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뉴 그랜저의 전면부. 더 얇고 길어진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는 확실한 시그니처다.(김흥식 기자)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그랜저'는 국산차, 수입차를 구별할 필요가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다. 1986년 첫 등장 이후 그랜저는 사실상 국내 대형 세단의 기준점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현 세대는 정체성을 의심 받으면서 자타공인 당대 최고의 세단이라는 자리가 흔들렸다.
무엇보다 과도한 실험적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렸다. 현대차도 이를 모를리 없다. 그대로 둘리도 없다. 7세대 그랜저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전면과 후면을 잘 다듬어 내 놓은 부분변경 ‘더 뉴 그랜저’는 주름을 잘 잡아 당겨 편 성공적인 성형 리프팅, 그리고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 새롭게 탄생했다.
반면 보이는 것에 너무 치중했나보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기대만큼 속도가 따라붙지 않았고 추월 가속에서도 여유가 부족했다. 과도한 혁신의 무게에 눌려 경쾌하다거나 매끄럽다거나라는 하는 등의 플래그십이 갖춰야할 기본기가 부족했다. 현대차가 강조하는 플레오스(PLEOS)도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글레오, 하남 맛집 찾아줘"… 진짜 스마트해진 비서
현대차 최초로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AAOS) 기반 '플레오스 커넥트'가 적용된 화면. 테슬라와 흡사한 디자인이다. (김흥식 기자)
더 뉴 그랜저 변화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현대차 최초로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AAOS) 기반의 차세대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가 적용됐다.
스티어링 휠을 잡고 생성형 AI 에이전트인 ‘글레오 AI(Gleo AI)’에게 대화하듯 목적지 추천을 요청했다. "글레오, 하남 근처에 조용하고 주차 편한 장어 맛집이랑 주변 카페 코스로 짜줘"라고 말하자 단순한 내비게이션 검색을 넘어 마치 비서처럼 매끄러운 연속 대화로 최적의 여행 일정을 제안한다.
차를 잠시 세우고 플레오스 앱마켓을 켜보니 스마트폰처럼 서드파티 앱을 다운받아 영상 스트리밍이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기계식 블라인드 대신 적용된 스마트 비전 루프의 투명도를 조절해 하늘을 바라보며 보스 사운드로 음악을 듣는 경험은 이 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완벽한 '휴식 공간'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실제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기대를 모은 ‘글레오 AI’는 음성 명령을 내린 뒤 반응하기까지 다소 숨을 고르는 듯한 타임랙이 존재해 답답함을 유발했다. 때로는 정해진 매뉴얼 범위 내에서만 기계적인 답변을 출력하고 테슬라를 닮은 화면의 배치도 혼란 스러웠다. 요즘 흔해지고 익숙해진 고도화된 생성형 AI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겉모습에 매몰된 퍼포먼스, 2.5 가솔린의 한계
현대차 최초로 탑재된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AAOS) 기반 '플레오스 커넥트'는 연속 대화는 매끄럽지만 반응 속도(타임랙)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김흥식 기자)
시승차는 2.5 가솔린 모델이었다. 최고출력 198마력, 최대토크 25.3kgf·m를 발휘하는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일상 주행에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다.
실제 주행에서도 정속 주행이나 도심 구간에서는 큰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가속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호 대기 후 출발하거나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속도를 끌어올릴 때 기대했던 만큼 경쾌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추월 가속에서도 한 박자 늦게 힘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차체 크기와 무게를 감안하더라도 조금 더 여유로운 동력 성능이 아쉽게 느껴진다.
최근 소비자들의 선택이 하이브리드 모델로 쏠리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연비를 고려한 세팅의 장점은 분명하지만 운전자가 체감하는 주행 성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합연비는 11.6~11.7km/ℓ 수준이다.
