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리뷰: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XBOX360)
2006년이 시작되면서 대작 RPG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한 때는 고전 RPG의 인기 타이틀로 꼽히던 시절도 있었지만, 3편 모로윈드가 유통사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게임 판매 프랜차이즈인 EB 게임즈에서 유통을 맡는 등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던 엘더 스크롤 시리즈의 최신작 오블리비언이 그 것이다.
게임 소개용으로 주로 열거되는 특징은 넓은 맵, 풍부한 퀘스트, 멋진 그래픽, 뛰어난 AI(인공지능) 등이다. 이런 단어들의 나열로만 보면 비슷한 특징을 가진 게임들이 몇 개 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세계 게이머들은 유난히도 오블리비언에 더 열광하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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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RPG는 넓은 맵을 갖고 있다. 한 국가의 전 지역을 돌아다녀야 한다거나 몇 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월드맵을 여행하기 때문에 넓지 않은 배경을 가진 RPG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월드맵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오블리비언 역시 다른 게임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시점과 표현의 차이에서 확연하게 갈라진다. 다른 RPG의 월드맵은 여러 작은 구역의 지리적 위치를 표현하는 도구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오블리비언의 맵은 그야말로 거대한 땅덩어리를 작게 축소해 놓은, 사실상의 지도 역할을 한다. 이러한 넓이를 체험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가장 큰 요인은 시점과 기술의 차이.
3편 모로윈드 역시 같은 시점으로 되어 있지만, 그래픽의 한계 또는 시스템 사양의 한계를 감안했는지 먼 곳은 흐리게 표현되어 얼마나 넓은지 가늠할 수 없었다. 오블리비언에서는 이쪽 산 봉우리에서 건너편 봉우리로 직접 건너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넓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게다가 야외라면 눈을 돌릴 때마다 보게 되는 우거진 수풀과 각종 사물들로 매우 사실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지역과 지역을 선으로 연결해 놓은 커다란 월드맵을 갖고 있으며, 화면의 크기만큼만 보게 해주는 쿼터뷰 시점의 다른 RPG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매우 맑은 날, 높은 산에 올라가 작은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바로 그런 느낌을 오블리비언에서 경험하게 될 것으로 상상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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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수 있는 세계가 넓은 만큼, 퀘스트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 우연히 만나는 사람이나 방문하게 되는 장소에서 퀘스트를 얻을 수도 있다. 퀘스트는 반드시 NPC를 통해서만 얻는 것도 아니다. 어떤 장소에 떨어져 있는 문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사이드퀘스트는 말 그대로 부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원한다면 사이드퀘스트를 완전히 배제하고 메인 스토리의 흐름만 따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놓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속속들이 살펴보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세세하게 설정해 놓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진행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다. 캐릭터 레벨을 단시간에 끌어올려야 할 만큼 급격하게 난이도가 높아지는 일도 없고, 각종 스킬의 수준이 낮다는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레벨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경험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레벨을 올리도록 되어 있지도 않다.
업그레이드 가능 상태가 되면 화면에 그 여부를 표시한다. 잠을 잘 수 있는 곳에 방문해 잠을 청하면 그제서야 레벨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게임 진행이 레벨의 수치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레벨과는 상관없이 사용 빈도에 따라 해당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는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레벨이 높아지면 세 가지 스킬의 숙련도를 높일 수 있게 되는데, 캐릭터의 속성을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따라 업그레이드 포인트 단위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인텔리전스 부분에 특화되어 있다면 다른 스킬은 1포인트 높일 수 있는 반면, 인텔리전스는 한 번 업그레이드로 3포인트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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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레벨은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업그레이드가 쉬운 편이다. 예를 들어 소리 내지 않고 걷는 스닉(Sneak) 스킬의 레벨을 높이고 싶다면, 스닉 모드를 켠 상태에서 계속 천천히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다른 스킬 역시 해당하는 동작을 계속 사용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특정 스킬 숙련도가 높은 NPC에게 돈을 지불해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캐릭터 레벨과 스킬 레벨은 서로 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다른 RPG에서는 캐릭터 레벨이 낮으면 스킬 레벨도 함께 낮을 수 밖에 없지만, 오블리비언은 캐릭터 레벨은 낮아도 스킬 레벨은 계속 높일 수 있다. 이는 경험치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 레벨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지 않게 만들려는 제작사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스킬 중에서 NPC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설득(Persuasion) 스킬은 미니게임처럼 설정되어 있어 업그레이드 과정이 재미있다.
