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트 펑크’는 전장의 참혹함 속에서 민간인들의 생존을 다뤄 호평받았던 ‘디스 워 오브 마인’을 개발했던 11비트 스튜디오의 게임답게,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을 강요하는 심리적 갈등을 다뤄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게임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줄어드는 식량을 보면서 노인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을 끔찍한 노동 현장으로 보내야 하는 등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게임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덕분에, PC와 콘솔 플랫폼에서 모두 메타크리틱 점수 80점대 중후반을 기록하고, '가장 뛰어난 생존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등 매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영국 아카데미 비디오 게임상 후보 및 다수의 게임상을 수상했다.
전작의 30년 후를 다룬 ‘프로스트 펑크2’는 전작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결정들을 한 덕분인지 어느 정도 살만한 세상이 됐다. 석탄만으로 간신히 유지하던 발전기는 석유 자원 추가로 좀 더 여유롭게 열기를 관리할 수 있게 됐으며, 안정된 본진을 바탕으로, 또 다른 자원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탐험대를 보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물론, 여전히 대폭설의 위험 때문에, 발전기가 꺼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지만, 1편의 처절한 상황과 비교하면 대폭설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다보니 전작에서 생존을 위해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이던 시민들이,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뉴런던인, 충성가, 영구동토인, 순례자 등 여러 집단으로 분리되어, 각자 자신들의 집단을 위한 요구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달성되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위원회 투표에서 집단 행동을 하기도 한다. 생존만을 위해 모든 결정이 이뤄졌던 전작과 달리 정치 싸움 요소가 추가된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에게 무난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갈수록 집단간의 의견 차이가 심해지기 때문에, 우호였던 세력이 갑자기 불만 세력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고, 누가 봐도 당연한 선택인데도 불구하고, 어거지로 반대하는 세력이 나오면 그들을 달래기 위한 협상을 해야할 때도 있다. 석탄 보유고를 늘리는 것은 공통의 명제이지만, 좀 늦더라도 부상자나 환경 오염이 줄어들도록 더 안전하게 캐는 방식과, 다소 위험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폭탄을 써서 빠르게 캐는 방식 등 각 집단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생존을 위해 철권을 휘둘렀던 기억을 가진 이용자라면 속 터질 상황이 정말 많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한 세력을 탄압해서 전작처럼 독재자로 군림할 수도 있긴 하다. 한 세력에서 높은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비밀 경찰을 운영해서 반대 세력을 없애면 된다. 다만, 이 역시 높은 지지율을 획득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 세력들에게 휘둘리다보면 시민 투표를 통해 해임되면서 결국 추방된다.
정치 싸움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다보니, 건설, 경영 부분은 다소 간소화됐다. 여러 가지 종류로 분리되어 있었던 목재와 철이 자재로 통합되고, 조립식 건축법으로 대규모 건축물을 빠르게 올리는 식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쇄빙으로 얼음을 깨고, 구역만 설정해주면 알아서 시설들이 올라간다.
구역을 설정할 때 일정 숫자 이상을 클릭해야만 확정 버튼이 뜨고, 연구소 등 추가 시설물을 건설할 때도 구역 확장을 먼저 해야 하는 등 몇가지 부분들이 튜토리얼로 제대로 안내되지 않아서 처음에는 복잡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적응만 되면 전작보다 훨씬 건설을 쉽게 운영할 수 있다. 위원회 투표 등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많다보니, 이용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쥐어 짜듯이 자원을 수집해서 아슬아슬하게 시설물을 유지하던 전작의 긴장감이 줄어서 건설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이들도 있지만, 관리해야 하는 인원수가 대폭 증가했고, 내부 도시뿐만 아니라 외부 확장에 더 신경쓰도록 게임 플레이가 변경된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변화다.
전작에서 혹독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처절한 선택을 계속 강요했기 때문에, 개발진 입장에서는 후속작에서 이용자들이 다른 유형의 고민을 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각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으니, 독재자처럼 소수 의견을 무시하면서 강행하기보다는 여러 집단을 조율하면서 최적의 길을 찾는 고민 말이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중 박보영 배우가 연기한 주명화 캐릭터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극 중 몇 안되는 태생적으로 선한 캐릭터이지만, 주명화의 선한 행동들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최고의 발암 캐릭터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기도 하다.
프로스트펑크2 역시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다 같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상황에서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집단의 이익 때문에 방해하는 이들을 보면 속이 터지는 것이다. 몇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잔인한 선택을 계속해야만 했던 전작의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욱 답답함이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최적화 문제나, 직관적이지 않은 인터페이스, 튜토리얼 등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긴 하지만, 아직 발매 초기이니 추후 패치를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작과 전혀 다른 게임 전개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긴 하지만, 호평받았던 전작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과감히 도전한 개발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