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generated image @ChatGPT 4o
신라면과 진라면, 오늘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저녁엔 과연 어떤 라면을 끓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두 라면은 그야말로 ‘국민 라면’이라 불릴 만하다. 사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라신'(어차피 라면은 신라면)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신라면은 부동의 1위였다. 1986년 탄생 이후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바뀌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부터 진라면이 꾸준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2020년 5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소비자행태조사에서 신라면을 제치고 구매 빈도 및 의향 부문 1위에 오른 것이다. 이후 2022년, 신라면이 다시 정상에 복귀하면서 두 국민 라면의 치열한 경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또다시 격변의 시대가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This is your last chance. After this, there is no turning back."
이쯤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려 한다. 요즘 우리 삶에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스며들고 있는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 오늘 저녁, 어떤 라면을 먹을까? 과연 AI도 라면을 좋아할까? 신라면과 진라면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어차피 ‘라이벌 열전’ 시리즈 기사를 써야 한다. 그렇다면 이참에 신라면 vs 진라면, 두 국민 라면의 경쟁 구도를 AI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최첨단 AI 기술을 고작 ‘점메추’(점심 메뉴 추천), ‘저메추’(저녁 메뉴 추천)에 쓰는 걸 두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매달 20달러나 결제했으니, 본전은 꼭 뽑아야지!
#1 첫 번째 질문 : 그냥 대놓고... 신라면, 진라면 중 어떤 것을 선택?
▲ 정말 필자와 닮은 가상 캐릭터
사실 나는 결론부터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ChatGPT에게 물었다. "신라면과 진라면, 둘 중 하나만 고른다면?" 그러자 ChatGPT는 한참을 서론으로 둘러대더니, 느닷없이 신라면을 고르겠다고 답했다. 너무 단호한 거 아닌가? AI에게도 라면 취향이 있다는 말인가? 이대로 끝나버리면 너무 싱거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Google Gemini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신라면과 진라면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소름이 돋았다. Google Gemini 역시 신라면을 선택했다. 혹시 농심이 AI 업체에 영업이라도 뛴 걸까? Microsoft의 Copilot은 직접적인 대답을 슬쩍 피해버렸다. 요즘 잘나간다는 AI들, ChatGPT와 Gemini 모두가 선택한 라면, 신라면. 도대체 어떤 매력이 AI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신라면이 AI가 좋아하는 맛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쯤 되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왜 진라면은 AI들에게 선택받지 못했을까?
#2 두 번째 질문 : 아니... 왜 진라면은 선택하지 않았어?
AI라 그런지, 대답도 참 냉정하고 계산적이다. 챗GPT는 일단 상징성과 인지도 측면에서 신라면을 선택했다고 한다.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르겠지만, “신라면은 한국 라면의 얼굴”이라며 신라면을 한껏 치켜세운다. 과연 그럴까? 진짜 그런 평가가 정당한 걸까? 이쯤에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위상과 인지도는 결국 수출량으로 증명되는 법이니까.
<이미지 출처 : 농심 보도자료>
신라면은 1986년 출시된 이듬해인 1987년, 바로 해외 수출을 시작했다. 지금은 중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 동남아, 유럽 등 100여 개 국가에 수출되고 있다. 특히 2015년에는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단일 브랜드 누적 매출 10조 원을 돌파했고, 2021년에는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서는 기록까지 세웠다. 그만큼 신라면은 K-푸드 열풍을 이끄는 대표 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 내 제3공장 설립까지 검토 중이라니, ChatGPT가 “한국 라면의 얼굴”이라 칭송한 말에도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 지난 3월 오뚜기 진라면 글로벌 모델로 발탁된 BTS의 멤버 '진'
<이미지 출처 : 오뚜기 보도자료>
진라면도 해외 매출 확대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올해부터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을 모델로 기용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은 신라면과의 격차가 크다. 현재 진라면은 약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는데, 이는 신라면의 70% 수준에 그친다. 미국의 과학 연구 매체 StudyFinds가 발표한 미국 인스턴트라면 순위에서도 그 차이는 분명하다. 신라면은 2위, 진라면은 7위에 올랐다. 이 한 장의 순위표가 두 라면의 글로벌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BTS 진이 훨씬 더 잘생겼지만, K-라면의 얼굴은 여전히 신라면"
두 번째 이유는 ‘매운맛의 품질’이었다. AI는 친절하게 스코빌 지수(SHU)까지 제시하며 신라면과 진라면을 비교해줬는데, 확실히 신라면의 매운맛이 1,400이나 더 높다. AI가 진짜 매운맛을 좋아하는 걸까? 라면의 기준을 매운맛에 두다니, 취향이 꽤나 확고하다.
