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DA no.20 2004.02] 손을 뻗어도 저만치 멀리 있는 꿈. 그런 꿈도 때로는 현실로 다가온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 아닐까. 자동차 매니아라면 한번쯤 꿈꾸는 수퍼카. 그 수퍼카를 마음껏 빌려 탈 수 있다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을 찾은 본지 일본 통신원 하야시가 수퍼카 잡지를 불쑥 내밀었다. 뒤적뒤적 책장을 넘기다가 한 광고에 눈이 얼어붙었다. ‘수퍼카를 빌려 드립니다! 한 시간에 1만 엔!’ 하야시 역시 처음 보는 광고라며 흥미로워했다. 발빠르게 하야시 편을 통해 섭외에 들어갔다. 그쪽에서도 머나먼 한국에서 취재를 요청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눈치였다.
한 달 동안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2월 초 드디어 취재 스케줄을 확정지었다. 취재팀은 짐을 꾸려 비행기에 올랐다. 2시간 30분을 날아 나리타 공항에 내렸을 때 도쿄는 겨울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도쿄에서 245km 떨어진 하마마쓰에 자리해
하야시의 차를 타고 도쿄 도심의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다시 한 번 섭외 내용을 꼼꼼히 확인했다. 사람 심리가 그런걸까. 진귀한 수퍼카를 선뜻 내준다니 오히려 신중해진다. 약속시간은 오전 8시 30분. 딜러가 있는 곳은 도쿄에서 245km 떨어진 하마마쓰.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이 걸린다.
모든 것이 순조롭겠다 싶었다. 그러나 취재 전날 밤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졌다. 우리를 실어 나를 하야시의 볼보 960 왜건이 고장난 것. 히터만 틀면 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냉각수 온도계는 빨간선에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밤 10시에 취재팀은 부랴부랴 렌터카를 빌리러 나섰다. 창백한 얼굴의 직원은 고르는 차마다 “없는데 어쩌죠”로 응수한다. “별 수 없지 않겠냐” 싶은 그의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이러다 날 새겠다 싶어 빌릴 수 있는 차를 물었다.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일행을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썰렁한 주차장에는 구형 혼다 시빅 한 대와 닛산 마치 두 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모두들 곤충처럼 생긴 닛산 마치에 마음이 가는 눈치다. 두 대 가운데 내비게이션을 갖춘 파란색을 골랐다. 값은 보험료를 포함 24시간에 1만 엔(약 10만 원) 정도.
다음날 새벽 4시, 꽥꽥대는 자명종 시계를 하마터면 부술 뻔했다. 서둘러 짐을 챙겨 호텔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야시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마치에 앉아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세팅하고 컴컴한 새벽을 가르며 출발했다. 하야시는 행여나 늦을새라 액셀 페달을 바닥까지 밟아댔다. 지금까지 하야시가 약속에 늦은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단속 카메라는 차선 한 개를 무려 3대가 비춘다. 편도 4차선 도로를 비추며 한 줄로 늘어선 12개의 카메라를 보면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먹이감을 노리고 잠복근무 중인 경찰차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하야시는 불청객들의 위치를 훤히 꿰고 있는 듯 잘도 피해 속도를 냈다. 내비게이션 모니터에 표시된 예정소요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점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후지산이 발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눈 덮인 정상에는 폭신한 구름이 한웅큼 휘감겼다.
수퍼카, 의류, 액세서리 등 볼거리 가득해 8시 20분쯤 하마마쓰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하야시는 서둘러 출구를 빠져나가 시내길로 들어섰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을 연상했는데, 웬걸 자동차 딜러숍 천지다. 길가에 제트스키와 보트를 세워둔 것을 보니 바다가 멀지 않은 듯싶다
약속시간에 가까스로 맞춰 도착했다. 널따란 주차장을 낀 2층 건물에 ‘Ramboru’라고 써 있다. 그렇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그 딜러 이름이 바로 ‘란보루’(ランボル). 무슨 뜻일까? 그 궁금증은 한참 후에 풀 수 있었다.
