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내린 요리법, 수비드 세계 속으로 (출처: 아노바 수비드머신)
아테나도 감탄할 완벽한 밸런스의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칼이 필요 없는 닭가슴살, 커스터드 식감을 가진 계란… 말만 들어보면 미슐랭 레스토랑의 베테랑 셰프나 가능할 듯한 요리처럼 느껴진다. 물론 튀김, 찜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요리법만 고집하면 초고난이도 요리가 맞지만, 서양의 ‘이’ 조리법을 적용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요리 똥손도 일류 셰프 요리를 흉내 낼 수 있게 해주는 신의 요리법! 바로 수비드 조리다.
‘군고구마도 수비드였어!’ 수비드 알고가기
▲ 이분이 벤자민 톰슨
수비드(sous-vide)란 ‘진공 아래’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음식을 진공 밀봉 처리한 뒤 기존 조리 온도보다 낮은 온도로 천천히 가열해 익히는 조리법’을 지칭한다. 수비드 조리법은 1799년, 영국 물리학자인 벤자민 톰슨이 발견했는데, 그는 감자 건조 기계로 양고기를 구울 수 있는지 실험을 하던 중 오랜 시간, 동일한 온도로 음식을 가열하면 단시간에 고온으로 음식을 익히는 것보다 풍미가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당시 수비드 조리에서 열전도 매체는 공기였다. 때문에 수비드라는 개념 자체로만 봤을 때는 대나무 잎에 음식을 싸서 장작불로 조리하거나, 모닥불 아래 고구마를 묻고 흙으로 덮어 익히는 방식도 수비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 오늘날 수비드라 하면 물에서 음식을 익히는 방법을 말한다 (출처: Pedro.serna)
그러나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과 1970년대 프랑스 요리사들을 통해 ‘물을 매개로 한 수비드 조리법’이 개발되고 각광받으며 현대에서는 ‘진공 포장 상태의 음식물을 물속에서 데우는 방식’을 수비드 조리법이라 일컫게 되었다.
수비드, 맛과 영양, 식감을 지켜주는 비결은?
▲ 수비드로 조리한 음식은 풍미가 뛰어나고 영양소 손실도 적다 (출처: Silar)
일반적으로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은 식자재가 고루 익어 풍미가 뛰어나고 영양소 손실이 적으며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이는 수비드 조리법이 식자재 성질 보존에 최적화된 저온(50~65℃)에서 음식을 익히기 때문이다.
▲ 왼쪽이 수비드로 조리한 스테이크, 오른쪽이 그릴로 조리한 스테이크다 (출처: 아노바 수비드머신)
예를 들어 우리가 많이 먹는 육류는 크게 미오신, 액틴이라는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들은 조리 중 일정 온도를 넘어서면 변성이 일어나는데 미오신은 50℃를 넘으면 부드러워지고 액틴은 66℃를 넘으면 질겨진다. 그래서 미오신이 부드럽게 변성되는 50℃ 이상 온도와 액틴이 변성되지 않는 65℃ 사이를 유지하며 조리하는 게 중요하다.
▲ 왼쪽이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 오른쪽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 (출처: Yedi 수비드머신)
그런데 불로 식자재를 가열하면 재료 중 특정 부위는 변성 온도 이상으로 조리되고, 일부는 변성 온도 이하로 조리돼 맛과 식감 밸런스가 붕괴된다. 반면 수비드 조리는 열전도율이 안정적인 물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온도를 동일하게 유지하며 고기를 고루 익힌다.
▲ 수비드에 대해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이 영상을 클릭하자(출처: 미트러버 Meatlover 유튜브)
이 외에 수비드는 대량 조리가 가능하며, 저온에서 요리하기 때문에 조리 시간 내내 다른 짓을 해도 음식물을 태울 염려가 없다. 또한 진공 포장 상태로 조리되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하기 쉽다. 실제로 영국 해군에서는 수비드로 조리한 음식을 전투 식량으로 보급하기도 했다.
