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데논 스테레오 리시버 DRA-800H가 입고되었습니다.
이 제품의 사양을 살펴본 나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수렴과 융합
귀가 예민한 오디오파일은 하이파이 시스템의 각 파트를 쪼갤 수 있을 때까지 쪼갠 독립형 기기를 선호합니다. 당연히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테면 앰프는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로 나누고 파워앰프도 좌우 채널을 독립시킨 모노블럭으로 나누어지죠. 앰프만 세 덩어리이고 여기에 시디플레이어와 턴테이블만 추가해도 벌써 다섯 덩어리가 됩니다.
반면, 오디오는 10년에 한 번 사면 자주 사는 가전제품으로 인식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왕이면 음악 감상 생활(?)에 유용한 기능들이 모두 추가되어 있기를 선호합니다. 이 제품은 바로 이런 노멀한 음악감상 애호가를 위한 제품이죠.
지금 마켓에선 지난 세기 1960~80년대 유행하였던 스테레오 리시버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이미 미니오디오라는 제품이 유행하 지도 20년이 넘었지만, 스테레오 리시버들은 좀 더 큰 풀사이즈의 앰프에 미니오디오와 비슷하게 올인원 성격의 다기능 앰프를 추구하고 있죠.
라디오나 DAC를 내장한다거나, 또는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블루투스 수신 기능들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대체로 이런 스테레오 리시버들에는 시디플레이어 기능이 빠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미니오디오는 시디플레이어가 한참 인기가 있을 때 앰프와 시디플레이어를 합쳐놓으려는 발상의 산물입니다. 결적적으로 이름과 마찬가지고 일반 앰프의 절반 정도 체적으로 아무 많은기능을 소화하고 있는데, 음질면에서는 하이파이 앰프에 미치지 못합니다.
반면, 1960~80년대까지 유행했던 스테레오 리시버는 앰프와 FM라디오를 합쳐놓은 것입니다. 풀사이즈의 케이스에 스테레오 앰프와 FM 라디오가 동거하고 있는데 미니오디오보다 훨씬 좋은 음질로 본격적인 하이파이 오디오를 즐기려는 분들을 겨냥하고 있죠. 음질이나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만큼 가격도 더 비쌉니다.
최근에 소개되는 스테레오 리시버들은 풀사이즈 케이스와 FM라디오를 내장하고 있는 반면, CD플레이어 기능을 제외했다는 점에서 분명 1960~80년대 스테레오 리시버의 후계자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시대적인 변화가 수용되어 있다는 점에선 과거와는 다른 현대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죠.
특이하게 현대 스테레오 리시버는 2계통의 서로 다른 앰프가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수렴 진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공통적인 환경 때문에 둘 이상의 생물이 적응한 결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듯, 서로 다른 계통에서 시작한 앰프들이 매우 유사한 스테레오 리시버라는 기능적인 카테고리오 수렴 되는 현상입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하이파이 앰프가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나 블루투스 무선 수신, 그리고 전통적인 FM라디오 기능을 내장하는 스레테오 리시버로 진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홈시어터 감상을 위한 AV리시버가 멀티 채널 출력을 스테레오 출력으로 간소화시키면서 기존의 AV기능은 드대로 유지하는 오디오 비주얼 스테레오 리시버로 진화한 것입니다.
이런 AV 스테레오 리시버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AV리시버들은 이미 홈엔터테인먼트를 위해서 앞서 거론한 다양한 기능 이를테면 네트워크 스트리밍, 블루투스 무선 수신, FM라디오 뿐 아니라 영상 재생을 위한 HDMI 입출력 단자를 구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스테레오 리시버와 비교하면 영상 소스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죠.
멀티채널 출력 단자를 스테레오로 바꾸게 되면 서라운드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더욱 여유로운 내부 부품 실장 덕분에 음질은 제고됩니다. 또한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채널별 출력 역시 더욱 강력하게 설정한 제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스테레오 리시버와 다른점이라면 HDMI 입출력 단자와 내부의 영상처리와 관련된 회로가 추가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소개할 제품인 데논의 DRA-800H가 바로 AV리시버에서 하이파이쪽으로 수렴된, 가전제품의 수렴 진화라는 특이한 현상의 산물이죠.
사실 스테레오 리시버 시대에는 TV의 음질을 따지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하이파이 앰프와 TV는 별개의 용도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홈시어터라는 제품군이 부상하면서 영상과 오디오를 같이 즐기려는 소비자들의 욕구도 높아졌고 이는 AV리시버가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AV리시버의 자체 논리(보다 많은 채널, 서라운드와 객체 지향 음향)로 발전하다보니 어느새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굉장히 복잡하고 사용이 까다로운 제품군으로 갈라파고스화 되버린 감이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용이 그리 복잡하거나 까다롭지 않아야하고 불필요한 스피커들은 최소화되어야 하지만 TV와 또는 비디오 게임, 그리고 라디오나 유튜브, 그리고 핸드폰의 음악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한 것이죠.
21세기의 세번째 십년(2020년대)에 스테레오 리시버들이 각광을 받게 된 배경에는 이런 소비자들의 니즈에 부응하려는 제조사들의 응답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렴 진화의 현상에서 홈엔터테인먼트 생태계는 더욱 풍부해지기도 하고 더욱 치열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위에 오르고자 하는 제조사들은 골머리를 앓겠지만 이런 수렴진화의 최종 승리자는 다름 아닌 소비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데논 DRA-800H는 정말 가지고 놀거리가 많은 앰프입니다. 네트워크 오디오도 되고, 블루투스 리시버로도 쓸 수 있고, 또한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프로젝터나 TV를 연결하거나 케이블방송의 셋톱박스 도 연결할 수 있죠. 비디오 게임의 음향을 하이파이 스피커로 들으면서 대형 프로젝터로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 FM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가 하면, 턴테이블을 연결하면 근사한 아날로그 오디오 시스템이 완성됩니다.
마치 이래도 안살래? 라고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이제 110년이 더 된 데논이 만든 제품입니다.
하이파이오디오 기기 제조사중에선 가장 연혁이 깊은 회사가 만든 스테레오 리시버이기 때문에 충분히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기본기가 갖춰진 앰프라는 말이죠.
데논의 기존의 AV리시버 제품의 써킷이나 외장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약간의 변형을 가해야하기 때문에, 완전히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하는 개발비용을 충분히 아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신개발의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오히려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예전에 개발자 대담에서 개발기간과 완성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제작자가 직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 충분한 개발시간이 주어지면 음질과 관련된 다양한 시도를 해볼수 있다고....)
멀티채널 서라운드는 입체 음향 효과에는 긍정적인지만 음질에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간략한 스테레오 출력으로 파워와 음질을 제고시키면서 AV리시버의 기능은 살리고 싶은 분께도....
아니면 이것저것 신경쓰기싫고 거실에 근사한 스피커와 대형TV로 빵빵한 음질고 음악듣고 게임하고 TV를 보고자 하는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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