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축구게임다운 축구게임의 시초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SFC로 발매되었던 실황 월드 사커 퍼펙트 일레븐을 꼽는다. 이 게임의 등장은 수많은 축구팬들을 TV와 게임기 앞으로 끌어 들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퍼펙트 일레븐은 당시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실황중계와 큼직한 선수들의 모습, 그리고 실제 축구와 비슷한 전술적인 움직임 등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32비트 기종의 등장 이후 코나미 TYO(전 코나미 도쿄 KCET)의 위닝 시리즈가 PS의 엄청난 보급대수를 등에 업고 비약적인 발전을 해나가는 동안 KCEO의 실황 시리즈는 뛰어난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닌텐도 64의 판매 부진으로 상당한 고전을 겪었고, 그리하여 오늘날의 실황 시리즈는 위닝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위상이 추락하게 된 것이 현실이다.
코나미 OSA(전 코나미 오사카 KCEO)는 과거의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 위닝 시리즈의 장점을 다수 채용한 실황 월드 사커 2001을 PS2로 내놓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것은 더 큰 화근을 불러오고 말았다. 닌텐도 64 시절에 갖고 있던 나름대로의 장점을 잘 살린 채 보급대수가 월등한 PS2에서 위닝과 멋진 경쟁을 펼치길 원했던 실황 시리즈의 골수 팬들마저 이 게임을 이도 저도 아닌 게임으로 여기고 등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실황의 최신판인 2002 버전은 NGC용으로 발매되어 이전부터 유지해온 코나미 OSA와 닌텐도의 돈독한 관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듯하며(비록 5월에는 PS2로도 발매되긴 하지만), PS2로 이전한 뒤 그동안의 실황 시리즈에 실망해 왔던 실황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닌텐도의 콘솔로 제작되던 기존 시리즈의 게임성이 다시 부활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음직 하다.
[실황 월드 사커 2002] |
실황 축구 시리즈는 오프닝과 엔딩이 허무하기로 유명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전작인 PS2용 2001에서는 상당히 신경써서 만든 오프닝 CG가 등장했는데, 본작에서는 다시 그 허무한 오프닝으로 회귀했다.
[오프닝 화면] |
새 버전이 아니라 NGC로의 컨버전이었다
서두부터 김빠지는 소리를 하게 되어 안타깝지만 전체적으로 실황 월드 사커 2002는 그다지 잘 만든 게임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던 전작 실황 2001과 거의 달라진 점이 없어 도무지 장점과 개선점을 찾아보기 힘든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2002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실황 2001의 게임큐브 컨버전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듯. 도대체 메이저 A와 같이 실력과 지명도가 높은 제작팀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게임을 출시한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용어의 사용을 자제해야 할 필자이지만 이 이상 더 완곡한 표현은 찾을 길이 없었다. 새로운 버전임에도 개선의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알량한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사 준 유저들에게 실례가 되지는 않을지...
게임의 전반적인 내용은 전작과 동일하므로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혹시 전작이 궁금한 유저들은 필자의 PS2용 실황 월드 사커 2001 리뷰를 참조하기 바란다.
[심판! 제작사에게 옐로 카드를!!!] |
시리즈 물의 차기작을 개발하면서 가장 쉽게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개선점이라면 역시 그래픽적인 진보일 것이다. 한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요소이므로 팬들에게 쉽게 어필을 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실황 2001과 2002의 그래픽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월드컵을 앞두고 공이 피버노바로 바뀐 정도일까? 선수들의 체격은 대체로 빈약하며 대부분의 선수 얼굴이 실물과 전혀 닮지 않았다. 그나마 몇몇 유명 선수들은 비슷하게 만들어 졌지만, 최강의 라이벌 위닝에 견줄 바는 못 된다.
[홍명보의 바람머리 ㅡㅡ;;] |
[머리모양으로 봐서는 |
[이게 이동국?] |
그렇다면 선수들의 움직임은 어떤가? 3D로 구성된 각 선수 개체의 움직임은 전작과 동일하며 특별한 동작의 추가는 없다. 그러나 전작이 너무 쉬웠다는 비난 때문일까? 이동 속도는 전작에 비해 조금 느리게 조정되었는데... 결국 발은 빨리 움직이는데 그에 비해 이동 속도가 늦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8 방향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 드리블 시의 조작감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며 헤딩이나 발리슛 등의 동작도 전작에 비해 오히려 상쾌한 맛이 사라진 느낌이다. 또한 대쉬와 일반적인 드리블시 모션에도 큰 차이가 없어 전체적으로 움직임이 느려져 조작감이 답답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따라서 기존의 실황 시리즈가 갖고 있던 장점 -적당한 액션성- 을 오히려 약화시킨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실황 시리즈의 골수팬들을 실망시키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기억하는 실황의 모습은 액션성이 강해 시원스럽게 경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조금은 과장된 듯한, 그래서 쉽게 웃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필드에서 뛰는 느낌이 답답하다] |
[헤딩이나 발리슛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
게다가 전작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프리킥과 코너킥 시의 메타 프레임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고 그 이전에 사용되던 화살표를 이용한 조작이 부활한 것도 아니고 위닝 시리즈의 그것과 똑같은 방식이 채택되었다. 실황 시리즈의 또 한가지 재미였던 정밀한 세트플레이도 사라진 것이다.