불이 꺼진 숍에서 한 사람이 달려 나왔다. 람보루 영업본부장 사토 씨였다. 그는 우리를 무척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하야시와 그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메마른 배기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다니구치 가즈히로(36, 谷口一博) 사장이 몰고 온 포르쉐 GT3였다. 차에서 내린 그는 활짝 웃으며 일행을 숍 안으로 이끌었다. 앳된 얼굴에 서글서글한 인상이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란 사람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숍 안에 들어서자 발 디딜 틈 없이 수퍼카가 진열되어 있다. 우리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포드 GT40,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와 카운타크 25주년 기념모델, 페라리 F40과 348 스파이더, 그리고 전세계에 30대뿐인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GTR도 있다. 수퍼카 옆에는 각종 모터 스포츠 관련 의류와 액세서리가 진열되었다. 고객들이 마음껏 볼 수 있도록 최신 수퍼카 잡지도 한아름 쌓아 놓았다.
수퍼카 무대를 지나면 식탁 8개가 놓인 레스토랑이 펼쳐진다. 레스토랑 한켠에는 예전 A.프로스트가 몰던 페라리 F1 경주차도 세워 놓았다. 벽에는 수퍼카 클럽 회원들의 사진과 매체에 소개되었던 기사를 스크랩해 걸어 두었다. 다니구치 사장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장식하고 있었다. 람보루는 어디 하나 지나칠 곳 없는 보물창고와 같았다. 들여다볼수록 흥미진진하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듯싶다.
다니구치 사장은 “인터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사진을 찍자”며 양해를 구하고 분주하게 차를 빼낼 준비를 했다. 한쪽 벽면의 셔터가 입을 쩍 벌리자 수퍼카가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사장이 먼저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GTR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경주차답게 시동은 스위치를 눌러 건다. ‘우광쾅쾅~’ 우렁찬 엔진음이 숍을 쩌렁쩌렁 흔들어댄다. 그는 능숙하게 후진으로 차를 빼내어 앞마당 주차장으로 옮겼다. 사토 씨도 포드 GT40 안으로 몸을 구겨 넣고 부르릉 시동을 걸었다.
원하는 수퍼카 골라 단독시승에 나서
차가 한 대씩 나올 때마다 주차장을 맴도는 엔진음은 강도를 더해갔다. 마지막으로 F40이 자리를 잡았다. 장관이 펼쳐졌다. 자그마한 시골마을 주차장을 메운 형형색색의 수퍼카들. 대충 값을 따져 봐도 1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이제 하야시가 바빠졌다. 꽤 쌀쌀한 날씨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다니구치 사장이 “시승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숍 문여는 시간이 11시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해야 더 탈 수 있지 않겠어요? 어서 타고 싶은 차를 정하세요.”
심지어 국제운전면허증을 보자는 이야기조차 없었다. 소개해 준 사람이 확실하면 처음 만난 이라도 철저히 신뢰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 왔다. 그러나 감격할 시간조차 없었다. 시간이 금이므로.
사실 우리는 페라리 F40과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GTR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하야시가 조용히 다가와 귓속말로 말렸다. “시세가 딱히 없는 희귀모델이라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아쉬웠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결국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와 카운타크 25주년 기념모델을 점찍었다.
다니구치 사장은 열쇠를 한 개씩 건넨 뒤 디아블로 GTR에 올라탔다. 우리도 얼떨결에 각자의 차에 올랐다. 사진을 찍기 위해 페라리 348 스파이더도 동행했다. 그리고 11시까지 우리는 수퍼카로 떼지어 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우리도 즐거웠고 거리에서, 도로에서 지켜보았던 이들도 즐거웠으리라 믿는다.
모두들 시승을 무사히 마치고 숍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하려고 후진 기어를 넣자 다니구치 사장이 손사래를 치며 뛰어온다. “그냥 시동만 끄고 놔두세요. 어서 식사부터 하셔야지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서로 눈만 껌벅이고 있자 그가 제안했다. “샤브샤브로 드시지요. 저희가 정성껏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먼 곳에서 온 우리 이방인들은 지나친 친절에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숍으로 들어가니 수퍼카가 다 빠져 한결 넓어 보였다. 우리는 2층으로 안내되었다. 유리창 밖으로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한가로운 전원의 정취가 가득했다.