더 뉴 그랜저에는 스마트 비전 루프와 보스 사운드를 적용해 완벽한 휴식 공간으로 진화했다. (김흥식 기자)
반면 승차감은 그랜저의 강점이 여전히 살아 있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ECS)은 노면 정보를 미리 분석해 충격을 효과적으로 걸러냈고 19인치 휠을 장착했음에도 실내로 전달되는 충격은 크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는 잔진동과 노면 소음 억제 능력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와 연동되는 고속도로 바디 모션 제어(HBC)는 급가속이나 급감속 상황에서 차체의 앞뒤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제어했다. 장거리 주행 시 탑승자의 피로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기능이다.
기억 후진 보조(MRA),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등 운전자 보조 시스템도 실제 사용 해 보지는 않았지만 실 사용에서 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들이다.
정교해진 ‘샤크 노즈’와 프리미엄 라운지의 조화
더 뉴 그랜저의 측면. 현대차 세단 최초로 돌출형 샤크핀 안테나를 매끄럽게 숨긴 히든 타입으로 플래그십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했다.(김흥식 기자)
더 뉴 그랜저의 첫인상은 이전의 복잡하고 난해했던 전ㆍ후면부 '심리스' 중심으로 말끔하게 다듬어 한층 간결해진 모습이다. 요즘 유행하는 성형 플러팅으로 기존 모델의 주름진 곳을 잡아 당겨 팽팽하고 트렌디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작지 않은 변화로 플래그십 다운 단아한 외관을 완성했다.
전면부는 베젤을 과감히 깎아낸 ‘샤크 노즈’ 형상을 도입하고 프론트 오버행을 15mm 늘려 한층 날렵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비례감을 완성했다. 특히 더 얇고 길어진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는 야간에 도로를 압도하는 시그니처가 될 게 분명하다.
압권은 측면과 후면으로 이어지는 실루엣이다. 현대차 세단 최초로 돌출형 샤크핀 안테나를 매끄럽게 숨긴 히든 타입을 적용해 플레그십 고유의 정돈된 바디 라인을 극대화했다.
더 뉴 그랜저에 새롭게 시도된 슬림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그러나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중복된 정보 중심의 구성과 운전대에 가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김흥식 기자)
문을 열면 흡사 하이테크 라운지에 들어선 듯한 개방감이 맞이한다. 시원하게 뻗은 17인치 대형 중앙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러나 기존 클러스터를 대체하는 슬림 디스플레이는 어색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중복 되는 정보가 담기고 운전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가능하다면 확 없애 버리고 싶을 정도로 번거롭기만 했다.
대신 기존의 돌출형 에어벤트 노브를 지워버린 전동식 히든 에어벤트는 인테리어의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는 화룡점정이다.
"디테일의 한 끗 차이가 플래그십의 품격을 바꾼다. 돌출부 없는 매끄러운 바디 라인과 라운지 감성의 실내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총평] 'DONE. YET. GRANDEUR.' 완성, 그 이상의 혁신
더 뉴 그랜저의 후면부. 매끄럽게 잡아당긴 성형 리프팅처럼 군더더기 없는 라인을 보여준다.(김흥식 기자)
현대차 더 뉴 그랜저는 가솔린 2.5 기준 4185만 원부터 시작해 상품성 대비 가격 접근성은 나쁘지 않다. 함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승차인 캘리그래피는 5317만원부터 시작하지만 여기에 꼭 필요한 옵션 몇 개를 더하면 가격이 확 오른다.
2.5 가솔린 파워트레인의 답답한 가속 퍼포먼스와 아직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글레오 AI의 사용자 경험은 향후 현대차가 OTA나 연식 변경을 통해 시급히 고도화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반쪽짜리 혁신을 넘어 완벽한 독주체제를 굳히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주행 감성의 완전한 유기적 결합이 필요해 보인다.
하이브리드, 터보의 감성은 분명 다르겠지만 더 뉴 그랜저는 단순한 겉모양 바꾸기에 그치지 않고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인 소프트웨어와 전동화의 길목에서 브랜드의 방향성을 과감하게 투영한 결과물이다. 수려해진 디자인과 공간의 안락함은 플래그십으로서 충분한 합격점을 줄 만하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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