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에 설립된 선야타 리서치(Shunyata Research)는 국내외에 애호가들이 많은 미국의 오디오 케이블 및 액세서리 전문 제작사다. 미 육군 과학자 출신의 캘린 가브리엘(Caelin Gabriel)이 설립한 이 회사는 오노 주조 방식의 단결정 고순도 동선 외에 지오메트리, 커넥터, 필터, 유전체 곳곳에 자신들만의 기술을 듬뿍 집어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리톤, 탈로스, 타이푼, 알파, 시그마로 이어져온 하이드라 전원 컨디셔너의 인기도 여전하다.
이번에 살펴볼 제품은 선야타 리서치가 2020년에 선보인 Sigma v2 시리즈의 Sigma v2 NR 파워케이블과 Sigma v2 스피커케이블. 선야타 리서치의 중핵이라 할 레퍼런스(Reference) 라인의 최상위 제품으로, 밑으로 알파(Alpha) v2와 델타(Delta) v2 시리즈가 포진해 있다. 레퍼런스 라인 위의 플래그십으로는 오메가(Omega) 라인, 밑으로는 베놈-X(Venom-X)와 베놈(Venom) 라인이 자리 잡고 있다.
선야타 리서치 파워케이블 라인업
- Omega Line : Omega QR, Omega QR-S, Omega XC
- Reference Line : Sigma v2 NR, Sigma XC, Alpha v2 NR, Alpha XC, Delta v2 NR, Delta XC
- Venom-X Line : Venom-X EF
- Venom Line : Venom V10 NR, Venom V10 XC, Venom HC v2, Venom V14 NR
선야타 리서치 스피커케이블 라인업
- Omega Line : Omega
- Reference Line : Sigma v2, Alpha v2, Delta v2
- Venom-X Line : Venom-X
- Venom Line : Venom
Sigma v2 NR Power Cable

선야타 리서치의 시그마 v2 케이블을 만져보면 폭신폭신한데 이는 선재가 속이 빈 둥근 튜브(Virtual Hollow Tube) 형태를 이루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기는 특히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선재의 표피 쪽으로만 흐르고 그렇게 되면 선재 전체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재를 아예 튜브 형태로 만든 것이다. 선재 표면의 스킨 이펙트(Skin Effect)와 선재 안쪽의 와류 전류(Eddy Current)를 둘 다 막기 위한 설계인 셈이다.

선야타 리서치에서는 이 독특한 지오메트리를 ‘Virtual Tube’ 컨셉트에서 착안해 VTX 와이어라고 부르며, 2020년에 등장한 시그마 v2 시리즈에는 여기서 한걸음 더 진화한 VTX-Ag 와이어 지오메트리가 채택됐다. 즉, 튜브 형태를 이룬 바깥쪽 선재 안쪽에 스피드와 디테일이 좋은 순은 선재를 하나 더 집어넣은 것이다. 바깥쪽 메인 선재는 오노 주조 방식의 단결정 무산소 동(ArNi OFE)을 쓴다.
2017년 오리지널 시그마 때부터 있었던 VTX 와이어는 시그마 v2 인터케이블에, VTX-Ag 와이어는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과 스피커케이블에 채택됐다. VTX-Ag 와이어의 경우 케이블 등급에 따라 그 굵기가 다른데, 상급일수록 굵다.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의 경우 AWG 기준 상위 오메가 QR과 동일한 06, 알파 V2 NR은 이보다 얇은 08, 델타 V2 NR와 베놈 X EF는 10 사이즈를 보인다.
이에 비해 하위 베놈 V10 NR과 베놈 V14 NR에는 선재 자체가 ArNi OFE가 아닌 일반 OFE 동선이며(사이즈 각각 10, 14), VTX나 VTX-Ag 지오메트리도 베풀어지지 않았다. 이 밖에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그라운드 선재들의 접촉을 막는 유전체로 유전율이 낮아 우주항공산업에서 즐겨 사용되는 플루오로카본(Fluorocarbon)이 투입된다.