큐슈산 최고급 쇠고기 고집하는 레스토랑
란보루는 수퍼카 판매 및 렌탈, 레스토랑을 합친 멀티숍이다. 사실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 전 알고 있던 정보는 이 정도였다. 궁금증은 식사 후 있을 인터뷰를 통해 밝혀질 터다. 다니구치 사장은 식사도 거른 채 사토 씨와 수퍼카들을 한 대씩 가게 안으로 들여놓느라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 사이 테이블이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주방은 2층에 있었고, 1층에서 보지 못했던 주방장과 웨이터가 일하고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신선한 야채와 소스, 먹음직스러운 생선과 고기를 내 왔다. 삶은 홋카이도산 대게도 올렸다. 음료도 종류별로 준비했다. 취재 협조를 하루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다.
샤브샤브 육수가 보글보글 끓어 오르자 하야시가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우리가 직접 모델로 나섰다. 후배 기자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기 직전까지 모습을 연출하느라 진땀을 뺐다. 드디어 촬영이 끝났다.
테이블에 올려진 쇠고기는 큐슈에서 공수해온 것. 란보루는 고기 선택에 유달리 까다롭다. 접시 위에 놓인 쇠고기는 커피에 망울망울 녹아드는 크림처럼 아름다운 마블을 지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란보루와 계약을 맺은 목장은 소에 맥주를 먹이고, 일본 전통음악 엔카를 틀어 준다고 한다. 스트레스 없이 키워야 육질이 좋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에서도 광우병 파동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세계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업계에 미치는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유명한 식당 체인 요시노야는 급기야 서민 음식으로 사랑받던 불고기 덮밥 ‘규동’ 판매를 중단하기 이르렀다.
이런 이유로 큐슈 쇠고기만 파는 란보루의 매출이 부쩍 늘었다. 물론 음식 맛도 좋다. 부드러운 육질과 새콤달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고기와 생선, 야채를 건져 먹은 뒤 우동 면발을 넣어 끓였다. 우리는 “맛있다!”를 연발하며 젓가락질에 바빴다. 테이블의 음식이 비워질 때쯤 란보루에서 손수 만든 케이크를 내왔다.
식사가 끝난 뒤 우리는 1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니구치 사장과 커피잔을 마주 하고 앉았다. “너무 맛있었다”며 인사를 건네자 그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핀다. 모국어가 아닌 탓에 충분히 그에게 감사를 표할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홍보효과 위해 짜낸 아이디어
다니구치 사장은 달변이었다. 아무리 짧은 질문을 던져도 재치있게 이야기 보따리를 한껏 풀어냈다. 그리고 이야기를 유쾌하게 주도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큐슈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는 전형적인 일본 농가에서 태어났다. 간간히 소를 팔아 짭짤한 돈을 만지기도 했지만 ‘가난’이라는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그는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집에서 독립해 나고야로 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살 길이 막막했다.
그는 시내의 한 고기음식점에 취직했다. 불고기를 파는 집이었다. 목장과 손을 잡고 고기를 공급받아 요리해서 파는 식당이었다. 거기에서 주방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기댈 데 없는 상황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그가 처음 했던 일은 뼈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것이었다. 부모 어깨너머로 본 기억을 살려 기술을 익혔다. 열심히 일을 배웠고, 받은 돈은 고스란히 모았다. 일 때문에 돈을 쓸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일년에 1천만 원씩 5천만 원이라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성실한 그를 눈여겨본 식당 주인이 어느 날 제의를 해왔다. “자네 같이 일하면 무얼 해도 성공할 수 있을꺼야. 직접 고기집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시내에 장사가 워낙 안돼서 싼 값에 나온 집이 있거든.”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직접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터였다.
사장의 도움으로 그는 하마마쓰 역 근처에 있던 가게를 헐값에 사들였다. 이상만큼 노력이 따라주어 그의 가게는 나날이 번창했다. 돈도 제법 벌었다. 식당을 인수한 지 2년만에 학생 때부터 꿈에 그리던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25주년 기념모델도 샀다.
카운타크를 몰면서 그는 수퍼카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식당을 운영한 지 7년째. 그는 새로운 사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렌터카 사업을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에는 렌터카 업체가 너무 많았다. 또한 해외 메이저급 렌터카 업체와 손잡은 몇몇 일본업체가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시골마을에서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퍼카가 번쩍 떠올랐다. 수퍼카를 렌트해 주면 관심을 끌 수 있을 듯 싶었다. 나아가 스테이크와 샤브샤브를 파는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면 위험부담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닥치는 대로 물었다. 하지만 한결같이 “쫄딱 망할 것”이라는 대답만 던졌다.
