 있는 TZ 550e는 국내 출시도 기대되는 모델이다. 시작 가격은 약 6만 5000달러(한화 약 8900만 원)로 예상되고 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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