정리해 보면,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은 선재로 오노 주조 방식의 단결정 무산소 동선(OFE C10100)과 순은선, 지오메트리로 VTX-Ag 06 와이어를 쓴 파워케이블로 요약된다. 1) 단결정 동선을 써서 신호 전송 효율을 높이고, 2) 이 선재를 속이 빈 튜브 형태로 배치해 음질에 안 좋은 스킨 이펙트와 와류 전류를 차단하고, 3) 안쪽 코어에는 순은선을 추가해 스피드를 높인 것이다.

이 밖에 커넥터는 CopperCONN 순동 단자를 썼고, 선재와 커넥터 접합은 음질에 안 좋은 납땜이나 클램핑이 아닌 초음파 용접(Sonic Welding)과 냉간 용접(Cold Welding)을 통해 이뤄진다. 완성된 파워케이블은 번인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KPIP(Kinetic Phase Inversion Process) 프로세싱을 나흘 동안 거친 후 출고된다.
한편 모델명에 들어간 NR은 선야타 리서치가 자랑하는 -12dB/1MHz 상당의 노이즈 저감(Noise Reduction) 기술이 베풀어졌다는 뜻. 선야타 리서치에서는 NR 기술이 베풀어진 파워케이블은 대전류보다는 소신호를 다뤄 무엇보다 노이즈에 민감한 소스기기나 프리앰프에, DTCD(Dynamic Transient Currents Delivery)라는 전류 가속 전송 기술이 베풀어진 XC 파워케이블은 대전류를 다루는 파워 컨디셔너나 파워앰프에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Sigma v2 Speaker Cable

선야타 리서치의 시그마 v2 스피커케이블은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과 마찬가지로 오노 주조 방식의 단결정 무산소 동선인 ArNi OFE 선재와 순은 선재, VTX-Ag 04 지오메트리, 플루오로카본 유전체를 썼다. VTX-Ag 와이어 굵기가 04로 보다 굵어진 점이 특징. 커넥터는 SR-SP-z 말굽 단자를 썼고, KPIP 프로세싱도 나흘 동안 거친다.
파워케이블에도 투입된 오노 주조 방식의 단결정 무산소 동선 OFE(Oxygen-Free Electrolytic) 101은 순도 99.99% 이상, IACS 표준 기준 101%의 전도율을 자랑한다. 오노 주조 방식(Ohno Continuous Casting. OCC)은 일본 치바 기술연구소의 아츠미 오노(Atsumi Ohno) 교수가 1986년에 특허를 받은 단결정 선재 주조법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스피커케이블에만 투입되는 HARP 모듈. 이는 선야타 리서치 설립자인 캘린 가브리엘이 스피커케이블에서 발견한 전류 드리프트(current drift)와 오디오 신호 공진(audio frequency current resonances) 현상을 없애기 위해 개발했다. 두 현상은 방 안에서 발생하는 정재파가 케이블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선야타 리서치에 따르면 스피커케이블에 부착된 HARP 모듈이 전류 분산 역할을 해 드리프트와 공진을 없애고 이를 통해 해상력을 극단적으로 높여준다. 플래그십 오메가에는 한쪽 채널 케이블당 4개, 시그마 v2에는 2개, 알파 V2에는 1개가 달렸고, 델타 V2와 베놈 X, 베놈 스피커케이블에는 없다. 시그마 스피커케이블이 V2가 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외관상의 변화도 이 HARP 모듈 디자인이다.
한편 상위 오메가 스피커케이블의 경우 케이블 부양 액세서리인 뫼비우스 서스펜션(Mobius Suspension)이 총 8개가 기본 제공되지만, 시그마 v2 등 레퍼런스 라인에는 없다.