그래도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 계획은 오히려 갈수록 견고하게 모양새를 갖추어갔다. 예전의 경험도 있었다. 그가 카운타크를 사려고 했을 때도 대부분 말리기 바빴다. “고장이 많을 거야” “너무 오래된 차잖아” 등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만류하던 사람 가운데 카운타크를 소유해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의 의견은 결국 ‘조언’일 뿐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보험사 설득, 수퍼카 렌탈사업 성사
마침 인근에 상가건물이 헐값에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지금의 건물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건물을 사들였다. 그리고 5천만 원을 들여 안팎을 단장했다. 그리고 페라리 테스타로사와 포르쉐를 사들였다.
“오랜 고민 끝에 가게 이름을 ‘란보루’로 지었어요. 일본인들이 람보르기니를 란보루기니(ランボルギニ)라 부르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지요. 스스로 람보르기니의 광적인 팬이기도 했구요. 트랙터 만들기로 시작해 굴지의 수퍼카 회사를 세운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껴요. 저 역시 어린 시절 트랙터를 보고 자랐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일부러 앞쪽 음절만 쓴 것은 호기심을 끌고 싶었기 때문이었요. 영문표기에 ‘L’ 대신 ‘R’을 쓴 것도 마찬가지구요.”
처음부터 지금처럼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갖췄을리 없다. 그저 수퍼카 3대가 오롯이 선 레스토랑일 뿐이었다. 그는 수퍼카 잡지에 자신만만하게 광고를 냈다. ‘수퍼카를 빌려 드립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이곳에서 드시면 렌탈비를 할인해 드립니다.’
시작부터 만만치는 않았다. 하루종일 전화기만 물끄러미 바라본 날도 많았다. 그러나 다니구치 사장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레스토랑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가게가 워낙 유명해 이곳도 금세 알려졌다.
고기맛을 보러 왔던 손님들이 호기심에 수퍼카를 타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어느 곳에서도 수퍼카를 원하는 기간만큼 빌려주는 곳은 없었다. 수퍼카 딜러는 많았지만, 차를 사려고 결심한 고객에 한해 시내에서 한두 바퀴 도는 것이 전부였다. 그 즈음 도쿄에서 한 업체가 수퍼카 렌탈숍을 열었지만 얼마 못가 사업을 접고 말았다.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수퍼카도 점점 늘어났어요. 고객수도 나날이 불어났지요. 한 번 찾은 고객은 우리 시스템에 반해 계속 다시 찾아 주었구요. 홍보도 할 겸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은 저도 몰랐어요. 지금은 꾸준히 찾는 고객만 300명 정도 됩니다. 고객이 렌탈을 해서 마음껏 타본 뒤 그 차가 마음에 들어 사가면, 저는 다시 그 돈으로 다른 수퍼카를 사다가 렌터카로 내놓지요.”
그렇다. 그가 마련한 시스템은 놀랍도록 합리적이다. 렌탈과 판매를 겸하고 있다. 얼핏 위험부담이 커 보인다. 하지만 그는 “안전과 위험의 절묘한 타협점을 찾았다”고 말한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일본의 관련 법규에 따르면 수퍼카는 렌터카로 등록할 수 없다.
그래서 란보루의 수퍼카들은 ‘わ’로 시작하는 렌터카 번호판 대신 일반 번호판을 달고 있다. 대신 보험사를 집요하게 설득했다. 결국 보험사는 그의 뜻을 이해하고 적극 협조했다. 결과적으로 렌터카 사업자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법적인 안전장치를 완전히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꼼꼼한 정비, 점검 마쳐 매물로도 인기
아울러 판매 시스템도 매력적인 조건을 두루 갖췄다. 기계는 세워두는 것보다 주기적으로 움직여야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란보루의 수퍼카는 그런 면에서 최고의 상태를 뽐낸다. 쉴 새 없이 달리고, 반납될 때마다 완벽한 정비를 받는다. 게다가 아무래도 적산거리가 많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싼 값에 내놓는다. 하야시도 수퍼카를 이곳에서 사야겠다고 별렀다.
