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슨에 대해 생소한 독자도 많을 것이다. 1989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유명한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isy)의 포스터에 등장했던 자동차가 바로 허드슨이다. 지난해 여름 개봉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카’(Car)에서 주인공 맥퀸에게 인생을 알려주던 시골마을 재판관 허드슨이 바로 실제로 있었던 1951~53년 허드슨 호넷
경주차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허드슨은 20세기의 전반부에 미국 중산층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자동차 회사였다. 1929년 허드슨의 생산량은 30만 대에 달했고 이는 포드, 시보레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생산량이었다. 미국 본토 외에 유럽에도 조립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허드슨은 자동차 역사에 많은 기여를 한 회사다. 1919년 미국인 웨스트코트가 최초로 개발한 쇠막대기형 범퍼를 1924년 허 드슨 자동차회사의 현장종업원이 충격을 완화시키는 스프링식 범퍼로 개조해 이후 모든 자동차에 표준으로 달리기도 했다. 또한 오픈형 자동차가 표준이었던 20세기 초 허드슨은 초기부터 지붕 있는 자동차가 기본이었다.
특히 1921년에 지붕이 강철로 만들어진 에섹스(Essex)를 선보이면서 강철지붕 있는 차가 표준이 되도록 시대를 이끌었다.
포드 모델T의 경쟁자였던 에섹스
허드슨은 로이 샤팽(Roy D. Chapin, 1880~1936)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샤팽은 미국 자동차 역사에 있어서 기록적인 인물이다. 1900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1901년 올즈모빌 자동차에 입사해 테스트 엔지니어로, 이후에는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1906년 올즈모빌을 퇴사한 후 디자이너인 하워드 코핀(Howard Coffin)과 함께 토마스-디트로이트사(E. R. Thomas-Detroit Company)를 세웠고 이후 거대 자본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디트로이트의 백화점 기업가 조셉 허드슨(Joseph L. Hudson, 1846~1912)에게서 투자를 요청한다. 1909년 허드슨 자동차가 설립된 배경이기도 하다.
허드슨은 설립초기부터 넉넉한 자본과 뛰어난 경영으로 말미암아 설립 후 2년 만에 미국에서 11번째로 많은 생산량을 자랑할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이후 어떤 기후에도 보다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지붕 있는 차를 기본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포드를 따라해 기어와 핸드브레이크를 스티어링 휠에서 실내 중심으로 옮기고, 캐딜락에서 배워온 셀프스타터를 채용하는 등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자동차를 만들었다.
당연히 판매량이 늘어만 갔다. 또한 1916년에는 세계 최초로 좌우대칭형 캠샤프트를 사용한 6기통 엔진 수퍼 식스(Super Six)를 사용해 고속에서도 저속과 동일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엔진 기술을 다졌다.
당시 허드슨은 중고가 시장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회사의 성장과 더불어 로이 샤팽은 당시 저가 시장을 휩쓸던 포드 모델 T와의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마침내 1918년 허드슨은 저가형 브랜드인 에섹스(Essex, 1918~32)를 데뷔시켰다.
에섹스는 오늘날 독립된 브랜드가 아닌 허드슨의 저가 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 지붕을 포함한 차체 전체가 강철로 되어있는 에섹스는 싼 가격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후기형 포드 모델 T가 지붕을 기본적으로 달도록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1920년대는 허드슨은 최고의 황금기를 맞는다. 허드슨과 에섹스의 이름으로 승용차에서 픽업, 트럭 등 다양한 모델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다. 해외에 조립공장을 설치할 정도였다.
그러나 1929년 경제공황이 시작되어 그 영향이 자동차 시장에 미치기 시작하자 허드슨의 판매는 급감했다. 사장인 로이 샤팽은 지나친 낙관주의로 공황이 금방 끝날 것으로 보았으나 이 탓에 허드슨은 고난 속으로 빠져들었다. 1929년 30만 962대를 정점으로 허드슨의 생산량은 급락했고, 과거 주 수입원이던 에섹스는 높은 원가 때문에 판매할 수록 손해만 만들었다. 대안으로 캐나다에 조립공장을 짓는 등 회생을 꾀했지만 시장 반응은 좋지 못했다.
나스카를 휩쓴 전설적인 허드슨 호넷
948년 허드슨은 모노코크 방식을 사용한 새 디자인의 차를 선보였다. 과거 프레임 방식은 차에 올라타는 식이었으나 모노코크 방식은 문을 열고 내려앉는 방식이다.
새로운 디자인에 따라 대형차 코머도어(Commodore), 중형차 페이스메이커(Pacemaker), 호넷(Hornet) 등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새로운 자동차는 차가 가볍고 최저지상고가 낮아 접지력이 좋았다. 거기에 새로 개발한 탄탄한 서스펜션은 좋은 핸들링, 제동력을 보였다.
여기에 허드슨의 수퍼 식스 6기통 엔진을 얹어 고회전, 고출력을 자랑했다. 이러한 장점에 힘입어 허드슨 호넷 경주용차는 미국 자동차 경주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나스카(NASCAR) 경주에서 1952년에 34회 참가해 27회 우승, 1953년에는 37회 참가해 22회 우승, 1954년에는 37회 참가해 17회 우승하는 등 1951년부터 1954년까지 4년 연속 종합우승이라는, 오늘날까지 깨어지지 않는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 말 그대로 ‘전설적인 허드슨 호넷’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1950년대는 효율적인 6기통 엔진 대신 커다란 8기통 엔진을 얹고 출렁출렁한 서스펜션이 인기를 끄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허드슨은 일반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그것으로 대중차를 생산하던 허드슨의 시대는 끝이 났다.
허드슨 자동차는 빅3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 합병을 시도해 1954년에 오랜 경쟁사인 내쉬(NASH)와 합병해 AMC(American Motors Corp.)가 되었다. 합병 후 허드슨 브랜드의 생산은 3년간 더 생산을 지속한 뒤, 1958년부터 허드슨과 내쉬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