시청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에서 진행한 선야타 리서치 케이블 시청에는 MSB Premier DAC, eMM랩스 PRE 프리앰프, MBL 9008A 모노블록 파워앰프, 피에가 Coax 811 스피커를 동원했다.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은 제작사가 권장한 대로 프리앰프에 투입했으며, 두 케이블 모두 비슷한 가격대 파워케이블 및 스피커케이블과 비교 청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휘자 John Williams
오케스트라 Wiener Philharmoniker
곡 Star Wars: The Imperial March
앨범 John Williams in Vienna
먼저 스피커케이블만 선야타 리서치 시그마 v2로 바꿨다. 이 직전에도 웅장한 파워와 넓은 무대에서 모노블록 파워앰프와 동축 리본 스피커의 위용이 대단했지만, 스피커케이블을 교체하자 갑자기 저음의 탄력감이 급상하고 무대 앞뒤 거리가 크게 늘어났다. 무엇보다 막힌 속이 뻥 뚫린 듯한 쾌감이 장난이 아니다. 단결정 순동선과 순은선, VTX-Ag 지오메트리, HARP 모듈이 파워앰프와 스피커 사이의 대전류 흐름을 좋게 해준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프리앰프에 연결된 파워케이블을 바꿨다. 세상에. 음과 무대가 훨씬 생생해졌다. 색채감은 늘어나고 스피커케이블로 나아졌던 저음의 탄력감 역시 2단 점프를 한 것 같다. 프리앰프에서 보다 맑고 선명하며 힘 있는 전류가 뒷단이 파워앰프로 넘어간다는 인상. 선야타 리서치의 두 케이블 투입 전에 살짝 거칠게 느껴졌던 음의 표면이나 베일이 가려진 듯한 무대가 확 바뀌었다. 매끄러워지고 투명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스피커케이블 때보다 프리앰프 파워케이블 교체 시 체감상 변화가 더 컸는데, 이는 그만큼 파워케이블이 전체 오디오 기기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증거다. 친애하는 오디오 리뷰어 마이클 프레머가 옳았다. 파워케이블은 수도관으로 치면 집안의 정수기에 해당하고, 결국 전기 맛은 집안 벽체 콘센트 이후부터 달라지는 것이다.
아티스트 Daft Punk
곡 Doin' it Right (feat. Panda Bear)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
이 곡에서도 선야타 리서치 두 케이블을 투입하면 무대의 투명도나 이미지의 선명함이 나아질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스피커케이블을 시그마 v2로 바꾸자 음수 자체가 많아졌고 알록달록 색채감도 좋아졌다. 저음이 확 가슴을 치고 나아가는 모습도 달라졌다. 좋은 의미에서 둔탁하다. 망치에서 해머로, 작은 파도에서 큰 파도로.
프리앰프에 물린 파워케이블을 시그마 v2 NR로 바꾸자 시청실에 피에가 스피커가 내뿜은 음들이 가득해진다. 이에 비하면 좀 전의 상황은 스피커가 꼭 필요한 음만 들려줘 상대적으로 앙상했다는 느낌. 무대의 공간감이나 앰비언스도 더 늘어나고, 리듬앤페이스도 좋아져 음악이 보다 흥겹고 파워풀해진다. 맞다. 지금 이 상황은 웰메이드 프리앰프를 투입했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변화와도 같다.
아티스트 Sara K.
곡 All Your Love (Turned to Passion)
앨범 Waterfalls
사실 이 곡은 기존 케이블로 들을 때에도 불만이 전혀 없었다. 왼쪽의 기타 이미지는 선명하고 사라 케이의 목소리는 텍스처가 생생했다. 무대 역시 좌우로, 앞뒤로 넓고 깊게 펼쳐져 더 나아질까 싶었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스피커케이블을 바꾸자 왼쪽 기타에 아주 센 하이타이트 조명이 비치고 주위는 더욱 새까맣게 변했다. 무엇보다 기존 것이 ‘억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라 케이의 목소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렸다.