그래도 이윤이 남을까? 다니구치 씨는 “큰 문제 없다”고 말한다. 수퍼카 가운데 상처가 있거나, 고장난 곳이 있어 헐값에 나온 것만 매입하기 때문이다. 차를 들여온 뒤 자체 인력을 동원해 완벽한 상태로 치료해낸다. 렌터카로 써야 하기 때문에 ‘눈 가리고 아웅’식의 수리는 어림도 없다. 고객들도 이 점을 잘 꿰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수퍼카를 빌리는 걸까? 그는 두 부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수퍼카를 사기에는 부담이 되는 고객들이지요. 일본에 수퍼카가 많다지만 여전히 서민들에게는 ‘드림카’일 뿐입니다. 잡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꿈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저는 그 꿈을 이뤄주고 싶었어요. 저 역시 람보르기니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두 번째 부류는 수퍼카를 살 능력은 되지만 소유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에요. 수퍼카를 가지려면 일단 주차장이 있어야 하지요. 또한 매뉴얼의 지침에 따른 소모품 교환, 정기점검 등 귀찮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거든요. 고작 한달에 두어번 탈 뿐인데 말이지요.”
그는 수퍼카를 직접 사서 몰며 오너의 고충을 체험했다. 생생한 경험이 뒷받침된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것은 당연했다. 이야기를 들을 수록 그의 기발한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렴풋이 예상했던 내용과 많이 달랐고, 훨씬 흥미로웠다. 다니구치 씨에 대한 탐구심이 한없이 샘솟았다.
열성 고객들이 앞장서서 그의 사업 도와
란보루는 고객을 가려 차를 내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수퍼카를 한 번도 몰아 보지 못한 이에게도 30분 동안 기초교육만 치르고 차를 내어준다. 원하면 동행, 동승 등 다양한 곁가지 코스를 고를 수 있다. 수퍼카와 살을 부대낄 수 있는 메뉴를 촘촘하게 짜놓았다. 란보루에 들어선 이상 수퍼카에 대한 관심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니구치 사장은 그만의 고객 분류법을 소개했다. “우선 A클래스가 있지요.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수퍼카를 타본 고객들이 이에 속합니다. 시동을 몇 번씩 꺼뜨리고,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넘나들며 수퍼카 세계를 경험하게 되지요. 그 다음은 E클래스예요. 두 번, 세 번 수퍼카를 빌려 타면서 제법 익숙해진 분들이지요. 점점 수퍼카의 매력에 빨려 드는 단계예요. 마지막은 S클래스입니다. 저는 이분들을 ‘스태프’(staff)라고 불러요. 한마디로 골수팬이지요. 많으면 한 달에 몇 번씩 수퍼카를 빌려 함께 투어링을 떠나는 분들이지요. 심지어 4일 동안 무단결근을 하고 수퍼카를 타는 분도 있어요. 어떤 분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수퍼카를 빌려서 일주일 동안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다녀오기도 해요.”
그에게 S클래스 고객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들은 란보루의 기업이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며칠에서 일주일 이상 장기 렌트로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는 동시에 누구보다 수퍼카를 소중하게 다룬다. 또한 그들은 다니구치 사장을 ‘은인’으로 여긴다. 그가 없었다면 이런 즐거움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의 사업에 문제가 없는지 묻고 도울 길을 찾는다. 홈페이지와 홍보전단도 그들의 도움으로 만들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다다르자 다니구치 사장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받을 돈 다 받으며 은인 대접 받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또한 그 자신이 타고 싶은 수퍼카를 골라가며 사들여 고객과 나눠 타고 있다. 이렇게 완벽한 ‘윈-윈’(Win-Win) 전략이 또 있을까? 게다가 같은 사업으로 고객을 빼앗을 라이벌도 없다. 좋은 의미에서 그는 대단한 장사꾼 기질을 가졌다 할 수 있다.
현재 13대 운영, 비용은 시간당 1만 엔부터
그에게 수퍼카는 몇 대나 운영하는지 물었다. “현재 모두 13대예요. 지금 숍에 없는 차들은 고객 손에 있지요. 저녁에 페라리 마라넬로가 반납되어 들어올 겁니다. 이들 가운데 한달에 2~3대꼴로 팔리고 있어요. 동시에 그만큼 새로운 수퍼카를 들여놓고 있구요. 올 때마다 다른 차를 빌릴 수 있어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요.”