[프리킥 화면. 메타프레임도 화살표도 없다] |
오프닝 앞에 피버노바 사용권 계약 내용을 명기한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월드컵 시즌을 노린 게임이다. 그러나 정작 게임에 등장하는 경기장은 4개뿐이며(이것은 전작보다도 줄어든 숫자이다.) 그나마도 월드컵에 사용될 구장은 결승전이 벌어질 요코하마 종합경기장 뿐이다. 덕택에 피버노바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의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참고로 발매일 미정인 Xbox용 실황 2002에는 9개의 경기장이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경기장은 모두 4개뿐] |
[결승전이 열릴 요코하마 종합 경기장] |
한편 전작과 달리 난이도는 비기너와 리얼의 두가지만 존재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축구 게임들에 비해 다양성 면에서 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게임 자체가 지나치게 쉽기 때문에 초심자도 한 두번만 플레이해 보면 리얼 난이도에 적응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능력치 배분은 1-99까지로 바뀌었는데 선수간의 특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 배분이 비슷비슷하다. 게다가 각 팀간의 실력차도 매우 좁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과 한국의 차이가 겨우 이 정도?] |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할 사항은 제작사가 아닌 닌텐도에게 제기하게 될 부분인데 바로 NGC의 패드에 관한 것이다. 닌텐도의 게임 패드는 N64 시절부터 편리하기로 소문나 있었고 NGC의 패드도 손에 딱 맞는 편한 느낌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지만 특유의 L, R 버튼이 문제이다. NGC 패드의 L, R 버튼은 '딸칵'하는 느낌이 들 때까지 꽤 깊이 눌러주어야 하는데 실황의 경우 게임 L 버튼은 조작 선수의 변경, R 버튼은 댓쉬에 대응하므로 이 두 버튼을 매우 자주(거의 분당 20회에 가까울 정도로) 사용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매번 이 두 버튼을 누르기가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다.
위안으로 삼을 것들
그래도 찾아보면 위안으로 삼을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게임 외적인 요소이므로 게임성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우선 쾌적한 게임환경을 꼽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전작인 PS2용 실황 2001에서도 그랬지만 로딩 시간이 매우 짧은 편이다. (하지만 게임큐브용 미니 DVD를 매체로 사용함에도 CD를 사용했던 PS2용 2001보다 로딩시간을 단축시키지 못한 점과 전작의 메뉴화면에서 로딩 시간을 감추기 위해 눈속임으로 사용했던 역동적인 메뉴화면의 움직임이 사라진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숏컷 기능이 등장해 시합전 대전팀 선택이나 경기 환경 설정시 L, R 키를 사용하여 원하는 메뉴로 손쉽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기본 메뉴화면] |
[로딩화면] |
[화면 제일 위쪽이 숏컷 메뉴] |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 게임은 월드컵을 겨냥한 상품이므로 월드컵 공인구인 피버노바가 등장한다. 리플레이 시 힐끗 보이는 피버노바 특유의 로고는 월드컵 개최국민으로 자부심을 갖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아디다스와 정식 계약이 되어 있으므로 일본 국가대표팀의 최신 유니폼이 등장, 사뭇 새로운 느낌을 준다. 물론 아디다스 이외의 유니폼을 착용하는 국가의 유니폼은 계약 문제상 그대로 재현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피버노바를 사용한다] |
[일본 대표팀의 새 유니폼] |
본작에서 유일하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실황 중계에 대한 부분이다. 전작에서 활동했던 타바타 유이치와 미야자와 미셸 콤비가 등장하는데 호평을 들었던 전작의 내용에서 한층 진보한 모습이다. 특히 해설자인 미야자와 미셸씨의 대사량이 대폭 증가해서 시합 시작전이나 하프타임 그리고 경기 종료 후 경기를 종합하는 내용의 대사량이 많아지고 상황에 적절한 내용을 설명해 준다. 해설자의 존재감이 미미한 위닝에 비해 큰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
[미야자와 미셸씨와 타바타 유이치씨] |
마치며
이번 실황 2002는 PS2로 넘어가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실황 시리즈의 밸런스를 여전히 추스리지 못한 모습이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새로운 버전이라기 보다는 실황 2001을 NGC용으로 컨버전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그간 여러 팬들의 비난과 날카로운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시정되지 않은 것. 물론 2001과 2002의 발매간격이 너무 좁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게임 개발에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도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이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간 메이저 A의 명성과 달리 너무 무성의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발매된 지 몇일 되지 않았지만 일본 내에서 팬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기도 하다. 실황 2002와 거의 같은 게임인 실황 2001의 경우 일부의 혹평처럼 '쓰레기'소리를 들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제작되고 있는 콘솔 및 PC용 축구 게임들이 대부분 상당한 퀄리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본작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많은 제작사들이 총력을 기울인 축구 게임들을 내놓고 있는 마당에 이런 게임을 출시하게 되어 메이저 A와 코나미 OSA의 이미지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추측된다. 필자가 리뷰어가 아닌 한명의 실황 팬 입장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메이저 A가 신속하게 팀을 추스려 제대로 된 게임을 출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코인토스] |
[휘슬이 울리고] |
[셋트 플레이 시의 몸싸움] |
[골 세러머니] |
[분명히 피버노바를 사용하는군] |
[아... 실황 시리즈 안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