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 generated image @Google Gemini 3.0 Pro
결국 또 크리스마스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낭만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그 익숙한 풍경이 어김없이 반복되는 시즌이다. 물론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 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된 입장에서는 “그깟 외국 명절을 왜 이렇게까지 챙기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럼에도 한 해의 끝자락, 겨울의 절정을 알리는 이 묘한 분위기만큼은 끝내 외면하기 어렵다. 싫다 싫다 해도 결국 시류(時流)는 시류다.

이맘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술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시끌벅적한 파티 모드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편안한 집에서 조용히 와인 한 잔 기울이는 쪽이 훨씬 그럴듯하다. 전 세계가 우울감에 잠겨 있던 2020~2022년 팬데믹 시기, 이른바 ‘홈술’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우리나라의 와인 소비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약 2.8조 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약 1.8조 원) 대비 약 51% 성장했다. 독한 소주나 배부른 맥주 대신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로 해석된다.

▲ AI generated image @CharGPT 5.2
사실 와인은 오랫동안 ‘허세의 상징’ 같은 이미지가 강했던 술이다.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향이 어떻고 구조감이 어떻고 평가질(?)을 늘어놓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며 상황은 꽤 달라졌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향과 맛을 고루 갖춘 와인들이 대중화됐고, 이제는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와인을 고르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말 그대로 와인은 우리 일상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그 결과, “와인을 제대로 한번 마셔볼까?” 하는 입문자들도 확실히 늘었다. 특히 혼자 집에서 조용히 즐기는 홈술 문화와 와인은 궁합이 꽤 좋은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와인 입문자들이 집에서 와인을 즐길 때 꼭 갖춰두면 좋은 필수 아이템은 무엇인지, 또 어떤 제품이 무난한 선택이 될 수 있는지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와인의 세계지만, 천리길도 결국 한 걸음부터다. 거창한 이야기보다, 일단 기본 장비부터 제대로 갖춰보자.
잔의 차이가 맛의 차이! [와인 글라스]

필자는 와인에 입문하기 전, 먼저 위스키에 빠졌던 시절이 있다. 얼음 하나를 띄워 천천히 마시는 올드 패션드 글라스부터, 싱글몰트를 위한 전용 잔인 글렌캐런 글라스까지. 잔의 형태에 따라 향과 인상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체감했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이런 ‘잔의 중요성’은 와인을 마실 때 더욱 도드라진다. 캠핑이나 펜션에서 종이컵에 대충 따라 마시는 와인과, 와인 전용 잔에 담아 마시는 와인은 경험의 질 자체가 다르다. 같은 와인이라 해도 향의 퍼짐, 맛의 인상, 여운까지 전혀 다른 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와인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고 싶다면, 다른 장비는 몰라도 와인잔만큼은 반드시 준비할 것을 권하고 싶다. 최소한의 투자로 가장 확실한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 쇼트즈위젤 센사 레드와인잔 535ml (1개)<10,290원>
일단 고급 와인잔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재질이다. 일반적인 저가 와인잔은 유리 소재로 만들어지는 반면,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크리스탈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 많아진다. 일반 유리 잔은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입술이 닿는 테두리를 비교적 두껍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고급 크리스탈 잔은 굴절률이 높아 와인의 색감을 한층 더 영롱하게 표현해주며, 잔을 부딪칠 때도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시각과 청각 모두에서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크리스탈 소재 와인잔도 개당 1만 원대까지 가격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굳이 비싼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와인잔을 고른다면 크리스탈 소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보자.