▲ AI generated image @Google Gemini Flash 2.0
물론 맵찔이 입장에선 그나마 덜 매운 진라면이 더 나은 선택이다. 하지만 ‘매운맛’이라는 라면의 대표적인 정체성 측면에서 보면, 신라면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더 흥미로운 건, 단순히 맵기 수치만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물 맛의 깊이와 밸런스까지 고려했다나. 이건 뭐, 흑백요리사 심사에서나 나올 법한 평가가 ChatGPT의 답변에서 튀어나오니, AI도 꽤나 공부를 많이 했구나 싶다. 반면 진라면에 대해서는, 부드럽고 대중적인 맛이라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강렬한 맛을 기대하는 사람에겐 다소 아쉬울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내놓는다. 이쯤 되면, ChatGPT가 엽떡이라도 시켜먹을 기세다.
"ChatGPT, 엽기떡볶이 매운맛 추가요~!"
세 번째 기준은 ‘맛의 일관성’이다. ChatGPT에 따르면, 신라면은 1986년 출시 이후 매운맛을 중심으로 큰 변화 없이 일관된 맛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오히려 2017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스코빌 지수를 기존 2,900에서 3,400까지 끌어올려, 매운맛을 더욱 강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분석과는 달리, 기존의 신라면 맛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맛이 변했다”, “예전이 더 낫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인 2018년, 진라면은 국물 맛을 더 깊게, 면발의 식감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소폭 리뉴얼을 진행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지 출처 : 농심 홈페이지>
그렇다면, 일관된 신라면의 매운맛이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농심은 한 발 더 나아가 ‘신라면 레드’를 출시하며, 폭발적인 매운맛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기존 신라면은 스코빌 지수 3,400 수준을 유지하면서, 더 강한 매운맛은 신라면 레드로 분산 유도하는 전략이 꽤 효과를 봤다. 이러한 이원화 마케팅 전략은 이제 막 치고 올라오는 진라면의 상승세를 견제하는 데도 한몫했다.
ChatGPT는 이처럼 발 빠른 농심의 대응에 더 높은 점수를 준 듯하다. 물론, 맵찔이인 필자 입장에서는 부드럽고 깊은 맛의 진라면에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AI가 그렇게까지 일관된 매운맛이 좋다고 하니 뭐, 존중이니 취향해야지....
#3 세 번째 질문 : 챗GPT는 계속 신라면만 PICK하네?
잘 진행되던 논의는 뜻밖의 한계에 봉착했다. 매운맛을 정말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추가 질문을 던졌는데, ChatGPT의 답변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처음엔 신종 밈인가, 유머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화면엔 계속해서 ‘鋼’, 굳셀 강 혹은 강철 강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신라면을 강하게 좋아한다는 뜻인가? 굳세게 지지한다는 표현인가? 아니면, 극한까지 몰아붙이면 AI도 바보가 되는 건가? 혹시 내가... ChatGPT조차 멈추게 만드는 극악의 질문을 해버린 걸까?
오류였단다. 역시 아직 AI가 진짜 사람처럼 존재하기엔 갈 길이 멀다. 어쨌든, ChatGPT는 대표성과 강렬한 매운맛의 균형을 이유로 신라면을 선택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마치 보험을 들 듯, 진라면에 대한 멘트도 빼놓지 않았다. 부드럽고 대중적인 맛 덕분에 일상적으로 먹기 편하고, 파생 상품이 다양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가성비를 중시한다면 진라면, 맵찔이라면 순한맛 진라면을 선택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비빔면류는 논외로 하더라도, ChatGPT는 진라면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
#4 네 번째 질문 : 고상하게 영양학적으로 접근해보자.