캐릭터 제어 방법은 FPS 게임의 그것을 상상하면 되겠다. 좌측 아날로그 스틱으로 전후좌우 움직임을 제어하고, 우측 아날로그 스틱은 시야 회전을 제어한다. B키를 눌러 메뉴 화면을 열면, 트리거를 이용해 모든 종류의 메뉴에 접근할 수 있다. D패드는 단축키 설정과 활용에 사용되는데 이 부분은 조금 불편하다.
인벤토리 화면에서 특정 아이템이나 마법을 선택한 후 Y키를 누르면 여덟 개의 방향에 버튼이 있는 원형 메뉴가 표시된다. 이 때 D패드의 여덟 방향 클릭 기능으로 여덟 개의 버튼에 아이템 또는 마법을 지정하는 방식인데, 방향을 잘못 누르면 기존 항목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반드시 있던 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실수를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단축키 메뉴는 항상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다 메뉴를 열어놓는 기능도 없기 때문이다. 특정 방향을 눌러 원하는 아이템을 즉석에서 활성화한다는 편한 면이 있지만, 그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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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부분은 조준이 필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만약 FPS 게임에 익숙하다면 두 가지 모두 쉽게 소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칼과 도끼 등의 휘두르는 무기는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다. 게임 화면의 중앙에는 크로스헤어가 항상 표시되지만, 이것은 조준이 필요한 공격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즉, 활을 쏴야 한다거나 불덩어리를 던지는 마법 공격에는 반드시 적이나 몬스터 위에 크로스헤어를 올려 놓아야 하지만, 휘두르는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적이 내 앞에 있기만 하면 된다. 다른 게임에서는 체력 유지를 위해 적의 공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오블리비언에서는 공격을 일부러 맞아주는 데도 익숙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킬을 사용할수록 그만큼 업그레이드되는데, 방어구와 관련된 스킬은 얻어맞아야만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물론 죽을 정도로 얻어맞는 일은 없어야 한다).
스킬 업그레이드 부분도 그렇고, 육박전용 무기를 이용한 공격도 그렇고, 전반적인 난이도 진행 속도도 그렇고, 콘솔 게임을 의식해서인지 상당히 단순한 구성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캐릭터 속성이 어느 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전사 캐릭터에 특화되면 마법 능력을 거의 활용할 수 없는 수준이 되는데,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캐릭터 속성을 지정하면서 최대한 전사에 맞는 것만 골라서 하게 되더라도 진행 중에 얻게 되는 마법 능력을 대부분 있는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대신 마법 사용에 필요한 매직카(Magicka)라는 것이 마법사 속성 캐릭터에 비해 조금 주어질 뿐이다. 전사라고 하더라도 마법을 자주 사용하는 마법 스킬도 계속 업그레이드된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이 부분은 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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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화 부분은 아쉽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 많은 NPC들과의 대화도 그렇지만 게임 속 세계의 구석구석을 설명해 놓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들을 보다 보면 참 기가 막힐 정도이다. 과거 텍스트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게임 중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가 있는데, 발더스 게이트에서 배경 세계를 설명하는 매체는 주로 스크롤이었다.
오블리비언에서는 스크롤 대신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10페이지가 채 안되는 책들도 있지만 넘어가는 책이 더 많다. 게임 초반에 30페이지 분량의 책을 접했고, 조금 지나 50페이지가 넘는 책도 찾아냈다. 여러 지역을 돌다 보면 같은 책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다행히 영어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RPG의 한글화는 최하 6개월의 발매 지연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가 한글화되는 데도 대략 6-7개월이 소요됐다.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해도 그보다 10배는 더 많아 보이는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으니 대충 계산을 뽑아 보아도 6-7개월로는 어림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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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배경, 엄청난 양의 텍스트, 눈이 돌아갈 정도의 그래픽, 시종일관 귓가를 울리는 멋진 음악, NPC의 사실적인 AI,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퀘스트 등의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은 패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점이다. 콘솔 게임 답지 않게 버그가 자주 눈에 띈다. 주로 사라져야 할 캐릭터가 사라지지 않는다거나 사라지지 말아야 할 캐릭터가 사라지는 문제이다.
이제는 콘솔도 온라인 기능이 기본 사양이 되다 보니 인터넷을 통한 패치가 용이해지긴 했지만, 패치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콘솔 게임조차 패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하게 됐다는 것도 그렇고, 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