▲ 4분 먹을 스테이크를 위해 72시간 조리해야 할 수도 있다 (출처: Yedi 수비드머신)
물론 수비드 조리법이라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비드는 저온에서 오래 조리하기 때문에 조리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보통 스테이크를 불로 조리하면 10~20분이면 되는데, 수비드는 최소 1시간에서 최대 72시간까지 조리해야 한다. 또한 진공 포장 상태로 조리하기 때문에 식자재 상태가 좋지 않으면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해 음식물 쓰레기가 될 수 있으며, 조리 온도를 정확히 지켜주지 않으면 식중독균이 증식할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일부 해소해 주는 것이 바로 가정용 수비드 머신이다.
수비드 조리 실패를 줄여주는 갓템! 수비드머신
▲ 우리나라에서는 최현석 쉐프가 수비드 조리법을 많이 사용했다
수비드 머신은 앞서 설명한 수비드 조리를 도와주는 전용 기기다. 1960년대에 개발됐지만 일반인도 쓰기 쉬운 가정용 제품은 2010년,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 존재를 알렸다.
▲ 가정용 수비드머신 주요 기능
가정용 수비드 머신은 보통 온도센서, 히터, 물 순환기, 타이머 기능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 그래서 용기에 물을 붓고 식자재를 넣은 뒤 온도와 타이머를 설정해두면 목표 온도까지 알아서 물을 데우고, 이후 균일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순환시키며 식자재를 익힌다. 수비드 머신이 열일하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은 온도가 정확히 유지되고 있는지 가끔 확인해보는 것과 밀봉팩이 터지지 않았는지 상태를 체크하는 정도다.
어떤 수비드머신을 살 것인가?
▲ 수비드머신 성능은 비슷하니 사용 환경과 편의성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출처: 아노바 수비드머신)
가정용 수비드 머신은 크게 핸디형과 일체형으로 분류된다. 수비드 머신은 궁극적으로 정확하고 안정된 온도에서 요리를 만들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에 이 두 유형 중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는 사용 환경과 편의성에 달렸다. 아래 차트를 참고해 자신에게 필요한 수비드 머신을 선택하자.
* 알아두면 좋은 수비드 머신 소비 전력
수비드 머신은 보통 800W~1200W 전력을 소모한다. 와트 수가 높을수록 제품도 비싸지는데 이는 전력이 높으면 예열 속도가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800W 수비드 머신으로 57℃까지 예열하려면 20분이 걸리지만, 1000W 제품은 15분 정도 소요된다.
알쏭달쏭한 수비드머신 사용법, 싹 정리해드림
Q. 핸디형 제품 사용 시, 아무 용기나 써도 될까?
▲ EVERIE 수비드 전용 용기
별도 용기가 필요한 핸디형 제품은 요리하려는 음식량에 따라 용기 사이즈를 유연하게 교체할 수 있다. 성인 기준 2~3인분 음식을 조리할 경우 12리터, 4~6인분 조리 시 18리터, 10인분 조리 시 26리터 크기 용기가 적합하다. 단 수비드 머신에 따라 수용 가능한 최대 용기 크기가 있기 때문에 사용 전 반드시 스펙을 확인하도록 한다.
▲ 수비드 용기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제품을 쓰는 게 좋다
용기 소재는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금속 냄비나 플라스틱 통을 써도 괜찮으나 이왕이면 열에 잘 견디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용기를 쓰는 것이 좋다. 폴리카보네이트 용기는 투명해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금속 냄비보다 열 유지력이 좋기 때문에 수비드 머신의 불필요한 전력 소모를 줄여준다.
▲ BPA FREE 제품과 뚜껑 있는 용기를 사용하자
가장 많이 걱정하는 환경호르몬의 경우 수비드 조리는 진공팩이 BPA와 식품이 닿는 걸 막아주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불안하면 BPA FREE 용기를 사용하면 된다. 물론 진공팩은 BPA FREE 제품을 써야 한다. 또한 용기는 반드시 뚜껑이 있는 제품을 사용하자. 용기 뚜껑은 수온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수분 증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비드 조리에서 필수다.