필자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까지 걱정해야 하는 40대 후반 남성이다. 그만큼 라면을 고를 때도 영양 성분을 매우 신중하게 따질 수밖에 없다. ChatGPT에게도 영양학적 관점에서의 비교는 가장 쉬운 과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신라면과 진라면, 둘 사이의 영양학적 차이는 무엇일까?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나트륨 함량이었다. 둘 다 국물 있는 라면이다 보니, 나트륨 수치는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에게 민감한 요소다. 신라면은 한 봉지당 1,790mg, 진라면은 한 봉지당 1,760mg의 나트륨이 포함돼 있다. 신라면이 30mg 더 많다. 매운맛을 내기 위한 조미 과정에서 더 들어간 것일까? 많이 서운하다.
탄수화물 함량도 신라면이 약 2g 정도 더 많았다. 몸에 안 좋다고 여겨지는 성분들이라면, 신라면 쪽이 아주 소량 더 첨가된 셈이다. 반대로 단백질은 진라면이 2g 더 많다. 극미량의 차이지만, 조금이라도 덜 해로운 라면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진라면 쪽으로 손이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ChatGPT는 심혈관 질환, 혈당 조절 같은 키워드를 언급하며 신라면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조심성이 지나친 건지, 잔뜩 겁을 주는 내과병원 원장 선생님이라고나 할까?
<이미지 출처 : 오픈마켓 페이지>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극미량의 차이다. 라면을 한 번에 10봉지씩 끓여먹는 게 아니라면, 두 제품 간의 영양학적 차이는 사실상 크지 않다. 실제로 나머지 열량, 당류, 지방, 콜레스테롤 등 주요 지표는 두 제품 모두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5 다섯 번째 질문 : 고상하게 영양학적으로 접근해보자.
마지막으로, 신라면과 진라면의 파생상품에 대해 물었다. 앞서 언급했듯, 신라면은 다양한 파생 제품을 앞세워 멀티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그 종류도 꽤나 다양하다. 먼저, 양이 확 줄어들어 라면 마니아들의 현기증을 유발한 '신라면 건면', 그리고 매운맛을 폭발적으로 강화한 '신라면 레드', 여기에 2011년, 신라면의 프리미엄 버전으로 등장한 '신라면 블랙'까지... 이쯤 되면 ‘신라면 패밀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미지 출처 : 오뚜기 보도자료>
반면, 진라면은 '매운맛'과 '순한맛' 딱 두 종류로 정리된다. ChatGPT는 그나마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진비빔면', '진쫄면' 등까지 언급했지만, 엄연히 국물 라면류 기준으로 보면 파생상품은 단 두 개뿐이다. 특히 ‘라면계의 이단아’, 혹은 ‘라면계의 민트초코’로 불리기도 하는 진라면 순한맛은 사실 1987년, 매운맛과 동시에 출시된 정식 제품이다. 속칭 ‘진순이’라고도 불리며, 의외로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파생상품이라기보다는 형제 혹은 자매품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이미지 출처 : 농심 보도자료>
신라면의 파생상품에서는 ‘셀링 포인트는 다르게 가져가되, 고유의 정체성은 유지한다’는 원칙이 엿보인다. ‘건면’, ‘레드’, ‘블랙’으로 각각의 특징을 강조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신라면의 매운맛과 브랜드 이미지는 일관되게 유지된다. 반면 진라면은 태생적으로 '이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이다. 전혀 다른 노선을 지닌 ‘매운맛’과 ‘순한맛’이, 마치 형제처럼 같은 이름을 달고 따로 걷는 인상을 준다. 결과적으로, 두 브랜드의 파생상품을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 분석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6 라면까지 끓여줄 AI는 언제 등장하려나?
▲ AI generated image @ChatGPT 4o
지금까지 국물 라면계의 오랜 라이벌, 신라면과 진라면에 대해 알아보았다. 물론 ChatGPT의 판단과 선택에 펙트 체크를 하는 단계로 진행했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진짜 인간'이 라면을 평가할 때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매운맛에 대한 패러다임'이 AI의 판단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국내 라면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신라면과 진라면의 경쟁 구도도 고착화될 예정이다. 더불어 해마다 새로운 라면 제품들이 쏟아지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소비자들의 선택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고작 라면 하나 고르는 일인데, 정말 골치 아픈 세상이다.
아무쪼록 라면계의 오랜 라이벌 신라면과 진라면을 고르는데 ChatGPT가 딱 두줄로 요약해준 요령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 저녁은 라면이다. 계란 하나 풀어서...
평생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신라면.
부담 없이 자주 먹을 거면 진라면.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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