▲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화이트 와인잔 365ml (1개)<26,920원>
다음으로 살펴볼 요소는 와인잔의 모양이다. 레드 와인용 잔은 튤립 형태로 보울이 크고 길쭉해 공기와의 접촉을 돕는 구조를 갖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와인은 병을 딴 직후와 일정 시간 공기와 접촉한 뒤의 맛과 향이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와인을 따르고 잔을 천천히 돌려가며 에어링을 시도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튤립형 와인잔이 특히 유리하다.
반면 화이트 와인잔은 정반대의 개념에 가깝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에 비해 향이 가볍고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날아가기 쉬운 향을 모아 집중시킬 수 있도록 보울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진다. 화이트 와인은 차갑게 마시는 경우가 많아, 손의 체온으로 인한 온도 상승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손이 닿는 면적을 줄일 수 있도록 잔의 다리, 즉 스템이 길게 설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 슈피겔라우 데피니션 유니버셜 글라스 1P<41,630원>
이것저것 따져보는 것이 번거롭다면, 모든 와인에 두루 쓰기 좋은 ‘유니버설’ 형태의 올라운드 잔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레드와 화이트 모두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어 입문자에게 특히 실용적이다. 리델(Riedel)이나 슈피겔라우(Spiegelau) 같은 브랜드가 입문용 와인잔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소믈리에급 미각이 아닌 이상, 잔에 따른 미세한 향의 차이를 단번에 구분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입문 시절부터 다양한 잔과 다양한 와인을 경험해보는 과정 자체가 감각을 키우는 첫 단계다. 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발점은 결국 와인잔이 아닐까 싶다.
힘들이지 않고, 깔끔한 오픈! [와인 오프너]

와인 코르크를 따는 일은 초보자에게 은근히 어려운 작업이다. 자칫하다가는 코르크가 병 안으로 밀려 들어가 낭패를 보기 쉽다. 이렇게 되면 꺼내기도 번거로울 뿐 아니라, 부서진 코르크 가루가 와인에 섞여 마실 때 불쾌감을 남기기 십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연습이다. 그리고 그 연습의 핵심에는 와인 오프너가 있다. 아무리 좋은 와인잔을 갖춰도, 와인을 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와인을 마시기 위한 첫 관문은 잔이 아니라 오프너라는 얘기다.

▲ 레그노아트 프리미엄 와인오프너 WF-1<58,060원>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와인 오프너는 소믈리에 나이프다. 이름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와인을 구매하면 사은품으로 따라오는 경우가 많을 만큼 가격대는 부담 없는 편이다. 물론 5만 원이 넘는 고급 제품도 존재하지만, 입문자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저렴한 소믈리에 나이프 하나를 구해 꾸준히 와인을 따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구조상 손기술이 필요한 편이라 난이도는 중급 이상에 가깝고, 그만큼 경험치가 빠르게 쌓인다. 기본기를 익히기에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다.

▲ Alessi 안나G 와인오프너 핑크<56,490원>
윙 오프너 역시 요즘 심심치 않게 보이는 와인 오프너다. 병 입구에 고정한 뒤 스크류를 돌려 넣고, 양옆의 날개를 눌러 코르크를 빼는 방식으로 사용법이 매우 간단하다. 소믈리에 나이프가 지렛대 원리를 활용해 코르크를 빼는 구조라 어느 정도 힘과 요령이 필요한 반면, 윙 오프너는 그 부담이 훨씬 적다. 비교적 적은 힘으로도 안정적으로 코르크를 뽑아낼 수 있어, 특히 힘이 약한 사용자나 여성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힌다.

▲ 올빈 전동와인오프너 블랙에디션<13,670원>
가장 편하게 와인을 여는 방법은 전동 오프너를 사용하는 것이다. 병 입구에 맞춘 뒤 버튼만 누르면 스크류가 자동으로 회전하며 코르크에 파고들고, 이후에는 별다른 조작 없이도 알아서 코르크를 빼준다. 물론 건전지를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마저도 귀찮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선택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소믈리에 나이프로 능숙하게 와인을 따는 기술을 미리 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 그 작은 손놀림 하나로 제법 그럴듯한 순간을 그녀 앞에서 연출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남은 와인의 생명 연장 [와인 스토퍼]

와인 한 병의 용량은 보통 750㎖다. 소주 한 병이 360㎖인 점을 감안하면, 혼자 마시기에는 한 번에 비우기 쉽지 않은 양이다. 문제는 와인이 한 번 오픈되는 순간부터다. 병을 여는 즉시 공기와 접촉하며 산화가 시작되고, 그에 따라 맛과 향도 서서히 변한다.
물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에어링이나 디켄팅이다. 갓 딴 와인을 일부러 공기와 접촉시켜 향을 열고 맛을 부드럽게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하루나 이틀 이상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때부터는 ‘열리는 과정’이 아니라 ‘변질’에 가까워진다.