*만약 뚜껑이 없다면? 탁구공을 써보자
▲ 아마존에서는 수비드용 탁구공도 판다
용기 뚜껑이 없다면 탁구공을 뚜껑 대용으로 사용해보자. 플라스틱 탁구공으로 용기 속 물 표면을 덮어주면 수온과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Q. 수비드머신으로는 육류만 조리할 수 있을까?
▲ Cosmo COS-SVK1 수비드머신
TV 및 유튜브에서 육류를 사용한 요리만 주로 소개되다 보니 ‘수비드=고기 조리법’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은데, 사실 수비드 머신의 조리법은 무궁무진하다. 육류는 물론 달걀, 생선, 야채도 조리할 수 있으며 해외 레시피 중에는 수비드 조리법을 사용한 아이스크림 레시피도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어떤 식자재를 사용하든 이상적인 온도와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식자재별 권장 조리 시간과 온도는 아래 표를 참고하자. 식자재별 조리 시간과 온도는 제품 크기 및 두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출처: https://www.sousvidetools.com/toolshed/sous-vide
Q. 식중독균 걱정 없이 조리하는 방법은?
▲ 잘못 섭취했다간 조상님 뵙고 올 수 있는 살모넬라균
수비드 조리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세균 증식이다. 보통 박테리아는 2~50°C 사이에서 잘 번식한다. 만약 50°C에서 고기를 장시간 수비드 하면 박테리아가 번식할 위험이 높다. 그래서 일정 온도 이상 조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은 54°C 온도에서 15분 이상 노출되면 죽기 시작한다. 그래서 육류를 조리할 때는 최소 30분에서 1시간 이상 가열해야 한다.
▲ 수비드 후 시어링 해 먹는 것이 안전하다
혹은 조리 후 살짝 겉면을 굽는 시어링 작업을 거쳐 세균을 죽이는 것도 안전한 섭취법 중 하나다. 한편 조리 후 음식을 즉시 섭취하지 않을 경우 즉시 얼음이나 찬물에 담가 음식을 차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미생물이 번식할 수 없어 식중독을 예방할 수 있다.
Q. 진공포장기가 없을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진공포장기를 대신해줄 다양한 아이템들
수비드 조리에서 진공 포장은 필수다. 식자재를 밀봉하면 물의 열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음식물과 산소 접촉을 차단해 수분 증발 및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하고 박테리아 성장까지 억제할 수 있다. 진공 포장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공 실러를 사용해 공기를 완전히 빼내거나 수비드 전용 밀봉백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이런 별도 장비 없이 유리병이나 재 밀봉 가능한 지퍼백을 사용해도 훌륭한 진공 포장 상태를 만들 수 있다.
1) 지퍼백으로 진공 포장하기
▲ 지퍼백을 물어 넣고 공기를 빼서 밀봉한다 (출처: Sarah Kobos)
지퍼백에 식자재를 넣은 뒤 입구를 3cm 정도 남기고 지퍼를 닫는다. 이후 물에 천천히 지퍼백을 넣으며 공기를 빼낸다. 공기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지퍼를 마저 닫아 밀봉한다.
2) 빨대로 진공 포장하기
▲ 빨대로 공기를 흡입해 진공 상태로 만든다(출처: foodfilm 유튜브)
지퍼백에 식자재를 넣은 뒤 입구에 빨대를 꽂는다. 이후 빨대로 힘껏 공기를 빨아들이면 훌륭하게 오그라든 진공팩을 볼 수 있다.
Q. 수비드머신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 수비드머신 식초 목욕법(출처: Under Dog 유튜브)
수비드 머신은 물속에 장시간 담가 사용하기 때문에 오염에 노출되기 쉽다. 세균 번식은 물론 진공팩이 손상됐을 경우 음식물이 묻을 수도 있다. 수돗물을 사용하면 석회질이 낄 수 있는데, 오래 쌓이면 수비드 머신의 히터나 물 순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오염물질은 천으로 닦아내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세균이나 석회질은 식초를 사용해 제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