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형 페라리 F348 GTB, 역시 같은 연식의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VT, 1996년형 볼보 850R, 2004년형 메르세데스-벤츠 비아노 3200, 1991년형 조던(Jordan) F191.
그동안 취재를 빌미로 일본에서 잘산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 보았다. 그럼에도 이런 차고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비단 수퍼카가 두 대나 있어서만은 아니다. 벤츠. 볼보뿐 아니라 심지어 페라리· 람보르기니조차 도쿄 시내에서는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조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 독자에게도 무척 낯선 이름, 조던. 바로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 F1 레이스 카다. 수퍼카, 클래식 카 오너를 두루 만나 본 필자도 F1 레이스 카를 소장한 개인은 처음인지라 무척 가슴이 설랬다.
쇼룸 같은 차고 딸린 대저택의 주인 주인공은 시노미야 야스노리(篠宮尉哲) 씨. 올해 그의 나이 서른여덟. 복이 철철 넘쳐 보이는 이 남자,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선 그의 집을 보자.
이게 어디 일본에 있을 법한 집인가? 외신에서 본 할리우드 스타의 집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대저택. 게다가 딜러 쇼룸처럼 화려하게 꾸민 차고까지. 따스한 느낌의 조명이 내리쬐는 차고 안에는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그리고 조던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 있다. 진귀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조던은 어떤 차인가? 1991년의 일이었다. 당시 F1을 주름잡던 레이서는 A. 세나, G. 베르거, N. 피케 등이었다. 같은 해 벨기에 전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루키가 우승컵을 거머쥐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바로 오늘날 F1의 황제로 칭송 받는 M. 슈마허였다. 당시 그의 데뷔전을 장식한 차가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조던 F191이다. 시노미야 씨가 많은 F1 경주차 가운데 조던을 고른 이유도 그런 배경이 있어서다.
그의 자동차 컬렉션도 놀라울 따름이지만, 그가 지금껏 살며 겪은 일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그는 지난날을 “천당과 지옥을 오간 시절”이라고 말한다. 18세 때까지 그의 삶은 귀공자의 그것과 다름 아니었다. 부친은 유명한 기업의 창업자였다. 해마다 일본 내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오르내렸다. ‘도련님’으로 불리던 시절, 그는 운전 기사가 딸린 메르세데스-벤츠와 캐딜락으로 등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그였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는 것 이외에 다른 직업은 꿈꿔 본 적도 없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철부지 도련님이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런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닥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버지께서 아는 분에게 부탁을 받아 보증을 섰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긴 거죠. 그동안 쌓은 재산으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어요.”
그의 가족은 재산을 모두 잃었을 뿐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가족사를 털어놓는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돈을 잃으니까 인간 관계도 잃게 되더군요. 모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어요. 뭔가 도움을 청할까 지레 겁먹고 연락조차 않더군요. 비극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던 삶에 신물이 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혼을 요구했어요. 그리곤 홀로 고향에 내려가 버렸지요. 저와 남동생을 남겨 둔 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평생 고생 모르고 지낸 분이 포악한 야쿠자의 협박에 시달렸으니 그 고통을 누군들 헤아리겠어요.”
숱한 고생 끝에 오늘의 성공 일구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노미야 씨는 동급생의 부친이 경영하는 건설 회사에 입사했다.
“그땐 정말 열심히 일만 했어요.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은 여전히 아버지와 함께 도피 생활을 하고 있었고요. 다행히 전 사장님이 아파트 한 채를 내줘서 몸 하나 편하게 누일 자리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더 미안했어요. 그렇게 배려해 준 사장님께 보답하기 위해, 또 가족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주먹 불끈 쥐고 일했지요.”
취직한 지 6년째가 되던 해, 그는 독립을 결심했다. 알뜰살뜰 월급을 저축하며 쌓은 신용으로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금을 받아 작게나마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홀로 서고 나서 2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사업 자금 900만 엔(약 9천만 원)은 설비를 갖추면서 이미 동이 났으니까요. 말이 사장이지 가진 돈이 없어 늘 끼니는 빵과 인스턴트 라면으로 때웠어요. 제가 입고 먹는 걸 아껴야 사업을 꾸려 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어떻게 그 길고 긴 시련을 헤쳐 왔을까.
“나를 바보 취급했던 사람들에게 언젠가 보란 듯이 잘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빚쟁이, 야쿠자에게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지난날을요. 정말 원한에 사무쳤지요.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이라면 제 심정을 이해하리라 믿어요. 그런 각오가 있었기에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조차 필사적으로 살았습니다. 처절한 헝그리 정신이 오늘의 성공을 일군 셈이지요.(웃음)”
사실 그가 일어선 과정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 집념이라면 지금의 부 이상의 성공도 충분해 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내 일인 듯 가슴이 저며 왔고, 또 통쾌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희망과 자신감이 가슴 한 구석에서 싹트는 것을 느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시노미야 씨 같은 이도 있다. 그래서 인터뷰는 값지다. 이렇게 속 깊은 사연을 듣지 못했다면 필자 역시 그를 부모 잘 만난 풍운아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갈무리할 때가 되었다. 아버지와 숨어 살던 그의 남동생은 이제 그의 회사에서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저택은 시노미야 씨가 지난해 지은 것. 이곳에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아픔을 뒤로 한 채 오순도순 모여 산다. 해피엔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때 가족을 떠난 어머니도 돌아왔다.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그의 삶,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