▲ 제이비패션 아네스 진공 와인 스토퍼<7,440원>
흔히 ‘데일리 와인’처럼 하루에 한두 잔씩 나눠 마시는 입문자라면, 와인 맛의 변화를 늦출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이럴 때 유용한 아이템이 바로 와인 스토퍼다. 와인 스토퍼는 일종의 기능성 마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대표적인 방식은 진공 펌프형 스토퍼다. 전용 마개를 병 입구에 끼운 뒤 펌프를 사용해 병 안의 공기를 빼내는 구조로,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 와인의 수명을 약 3~5일 정도 연장해준다. 한 번에 마시기 어려운 와인을 천천히 즐기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 와인앤쿡 소믈리에 라운드 스토퍼<2,900원>
시중에는 진공 기능이 없는 실리콘이나 고무 재질의 스토퍼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 다만 이런 제품은 병 내부의 공기를 제거하지 못해 보존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일주일 정도에 걸쳐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는 입문자라면, 진공 펌프형 스토퍼가 보다 적합한 선택이다.
한편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보관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탄산이 빠져나가려는 내부 압력이 크기 때문에, 일반 스토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럴 때는 병 입구에 걸쇠로 단단히 고정하는 전용 스토퍼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산 유지와 안전성,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와인이 더욱 풍성해지는~

▲ NHB 와인에어레이터<10,120원>
지금까지 소개한 와인잔, 와인 오프너, 와인 스토퍼는 데일리 와인을 즐기는 입문자에게 사실상 필수에 가까운 아이템들이다.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와인을 조금 더 맛있게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들을 더하면 한층 ‘향기로운(?)’ 와인 라이프가 가능해진다.
앞서 언급했듯, 와인은 병을 딴 직후 바로 마시면 탄닌 때문에 떫게 느껴지거나 향이 아직 열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에어레이터다. 이름 그대로 와인을 공기와 보다 쉽게 접촉시키는 도구로, 병 입구에 끼운 뒤 따르면 자연스럽게 공기 접촉 시간이 늘어나 약간의 디켄팅 효과를 낸다. 물론 입문자에게는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오히려 와인을 따를 때 병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 에어레이터를 활용하는 편이다.
여기에 하나 더 꼽자면, 화이트 와인의 온도를 낮게 유지해주는 칠링 용품이다. 평소 냉장 보관해 꺼내 마시는 것이 가장 좋지만, 상온에 있던 화이트 와인의 온도를 빠르게 낮춰주는 와인 칠링 슬리브나 테이블 위에서 얼음을 넣어 온도를 유지하는 와인 쿨러 등 온도 관리용 아이템도 생각보다 선택지가 다양하다. 작은 차이지만, 이런 요소들이 모여 와인의 인상을 확실히 바꿔준다.
혼자 즐겨도 되는 고오급 취미, 크리스마스부터 시작?

와인은 아는 만큼 들린다는 클래식 음악과 닮았다. 둘 다 고상한 취미라 핀잔을 받겠지만, 요즘 필자가 푹 빠져 사는 삶의 활력소다. 완벽한 장비를 갖추는 것은 단순히 허세를 부리기 위함이 아니다. 와인이 가진 본연의 향을 오해 없이 받아들이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최상의 컨디션으로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나 할까?
하지만, 장비병 걸린 사람처럼 거창하게 시작하지는 말자. 어쨌거나 1만 원짜리 호주 와인과 몇십 만 원을 호가하는 보르도 와인을 구분하기도 어려운 입문자니까! 이번 크리스마스부터 천천히 시작해 내년 크리스마스엔 애호가가 될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가격표가 아니라 와인 잔에 담긴 시간과 정성.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의 크리스마스를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채워줄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 더 깊어진 취향과 함께 다시 만날 당신의 와인 라이프를 응원한다.
기획, 편집, 글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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