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곧 멸망할 듯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어둑어둑한 오후,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인다.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차선을 바꾸는 순간 뿌연 비보라 속으로 검은 자동차가 옆 차선에서 나타난다. 깜짝 놀라 차선을 되돌리자 상대편 차도 놀랐는지 하이 빔을 연신 켜댄다. 뒷 차가 미리 안개등이나 차폭등을 켜고 달렸으면 겪지 않을 위험이다.
국내 오너들 가운데 상당수가 램프를 켜는 것에 인색하다. 또 주변 운전자 중 의외로 많은 이가 안개등에 대한 개념과 적절한 사용법을 모른다. 자동차에는 헤드램프, 테일램프 외에도 안개등이 있다. 커브를 돌 때 켜지는 코너링램프를 갖춘 경우도 있는데 2008년부터 관련 법규가 개정되며 스티어링 휠 움직임에 따라 헤드램프 조사각이 틀어지는 능동형 헤드램프가 보급될 예정이다.
대부분 자동차의 램프 스위치는 크게 두 가지로 대시보드에 붙어 버튼을 돌리는 다이얼식과 스티어링 왼쪽 뒤에 깜빡이 레버 끝을 돌려서 켜는 방식이 있다. 차폭등, 하향등, 상향등, 안개등을 나타내는 기호는 전 세계적으로 모든 자동차에 규격화되어 있어 차를 바꿔 타도 헷갈릴 염려는 없다.
헤드램프는 언제 켜야 할까?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승용차는 야간 주행 때 차폭등, 번호판등을 꼭 켜야 한다. ‘야간’이라 함은 해가 진후부터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를 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가끔씩 도시의 가로등 불빛이 밝아서 전조등 켜는 것을 깜빡 잊은 운전자를 볼 수 있는데 단속 대상이다. 헤드램프 스위치를 1단계로 움직이면 차폭등, 번호판 등이 동시에 켜진다.
여기서 1단계 더 조작하면 하향등, 이른바 흔히 헤드램프로 통용되는 전조등이 켜진다. 어두운 밤길을 비춰주는 요긴한 장비다. 하향등의 반대되는 개념의 상향등도 있다. 위쪽을 비춘다는 말 그대로 조사 각도가 하향등보다 높여져있어 더 멀리 비춘다. 단, 마주 오는 차의 시야를 가릴 수 있으니 늘 켜고 다녀선 안 된다.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시골길에서 켰다가도 대향차가 발견되면 다시 하향등으로 내려야 한다.
조작 방법은 방향 지시등 레버를 밀면 된다. 당겼다가 놓으면 상향등이 켜졌다가 바로 하향등으로 되돌아가는 ‘패시브’ 기능이다. 국내 운전자들은 패시브 기능을 ‘내 앞으로 들어오지 마’, ‘느림보야 내 앞에서 비키란 말이야’ 등의 경고의 용도로 많이 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내 앞으로 끼어드세요’, ‘먼저 가세요’ 등의 양보의 의미다.
나 여기 있소! 자신의 존재를 알리자
꼭 밤에만 등을 켜는 것은 아니다. 도로교통법을 살펴보면 ‘터널이나 안개 등으로 시야가 전방 100m 이내의 장애물을 확인할 수 없는 어두운 곳을 통행할 때는 등화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사실 안개등은 말 그대로 안개가 자욱하게 꼈을 때, 갑자기 낮에 비가 쏟아지며 어두컴컴해 질 때, 또는 지하주차장이나 터널을 주행할 때 꼭 미등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어운전 차원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서다.
국내에 수입되는 유럽형 자동차는 후방 안개등이 추가로 달려 있는데 이것은 국내 운전자에게 가장 익숙하지 않은 자동차 램프다. 심지어 이것이 자신의 차에 있는 줄도 모르는 운전자가 간혹 있다.
뒤쪽 수직으로 빔이 나간다는 표시의 후방 안개등 기호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을 켜면 뒤 브레이크 테일 램프 일부 또는 따로 마련된 후방 안개등이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환하게 켜진다. 현재 유럽에서만 기본으로 사용할 뿐, 아직 우리나라와 북미에서는 법적으로 의무 사항은 아니다.
악천후나 안개가 낀 날, 뒤에서 따라오는 차가 추돌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요긴하다. 단, 테일램프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것처럼 밝아지기 때문에 뒤따르는 자동차 운전자의 눈에 강한 자극이 온다. 따라서 후방 안개등을 아무 때나 켜면 안 된다. 꼭 켜야 할 상황에만 점등해야 한다.
그 밖에 주간 러닝 램프(Daytime Running Lamp: DRL)도 있다. 안개와 비가 자주오고 일몰 시간이 짧아 오후 서너시면 어둑어둑 해지는 북유럽이나 캐나다에서는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에 기본으로 달린 기능으로 시동을 걸면 무조건 램프가 켜진다. 낮에도 램프를 켜는 이유는 달리는 자동차의 존재를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들에게 알려 교통사고 예방한다는 차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자율적으로 고속버스와 시내버스가 낮에 램프를 켜고 달리고 있다. 사고 감소의 효과가 분명 있다고 한다. 하지만 헤드램프를 켜기 위한 전력 생산을 위해 엔진에서 그만큼 연료를 더 태워 연비가 나빠진다는 반론도 등장했다. 법제화가 될지 아직 미지수다.
수입차 대부분은 자동으로 램프를 켜는 기능이 있다. 깜깜한 터널이나 해가 지는 늦은 오후에 알아서 미등과 전조등이 작동해 운전자의 수고를 던다. 앞서 언급한 능동형 헤드램프 외에 도로 상황에 따라 상향등을 스스로 켜고 끄는 기능을 갖춘 차도 있다. 그러나 갖가지 램프를 켜고 끄는 것은 분명 운전자 스스로가 결정해야한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과감하게 차폭등이나 안개등을 켜고 달리자.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미리 하향등을 미리 켜는 습관을 들이자. 정확한 램프 사용법을 파악하면 시야 확보도 좋아지고 자신의 존재를 잘 노출시키기에 그만큼 교통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방어 운전의 기본은 바로 자동차의 램프를 제 때 잘 켜는 것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