프리앰프 파워케이블을 바꾸자 또 한 번 녹음 공간의 앰비언스가 더 잘 느껴진다. 덕분에 무대가 보다 리얼하게 변신하고, 좀 전까지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소리들이 여럿 들리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가수와 연주자들의 컨디션이 갑자기 좋아졌다는 인상. 그러고 보니 무대가 넓어졌다. 음의 촉감 자체가 부드러워진 점도 큰 변화다.
아티스트 Fink
곡 Trouble’s What You’re In
앨범 Wheels Turn Beneath My Feet
스피커케이블을 바꾸자 기타가 더 묵직하게 들리는데, 기타 인클로저에 갇혀있던 음들이 서로 앞다퉈 빠져나오려고 아우성을 친다. 그만큼 보다 가까이서 음의 출발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 엉켜있던 실타래가 쑤욱 풀리는 느낌을 스피커케이블 교체로 받을 줄이야. 관객의 환호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날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이 곡에서 프리앰프 파워케이블을 바꿨을 때였다. 무대 가운데의 음상이 비할 수 없이 또렷이 맺히는데, 파워케이블이 이 정도로 음악을 지배하는가 감탄, 또 감탄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생략되었던 음들이 일제히 부활했다는 느낌. 대역도 역시 크게 넓어진 것 같다.
지휘자 Osmo Vanska
오케스트라 Minnesota Orchestra
곡 Symphony No.6 I. Allegro energico
앨범 Mahler: Symphony No.6
그동안 체감했던 선야타 리서치 시그마 v2 케이블의 위력이 집약돼 나타났다. 스피커케이블을 바꾸니 음이 단단해지고 무대 앞이 투명해져 오케스트라가 내달리는 대목에서도 혼탁한 구석이 거의 없다. 확실히 스피커케이블은 오디오 시스템의 해상력과 저음의 순도, 무대의 투명함을 좌우한다.
이에 비해 프리앰프 파워케이블을 바꾸면 보다 세밀하게 가다듬은 음들이 출몰한다. 아까는 군데군데 빠진 구석이 보였는데, 지금은 아주 세밀하고 곱게 채워졌다. 선야타 리서치에서 왜 NR 파워케이블을 프리앰프나 소스기기에 쓰라고 한 것인지 절감했다.
총평
각 오디오케이블 브랜드에는 저마다의 필살기가 있다. 실텍과 크리스탈케이블, 와이어월드는 단결정 순은선, 안수즈는 헬릭스 코일, 헤밍웨이는 주파수변조공동화원리(FMCF), 에콜은 은과 금, 팔라듐 합금선 등이다. QED의 X-Tube 역시 가운데에 속이 빈 필러를 넣고 그 둘레를 OFC로 감쌌다는 점에서 선야타 리서치의 VTX-Ag 와이어와 공통점이 많다.

시청 결과, 시그마 v2 NR 파워케이블과 시그마 v2 스피커케이블은 혁혁한 음질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스피커케이블은 주로 저음의 해상력에서, 프리앰프에 연결한 파워케이블은 음의 생기와 무대의 활기, 이런 쪽에서 변화가 컸다. 시청기에는 쓰지 않았지만 선야타 리서치의 케이블 부양 액세서리인 뫼비우스 효과도 대단했다.
따져보면, 저음의 해상력 증가는 스피커케이블의 VTX-Ag 와이어를 통해 스킨 이펙트와 와류 전류가 줄어든 덕분이다. 선재의 스킨 이펙트와 와류 전류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주파수가 낮은 저음이기 때문. 특히 스피커케이블은 파워케이블 못지않은 대전류가 흐른다는 점에서 이 튜브 형태의 선재 설계는 여러모로 이득이다.
음의 생기와 무대의 활기가 늘어난 것은 단결정 순동선과 순은선의 콜라보, 여기에 NR 기술이 보태어져 프리앰프가 제 실력을 100% 발휘한 덕분이다. 물론 VTX-Ag 와이어를 통해 AC 60Hz 저주파가 막힘없이 술술 프리앰프 전원부로 들어간 이유도 크다. 역시 소리가 바뀐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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