렌탈 비용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우선 처음 빌릴 때 가입비 2만 엔(약 20만 원)을 받습니다. 렌탈 비용은 차종마다 달라요. 1시간에 1만 엔(약 10만 원)부터 시작되지요. 91년식 포드 GT40 레플리카와 2000년식 허머는 시간당 1만5천 엔(약 15만 원)입니다. 아까 탔던 89년형 카운타크는 1시간에 3만 엔(약 30만 원)이구요. 휘발유 값과 보험료는 별도예요. 쿠폰 할인, 장기 렌탈 할인, 회원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마련해 놓았어요. 요즘은 패키지 상품이 인기예요. 숍 인근의 리조트 호텔 하루 숙박권과 수퍼카 24시간 렌탈을 묶어서 7만 엔(약 70만 원)에 서비스하고 있어요. 보통 친구들과 어울려 와서 각기 다른 차를 빌려간 뒤 서로 바꿔 타보곤 한답니다.”
이즈음에서 정비료 및 보험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달에 2천만 엔(약 2억 원)이 든다”고 밝혔다. 갑자기 그가 껄껄 웃으며 덧붙인다. “렌탈 및 수퍼카 판매로 버는 돈 역시 한달에 2천만 엔 정도 되지요. 버는 대로 까먹고 있어요. 제가 제대로 사업을 하고 있나 싶네요.” 그 스스로 “아직까지 수퍼카 사업은 고객 서비스”라고 말한다. 반면 레스토랑 사업은 여전히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그가 레스토랑 두 곳에서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은 5억 엔(약 50억 원) 정도. 아울러 수퍼카 단골고객은 나날이 늘고 있다. 색다른 컨셉트의 수퍼카 사업을 벌인 지 고작 5년째다. 아직 속단하긴 이른 것이다.
보험문제 해결되면 외국인도 즐길 수 있어
그는 홀홀단신 무일푼으로 집을 나와 18년만에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 그가 세운 다음 목표는 인터넷으로 규슈산 쇠고기를 파는 사업이다. 이날 그는 운전할 때만 제외하고 사업계획서를 손에 달고 다녔다. “직판으로 값을 낮추고, 인터넷에 가게를 차리므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기자는 다니구치 사장과 인터뷰를 하며 여러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퍼카를 선뜻 내준 데 놀랐고,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에 놀랐다. 자신의 꿈과 고객의 꿈을 동시에 현실화시키고 있는 인물이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가 아닌 ‘인심쓰면 곳간 생긴다’는 자세로 운영하는 수퍼카 사업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기자는 <스트라다> 애독자를 초청할 방법을 찾고자 다니구치 사장과 머리를 맞댔다. 사실 한국에서 하마마쓰까지 날아간 것도 국내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수퍼카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외국인에게는 아직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식 렌터카가 아닌 탓이다.
그러나 다니구치 사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보험사에 연락해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안될 것 같은 일을 여러번 해낸 그였기에 믿음이 갔다. 아울러 그는 “동승이면 언제라도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사토 씨는 “곧 서키트를 빌려 정기적으로 수퍼카 레이싱 스쿨을 열 생각인데 그곳에 초청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대안도 내놓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석양은 유리창을 빨갛게 달구고 있었다. 다니구치 사장은 수퍼카와 최고급 요리를 내어준 것도 모자라 수퍼카 일러스트레이션이 담긴 액자까지 손에 들려 주었다.
도쿄로 돌아오는 길, 기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직접 찾은 란보루는 놀라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다. ‘나고야에서 가깝다’, ‘하마마쓰 역에 내려 전화하면 마중 나온다’ 등 바로 찾아갈 수 있는 실속 정보를 당장 전하지 못하고 보험문제 해결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다니구치 씨의 자수성가담과 그의 사업 아이디어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하게 되어 뿌듯하다. 여러 대의 수퍼카로 떼지어 고속도로를 질주한 기억도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본지는 보험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란보루와 손잡고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누군가 이 기사를 읽고 영감을 받아, 국내에서 이런 사업을 시작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